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삶과 죽음을 파는 자(7)
“애초에 지금 그 자리에 우지히데 님께서 앉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우지마사가 돈을 떼먹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지히데는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사카이 쿠보가 우지히데를 여기로 보내면서 신의를 운운하기도 했고, 그 정도가 아니면 한 가문을 뒤집을 모략을 쓸 이유도 없었다.
“채무의 이행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일세. 하지만 다른 세력을 상대하는 문제는 빚과 별개가 아닌가.”
“그렇게만 생각하실 수 있어도, 우지히데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옆에서 입을 연 자는 다이도지 마사시게라는 자였다. 호조 가문의 가신들 중에서, 우지히데를 적극적으로 도운 두 일족 중 하나의 가주이기도 했다.
그는 먼저 선대 가주, 그러니까 우지히데와 우지마사의 부친인 호조 우지야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우지야스 님께서는 외교와 다른 분야를 분리해서 보실 줄 알았습니다. 필요하다면 원수와도 기꺼이 손을 잡는 분이셨지요. 하지만 우지마사는 한번 적은 영원한 적으로 삼는 자에 불과했습니다. 만약 우지히데 님께서 나타나지 않으셨다면, 언제고 호조 가문은 망했겠지요.”
물론 태도를 확실하게 하여 우방에게 신뢰를 얻는 것 역시 외교적 방침 중 하나이기는 했다. 하지만 우지마사는 그런 것보다는 철저히 감정에 치우쳤다는 이야기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강은 감이 잡히는군. 하지만 내게는 이런 원론적인 말보다는 구체적인 방책이 필요하네.”
“겉으로는 오다 가문과 친밀하게 지내십시오. 동맹까지 체결할 필요는 없겠지만, 지금 노부나가는 고니시 공을 가장 큰 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마 양면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든지 반기겠지요.
“그게 전부는 아니잖은가.”
“그리고 아와지국의 상인들을 받아들이십시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리고 고니시 공의 기반은 상업이니, 서로 돈이 끊어지면 손해가 되도록 만들면 됩니다.”
전쟁은 누군가 하나를 얻으면 상대는 하나를 잃는 일이다. 하지만 상업은 그렇지가 않다. 시메온의 설명은 그러했다.
우지히데는 고개를 끄덕였고, 마사시게 역시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던 또 하나의 가신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거래는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법이니, 자네의 말이 옳네. 하지만 무턱대고 상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걸세.”
마츠다 노리히데. 역시 마사시게와 마찬가지로 우지히데를 적극적으로 도운 호조 가문의 가신인 자였다.
“내가 알기로는 원래 간토 간레이와 사카이 쿠보의 사이는 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간토 간레이가 쿠보 밑의 상인들을 내치면서 그 관계도 악화되었지요.”
노리히데가 꺼낸 이야기는 나름 잘 알려진 것이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나 오다 노부나가나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그 능력에 주목한 쇼군 요시아키가 발탁한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쟁쟁한 명가들 사이에서 올라선 만큼, 그 둘의 사이는 좋아야 정상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천하를 두고 대립하는 상황. 먼저 움직인 자는 오다 노부나가였던 만큼, 사람들의 시선 역시 그쪽에 모인 편이었다.
“상인은 단순히 거래만 하고 가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쪽의 허허실실을 탐지하기도 하며, 혹은 소문을 퍼트리기도 하지요.”
역시 옳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노리히데가 뒤이어 언급한 내용은, 한 세력의 주인으로서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정보를 독점하여, 작은 자는 이문을 탐하고 큰 자는 나라를 탐합니다. 노부나가가 기나이에서 온 상인들을 내친 까닭도 거기에 있습니다.”
“흠……. 일리 있는 말일세.”
우지히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작 그 본인에게는 당장 의미가 없는 조언이기도 했다.
“이보게, 노리히데. 내가 이 돈과 병력을 어떻게 구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죄, 죄송합니다!”
바로 그 큰 상인이 나라를 탐한 결과는 아주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옳은 말이네. 필요한 조언이기도 하고. 다만 현실에는 맞지 않기에 하는 말이야.”
그렇게 충성스러운 가신을 달랜 뒤, 우지히데는 시메온의 조언을 따르기로 했다.
“그간 우지마사가 폐쇄했던 항구를 열고, 거래를 허용하도록 하지.”
* * *
“음, 괜찮군. 이대로 보내도록.”
노부나가는 가신들이 작성한 문서에 자신의 도장을 찍었다.
근래 들어, 그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술만 마시고, 남색을 탐하기만 했다. 그나마 가신들이 업무를 가져오면, 최소한의 일은 해주는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방금 그가 도장을 찍은 것은 호조 우지히데에게 보내는 서신. 적일지 아군일지 명확히 하라. 그런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그렇게 전령이 떠난 뒤, 그는 병째 술을 들이켰다. 그런 그에게 코쇼(小姓 소생, 무사에게 있어 기사의 종자에 대응하는 존재.) 중 하나인 모리 란마루가 속살거렸다.
“주군, 몸이 상하실까 두렵습니다.”
“내 나이도 이제 마흔을 넘기지 않았느냐. 어차피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몸. 이까짓 것도 즐기지 못하느냐?”
원래도 괴팍한 성격을 지닌 노부나가였지만, 근래 들어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가신들은 감히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나마 노부나가가 아끼는 코쇼들 정도나 충언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말한 노부나가는 모리 란마루를 한번 어른 뒤, 술에 취한 목소리로 아츠모리를 불러댔다.
“이 세상은 영원히 머무를 만하지가 못하기에…….”
그나마 노부나가는 술을 가까이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내팽개치지 않았다. 가신들이 기대를 걸고 있는 유일한 한 가닥 희망이 그것이었다.
