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111화 (111/225)

# 111

34. 일단 지켜봅시다(1)

페루에서의 일을 마치고, 일행은 한국으로 귀국했다.

이제 그레모리가 알려준 곳 중에 남은 곳은 아프리카뿐이었다.

이미 놓쳐 버린 바싸고를 계속해서 추적을 해야겠지만, 유럽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금 상황에서 제대로 된 추적을 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비네가 말한 대로라면, 바싸고는 지구로 넘어온 다른 마왕들을 찾아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잘하면 아슬아슬하게 아프리카에서 마주치거나, 다른 마왕과 연합해 세은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세은으로서도 쉽게 생각할 수 없기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움직여야 했다.

“여전히 북적거리네요.”

모든 일정을 극비로 진행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알아냈는지 세은의 귀국에 맞춰서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비행기도 특별히 전세기를 이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떻게 정확한 도착 날을 알아내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세은의 나직한 말에 이지호가 얼굴이 잔뜩 굳어서 대답했다.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대체 어떻게 정보를 관리하면 이렇게 새어 나갈 수 있는지 이지호는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원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한바탕 휘저어 놓을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을 때, 세은이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분위기가 얼마 전처럼 험악한 것도 아니고.”

세은의 말대로 공항에 몰린 기자들은 저번처럼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취재를 따내기 위한 저돌성은 여전했지만, 유럽에서 세은을 테러범으로 지목했을 때와 같은 분위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펑― 퍼엉―

보안 요원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져 나왔다.

너무 환한 빛에 다른 일행들이 제대로 눈을 뜨지도 못할 정도였다.

세은을 향한 취재 열기가 얼마나 되지는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얼마 전의 사태를 발판으로 세은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기자들에 의해 파헤쳐졌다.

최근에 미중러의 지지로 인해 오히려 그동안 쌓아온 관심이 좋은 이미지로 옮겨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지지하는 각성자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기삿감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그럼 당분간은 아프리카의 상황을 파악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부탁합니다.”

몰려드는 기자들을 겨우 뿌리치고 집에 도착한 세은과 이지호가 인사를 나눴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지호가 간 뒤에도 계속해서 세은의 집 근처를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조만간 이사를 한 번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

세상에 없을 범죄자가 되었던 상황보다는 지금이 차라리 나았다.

세은의 부모님도 주변의 관심이 점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는 하지만, 나쁜 반응이 아니라 한 시름 덜었다고 했다.

세은은 이 정도로 만족했다.

이미 미디어의 관심 대상이 된 이상 조용하게 지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해도 좋았다.

어차피 모두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던 일이야 예전에도 흔한 일이었으니까.

세은은 소리가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창문을 닫고는 휴식을 취했다.

* * *

차에서 내리던 이지호의 눈 밑에는 깊은 다크서클이 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연달아 터지는 일들에 도저히 쉴 시간을 가지지 못해 피로가 쌓일 만큼 쌓인 상황이었다.

특히 세은이 국제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처음부터 그를 담당하던 이지호의 위상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당장은 자리가 없어 승진이 지연되고 있지만, 언젠가 승진이 될 건 확실할 터였다.

그리고 승진을 하지 않더라도 현재 이지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이지호가 세은을 믿고 안하무인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에서 보는 시선이 안쓰럽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지호는 일에 치이고, 또 치이고 있었다.

애초에 타국과 비교하여 수준 높은 각성자가 많지 않은 국가인 한국에서, 세은이 세워준 위상과 위치는 결코 작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은 정부에선 이지호에게 전폭적인 권한을 맡겨 세은을 지원하도록 지시한 상황이었다.

작금의 정세에서, 세은이 없으면 바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진 것이다.

가뜩이나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황에, 기자들의 극성 때문에 더욱 일이 많아지는 상황.

세은이 데려온 에린만 하더라도, 그녀가 재학 중인 외국인 학교에 찾아가던 기자들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세은이 딱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일행 중에서 유일하게 세은과 같은 기술을 쓰던 에린은 세은의 제자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거기다 세은은 유독 에린에게 자상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에린이 불편함을 느끼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등하교 길에 요원들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모자라서, 학교 측에도 당부를 했다.

하지만 특종을 잡거나 인터뷰를 따내기 위해 달려들던 기자들을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들어오세요.”

이지호가 찾아간 곳은 소진의 길드가 있던 건물이었다.

처음과 달리 현재 한국의 길드들은 크게 할 일이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한국엔 새로운 게이트들이 더 이상 생성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까운 국가들은 모두 자력으로 자국의 게이트들을 통제할 저력이 있는 국가들이었다.

때문에 한국의 각성자들은 알음알음 전력이 부족한 국가들의 의뢰를 받아 활동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최근의 국제 정세 문제로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미리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던 소진이 이지호의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야.”

소진은 환한 미소로 이지호와 인사를 나눴다.

이지호가 단순히 안부를 묻기 위해 방문을 했을 리가 없으니, 당연히 일거리를 가져왔을 게 분명했다.

지금 같은 불경기에 정부에서 주는 일거리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얼굴이 더 환해진 것 같아.”

“에이. 일거리가 없어서 죽을 지경이에요. 아주.”

“그럴 만도 하지.”

소진의 말에 이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의 그 누구보다 현재 길드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가 바로 이지호였다.

이지호는 더 이상 대화를 끌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길드원들 실력은 많이 늘었어?”

“열심히 한다고는 하고 있는데…… 글쎄요. 기준이 없으니까요.”

