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12화 (112/225)

# 112

34. 일단 지켜봅시다(2)

미국은 페루에서의 사태 이후 대부분의 역량을 습격을 사주한 배후를 파악하는 데 투입했다.

당연한 처사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 각성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습격했다.

미국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에 미국 정부는 분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습격을 한 구성원들은 할렘가에서 끌어온 것이라지만, 감히 미국을 대상으로 습격을 사주를 했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문제였다.

중동이 혼란에 빠진 이후로 오랜만에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는 사건이었으니까 말이다.

“난리도 아니군.”

더욱 포괄적인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이지호가 중얼거렸다.

그의 의뢰를 수락한 길드의 대표로 소진과 영한이 그와 동행하고 있었다.

“뭐, 거의 국가 비상사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행을 안내하던 미국인이 이지호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언론에는 약을 구할 수 없게 된 약물 중독자들이 벌인 일이라고 기사가 나갔지만, 실상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관련자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바삐 움직이는 모두의 얼굴에 짙은 긴장감이 어려 있었다.

“아, 오셨군.”

안내를 받아 회의실로 들어가자 사노가 일행을 반겼다.

이미 중국의 사절인 장위건이 도착해 있는 상황이었다.

간단하게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일행은 자리에 앉았다.

“이거, 제가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대표로 이고르가 도착했다.

“일본은 안 옵니까?”

“당장 자국도 문제라 이번에는 빠진다고 하더군요.”

일본은 자국의 치안을 이유로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그러나 그 이유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뭐, 간을 보는 거겠죠. 어디로 붙어야 할지.”

“원래 일본인들이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니까요. 본성이란 게 어디 가겠습니까.”

장위건이 맹렬하게 일본을 비난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장위건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본은 애초에 유럽에서 세은을 비난했을 때부터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재어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해서든 일본이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나갈 반전을 잡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게 모두의 눈에 선하게 보였다.

“당장 한 손이라도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사노의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일단 페루에서의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곳은 아프리카입니다.”

“아프리카는 좀 문제가 크군요.”

“유럽에서도 가깝고, 원체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라 페루에서와 같은 방법의 습격이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다고 확인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앞으로 어떠한 방법으로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빠르게 오고 갔다.

참가한 인원들은 좋다고 생각되는 방법을 가감 없이 주고받았다.

“그것도 그렇고. 도에 대한 여론은 어떻습니까?”

“우리 중국은 문제없습니다.”

“러시아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장위건과 이고르가 사노의 물음에 바로 대답했다.

애초에 언론의 자유가 그리 높지 않은 곳이라 여론을 다시 반전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문제는 한국.

사노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지호를 바라보았다.

“끄응…… 저희도 여론은 많이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인터넷 쪽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서…….”

인터넷이 잘 보급된 만큼, 그에 대한 부작용도 많았다.

특히 이런 커다란 일에 대해 의견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

유럽을 믿는 쪽과 아닌 쪽이 나뉘어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댓글에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었다.

물론 대세는 유럽을 믿지 않는 쪽이었다.

“우리 미국도 문제가 있지만, 한국도 그럽니까?”

오히려 다른 국가가 문제가 될 줄 알았던 사노가 되물었다.

세은이라면 한국에서는 거의 영웅 취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에 사노는 살짝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건 장위건과 이고르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의견이 하나가 되기는 힘드니까요.”

이지호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일부러 관심을 끌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정부의 제한이 심하니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편리했다.

“지금 분위기를 물어본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사노가 한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 우리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심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상부의 의견입니다.”

그러나 전혀 영향력이 없는 다른 국가에서 여론을 심는단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가능하겠습니까?”

“기자라도 매수하자는 겁니까?”

“잘못하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사노는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이미 벌어진 일,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은에 대한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다.

물론 계속 여론을 파악은 하겠지만.

그러나 파악하고 악화되지 않게 조절하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각국이 가지고 있는 유럽에 대한 안 좋은 정보를 퍼트리는 겁니다.”

사노의 말에 순간 다들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진 사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럽의 신뢰도를 떨어트려서,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것. 이게 핵심입니다.”

네거티브 전략.

아태 지역을 제외하고는 세은에 대한 여론을 반전시키기 힘들다고 판단한 미국에서 가져온 방법이었다.

“호오.”

“흐음…….”

사노의 말에 각자가 열심히 득실을 계산했다.

없는 사실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사실을 은밀하게 흘린다면, 그다지 크게 손해를 볼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 나라나 국익을 위해 올바른 행동만을 할 수는 없었고, 그것은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중국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도 뭐…….”

