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43. 드워프(4)
“흐음…… 한 마디로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라는 거군.”
장로 드워프들이 돌아간 뒤, 세은은 장로들과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사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계는 워낙 넓어 마왕들도 자신들의 직접적인 영역이 아니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특히 아예 영역에 관심을 두지 않는 마왕들도 많았기 때문에, 빈 영역이 더욱 많았다.
하지만 마왕이란 자리는 쉽게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의 힘을 마신에게 인정받아야 마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
그를 위해서는 기존의 마왕들과의 전투를 통해 그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마왕의 위에 오르고 난 뒤에는, 자신의 능력에 맞춰서 각자의 권능이 생긴다.
거기에 수명도 마신의 축복을 받아 다른 마족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게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족이 기존의 마왕을 이기고 마왕의 위에 오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일.
이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힘이 있던 강한 마족들은 마왕들이 신경 쓰지 않는 빈 영역에서 자신들의 구역을 만들었다.
‘이 드워프 마을은 마족 아바돈이 관리하는 지역이라…….’
세은은 장로 드워프들에게 들은 마족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러나 마왕이 아닌 마족의 이름을 세은이 알고 있을 리가.
아바돈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지만, 드워프들은 대답해 주기 꺼려하는 눈치였다.
마족에 대한 두려움이 깊숙하게 각인된 것 같은 태도.
다만 다행인 것은 아바돈은 직접 마을에 내려오지 않고 부하들을 시켜 원하는 것을 요구한단 점이었다.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부하들을 시켜 마물들의 접근을 종종 막아준다고 했다.
말로만 들어서는 드워프들이 무서워할 일이 전혀 없었지만, 기존에 이런 질서가 잡히기 전에는 당한 것이 꽤 있는 것 같았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말이 꽤 여러 번 들렸던 것이었다.
“뭐, 마족 놈들 중에서 멀쩡한 놈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마계의 기본적인 원칙이었다.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란 놈들에게 배려와 관용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미련한 짓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몇몇 놈들도 그냥 귀찮아서나 변덕 때문이지 믿을 만하지는 않았다.
세은이 그레모리를 끝까지 믿지 못한 이유도 바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하여튼 마족이 직접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인데…….”
문제는 이번에 마족이 원하는 물건을 상납할 기간이라 아바돈의 부하가 다시 마을에 온다는 것이었다.
마족의 부하라면 분명히 마족일 텐데, 혹시 세은의 존재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정확히 언제 오는지를 모르니 마냥 나가 있을 수도 없고 말이야…….”
본능적으로 신성력과 마기는 서로와 극상의 관계다.
애초에 마신과 에일린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교단과 마계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었다.
물론, 두 힘이 서로 상극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강자존을 외치는 마계와 인간들이 융합될 리가 없었다.
일단 장로 드워프들에게는 마족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괜히 대안도 없이 섣부르게 말을 꺼냈다가 당장 마을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일.
그건 세은으로서는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당장 여태 만난 다이어 베어나 멘티스보다도 강한 마물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일이다.
“일단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야겠어.”
아무래도 마족이 나타나면 여기서 나가야 할 가능성이 제일 높았다.
그전에 마계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세은.
다만 어떻게 지구로 돌아가야 하는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검사를 고르라면 당연 마왕 중에서 고르게 된다.
마계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도 마찬가지.
마계에서 어느 한 정점에 섰다는 말은 그가 마왕이란 말과 진배없었으니까.
“후우…… 드워프를 발견했지만 답이 없기는 매한가지군.”
세은의 한숨이 방 안을 한가득 채웠다.
* * *
모든 심문을 끝낸 장로들은 다시 마을 중앙의 건물에 모였다.
물론 그들과 대화한 세은은 심문이라고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었지만, 장로들은 나름대로 세은에게 얻은 정보를 가지고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인간이 마족과 관련이 없는 건 확실한 것 같군.”
엔블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뭐,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처음 세은에게 가기 전에 전사들을 소집했던 오드레가 말했다.
“그래도 인간을 처음 보니 신기하더군. 문헌에서 적어놓은 것만으로는 그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말이야.”
다른 장로 드워프가 말했다.
그의 말에 다른 장로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하긴, 인간이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가 배척할 필요는 없지. 우리 마을에 온 이상 모두 손님이 아닌가?”
“언제 우리가 인간을 만날 기회가 있겠나? 어차피 받아들인 거 잘 대접해서 보내기로 하지. 우리 전사들의 목숨을 구해준 은도 있고 하니 말일세.”
세은이 마을에 커다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장로들의 의견이 일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것보다 자기가 온 걸 밖에 알리지 말라는 건 조금 의심스럽기는 한데…….”
한 장로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기는 하지.”
엔블이 그의 말에 동의했다.
“그럼 어차피 안내자가 필요할 테니 안내자를 붙이고, 그에게 인간을 캐보라고 하면 어떤가?”
“오!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일세그려.”
“그럼 누구를 보내야 하지?”
“아무래도 전사보다는 행정 쪽이 낫지 않겠어?”
“그런가? 아무래도 전사 쪽 애들은 고지식한 편이 많아서.”
“아니, 지금 우리 애들을 무시하는 건가?”
“허허. 오드레, 그런 말이 아닐세. 무시는 무슨 무시.”
“우리 애들보고 고지식하다고 무시하지 않았나?”
