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41. 패배(1)
“호오?”
바싸고는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세은의 공격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역시 우습게 볼 수가 없는 상대.
그러나 여느 때와는 달리, 지금 바싸고에게는 주변의 생기를 한 곳으로 모아 만들어 낸 마기가 있었다.
화르륵―
신성의 화염이 바싸고를 노리며 자아가 있는 것처럼 화려하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화염은 바싸고의 전방 2미터쯤에서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막에 막혀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준비가 부족했으면 순식간에 당했겠어. 역시 대단해.”
바싸고는 여실하게 느껴지던 화염의 위력에 순수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비록 적이지만 세은의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왕 셋을 상대로 이 정도로 싸울 수 있는 자는 오직 세은밖에 없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 번 당했던 적이 있어서 말이야.”
휘익―
바싸고의 손이 다시 한 번 휘저어졌다.
그러자 마법진의 마기가 더욱 흡수되며 바싸고의 손에 뭉쳤다.
이내 점점 그 크기를 불리던 마기는, 바싸고가 손을 휘두르자 전방의 화염을 향해 날아갔다.
퍼억―
바싸고가 날린 마기의 구와, 세은의 신성의 화염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기와 신성력.
완전히 상반된 두 개의 힘.
누가 더 우위라고 할 것도 없이 마기의 구와 신성의 화염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온 힘을 다하기 시작했다.
“크윽.”
단죄가 바싸고에게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한 세은이 침음을 흘렸다.
결국 세은은 신성력을 더 끌어 올려 화염에 공급했다.
우우웅―
세은의 신성력을 더 흡수한 화염이 그 몸집을 더욱 크게 부풀렸다.
이미 상당량의 신성력을 사용한 세은이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면 오히려 더 궁지에 몰리게 되는 상황.
얼마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확실하게 바싸고를 잡아내야만 했다.
화륵―
화염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바싸고의 마기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끄응…… 여기서 더 마기를 사용하면 아슬아슬한데?”
바싸고가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는 세은의 화염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비록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다른 마법진을 준비하면서 세은의 공격을 막는 건 여간 일이 아니다.
거기에 잘못해서 마기를 과다로 사용하면 가장 중요한 마법진에 필요한 마기가 부족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여태까지 수많은 계획을 짜고 함정을 판 일이 헛수고가 되는 것이었다.
투두둑―
그러나 바싸고가 대응을 고민하는 그 잠시의 시간.
세은의 화염이 완전히 마기의 구를 집어삼키고 방어막에 금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기의 방어막이 깨져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큭. 어쩔 수 없지. 마기는 다른 방법으로 보충을 하는 수밖에.”
휙―
다시 한 번 휘둘러지는 바싸고의 손.
그와 동시에 화염에 의해 타격을 입은 마기의 방어막이 더욱 견고하게 변했다.
그리고 방금 전보다 더욱 강력한 마기의 구가 생성되어 또다시 신성의 화염을 노리고 날아갔다.
터엉―!
아까와는 달리 마기와 신성력의 충돌로 굉음이 사방에 비산했다.
그 충격에 세은의 신형이 순간 흔들렸다.
마르바스와 모락스를 번개로 경계하면서 신성의 화염을 운용하는 일은 상당한 무리를 요하고 있었다.
마치 너른 바다 같던 신성력도 슬슬 그 끝을 보이기 직전.
그러나 바싸고를 제외한 마르바스와 모락스의 상태도 그리 좋지는 못했다.
세은의 공격을 막느라 그들 역시 마기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봐도 가장 큰 문제는 바싸고였다.
하지만 바싸고는 여전히 태연한 자세로 하늘 위에서 세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뿌득.
세은의 이가 강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는 상황.
결국 조금이라도 뒤를 생각해서 조절했던 신성력을 풀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쾅―!
얼마나 빠르고 막대한 신성력을 밀어넣었는지, 이번에는 화염이 미처 커지는 것을 보기도 전에 순식간에 마기의 방어막이 깨져 나갔다.
“헛?”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당황한 바싸고가 빠르게 더 위로 몸을 피했다.
화르륵―
그러나 신성의 화염은 세은의 의지를 따라 그런 바싸고를 끈질기게 추격했다.
그러나 마법진의 발동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으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콰앙―
결국 바싸고는 또다시 마기를 끌어와 세은의 공격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크윽! 이 개자식!”
그러나 여기서 더욱 마기를 소모해야 한다는 찰나의 망설임이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화염에게 한쪽 팔을 먹혀 버린 바싸고.
남은 한 손으로 힘겹게 마기를 운용해 신성의 화염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덕분에 마기는 본래 필요한 양의 절반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거기에 자신은 오른팔까지 잃은 상황.
오른팔을 회복하려면 마찬가지로 상당한 양의 마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생기를 흡수하는 마법진 안의 사상자의 수가 다했는지, 마기의 충전 속도는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 정도의 속도라면 이제 거의 흡수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순간의 방심이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텅―!
그러나 바싸고의 오른팔을 빼앗기 위해 소모된 세은의 신성력도 만만치 않았다.
더 이상 천벌을 유지하기 힘들어진 세은은 신성의 화염과 번개를 전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를 노리고 마르바스와 모락스가 다시 세은을 협공하기 시작했다.
세은은 방금처럼 온몸에 신성력을 두르지는 못했다.
오히려 처음처럼 한 손엔 방패를, 그리고 한 손에는 검은 만들어서 들고 있던 상태.
그러나 마르바스와 모락스도 세은의 천벌을 막아내기 위해 상당한 양의 마기를 소모한 상태였다.
