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교황이다-95화 (95/225)

# 95

29. 고립되는 도시(3)

“흐음…….”

세은은 최종적으로 압축된 세 곳의 후보지를 놓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세 군데 모두 최근 눈에 띄게 이상한 동향을 보이는 지역이었다.

“세 군데 모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해당 지역들에 문의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세은은 여전히 고심하는 표정으로 지도에 표시된 후보지들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더 수상했다.

이 정도로 평소에 다른 이상 동향을 보이는데 별다른 점을 찾을 수가 없다는 말에서 신빙성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결국 세 군데를 전부 가보는 수밖에 없는 건가?’

모두 돌아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힌 세은은 앞에 있는 분석가에게 물었다.

“차례대로 방문한다면 어디가 제일 가능성이 높지?”

“다 비슷합니다.”

분석관은 지도를 짚으며 브뤼셀과 가장 가까운 지역부터 천천히 짚었다.

“우선 가장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은 독일의 콘츠(Konz)입니다. 그다음은 프랑스의 돌르(Dole), 마지막으로는 스위스 헤리자우(Herisau)입니다. 다행히 세 장소 모두 지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곳들입니다.”

“그럼 일단 가까운 곳부터 가야겠군.”

“그렇습니다.”

생각을 정리한 세은이 보고서들을 정리했다.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보고서들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수월했다.

“바로 이동하지.”

“그, 그건…….”

세은의 말에 분석관이 살짝 난감한 기색을 비췄다.

“왜?”

“아직 마르키시오 경이 돌아오지 않아서……”

분석관은 난감한 기색을 띄며 대답했다.

협의회는 물론 민주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가장 최고 결정권자 중 한 명인 마르키시오가 파악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마르키시오는 개인적인 사유로 휴가를 떠난 이후, 전혀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세은에게 커다란 굴욕을 당한 후부터 몇몇 인사들이 마르키시오와 연락을 하기 위해 별별 노력을 다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때문에 웻지와 막스, 피어스가 대신 의견을 조율하고 있지만, 협의회가 통째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굴욕을 당한 초유의 비상사태에 최고 결정권자가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그 부분에 대해 온갖 성토와 불만이 넘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누구의 잘못이 가장 큰가에서부터, 마르키시오가 돌아오면 바로 보복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꽤 있었다.

물론 세은의 앞에서 그런 불만을 내색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모두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다.

“뭐, 단순히 이동 수단을 제공하는 데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고. 무슨 일이라도 꾸미고 있나?”

세은은 난감한 눈빛을 보이고 있던 분석관을 심드렁한 눈으로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 그건 아닙니다.”

내심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었기에 뜨끔했으나, 분석관이 세은의 말을 부정했다.

그때 보여준 세은의 위용이라면 제 아무리 마르키시오라 한들 보복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세은은 피식 웃으며 이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보고서 정리를 마무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튼, 뭘 해도 좋지만 이동 수단은 내일까지 준비해 놔. 이 일이 제일 시급하니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고.”

탁―

세은은 거침없이 분석실에서 빠져나갔다.

* * *

“후우…… 여기도 아닌가.”

세은은 짜증을 담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벌써 두 번째 목적지인 프랑스에 왔지만 이곳에서도 허탕을 친 탓이었다.

마지막 후보지인 스위스에서도 허탕을 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될 판이었다.

유럽이 아니라면 아프리카나 중동으로 가야 하는데, 그 지역에 제대로 된 정보가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체계적인 정리와 분석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말은 세은이 해야 하는 고생이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말과 같았다.

제발 마지막 후보지인 스위스에서 꼬리를 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세은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헤리자우라…….”

세은이 제일 처음 보고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던 지역.

독일과 프랑스의 지역도 충분히 이상했지만, 아무래도 헤리자우가 가장 수상했다.

거리가 브뤼셀에서 가장 멀지 않았다면 이곳부터 찾아갔을 것이 자명했다.

“제발 이곳이면 좋겠네.”

세은은 벌써 이틀 만에 세 번째 타는 비행기의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잦은 비행으로 인해 찌뿌둥해진 목 근육이 천천히 늘어나며 기분 좋은 상쾌함을 전해주었다.

치료 마법으로 계속해서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고는 있지만, 스스로 피로를 푸는 것과 그 느낌이 살짝 달랐다.

세은의 같은 경우는 너무 신성 마법에 익숙하다 보니, 가끔은 스스로 손을 써서 근육을 눌러주는 게 색다른 쾌감을 줄 때도 있었다.

거기에 아시아나 미국에서와는 달리, 유럽에서 제공한 비행기는 아주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마르키시오가 없을 때 당했다는 사실을 그들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세워주고 있었다.

“뭐, 상관은 없으니까.”

어차피 유럽 연합에서 얻을 건 다 얻은 상황.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협조는 협조였다.

덜컹―

잠시 멍하니 있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가 목적지에 착륙하는 것이 느껴졌다.

헤리자우에는 공항이 없었기 때문에, 착륙의 용이함을 위해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평지에 착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공기 하나는 좋네.”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린 세은은 힘껏 공기를 들이마셨다.

스위스의 맑은 공기가 폐를 깨끗하게 씻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거의 교단의 공기랑 비슷한데?’

비슷한 환경에 도착하자 문득 교단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잘들 지내고 있을지 모르겠네.’

그레모리의 말로는 마계와 오피뉴가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니 교단에 어떤 난리가 났을지 보지 않아도 불 보듯 뻔했다.