소진은 가볍게 자신의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지호에게 받은 정보 덕분에 다른 국가 비해 한국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열심히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비단 소진의 길드뿐만이 아니라 영한이 소속된 이성우의 길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세은이 도움을 받아서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이지호는 세은이 없는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을 원했기 때문에, 유망한 길드들을 열심히 지원하고 있었다.

길드 자체적으로 세계와 비교해 그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정보도 그런 이유로 대가 없이 아낌없이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래? 그럼 이번에 한 번 알아보지.”

이지호의 말에 소진이 두 눈을 빛냈다.

“아프리카 쪽에서 정보를 가져와야 하는데, 아프리카가 워낙 넓어야지. 이번에 남미와는 달리 우리도 직접 참여하기로 했어.”

“아프리카요?”

지역을 듣고 난 소진의 얼굴에 살짝 난처한 기색이 어렸다.

그러나 이지호는 그런 소진의 반응에 상관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프리카. 어차피 이번에는 우리도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야. 세은 씨만 믿고 도움만 받아서는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

“그렇기는 한데…… 아프리카면 지금 문제가 많지 않아요?”

“많지. 그러니까 각성자들을 보내는 거고.”

소진의 우려에 이지호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가뜩이나 아프리카는 게이트가 생겨나기 전에도 치안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

거기에 게이트까지 생겼으니 치안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으리라.

각성자들이 반군에 들어가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힘을 쓰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야말로 힘이 지배하는 땅이 있다면 지금의 아프리카가 딱일 것이었다.

“거기에 유럽의 문제까지 얽혀 있어. 잘 생각해 보고 이번 주 안에 알려줘. 의뢰를 거절해도 이번에는 이해할 테니까 부담 없이 고민해.”

이지호의 말에 소진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

위험 부담이 큰 의뢰인 만큼, 돌아올 보상은 커다랄 게 분명했다.

그러나 과연, 그 보상만큼의 난이도가 있는 의뢰인지 천천히 살펴볼 시간이 필요했다.

“자, 이건 간단한 자료. 이번 주 안에 연락 줘.”

이지호가 미리 가져온 아프리카에 대한 자료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소진이 그 자료를 챙기고는 이지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 드릴게요.”

“어어. 수고해.”

소진의 인사에 이지호가 손을 들어 대답했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소진은 이지호가 두고 간 서류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대체 목적이 뭐지?”

바싸고가 헤리자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행동 없이 마왕들을 만나러 다니던 이유가 궁금했다.

물론 첫 번째 이유가 세은을 상대하기 위해서가 분명하지만, 마왕들이라고 전부 파괴가 목적인 건 아니었다.

이들은 왕이란 칭호에 걸맞게, 마계를 나눠서 통치하는 지배자들이었다.

각자의 영지를 경영하거나 운영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알려진 것처럼 무조건적인 파괴만을 일삼지는 않았다.

물론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기본적인 개념의 통치와 거리가 먼 마왕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러나 바싸고는 다른 마왕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온화한 성격이었고, 자신의 영지에 여러 가지 종족들이 사는 모습을 좋아했다.

그 영지는 물론 적자생존에 약육강식, 강한 자가 모든 것을 갖는 구조였기 때문에 인간들에게 좋은 곳이라고 절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아무리 강해도 마족이나 마물을 이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특히 오피뉴가 아닌 지구의 사람들로선 그렇게 살아남아야 하는 건 훨씬 요원한 일이었다.

“야.”

세은이 그레모리를 불렀다.

그레모리는 질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새로운 기계를 만지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오늘의 연구 대상은 로봇청소기였다.

지금이야 호기심을 가지고 해부하는 게 저런 기계지만, 저 호기심이 사람에게로 옮겨간다면?

마왕이란 대게 그런 존재였다.

그만큼 인간의 윤리 기준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존재.

그렇기에 마왕이고, 위험한 존재.

“왜?”

그레모리가 세은을 바라보지도 않고 대충 대답했다.

“재호 씨는 어때?”

“아, 그 병신?”

그레모리는 자신도 모르게 절로 코웃음을 쳤다.

“재능이 없어도 어떻게 그렇게 없는지 늘지를 않네.”

“몇 서클인데?”

“5서클.”

신랄한 평가치고는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 있었다.

마왕의 기준으로나 모자라지, 인간의 기준으론 6서클부터는 깨달음이 따라줘야 했다.

“생각보다 많이 늘었네.”

“이야. 에일린의 검 수준 많이 떨어졌네. 5서클이 많이 늘었다고?”

그레모리는 여전히 로봇 청소기의 나사를 분리하면서 가열하게 세은을 비꼬았다.

“바싸고 상대할 거면서 5서클 따위가 도움이나 되나? 뭐, 고블린의 힘이라도 필요하다면 모르겠지만.”

“6서클은 될 거 같아?”

“6서클이 안 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레모리의 대답에 세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그레모리에게서 좋은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레모리가 보기에 성에 차지 않을 것은 당연했으니까.

그래도 5서클이면 적어도 6서클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었으니, 이 정도면 꽤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리고 말을 잘 들어보면, 그레모리는 재호가 6서클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

세은으로서는 조금 더 놔두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도 6서클 마법사가 생기면 당연히 일이 훨씬 수월해질 터였다.

바싸고가 함정을 판다 해도 한두 번 정도는 서로의 등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

아프리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가급적이면 이지호가 다음 계획을 가져오기 전에 성과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