텅― 터엉―
결국 방금 전과 같은 전투가 또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팽팽한 상황.
그러나 한쪽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끊어진 고무줄처럼 순식간에 균형을 잃어버릴 그럴 상황이었다.
쾅―!
세은이 검을 날려, 협공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마르바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 빈틈을 노리고 모락스의 돌진이 박혀왔다.
“푸르릉!”
세은은 힘겹게 방패를 뒤로 돌려 모락스의 돌진을 막아냈다.
“큭!”
그러나 아무리 방패로 막아냈다고 해도 그 충격까지 완전히 해소시키는 건 무리였다.
특히 지금처럼 신성력의 소모가 과다하고, 중심을 잡기 힘든 상황에서는 더욱더.
천천히 중첩되는 충격의 효과가 나타나는지 순간 세은의 무릎 조금 굽혀지는 게 보였다.
“크헝!”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마르바스의 검이 다시 종으로 세은을 베어 나갔다.
카앙―
하지만 세은은 살짝 무릎이 굽혀진 상황에서도 다시 검을 들어 마르바스의 검을 막아냈다.
덕분에 세은의 한쪽 무릎이 완전히 바닥에 닿은 상황.
“시발…….”
아무리 서로가 지쳤다지만, 마르바스는 마왕 중에서도 최상위권.
그의 공격은 세은에게도 당연히 부담이었다.
탓―
그리고 모락스 역시 쉬지 않고 그런 세은의 빈틈을 노렸다.
앞뒤로 정신없이 가해지는 협공이었다.
바싸고의 오른팔을 없애는 건 성공했지만, 과도한 신성력의 사용으로 천벌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 전투의 판세가 크게 뒤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나 당사자인 세은의 눈이 아직 죽지 않고 있었다.
‘3초!’
세은은 또다시 돌진해 오던 모락스와의 거리를 쟀다.
그리고.
퍽―!
“꾸억!”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방패의 끝부분으로 돌진해 오던 모락스에게 가져다 댔다.
세은의 힘이 아닌 자신의 돌진력에 모락스는 방패의 끝에 찍히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 겨우 이마로 들이박는 것은 피했지만, 몸의 옆에 기다랗고 커다란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끄어어어! 시렌 개자식아!”
불시에 당한 강력한 공격에 모락스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세은은 그런 모락스의 고함을 무시하며 그대로 마르바스에게 달려들었다.
“흐합!”
모락스가 당하는 것을 본 마르바스가 더욱 기합을 모아 세은을 공격해 나가기 시작했다.
모락스는 다친 상처를 치료할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세은의 뒤를 쳤다.
그러나 당연히 부상을 입기 전만큼의 파괴력이 나오지 않았다.
돌진을 하기 전에는 세은의 방패가 언제 다시 나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굉장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콰왕―!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전투는 거의 마르바스와 세은의 일대일 전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군.”
힘겹게 검을 나누고 있던 마르바스가 뜬금없이 세은에게 칭찬을 던졌다.
“…….”
그러나 세은은 그의 말에 전혀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검을 휘둘러 나갔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적이지만 경이로울 따름이다.”
마르바스가 나름대로 세은에게 경의를 표했다.
“지랄 마, 고양이 새끼야.”
그러나 세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바로 걸쭉한 욕설.
그로서는 마르바스와 대화를 나눌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마르바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런 대화도 이어지기가 않았다.
텅― 터엉―
남은 것은 오직 검의 대화뿐.
둘 중 이기는 자의 말이 세상에 기록될 것이다.
“끄응…… 모자라도 너무 모자라.”
그 와중에 부상을 입고 여전히 하늘에서 마법진을 관리하고 있던 바싸고가 중얼거렸다.
분명 자신이 원했던 마기의 양은 모였지만, 세은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많은 양의 마기가 소모되었다.
세은도 물론 신성력이 거의 다 소모됐지만, 마왕 세 명에 비하면 상당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어디 좋은 먹잇감이 없네?”
결국 바싸고의 시선은 먼 장소에서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가까운 곳에는 들개와, 오리 같은 작은 동물들이 있었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최대한 생기를 흡수해야 할 것 같았다.
키이잉―
그러나 거대한 마법진을 채우기에는 마기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바싸고가 막대한 마기를 충당하기 위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호오…… 잘하면 될지도 모르겠는데?”
그리고 바로 바싸고의 시선은 아래에서 세은과 힘겹게 싸우고 있던 모르바스와 모락스에게 향했다.
“엄청난 부상이군…….”
방금 전에 세은의 반격에 순식간에 몸의 절반을 잃을 뻔한 모락스.
당연히 그 부상의 정도가 깊은 것은 당연했다.
조금만 모락스가 느렸다면 지금 모락스는 이미 평범한 소의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그런 부상에도 불구하고 크게 밀리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마법진이 발동하지 않으면 도저히 세은을 잡을 수가 없는 방향.
가장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던 바싸고가, 자신의 판단에 최선의 방법을 떠올렸다.
‘마기를 한 번에 얻을 곳이 없다면…… 만들어야겠지.’
고민하던 바싸고는 주변에서 가장 마기가 될 만한 생명체나 물건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땅히 마기를 크게 머금고 있는 땅은 없었다.
물론 특이하게도 곳곳에 마기가 뭉쳐 있는 장소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정말로 이 정도는 마법진이 실패하고 말 것이 분명했다.
결국 가장 쓰고 싶지 있던 최후의 방법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바싸고가 조금 더 하늘 위로 올라갔다.
혹시나 모를 세은의 반격을 막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