장로들의 대화는 평소처럼 시끌벅적했다.
“자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누구를 인간의 안내자로 붙일지 의견부터 내보게나.”
또다시 엔블이 대화를 중재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이왕이면 평소에 다른 종족에 대해 관심이 많은 아이면 좋겠군.”
“아! 그런 아이라면 하나 있네.”
“그게 누군가?”
적임자가 있다는 장로 드워프의 말에 엔블이 물었다.
“지금 데려오겠네. 만나보고 얘기해야지.”
“좋아. 바로 불러오게.”
* * *
똑똑―
“계십니까?”
저녁이 되자 세은이 있는 방의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이번에는 또 뭐지?’
낮에 장로들이 왔다갔는데, 다시 드워프가 오자 세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지?”
세은은 문을 열며 자신을 찾아온 드워프를 맞이했다.
“아, 아, 반갑습니다. 저는 마을에 처음으로 온 인간을 안내하게 된 로나민입니다.”
세은의 앞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드워프 하나가 서 있었다.
아무래도 인간을 처음 보는 것이 신기한지 자신을 로나민이라고 소개한 드워프의 눈은 연신 세은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 일단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로나민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굳이 안내자까지는 필요가 없는데 말이야. 여기서 나갈 생각이 별로 없거든.”
“아! 그래도 인간 손님은 처음이라 장로님들이 지시하셨습니다.”
세은의 말에 그의 뒷모습을 관찰하던 로나민이 황급히 대답했다.
문헌이 아닌 실제로 본 인간은 정말로 신기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신체 비율에, 외모도 달랐다.
마족들도 드워프와 외모가 다르기는 하지만, 그들은 종족의 공통적인 특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세은처럼 같은 인간끼리 비슷한 특성의 외모를 지닌 종족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지간히도 신기한가 보네.’
새은은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계속 자신을 위아래로 관찰하던 로나민을 보며 생각했다.
물론 자신도 드워프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렇게 노골적으로 바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뜨거운 그의 시선에 세은이 말했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았으면 하는데?”
“아! 죄송합니다. 제가 손님에게 실례를…….”
말과는 달리 로나민의 눈은 계속해서 세은을 열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결국 세은은 그의 시선을 치우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것을 물었다.
“하여튼, 그래서 나한테 뭘 안내해 주려고 온 거지?”
“아무래도 인간 손님은 처음이니까요. 식사에 대한 문제도 있고 해서 왔습니다.”
‘하긴, 마계에 와서 제대로 뭘 먹지 못했지…….’
간단하게 과일 같은 것을 먹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고 하긴 힘들었다.
세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로나민에게 물었다.
“드워프들은 보통 무엇을 먹지?”
“아, 저희는 밀을 주식으로 합니다.”
“인간이랑 똑같군.”
“하하.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주 먼 옛날에는 같이 살았다고 하니까요.”
“그 얘기는 알지만…… 마계에도 밀이 자라나?”
“물론입니다. 마계도 생명이 사는 곳이니까요. 물론 이곳의 평판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가끔 천계에서 쳐들어오는 일도 있고 말이죠.”
로나민은 질색이라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요즘에는 인간들이 자주 쳐들어온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마족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그러고도 남죠.”
‘아! 게이트!’
로나민의 얘기를 듣던 세은은 그제야 게이트가 연결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맞아 게이트를 타고 넘어가면 되는구나.’
세은은 지구로 돌아갈 방법이 생각나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왕들도 넘어오는데 세은이라고 넘어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게이트가 어디서 열리는지가 문제기는 한데.’
거기에 연결된 게이트가 지구가 아니라 교단이 있는 대륙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방법은 찾았지만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일단 게이트를 찾아서 돌아다니려면 몸의 회복이 중요하겠어.’
방법을 찾았으니 이제 몸의 회복에 주력할 차례였다.
“저, 저기……. 혹시 제가 말실수라도?”
자신의 말을 듣던 세은의 표정이 갑자기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가를 반복하자 로나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나 자신이 말한 것이 세은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봐 걱정이었다.
세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인간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는 로나민으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다.
“아, 아니야. 하여튼 식사를 물어보러 왔다니 고맙네.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인데 말이야.”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난 세은이 고개를 저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별로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은 세은의 태도에 로나민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마을의 손님인데 당연한 일이죠. 그럼 식사를 지금 하시겠습니까?”
“좋지.”
세은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나민이 환하게 대답했다.
“아, 그럼 지금 식사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저랑 같이 드시면 됩니다.”
너무 과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로나민은 열심히 세은의 말에 반응했다.
그 행동에 나쁜 뜻이 없다는 사실을 알던 세은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다 해소하고 나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열심히 정보를 캐내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특히 식사를 할 때는 누구나 긴장이 풀리기 때문에 더 대화를 풀어나가기 쉬웠다.
로나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저녁식사를 가져오기 위해 움직였다.
탁―
“저녁 식사 가져왔습니다.”
미리 준비되어 있었는지, 로나민이 빠르게 2인분의 식사를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좀…… 많은데?”
세은은 자신의 앞에 놓인 식사를 보며 말했다.
보통 인간들이 먹는 양의 두 배 정도의 양이 자신의 앞에 놓여 있었다.
“아, 너무 양이 많습니까?”
“이거의 반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아, 알겠습니다. 덜어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세은의 말에 로나민의 눈이 반짝거렸다.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것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