일단은 상부에 보고를 해야겠지만, 실무자들이 괜찮다고 판단한 만큼 그대로 시행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사노는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사안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더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대화하면 되겠군요.”

하나의 의제가 끝났지만, 아직도 의논 할 것은 산더미였다.

사노가 재빨리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에는…….”

* * *

세은은 오랜만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채연과 에린이 같이 외식이라도 하자고 했지만, 기자와 사람들이 붙는 단 이유로 거절한 참이었다.

세은의 거절에 둘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아직도 기자들이 붙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둘도 세은이 나가지 않으면 기자들에 시달리며 외출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소파에서 쪽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고 있었다.

‘나머지 둘이 문제군.’

푹신한 침대 위에서 충분히 뒹굴 거린 세은의 의식이 다시 마왕들의 소재로 향했다.

비네와의 전투에서 다시 생사를 건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고 편안하게 쉬고 싶은 마음.

그러나 당장 급하게 움직인다고 뭐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우웅― 우웅―

방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세은의 전화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끄응.”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전화기를 확인한 세은은, 이지호의 이름을 확인하고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

“세은 씨?”

“네.”

“지금 통화 괜찮으십니까?”

“네.”

이지호는 세은의 말이 끝나자, 방금 전에 있었던 회의를 요약해서 세은에게 전달했다.

첫 번째.

각 국은 은밀하게 유럽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작업을 의논했다.

이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시행할 것.

두 번째.

아프리카의 수색이 끝나기 전에는, 동남아의 유럽 세력과는 충돌을 자제한다.

괜히 동남아에서 유럽을 몰아냈다가 아프리카로 상대의 전력이 집중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우선 치안이 좋은 지역을 중심으로 선발대를 아프리카에 파견했다.

완전히 전력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면 상대도 대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괜찮습니다.”

이지호의 말을 모두 들은 세은이 말했다.

“급하게 아프리카로 움직이지 않아도 돼요. 어차피 상대는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아프리카와 남미의 거리를 보았을 때, 바싸고가 아프리카보다 남미를 먼저 들렀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더 빨리 움직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은의 말에 이지호가 되물었다.

“아닙니다. 괜히 어설프게 들어갔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괜히 쓸데없는 피해를 피하고 싶었다.

물론 바싸고가 직접 움직인다면 얼마나 준비를 하든지 당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페루에서처럼 사주를 받은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당하는 것은 방지할 수 있을 터.

어차피 당장 찾을 수 없다면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은 상황을 더 지켜보죠.”

“아,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다른 전략을 시행하는 일에 더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아마 다른 국가들도 세은의 말을 들으면 환영할 게 분명했다.

특히 미국은 페루 습격의 배후가 유럽이라는 증거를 잡기 위해 두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고 있는 상황.

가용 인력이 생기면 작업에 탄력이 붙을 것이었다.

“그럼 다른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세은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통화를 종료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대충 아무 곳에나 올려놓고 다시 침대로 향했다.

“이지호 아저씨예요?”

근처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에린이 세은에게 물었다.

“응.”

에린의 물음에 세은은 씩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하. 무슨 일이 또 생긴 거예요?”

“아니, 그냥 얘기 잘했다고 전화 온 거야.”

세은이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에린은 궁금한 표정을 지우지 않으며 세은이 있던 침대로 다가와 걸터앉았다.

“흐음. 그럼 당분간은 어디 안 가겠네요?”

“응. 그렇지. 왜?”

자상하게 반문하는 세은의 태도에 에린이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건 옆에서 봐온 에린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에린을 포함해서 두세 명 정도?

다른 사람들한테 딱딱하게 대하는 이유는 잘 몰랐지만, 누가 뭐래도 에린이 보는 세은은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냥요. 매번 위험하게 싸우는 일이 너무 많아서요.”

걱정 섞인 에린의 말에 세은이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그래도…….”

바로 얼마 전에 죽을 뻔했잖아요,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던 에린은 더 말끝을 흐렸다.

굳이 세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에린의 표정이 걱정으로 물들자, 세은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세 알아챘다.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에린의 머리를 강하게 헝클어트렸다.

“정말로 괜찮아. 조금 방심해서 그래.”

“정말이죠?”

“그럼. 당연하지.”

잠시의 주저도 없는 확답에 에린의 눈가가 살짝 젖어 들어갔다.

처음에 세은이 목이 잘릴 뻔한 모습을 보고 말도 못하게 놀랐다.

그때는 일이 워낙 급박하게 진행이 되어서 잘 몰랐는데, 지금 이렇게 다시 생각해 보니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진 모습에, 세은은 당황해서 그런 에린을 열심히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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