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시코쿠 평정(1)
1580년, 연호로는 텐쇼(天正) 5년이 되었다.
원래의 역사에서도 오오기마치 덴노는 에이로쿠에서 겐키를 거쳐 텐쇼로 다시 연호를 바꾸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천도 이후, 그가 정한 연호 역시 텐쇼였다.
이제 관동의 여러 다이묘들은 숨고르기에 들어갔고, 잠시 천하가 잠잠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일본에는 관동 외에도 여러 지역이 있었고, 그들 모두가 조용하면 전국시대일 리가 없었다.
“저희 주군을 대신하여 쿠보께 인사 올립니다.”
“그래, 토사(土佐 도사, 시코쿠 남쪽이며 오늘날의 고치현.)의 시종이 폐하께 공물을 올리러 왔다 했나.”
“그렇습니다.”
내게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자는 쵸소카베 가문에서 보낸 사자였다.
명목은 덴노에게 연공을 보내러 왔다고 했다. 하지만 여태껏 신경도 쓰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신하 흉내라니. 그 의도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사카이 신궁보다 아와지국 스모토의 내 치소를 먼저 찾아온 상태였다.
“먼 길 왔으니, 편히 쉬다가 입궁하시게.”
이제 사카이와 스모토 사이의 뱃길은 한나절이면 오가는 거리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덴노에게 공물을 바치려 한다면, 당연히 사카이로 곧장 가는게 정상일 터.
쵸소카베의 사자를 자처하는 이는 내게 눈도장을 찍으려 했지만, 나는 일부러 모른 척하고 원론적으로 대했다.
“쿠보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사신을 돌려보내려는데, 또 전령 하나가 들어왔다.
“아와에서 급한 일이라며, 무사 하나가 뵙기를 청합니다.”
“들여보내게.”
이미 쵸소카베의 사신과 접견 중이었지만, 그는 이미 인사까지 나눈 상태. 전령을 굳이 뒤로 미루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살펴가시오.”
“쿠보, 실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신의 처소로 가려던 사신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그가 뭔가를 말하려는데, 아와에서 왔다는 전령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디 미요시 가문을 살려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무릎을 꿇던 무사는, 선객을 보더니 갑자기 눈에 불똥이 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쵸소카베의 사신 역시 무릎을 꿇었다.
* * *
시코쿠에서 내게 보내는 서한이 두 통 들어왔다. 내용은 양쪽 모두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단히 요약하지면 서로 싸우는 중인데,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는 이야기였다.
시코쿠 아와국의 미요시 가문을 이끌고 있는 나가하루, 그리고 그 상대는 쵸소카베 모토치카. 이들 두 사람이 서로 내게 매달리고 있었다.
일단 확인해본 바로는, 쵸소카베 측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내가 관동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시코쿠의 대부분을 평정한 상태라 했다.
양쪽에서 온 사람들은 일단 모두 돌려보냈다. 그리고 의논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그래도 연이 더 깊은 쪽을 돕는 게 맞지 않겠소이까.”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였다. 어쨌든 그는 미요시 가문의 가신이었고, 그런 만큼 아와의 미요시 쪽으로 기우는 모습이었다.
그를 따르던 장수들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원래 약한 쪽을 돕는 것이 이치에 맞기도 합니다. 단일 세력이 시코쿠를 지배하면, 우리가 그들을 다루기도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모두가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아와의 미요시가 몰린 데에는, 지금의 가주가 어리석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나가하루를 버리고, 쵸소카베와 우호를 다지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코쿠는 아와지와 바로 이웃한 지역이었고, 단순히 군사적 논리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일. 이 자리에는 시정봉행 베드로 역시 동석해 있었다.
그는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논리를 꺼냈다.
“나가하루는 일련종을 믿고 있는데, 영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개종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저희 측 상인들 역시 그 등쌀에 시달렸고 말입니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예전의 키타바타케 토모노리가 다스렸던 이세와 같은 경우로 보였다. 하지만 이 일과 관련해서 상인들이 나를 찾아온 적은 없었다.
“이세의 오미나토는 쿠보께서 전략적 거점으로 선정하셨던 곳이 아닙니까. 하지만 묘도군(名東郡 명동군, 아와의 항구지대이며 오늘날의 도쿠시마 시)은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말에 의하면, 상인들은 일찌감치 나가하루의 영지를 손절한 지 오래라 했다. 오히려 쵸소카베 모토치카는 우리 쪽 상인들을 반겼고, 상업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던가.
다시 말해서, 이미 대안이 있었기에 별 잡음이 들려오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쿠보께서는 미요시 가문과 연이 깊으십니다마는,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나와 미요시 가문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에고슈에 속했던 상인의 일족. 예전에 있었던 일도 대강 아는 눈치였다.
“나가하루를 도와봐야, 우리 상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들 뿐입니다.”
무사와 상인의 의견이 정반대로 갈렸다.
* * *
“나가하루요? 짓큐 숙부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딱히…….”
어쨌거나 미요시 가문이 엮인 일. 최대한 판단의 재료를 모아보기 위해, 아내에게도 시코쿠의 일을 이야기해보았다. 하지만 요시히메 역시 영 신통찮은 반응을 보이기만 했다.
“제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도 별 이야기는 없었는걸요.”
대강 무슨 말을 하는지 알 만 했다. 부부가 남자 쪽은 일개 상인이고, 여자 쪽은 천하를 호령한 다이묘 가문 출신이면 그 뒷사정이야 뻔할 수밖에.
