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43. 드워프(3)
“뭐가 왔다고?”
가장 먼저 세은의 방문을 맞이한 장로 드워프 로톤의 전언에 다른 장로 드워프들이 급하게 달려왔다.
“대체 왜 이렇게 늦었나?”
가장 늦게 도착한 장로 드워프를 향해 다른 장로들이 한 마디 했다.
왕이 없는 드워프들은 부족 중에 가장 경험이 풍부하고 각 분야에서 명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을 장로로 선출했다.
수명이 150년 정도인 드워프들은 보통 60년 정도 자신의 분야에 종사하면 장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서 명인으로 인정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
명확하게 그 분야를 선도하거나, 커다란 업적을 이뤄내야만 했다.
“경계 근무를 서는 애들 돌아본다고 조금 멀리 나가 있었지.”
마지막에 도착한 장로 드워프는 넉살 좋게 그 말을 받아내며 자리에 앉았다.
미리 준비된 차는 다 식어버려 김도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그것보다 내가 들은 소식이 맞는 건가? 대체 뭐가 왔다고? 우리 마을에?”
“인간이 왔다네.”
“이, 인간?”
마지막에 온 드워프는 어찌나 멀리서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장로가 안쓰러웠는지 근처에 있던 수건을 던져주었다.
휙―
“아, 고맙네!”
장로는 재빨리 흥건한 땀을 쓱쓱 닦아냈다.
“하여튼 계속 말해보게 엔블.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왔다는 건가?”
“그래, 마지막으로 오드레도 왔으니 얘기를 시작해도 되겠구먼.”
가장 먼저 세은을 마주하고 모든 장로들을 소집한 드워프, 엔블이 드디어 얘기를 시작했다.
“다들 이번에 멘티스의 영역으로 우리 전사 3명을 보낸 건 알고 있을 것이네.”
“모를 리가 있겠나?”
“그 일이랑 인간이랑 대체 무슨 상관인가?”
멘티스의 영역에 드워프 전사들을 보낸 이야기가 나오자 자리에 참석한 모든 장로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부족한 인력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차출해서 위험하디 위험한 멘티스의 숲으로 보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혹시…… 거기서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마을의 치안을 담당하는 오드레가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설마 일이 잘못되었을까 하는 걱정이 가득 감돌았다.
그러나 엔블은 고개를 저어 그런 오드레의 걱정을 한결 덜어주었다.
“아니, 자네가 생각하는 마족과 관련된 그런 문제는 아니네.”
“그럼 다행이지만…….”
“하여튼 인간 얘기를 계속하겠네.”
“아! 그러게. 멘티스의 얘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그만.”
오드레는 땀을 닦던 수건을 내려놓고 다시 엔블의 얘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을 하자면, 이번에 멘티스의 영역에 가서 마목을 구해오려던 일은 실패했네. 이것에 대해서도 모인 김에 의논을 해야 해.”
“……허어.”
“…….”
마목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는 말에 모든 장로들의 얼굴이 또다시 어두워졌다.
“그럼 우리 전사들은?”
“후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크카멜만 불의 곁으로 돌아가고 카밀크와 라크밀은 무사히 돌아왔네.”
엔블은 한숨을 쉬면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그 둘을 구해준 것이 바로 우리 마을에 온 그 인간이라네.”
“인간이 구해줬다고?”
“대체 어떻게?”
“혹시 마족과 관련된 인간은 아닌가?”
또다시 다른 장로들이 엔블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엔블은 그런 장로들의 반응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카밀크와 라크밀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듣기는 했지만, 엔블 자신이 직접 본 일은 아니었다.
보통의 다른 드워프들과 마찬가지로, 엔블도 인간에 대해서는 문헌으로 접한 것이 전부.
일단 부족의 전사들이 도움을 받았다고 하니 손님으로 받기는 했지만 생경한 상황인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의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장로들을 소집한 것이기도 했다.
“……나도 말로만 들어서 자세히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마족과 관련된 인간은 아니라고 하더군. 그리고 상당한 무력을 지니고 있다고 했네.”
