소설리스트

남작가의 정령 천재-39화 (39/210)

039. 와, 소설 잘 쓰시네

“다들 모여 봐.”

놀라운 일이었다. 노바의 입에서 유창한 대륙어가 흘러나왔다.

한데, 놀라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노바의 말에 모일 뿐이었다.

“주인이 연금술사를 감시하라는 명을 내렸다.”

노바의 말을 가장 먼저 이해한 건, 주술사인 용수바람이었다.

“주인은 범인을 이미 알고 있었나 보군.”

그의 입에서도 유창한 대륙어가 흘러나왔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야만인이라곤 하지만, 이 아이들은 각 분야의 천재였다. 그런 이들의 머리가 부족할 리 없었다.

대륙어 교육을 지금까지 받았는데, 제자리걸음일 리 없었다.

“그런 거 같다. 주인이 경솔하게 움직일 리도 없으니, 그쪽에 범인이 있는 게 확실할 것이다.”

둘의 대화를 듣던 날파람과 살바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이 무슨 이유에서 명령을 내린 건지 확실히 이해한 것이다.

“이번엔 살바람과 날파람이 계획을 짜라.”

레인저 날파람. 암살자 살바람.

범인을 감시하는 건 이 둘의 전문 분야였다.

“난 안으로 스며들겠다.”

“주인이 감시만 하라고 했으니, 너무 가까이 접근할 필요 없다.”

“알겠다.”

암살자 살바람은 근거리에서.

“난 멀리서 여럿을 감시할 만한 계획을 세워 보겠다.”

“그건 나와 용수바람이 도와줄 수 있으니, 우리도 포함해서 계획을 세워라.”

“알겠다.”

레인저 날파람은 원거리에서.

각각 연금술사를 감시할 계획이 천천히 세워지고, 아이들은 행동으로 옮겼다.

하나씩 정보를 모으고, 범인을 추려 냈다.

처음엔 수확이 전혀 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이들은 없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의심스러운 사람은 전혀 없었다.”

의심이 가는 이들이 전혀 없다.

주인이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이들은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주인이 실수할 리 없다.”

“동감이다. 그 주인이 실수할 리 없지.”

아이들이 본 진은 완벽한 사람이었다. 움직였다 하면 언제나 완벽한 해결책을 가져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역병만 해도 주인이 움직이자마자 남작령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사람 외에 의심스러운 건 모두 확인한다.”

이 믿음 덕에 아이들은 모든 것을 감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새와 쥐가 너무 많다.”

도시에 새와 쥐가 너무 많았다.

그것만으로도 이상한 일이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쥐와 새들은 일정한 규칙성을 띠며 움직이고 있다.”

단순히 야생동물들의 본능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모습.

“이쪽을 파고든다.”

그다음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새와 쥐들을 따라 범인을 추적하고,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확인했다.

“찾았다.”

노바가 범인을 찾아냈을 때.

“무엇을 말인가?”

“…….”

기사단장과 만났다.

* * *

남작가의 지하 감옥.

이곳에 범죄자가 수감되는 건 정말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기사단장은 지하 감옥으로 내려가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이 아이들을 도와줬을 뿐입니다. 범인을 찾아내고 잡은 건 모두 막내 도련님이 거두신 아이들의 공입니다.”

기사단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저 양반, 애들이 범인을 조사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어.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도와준 거야.]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도와주고, 그 공을 아이들에게 밀어 준다?

‘무슨 의도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데.’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은 진에게 나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우선, 제일 궁금한 걸 물었다.

“그래서 범인은 누구였습니까?”

“연금술사 ‘스밀런’이 범인이었습니다.”

스밀런?

난생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연금술 상점 주인의 제자입니다.”

범상치 않던 연금술 상점 주인도 아니고, 그 제자가 범인이었다.

진이 반응하기도 전에, 남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브로스 님 제자가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겁니까?”

남작은 연금술 상점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 그 영감님이 이런 말을 했었다.

‘허허. 그렇군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방문하세요. 전 남작님에게 큰 빚이 있으니 도와 드리겠습니다.’

무슨 빚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남작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이것만이 아니야.’

남작은 그 영감님을 ‘브로스 님’이라고 불렀다. 이건 명백히 윗사람을 부를 때 쓰는 말이었다.

“브로스 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현재 지하 감옥에서 조사를 받고 계십니다.”

“허어. 안 될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브로스 님께서 이 사건과 연관이 있으실 리는 없습니다.”

남작은 확신하듯 말했다.

하지만 기사단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예외를 둘 순 없는 일입니다. 조사가 필요합니다.”

남작도 그걸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남작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브로스 님과는 선대부터 인연이 이어져 왔습니다. 적어도 조사를 할 때 우리 쪽에서 실수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겁니다.”

“예. 알겠습니다, 남작님.”

남작의 말에 기사단장도 한발 물러섰다.

“범인과 대화를 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막내 도련님께서요?”

“예. 딱 하나만 물어볼 생각입니다. 정말 잠깐만 시간을 내주시면 됩니다.”

진의 말에 기사단장의 눈이 반짝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지하 감옥의 끝까지 내려왔다.

“이쪽입니다.”

기사단장은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사람들을 안내했다.

“누가 사주한 일이지? 말해라!”

“…….”

