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종교 전쟁 (6)
토모노리와의 싸움은 싱거울 정도로 쉽게 끝났다. 마치 송양지인의 고사가 생각날 정도였다.
비록 저쪽이 내게 인정이나 사정을 봐준 건 아니었지만, 의기만을 앞세워서 싸우려 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성과가 좋게 나오지는 않았다.
토모노리가 나름대로 명망 있는 편이라고는 해도, 그게 지금 내 앞에서 통용될 만한 가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진중에 있던 다른 다이묘들을 놓친게 가장 아쉬웠다.
“다른 다이묘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확인한 것만 츠츠이 준케이와 오다 노부나가,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몸을 빼낸 듯했다.
나는 포로로 잡힌 토모노리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눈에는 의기가 가득했지만, 세상사가 어디 그것만으로 된다던가.
곁에 있던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그걸 보고 칼을 빼들었다.
“쿠보, 이런 자는 결코 굽히지 않을 거요.”
그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죽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살려주고 싶다 혹은 아니다의 차원이 아니라, 뒷감당이 까다로울 듯했다.
만약 이대로 참수해 버린다면, 오히려 정말로 다른 세력에게 결집할 명분을 주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기다리십시오. 고쿠시는 처형이 아니라, 신궁에 유폐시켜야겠습니다.”
내 말을 들은 히사히데는 아케치 미츠히데를 슬쩍 보더니, 가까이 와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가둬놓는다 해도, 자해를 막을 수단은 마땅치가 않소. 요시아키의 일을 기억하시오.”
“물론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결코 자해할 수 없을 겁니다.”
전장의 정리가 끝난 뒤, 나는 포로를 사카이 신궁으로 압송했다.
그가 덴노의 신하를 자처하고 있으니, 덴노의 의지를 눈으로 똑똑히 보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폐하, 여기 감히 어전을 침범하려 한 역적을 잡아왔나이다.”
내 말을 들은 덴노는 토모노리를 내려다보았다.
이세 고쿠시는 덴노의 앞에서 감히 뻣뻣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는지, 아주 얌전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덴노는 그 정성을 받을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어찌하여 고쿠시는 짐의 뜻을 거스르려 하였는가?”
“쿠보야말로 폐하의 눈을 흐리는 역적이옵니다.”
“감히 충신을 모함하려 하는가!”
어조는 나름대로 위엄을 갖추려 했지만, 그보다는 약간 경망한 느낌의 분노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토모노리에게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폐, 폐하······.”
“고쿠시가 짐의 신하를 자처하면서, 정작 제대로 섬긴 일이 있었는가?”
덴노의 추궁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오오기마치 덴노는 이 참에 자신이 받았던 설움 중에서 일부나마 풀어 버릴 기세였다.
“소, 소신은 쇼군이 잘 보필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였을······.”
“변명하지 말라!”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예전에 조선을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조정에서는 ‘아니되옵니다’가 마치 합창처럼 울려 퍼졌고, 국왕은 거기에 골머리를 앓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어쨌든 나라꼴은 유지하고 있었다. 지방관의 파견도 순조로웠고, 아무리 국정이 불안정하다 해도 군웅할거가 일어난다는 건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토모노리도 그렇고, 일전에 롯카쿠 요시하루도 그렇고, 참 겉모습만 그럴듯하게 꾸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충신이라면 진작에 입조하고 덴노를 옹위했을 터. 하지만 토모노리 역시 자신의 위세만 중시할 뿐, 교토에 어떤 도움도 보내지 않았다.
아마 지금 덴노가 할복하라면 기꺼이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이세는 여전히 키타바타케 가문의 것일 테고, 이쪽의 영향력은 거부할 게 뻔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을 이어나가다가, 덴노가 토모노리를 참수하라고 호통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덴노의 명이라 해도, 지금 죽여 버린다면 역시 모든 책임은 내게 향할 터였다.
“폐하, 잠시 기다려 주시옵소서.”
“오오, 쿠보. 저자의 처분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방금 전까지 역정을 내던 목소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온화한 반응이었다.
“이세 고쿠시는 자기 나름대로 폐하에 대한 충성을 다하려 했다 하옵니다. 그러니 그 마음을 입증하라 하시옵소서.”
“어찌하면 되겠는가?”
“신관으로 임명하시고, 신궁에서 폐하를 섬기게 하시옵소서.”
이미 토모노리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으니, 그걸 뒤집기는 쉽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신토를 중시한다면, 아예 신토의 총본산에 박아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덴노는 흔쾌히 내 말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이세 고쿠시의 상락은 일단락되었다.
* * *
다시 사카이는 평화를 되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내게 사람 하나를 언급했다.
“내 수하 중에 혼다 마사노부라는 자가 있소. 그가 쿠보에게 면담을 청하더이다.”
처음 듣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다는 제법 명문에 속하는 가문이지만, 내가 그들과 엮인 적은 없었다.
“마츠다이라 가문을 섬기던 자였는데, 죄를 짓고 쫓겨나 떠돌다가 내게 임관한 자요.”
히사히데가 간략하게 그의 내력을 설명했다.
마츠다이라 가문이면, 옛 도쿠가와 가문이다. 그러고 보니, 그 휘하에 혼다 가문이면 다타카츠하고 연이 있는 자인가 싶었다.
“무슨 일로 절 찾는답니까?”
“자신의 신앙하고 관련된 일이라고 하더이다. 내게 말하면 전해 주겠다고 했는데도, 굳이 쿠보를 찾더구려.”