“허어. 마족과 관련이 없는 인간이 마물의 숲에서 살아남는 게 가능하기는 한 건가?”
“우리 전사들이 그렇다고 하니 믿어야겠지. 그리고 내가 직접 봤을 때도 마족과 같은 느낌은 받지 못했어.”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그럼 일단 인간은 어디에 있나?”
엔블은 다른 장로의 질문에 대답했다.
“일단은 마을에 방문하는 귀빈들을 위한 곳에 보내놨네.”
“인간을 직접 본 드워프가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군.”
“일단 악한 심성을 가진 자로 보이지 않던가?”
“자네도 참, 그걸 처음 보고 어떻게 알겠는가?”
장로들이 서로 시끄럽게 떠들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마땅한 의견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장로들은 한참을 그렇게 계속 회의를 지속했다.
그러나 거의 30여 분 동안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았지만, 딱 제일 좋다고 생각할 만한 좋은 의견이 나오지는 않았다.
“아니, 여기서 이렇게 모여서 우리끼리 말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오드레가 말했다.
“일단 그 인간을 우리가 직접 만나봐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어떻게 대할지는 정하고 만나야 하지 않겠나?‘
“상대가 어떤 의도로 왔는지를 모르는데 우리끼리 이렇게 떠든다고 답이 나오냐는 말이야.”
“하긴……. 그 인간은 단순히 쉴 곳을 원한다고 했지만, 마계에 계속 살던 이라면 쉴 곳을 찾을 리가 없지.”
“내 말이 그 말일세. 당연히 무슨 일이 있으니 쉴 곳을 원하는 것이 아니겠나?”
“오드레의 말에 일리가 있군. 그럼 좀 더 자세히 그 인간과 대화를 나눠 봐야겠어.”
다른 장로들의 말에 엔블이 사과를 건넸다.
“내가 너무 황망해서 급하게 자네들을 부른 것 같군. 미안하네.”
“아닐세. 자네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당황했을 것이 분명해. 어느 누가 인간이 마을에 올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 그리고 이런 일은 혼자서 결정하기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 우리 중에 누구라도 이렇게 모두를 불러 모았을 거야.”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만.”
엔블이 다른 장로들의 말에 고마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떻게, 인간에게는 누가 가겠는가?”
“우리 모두가 가지.”
오드레가 말했다.
“라크밀과 카밀크의 말대로라면 꽤 강한 인간인 것 같은데, 그런 인간이라면 우리 모두가 가서 압박을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네.”
“하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우리 모두를 이길 수는 없을 테니까.”
엔블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우리 모두 가보세. 이거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인간이 마족과 관련된 사건에 연관이 되어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바로 쫓아 보내야만 하네.”
“당연하지.”
“혹시 모르니까 전사들을 조금 소집해 놓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어.”
“우리면 충분하지 않겠나?”
“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걱정스러운 다른 장로의 말에 오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하지.”
“그럼 오드레가 준비를 마치고 오면 인간에게 가는 것으로 하세.”
그 말을 끝으로 장로 드워프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방을 안내 받은 세은은 습관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워프의 기준에 맞춰 건축이 되어서인지 세은에게는 다 조금씩 길이가 부족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세은은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간이 있을 때 쉬지 않고 계속해서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우웅―
이제 육체적인 회복은 거의 끝난 상태.
그러나 정작 중요한 신성력의 발출이 문제였다.
보통 교단의 인원이 신성력을 폭주 시킬 정도로 위기가 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성력을 폭주시키고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정보는 교단 내에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을 못한 세은은 그 얼마 되지 않는 정보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끄응……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자세하게 보는 건데.”
마나나 오러의 폭주는 생각보다 흔한 일이여서 그 증상이 잘 알려져 있었지만, 신성력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몸이 멀쩡한데 왜 대체 신성력이 제대로 모이지 않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
마치 마나링이나 오러홀이 파괴된 것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아니, 진짜 그런 거라면 아예 신성력이 발현이 되면 안 되는데 말이야.”