“주군께서는 어찌하여…….”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시니, 울화가 쌓이신 게지.”
시바타 카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가 한 마디씩 했다.
“차라리 호조 가문의 새로운 가주가 대놓고 적대의사를 드러내주었으면 좋겠군.”
카츠이에의 말은 노부나가의 성격을 정확헤 꿰뚫는 것이었다. 최소한 당장 쳐부술 뚜렷한 적이라도 있다면, 그들의 주군은 거기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이대로 또 전쟁을 벌였다간, 파산해버릴지도 모릅니다.”
“호오, 의외로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시바 히데요시의 말은 옳은 편이었다. 노부나가의 영지는 이미 한 차례의 총력전을 겪어야 했다. 그런데 또 전쟁을 벌였다가 무위로 돌아가 버린다면, 더 이상 뒤를 보기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정작 시바타 카츠이에는 그런 히데요시의 판단을 의심하고 있었다.
“자네가 새로 불어난 무사들을 모두 거둬들이지 않았나. 그들을 먹여 살리는 건 큰 부담일 것인데.”
아사쿠라와 호조의 협공에서 버텨내기 위해, 급격하게 아시가루의 숫자를 늘려야 했다.
만약 아사쿠라 가문의 영지인 에치젠을 차지할 수 있었다면, 그나마 사정은 나았을 터. 하지만 전쟁은 미지근하게 끝나버렸고, 갈 곳을 잃은 이 하급 무사들은 심각한 불안요소였다.
자고로 무사라면 봉록이 있어야 하는 법. 현금이 되었건, 아니면 토지가 되었건, 복무의 대가를 주지 못하는 주군은 의미가 없었다.
히데요시는 자신이 그들을 모두 떠맡겠다 했고, 나날이 늘어가는 지출로 인해 허덕이는 처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벌인다면, 적어도 잉여인력을 소모할 수 있으니 히데요시에게만큼은 좋은 이야기라고 할 만 했다.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반드시 먹여 살릴 필요는 없지.”
카츠이에는 그렇게 말하며 목에 손날을 대는 시늉을 했다. 처음 그들의 주군이 말한 대로, 그들이 일으킬 잇키를 토벌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제 그만 하지. 우리끼리 이러는 것도 소모적인 일에 불과하네.”
셋 중에서 가장 온건한 성격을 지닌 니와 나가히데가 나머지 둘을 말렸다. 원래는 이렇게 말다툼이나 하자고 모은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호조 가문의 주인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가마쿠라 쿠보는 이쪽이 쥐고 있어야 하네.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그것만 이야기하세.”
나머지 두 사람은 일단 대화에 응했다. 어쨌든 당장의 문제는 해결해야 했기에. 하지만 그런 중에도 히데요시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 * *
“이런 건 진작에 줬으면 좋았잖아.”
“그건 좀 미안하네.”
연근해에서는 지형을 따라서 배를 띄우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참조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대양에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물론 미나미히비시마를 찾아내라고 했을 때는, 나 역시 그 사실을 까먹고 맨 땅에 헤딩하게 만들었지만.
호조 가문의 본거지를 단번에 강습한 비결은 간단하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수평선 너머로 배를 띄워보내는 것. 오다와라 성은 사가미 만에 위치해 있었고, 거기는 태평양과 바로 맞닿은 장소였다.
호조 가문의 순시선이 있다 해도 먼 바다보다는 이웃 영지들을 경계할 게 뻔했고, 그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리고 마침 오다와라 성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뱃길로 쓰기 편한 이즈 제도의 섬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물론 거기까지 가려면, 특별한 도구들이 필요했다. 위도와 경도를 파악하기 위한 것들. 아직 육분의는 나오지 않았지만, 포르투갈 상인들은 그 초기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사분의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앞으로 해안가에 위치한 성들은 공격하기가 한결 쉬워지겠군요.”
“그건 아닐 것 같군.”
나와 시게히데의 대화를 듣던 시마 사콘이 수평선 너머 상륙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했다. 하지만 마사노부의 판단은 조금 다른 것처럼 보였다.
“아마 다음에 또 써먹긴 어려울 걸세.”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리고 나도 마사노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건 발상의 전환에 불과해. 대비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아쉽군요.”
“이걸로 관동의 판도를 유리하게 틀어놨으니, 만족할 줄 알아야겠지. 그보다도…….”
그렇게 운을 뗀 마사노부는 내게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말하게.”
“우지히데가 이탈해버릴 경우, 그걸 억제할 만한 수단이 없습니다.”
호조 가문을 장악하라고 붙여준 병사들은 사실상 용병에 가까웠다. 내 영지로 흘러들어온 자들 중에는 낭인들 역시 많았고, 기회를 주자 상당수가 용병으로 나섰다.
이제 우지히데가 그들에게 봉록을 준다면, 그들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라고 하게.”
“예?”
“내가 모아서 보낸 자들은, 언제고 분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았지.”
애초에 하층민이었다면, 나아진 환경에 감사할 줄 알았을 터. 그러나 그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기회가 오자 떠나버렸다. 그리고 우지히데는 그리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자네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만약 우지히데가 정말로 등을 돌린다면, 그땐 관동의 바다에 수군을 풀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지도를 돌아보았다.
이미 노부나가는 덴노의 명에 따라 전쟁을 그만두었다. 물론 그가 정말로 권위를 존중했을 리는 없고, 역시 더 이상의 소모를 견딜 수 없었을 터였다.
물론 이쪽이 유리하다고 해서, 내가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도 곤란했다. 세력추가 기우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순간, 다음 포위망의 목표는 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상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피해야 할 일. 하지만 이 상황을 타파하려면 세력을 넓혀야 했다.
그 모순을 견디는 것이 내가 가야 할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