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종교 전쟁 (2)
덴노를 구슬려 가톨릭 선교의 허락을 받아냈다. 정확히는 신토의 교리 자체를 상당히 애매한 것으로 만든 것에 가까웠다.
“인도의 토속 신앙과 비슷한 형식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습니까?”
프로이스 신부는 대번에 힌두교를 떠올렸다.
인도에는 신이 6억 위가 있다고 하던가. 여러 면에서 일본의 신토와 유사한 점이 많았다. 예수마저도 힌두 신앙 체계 내에 넣어버린다고 하던가.
물론 신토의 교리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그쪽의 방식을 가져다 쓰긴 했다. 그래야 가톨릭이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명분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제가 보호해드리려면 선교사들이 선을 지켜야 합니다.”
“그야 이를 말씀이십니까.”
나는 사제의 확답을 받아낸 다음, 선교사들이 사용할 통행증을 건넸다. 거기에는 내 명의의 주인(朱印)과 덴노의 국새가 나란히 찍혀 있었다.
아마 관동의 대부분에서는 먹히지 않거나, 혹은 온갖 구실로 추방될 가능성이 높을 터였다. 하지만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그럭저럭 먹힐 가능성이 높았다.
* * *
상인 몇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이제 에고슈는 거상들의 모임 이상의 의미가 없었고, 정치적인 불만이 생길 경우 베드로를 통해 전달하곤 했다.
그러니 지금 그들이 찾아온 까닭 역시 상행에 관한 것일 터였다.
대표로 나선 듯한 자가 앞으로 나와서 용건을 고했다.
“소인은 미쿠모 가누마루라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온 사람들은 모두 배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걸 업으로 삼고 있지요.”
전에는 내가 꾸린 선단이 운송량의 대부분을 도맡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운송량 자체도 크게 늘어났다.
거상들은 이미 배와 창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눈치가 빠른 자들은 아예 사업을 정리해서 해운으로 업종을 바꾸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걸 틀어막을 이유가 없었기에, 선세나 항로 이용세 따위를 적절하게 매겼다. 그리고 선단의 성격을 점차 전투형으로 바꾸면서 운송 수요의 점유율을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직접 모든 걸 처리하기보다는, 그렇게 세금을 받는 편이 훨씬 더 쏠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찾아온 자들은 그렇게 해운업에 나선 선주들이었다.
“도시의 기둥들이 오셨군요. 무슨 일입니까?”
“오미나토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가누마루라는 상인은 오미나토를 입에 올렸다. 예전에 서쪽의 하카타, 그리고 동쪽의 오미나토를 교역의 거점으로 잡은 적이 있었다.
비록 관동의 교역량은 오다 노부나가와 그 일당이 틀어막고 나서면서 크게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오미나토는 거점 항구 역할을 했다.
“오미나토라, 이세국이로군요. 설마 교역이 금지된 건······?”
“그렇진 않습니다만, 사실상 막힌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미 교역량에서 관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상인들을 거부하면서, 그만큼 거래량도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는 그럭저럭 많이 오가는 편이었다.
여전히 호조 가문은 이쪽의 출입을 막지 않았고, 이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괜찮은 규모의 상권을 유지해왔다.
그러던 것이 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키타바타케 가문이 움직인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노부나가와 사돈인 이세 고쿠시, 토모노리의 결정인 듯했다.
나는 잠자코 그들의 이야기부터 들었다.
“오와리와 미카와, 그리고 스루가에서 온 상인들은 관세를 전혀 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독 저희들에게만 5할 이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 장사를 하려면, 이세 신궁에 헌금을 내라고 하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해마다 금을 일백 관씩 내라고 합니다.”
“게다가 신궁의 문 앞에는 성상을 새긴 돌판을 깔아놓고, 거기를 지나가랍니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니, 대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습니다.”
선주들은 저마다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토로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역시 키리시탄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조치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든 영역에 속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이쪽을 겨냥한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일단 오와리의 주인은 오다 노부나가고, 미카와부터 스루가까지는 도쿠가와의 영지였다.
그리고 이세 고쿠시인 키타바타케 토모노리는 최근 그들과 손을 잡은 정황이 뚜렷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더 설명을 듣지 않고도 눈에 보이는 듯했다.
오와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영지, 그리고 미카와에서 스루가까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였다.