그러나 이상하게도 신성 마법이 아닌 신성의 검은 잘 발현이 되니까 그게 더 문제였다.
차라리 이것도 되지 않으면 신성력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을 할 텐데.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으니 더 알 수가 없었다.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기는 한데…….”
세은이 쓰는 신성의 검은, 다행히 신성 마법이 아니라 그가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이었다.
검을 들고 다니는 것이 귀찮고, 더 좋은 효율을 내기 위해 만든 기술이었다.
“후우. 일단 계속 해서 몸을 확인해보는 수밖에…….”
세은이 그렇게 풀리지 않는 상황에 한숨을 쉬고 있을 때 밖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인간, 안에 있는가?”
‘아까 만났던 그 드워프군.’
워낙 여러 명의 인기척이 들려 살짝 긴장했던 세은은, 처음 자신이 만났던 장로라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일이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네.”
“들어와.”
세은의 말이 떨어지자 엔블이 문을 열고 다른 장로들과 안으로 들어왔다.
“아, 여기 있는 이들은 전부 나와 같은 우리 마을의 장로네.”
장로들은 처음 엔블이 세은을 봤을 때처럼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과 경계가 뒤섞인 그런 눈빛.
세은은 담담하게 그런 시선을 넘기며 엔블에게 물었다.
“그래서 물어볼 것이 뭐야?”
“아, 이해해 주게. 우리 마을에 인간이 처음이라.”
“당연하지.”
세은과 엔블의 대화 사이를 오드레가 끼어들었다.
“반갑네. 인간. 자네가 우리 전사들을 구해줬다고 들었네.”
“그런데?”
“일단 그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군. 그 전사 둘은 내가 아끼는 이들이거든.”
오드레의 말에 세은이 그를 훑어보았다.
확실히, 다른 드워프들에 비해 더 떡 벌어지고 단단한 근육이 그가 전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오러가 느껴지지 않는데?’
그러나 세은은 오드레에게서도 오러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드워프들이 마기를 사용할 리도 없으니, 이들이 말하는 전사는 말 그대로 순수한 육체적 힘을 사용하는 격투가 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멘티스에도 쩔쩔 매는 거였군…….’
도대체 이런 드워프들이 마물로 넘쳐나는 마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하여튼 자네는 기분 나쁠 수도 있으나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의 안전을 위한 일이니 이해를 부탁하네.”
“손님 입장에서 당연하지.”
“허허. 문헌에 나오는 인간하고는 다르게 꽤 경우가 있어서 다행이구만.”
오드레는 저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그의 말에 다른 장로들이 당황해서 그를 바라보았지만, 세은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물어볼 용무는?”
“별일은 아니고, 자네가 쉴 곳을 찾는 이유지.”
“그게 왜 중요하지? 매우 개인적인 일인데 말이야.”
“허허. 자네에게는 개인적인 일이겠지만 우리는 아니지 않은가? 혹시 자네가 마족과 연관되어 있다면 우리로서는 큰 문제니까.”
‘마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건가?’
오드레의 말에 세은이 드워프와 마족들의 관계를 어림짐작 할 수가 있었다.
‘일단은 조금 더 떠봐야겠어.’
세은은 속마음을 숨기고 태연하게 질문했다.
“마족하고는 관련이 없는데, 마족에게 관련이 없으면 마족에게 날 보낼 생각인가?”
“허어? 마족이 인간을 왜 원하겠나. 마계에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널려 있는데.”
“하긴, 내게 와서 마족에 대해 물으니 혹시나 해서 그랬지.”
‘이들이 마족과 아예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럼 물건을 상납하나 보네.’
그러고 보니 처음 구해준 드워프들과 마을에 와서 장로를 만났을 때, 이들이 마목이라는 것을 못 구했다는 대화를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마목이라는 것이 마족과 관련이 있는 물건인가 보군.’
세은은 장로들과 대화를 하면서 정보를 하나씩 모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