신원은 히사히데가 보증한다고 했으니, 굳이 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하필 신앙문제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내 허락을 받은 히사히데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혼다 마사노부라는 자를 불렀다.
가만히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한 잔을 비웠을 때쯤, 알맞은 시점에 그가 들어왔다.
“소장, 혼다 마사노부라 합니다.”
“그래, 이야기는 들었네. 내게 직접 말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를 따라다니던 자들은 대체로 무골인 편이었다. 야규 무네요시도 그랬고, 간혹 얼굴을 보게 되는 다른 무장들 역시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 면담을 청한 이는 언뜻언뜻 재기가 비치는 것이, 머리를 좀 쓸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무사들과는 다른 모습에, 문득 그의 전 주인이라던 이에야스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타다카츠라는 장수 말고도 혼다 성을 쓰는 참모가 하나 더 있었다던가.
그는 인사를 마친 뒤, 종이 한 장을 내놓았다. 간단히 형식을 보니, 그에게 전해진 편지인 듯했다.
“소장은 잇코슈(일향종 一向宗, 불교 종파 중 하나, 잇코잇키의 주역)를 신봉하고 있습니다. 모시던 분을 바꾸던 까닭도 그 때문이었지요.”
“혹시 잇코잇키에 가담이라도 했던 것인가?”
마사노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츠다이라 가문을 섬기던 중에 일어난 잇키라고 한다면, 미카와 잇코잇키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이에야스가 가문명을 도쿠가와로 바꾸기 전의 일이다.
이에야스는 군량미를 충당하기 위해 잇코슈에 속한 절에서 미곡을 거둬갔다. 그리고 이 일이 시발점이 되어, 그의 영지에서 대규모의 잇키가 발생했다.
가신들 중에도 상당수가 잇키에 가담했었고, 대다수는 추방당했다는 걸로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제법 큰 사건이라서 소문으로 들은 걸 정리하자면, 대충 이 정도였다.
“자네가 잇코슈라는 걸 먼저 이야기했으니, 아마 용건도 그와 관련된 모양인데.”
“그렇습니다. 이건 혼간지의 법주께서 보내신 겁니다. 제게 영내의 잇코슈 신도들을 모으라는 내용이지요.”
나는 가만히 턱을 쓰다듬었다.
혼간지의 법주가 이런 일을 벌이려고 한다면, 적어도 좋은 의도는 아닌 듯했다.
잇코슈가 느슨한 형태의 조직을 갖추긴 했어도, 혼간지 일대에서 법주인 켄뇨는 다이묘나 다름없었다.
“설마 내 밑에서 잇키를 일으키기라도 하려는 건가?”
“아마 그런 의도일 겁니다.”
마사노부는 순순히 긍정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잇코슈의 일원. 어떤 책략이 숨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내게 말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하고도 이야기를 했습니다. 역시 모두들 여기에서 잇키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는 않았지요. 하여, 주의하시도록 미리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자기네끼리 의견을 종합했더니, 득보다는 실이 많은 짓을 벌이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만일의 사태가 생겨도, 자신들의 결백은 알아달라는 무언의 요청인 셈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꽤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가장 속편한 방법은 잇코슈를 몽땅 잡아다가 추방해 버리는 것. 하지만 그들은 아직 잇키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게다가 소수도 아니었다.
알메이다의 영향으로 키리시탄(기독교인)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잇코슈를 믿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숫자는 여전히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믿음의 영역이란 기묘해서, 강요하면 오히려 거세게 불타오르는 법. 영내의 잇코슈를 강제로 개종시켜 봐야, 음지로 숨어들어 더욱 골치를 아프게 만들 것이 뻔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고민하고 있으니, 혼다 마사노부가 불안한 기색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전례를 찾아보려 해도, 다종교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경우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유럽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갈등이 악화일로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만한 공존의 가이드라인이 서지 않은 상태였다.
그 유명한 30년 전쟁도 일어나려면 아직 한참 뒤의 일. 게다가 그 결과도 서로의 존재를 묵인한다는 것뿐이지, 결코 다른 종교끼리 뒤섞이는 걸 허용하는 건 아니었다.
“혹시 저희를 용납하실 수 없다면, 부디 관대한 처우를 부탁드립니다.”
불안함을 견디기 어려웠는지 혼다 마사노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서 관대한 처우란, 개종의 강요나 추방 정도일 터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선제 조치를 취하는 것이야말로 악수 중의 악수. 적어도 그건 차선의 끝단에서 마지막에나 집어야 할 선택지라고 할 수 있었다.
“혹시 잇코슈 신도들 중에 법주에게 동조하는 자가 있었나?”
내 질문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의 의미를 표했다.
“그렇다면 음모를 꾸민 것도 아닌데, 무슨 관대한 처우를 논하는가?”
나는 그의 우려를 일축시켰다.
생각지도 못한 답이었는지, 마사노부는 입을 벌린 채,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자네들이 신앙을 지킬 방법이 없지는 않네. 키리시탄의 경전에는 ‘군주의 것은 군주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라는 말이 있지.”
그가 이해하기 편하도록 적당히 단어를 바꾸어 표현했다. 내 배려가 통했는지, 마사노부는 그 구절을 곱씹고 있었다.
정작 그렇게 말한 나도, 문득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영내에 잇코슈 신도가 많은 지역을 골라보게. 적당한 자리에 사찰을 하나 지어주지.”
내 말을 들은 마사노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자네와 뜻을 같이하는 승려를 하나 데려오게. 개조(開祖)의 일족이면 더욱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