그곳에는 심문이 한창이었다.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남작이었다.

“브로스 님. 괜찮으십니까?”

“……남작님. 이 늙은이가 폐를 끼친 거 같습니다.”

“그런 말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브로스 님께선 이것과 연관되지 않은 걸 알고 있습니다.”

“이 늙은이를 그리 믿어 주시니…….”

대체 어떤 인연이 이어져 있길래 이리도 끈끈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쪽은 아직 한참 더 대화가 이어질 거 같았다.

진은 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기사단장은 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가장 안쪽 범인이 있는 곳까지 안내했다.

“잠시 심문을 멈춰라.”

기사단장은 기사들을 물러나게 한 뒤, 진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편하게 물어보시면 됩니다.”

진이 물어볼 건 간단했다.

그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그러자 그의 몸이 ‘움찔’하며 떨렸다.

[이건 말해 주지 않아도 알겠지?]

진은 로메른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생각대로네.’

더는 볼 것도 없었다.

진은 곧장 기사단장에게 다가갔다.

“범인은 교단으로 넘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교단 말입니까?”

“예. 현재 교구장님이 조사하고 있는 사건을 일으킨 이들과 한 패거리입니다.”

그 말에 기사단장의 얼굴이 굳었다.

“……이거 참, 생각지도 못한 일입니다.”

이번 역병이 자신을 향한 공격이 아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예. 저쪽도 잠깐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예. 남작님과 대화도 끝난 거 같으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그의 말대로 남작과 영감님의 대화는 끝나 있었다.

진은 아까와 똑같이 그에게 다가가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지식의 해방을 위해.”

한데, 아까와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영감님은 그게 뭔 소리냐는 듯 진을 바라봤다.

뛰어난 연기일 수도 있지만.

[연기하는 거 아니야. 심박 수나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야.]

이쪽은 거짓말 탐지기를 지니고 있었다.

진은 고개를 돌려 기사단장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은 조용히 감옥에서 벗어났다.

‘이젠 알아서들 하세요.’

이만큼 해 줬으면, 뒤처리 정도는 알아서 해 줘야 하는 법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남작령은 평온함을 되찾았다.

물론 그러지 못한 곳도 있었다.

“허허. 역시 성자님께서 소환한 정령들은 범상치 않습니다.”

역병 전문 사제들의 대장인 영감님이 남작령에 남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진을 찾아왔다.

“마치 신께서 점지라도 해 주신 듯, 빛과 피의 정령이라니. 신의 뜻이 정말 드높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영감님은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했다.

“오호. 성령을 보니 성서에 나온 희망의 4기사가 떠오릅니다. 아이들도 딱 넷이군요. 역시 성자님이 확실하십니다.”

진이 보기엔 이 영감님은 소설을 썼어도 희대의 명작가가 됐을 것이다. 뭘 보여 주기 무서울 정도였다.

“이제 이 늙은 몸을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성자님.”

그렇게 일주일 넘게 찾아오던 영감님이 돌연 작별을 고했다.

“앞으로 가롯과 함께 성자님을 최대한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여길 찾아와 주셔서 상황을 정리해 주신 걸로도 충분합니다.”

“허허. 역시 성자님이십니다.”

그게 영감님과 한 마지막 대화였다.

‘뭐, 별일이야 있겠어? 도와준다는데 좋은 일이면 좋은 일이겠지.’

진은 이 일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되찾은 평화를 만끽하며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좀 쉬어야지.’

진은 만족스럽게 해먹에 몸을 뉘었다.

물론 그런 진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영감님은 교황청으로 돌아가 교황을 알현했다.

“어서 오세요, 추기경.”

영감님의 정체는 엄청났다.

추기경.

교황과 신을 제외하면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제가 평생 이 대륙을 떠돌았던 걸 아실 겁니다.”

“추기경 그대의 노고는 사제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드높은 곳에 올랐으나, 절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한 사제.

모든 사제의 존경을 받는 자.

“전 세상을 떠돌며 많은 것을 봤습니다. 그런 제가 플린트 남작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영감님은 천천히 자신이 본 것들을 설명했다.

진이 생각한 대로 영감님은 이야기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 냈다. 그 솜씨가 여지없이 발휘됐다.

그 덕에 교황은 아무런 반응조차 보이지 못하고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 이야기의 끝에 도달했을 때.

“그는 성자입니다.”

그 충격적인 말을 들었을 때.

교황의 눈은 찢어질 듯 크게 뜨여 있었다.

“성자의 출현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세상에 위험이 닥칠 겁니다!”

영감님의 오해에서 시작된 결론은 진실에 매우 근접한 상태였다.

“교단이 그의 방패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제가 평생 절망을 떠돌며 찾은 ‘희망’입니다. 그러니 그를 성자로 추대해야 합니다.”

다른 사제도 아니고, 추기경이 한 말이다.

“……추기경. 성자 추대는 나 홀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그건 영감님도 알고 있었다.

애초에 영감님이 노린 건 따로 있었다.

“교단의 교회의를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요청 사유는 성자 선출입니다.”

대륙에 큰일이 닥쳤을 때나 벌어졌던 ‘교회의’가 요청됐다.

잠시 고민하던 교황은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요청을 수락합니다.”

교황의 수락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황청에서 전서구 수백 마리가 일시에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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