“그래도 사쿄다이부(左京大夫좌경대부, 여기서는 미요시 요시츠구)가 죽은 이후에는 연락 한번쯤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땐 제가 거부했죠.”
묘하게 싸늘한 어조였다.
“절 생각해서 나가하루를 도우시려는 거면, 그러지 마세요.”
“그러려는 건 아니야. 나가하루가 어떤 자인지 알아보려던 거니까 신경 쓰지 마.”
나는 아내의 불쾌함이 풀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용건을 이야기했다.
“기나이에 남아 있는 미요시 일족은 어때?”
“나가하루를 대체할 사람을 생각하신다면, 센마츠는 어떠신가요?”
요시히메는 눈치 있게 한 사람을 추천했다. 아니, 나가하루의 이야기를 꺼낸 다음, 다른 미요시 일족을 물어보면 너무 뻔한 이야기였나. 어쨌든 그녀의 말을 들어보았다.
“센마츠?”
센마츠는 아명이고, 지금 쓰는 이름은 소고 마사야스라고 했다.
“나가하루의 동생이긴 한데, 인품은 형보다 훨씬 훌륭하더라구요.”
형제라고는 해도, 미요시 분가의 복잡한 승계 과정 중에 떨어져 지냈다는 모양이다.
하기야 시코쿠와 기나이의 경중을 따지자면, 그나마 기나이가 훨씬 중요한 지역. 당시의 가주였던 나가요시로서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쪽을 두어야 했을 터였다.
* * *
다음 날, 나는 소고 마사야스를 물망에 올렸다. 이미 그와 이야기는 끝났다. 마사야스는 내 뜻을 따르겠다고 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인 듯합니다.”
“이쪽의 말을 잘 들을 사람이라면야…….”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비롯한 무사 출신들은, 나가하루 본인보다는 미요시 가문 자체에 대한 옛 정을 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베드로 역시 내 결정에 동의했다.
하지만 이쪽에서 정한다고 해서, 시코쿠의 미요시 일족이 고스란히 내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보장은 없는 법. 일단 그쪽에서 보낸 전령을 다시 불러왔다.
“친족의 일을 모른 척할 수는 없지.”
“가, 감사합니다.”
“대신, 나가하루는 지금의 자리에서 물러나줘야겠네.”
그렇게 말하자, 조용한 중에 꼴깍하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누가 그렇게 했는지는 전령의 목울대를 보면 알 만한 일이었다.
“하, 하오면, 쿠보께서……?”
나가하루 쪽이 얼마나 나를 경시하고 있었는지는, 아내의 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이야 급하니까 매달린 것일 뿐, 내가 직접 그의 영지를 접수하겠다고 하면 반발하는 게 당연할 터였다.
하지만 역시 내가 접수해서 이목을 끌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소고 마사야스를 미요시 가문으로 환속시키고, 그가 영지를 맡도록 하게. 그러면 기꺼이 도와주지.”
지금 온 전령이 전권대리인은 아니었다. 그는 먼저 자신의 주군에게 내 의중을 전달하겠다고 말한 뒤, 물러갔다.
미요시 가문의 사람이 힘없는 모습으로 돌아가자, 다시 쵸소카베의 사자가 나를 찾아왔다.
“참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뭘 말인가?”
“그렇게 잡아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주군께서는 쿠보의 행보에 적극 협력하겠다 하셨습니다.”
아예 내가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미요시 가문과 관련이 있으니,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한다. 이 정도로 간주하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나는 그 착각을 산산이 부수었다.
“토사의 시종(土佐侍従 도사시종, 토사국의 지배자를 의미하는 통칭. 여기서는 사신을 보낸 쵸소카베 모토치카를 의미한다.)이 시코쿠를 지배하도록 묵인하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나?”
“그야…….”
아주 대놓고 물어보자, 오히려 상대는 말문이 막힌 듯했다. 그러다가 충격에서 벗어나자, 자신들이 준비해온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주군께서는 쿠보와 동맹을 맺고자 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관세 인하를 조건으로 내밀었다.
만약 쵸소카베 모토치카가 범속한 인물이거나 시코쿠에 만족할 수 있는 자라면, 이 정도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쵸소카베 가문은 역시 만만히 볼 자들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기회를 노리다 몰락한 자들.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군.”
“무엇을 원하십니까?”
“토사 시종의 모든 아들들을 이곳으로 보내 교육받도록 하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겠지.”
지금 쵸소카베 모토치카에게는 아들이 넷 있다고 했다. 그들 모두를 아와지국에 유학보낼 것. 그게 내 요구였다.
“말도 안 됩니다! 하나나 둘도 아니고, 전부를 인질로 보내란 말씀입니까?”
“인질이라니 그 무슨 험한 말인가? 좋은 학교가 많으니, 여기에서 공부하며 신의를 쌓자는 이야기일세.”
내 말을 들은 사신은 펄펄 뛰며 거부했다.
“자네는 계속 인질이라고 말하네만, 내가 토사시종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일세. 설마 후계자가 아닌 아들 하나를 보내놓고 뒤통수를 치려는 것인가?”
자기 얼굴에 금칠하는 느낌이긴 하지만, 일본 어디에도 이만한 교육시설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다이묘에게는 아들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보다는, 정략이 우선인 듯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질이 아니라고 하셔도, 결국 쿠보의 수중에 들어가 있는 형국이 됨을 생각해주십시오.”
“그렇다면 나를 믿지 못하는 게로군.”
결국 사자는 다른 것들을 내놓을 수는 있다며, 말미를 달라고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후, 나가하루가 승낙했음을 알리는 전령이 먼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