아마도 전 교단에 소집령을 내리며, 난리도 아닐 게 분명했다.

“잘들 지내야 할 텐데 말이야.”

“예?”

세은의 혼잣말에 같이 따라온 유로의 통역 겸 분석관이 물었다.

그러나 세은이 가볍게 손을 내젓고는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얼마나 걸리지?”

“아무래도 산골이라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는 더 들어가야 합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러나 세은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바로 이동하지.”

더 이상의 별 다른 말없이 대뜸 지시하는 세은의 행동에 어느새 조금은 익숙해진 분석관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필 자신이 걸리다니, 재수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생각하며 미리 준비해 놓은 차로 세은을 안내했다.

“이곳에도 찾는 게 없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대로 아무 정보도 없는 것 없이 흘러가는 것이 불안했는지 분석관은 대뜸 세은에게 물었다.

“글쎄? 일단 다시 귀국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할 것 같은데.”

“이번 일이 끝나면 바로 귀국을 할 생각이라는 말입니까?”

“그럼 남아 있어야 하나?”

세은의 말에 분석관이 살짝 찔끔했다.

그러나 위에서 세은의 보좌로 파견이 되면서 당부 받은 것이 많았다.

세은의 진정한 목적과, 사소한 정보 전부까지.

그리고 가장 커다란 임무 중 하나는, 마르키시오가 돌아올 때까지 세은을 유럽에 잡아놓는 것이었다.

호전적인 상부의 인원 중 몇몇은, 마르키시오와 함께, 본격적으로 마법사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곳에서 세은을 상대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에 대한 반대파도 꽤 있었으나, 이대로 망신을 당하고 물러설 수는 없단 의견이 더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어차피 망신을 당한 것.

한 번 망신을 당하나 두 번 당하나 마찬가지라는 논리였다.

분석관은 그 이후로 세은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던졌다.

세은은 귀찮아하면서도 유럽과 공유해야 하는 정보를 적당히 알려주었다.

분석관은 세은이 예상외로 순순히 대답을 해주는 것 같자, 더 용기를 내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탁―

“잠깐.”

느리지만 분석관의 질문에 나름 잘 대답을 해주던 세은은 갑자기 차량의 앞 시트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예?”

“차 멈춰.”

갑자기 세은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바로 직전까지의 분위기와 너무 다른 세은의 모습에 분석관은 무슨 일인지 물을 새도 없이 우선 차를 세웠다.

끼익―

차가 멈추자마자 세은은 문을 열고 차에서 하차했다.

달칵―

“무슨 일입니까?”

분석관이 다급히 그런 세은을 뒤따라 내리며 물었다.

그러나 세은은 심각한 표정으로 잠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세은 도?”

너무나도 심각한 세은의 모습에 분석관이 다시 조심스럽게 세은을 불렀다.

그러나 세은은 여전히 분석관의 부름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세은이 고개를 돌려 분석관에게 말했다.

“여기서 대기해.”

“예?”

세은은 그러나 더 이상 대답을 하지 않고 바로 몸을 날렸다.

“자, 잠시만!”

분석관이 세은을 미처 붙잡기도 전에 세은이 빠르게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 이런!”

세은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정리해서 보고해야 하는 분석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다급하게 차량에 탑승한 분석관은 세은이 사라진 방향으로 차를 운행할 것을 지시했다.

부릉―

험한 스위스의 산길을 차가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다.

* * *

타다닥―

세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기가 느껴지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순식간에 분석관과 차량의 모습이 희미해져 보일 정도의 거리가 벌어졌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세은은 더욱 발길을 재촉했다.

“이건 아예 숨길 생각도 없는데?”

세은은 달려갈수록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마기의 기운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 정도면 그냥 대놓고 자신이 여기 있다고 밝히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도 여기서 찾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늦게 찾아서 큰일 났다고 해야 하나.”

세은이 달려가던 곳에 가까이 갈수록 거의 마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진한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중심부는 거의 마계화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탁―

세은은 마기가 느껴지는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발길을 멈췄다.

“여긴가.”

세은은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을은 산골 마을 특유의 매우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세은은 마을 전역에서 불쾌한 마기를 여과 없이 느낄 수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가 15,000명 정도 되는 마을이었는데, 이 정도면 마을 주민 전부가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누구냐…….”

세은은 우선 마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정도로 마을이 마계화 되었다면, 방비도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되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적어도 마왕의 주구가 된 마을 주민들과 여러 트랩의 방해를 받는다면 마왕이 도망갈 시간을 줄 수도 있으리라.

세은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시간을 두고 마을을 관찰했다.

“끄응…… 아예 밖으로는 나오지를 않는 건가?”

그러나 꽤 집중을 했지만 마을에서 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 고만고만한 기운들만 사방에서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세은은 정면 돌파를 하기로 결정하고 언덕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신속하게 중심부를 타격해, 마왕을 잡아서 마계로 추방시켜야 한다.

아직은 아주 뼛속까지 마계화 된 주민이 아니라면 구할 여지가 남아 있었다.

타다다닥―

세은은 가장 마기가 강하게 느껴지던 오래된 개신교 교회 건물로 바로 직진했다.

“교회다 이거지?”

신을 부정하는 마왕이 교회에 자리 잡은 게 가소로웠다.

아마 신이나 신의 대리자로 행세하고 주민들을 꾀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교회가 시야에 들어오자, 세은은 손에 빛의 검을 쥐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