아예 자기네들만의 블록을 형성할 의도인 것 같았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굳이 후미에를 요구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선주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게 급선무였다.
“저도 대책을 마련해야 하니, 내일 다시 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상인들을 돌려보낸 뒤, 이치로를 호출했다.
“이세 고쿠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해.”
지난 번,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사자가 신궁에서 매질을 당하고 쫓겨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쪽에 대한 첩보를 강화하도록 했고, 지금쯤이면 몇 가지는 입수했을 터였다.
그리고 이치로는 착실하게 내 지시를 이행했다.
“여기 있습니다.”
닌자는 작은 책 한권을 내놓았다.
가문의 내력부터 시작해서, 누구와 친밀한지까지 모두 적혀있었고, 언행도 일부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세 고쿠시(伊勢国司 이세국사) 키타바타케 토모노리(北畠具敎 북전교구).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공가 출신 다이묘였다. 그의 가문부터가 신궁의 소재지를 맡은 명문거족이었다.
키타바타케 가문의 내력은 남북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다이고 덴노는 가마쿠라 막부를 억누르고 덴노에 의한 친정 체제를 확립하려 했다.
고다이고 덴노의 조정은 남쪽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남조라 하고, 막부가 새로 옹립한 덴노의 조정을 북조라 해서, 일본 전역이 양측으로 갈라져 싸웠다.
정통성 면에서는 어쨌든 남조가 앞서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결국 전쟁은 무력에서 앞서는 북조가 압도하며 내전을 마무리했다.
중요한 건, 당시 토모노리의 선조는 패배한 남조측 인사였다는 점이다. 그것도 고다이고 덴노의 최측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세 고쿠시의 지위를 인정받았고, 지금까지 세습해왔다. 다시 말해서, 숙청의 최우선 후보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이 그대로 지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꽤나 뼈대있는 집안이었군.”
게다가 신궁이 위치한 이세는 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율령국 체계 내에서도 대국으로 지정된 쿠니(国 국). 그가 새로운 신토를 거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해가 되었다.
마침 그 대목을 보고 있는데, 이치로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후미에를 밟도록 한 조치 역시 이세 고쿠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역시······. 알겠다.”
조치는 필요했지만, 당장 무력을 행사하기는 곤란했다.
노부나가도 엮인 문제였으니, 아케치 미츠히데라면 쌍수를 들고 군을 일으킬 터. 하지만 모리 가문은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다.
그들은 노부나가 포위전에서 단바국을 얻었지만, 피해가 컸다고 했다.
비젠의 무라카미 가문을 치지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변명 따위가 아니라 진짜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상인들에게 다른 길을 찾아주는 것. 다행히 그건 가능해 보였다. 다음 날, 나는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새로운 일감을 주선했다.
아직 북쪽 항로를 통한 시장은 미개척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 이키 섬의 교역량이 늘어남에 따라, 새로운 수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상인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돌아갔지만, 정작 나는 큼직한 숙제를 처리해야 했다.
* * *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모리 가문이 움직이기 전에, 비젠에서 먼저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우키타 나오이에가 선교사를 모두 추방하고 키리시탄 사람들을 붙잡아 처형했습니다.”
그쪽도 사정은 꽤나 복잡했다.
원래 비젠의 다이묘는 우키타 가문이 아니라, 우라가미 가문이었다. 그리고 우키타 나오이에는 그 가신에 불과했다.
하지만 점차 실권을 움켜쥐고, 주가(主家)를 쥐락펴락하는 위치로 올라섰다.
원래 하극상이 자주 일어나는 전국시대라지만, 주군 되는 입장에서는 손 놓고 쫓겨날 수만은 없는 일. 힘을 키우기 위해서 키리시탄과 접촉했다고 했다.
“여기, 우라가미 공의 서신입니다.”
쫓겨나서 되돌아온 선교사 중 하나가 쪽지 하나를 내놓았다. 비젠의 다이묘인 우라가미 무네카게의 편지. 거기에는 온갖 미사여구가 담겨 있었지만, 결국은 도와달라는 의미였다.
나는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기회는 기회인데, 멋대로 삼키기는 곤란한 떡밥이 아닌가.
어쨌든 모리 테루모토는 명실상부한 동맹. 그것도 자기네 이익을 뒤로 하고 도움을 주기도 했던, 신의 있는 동맹이었다.
여기서 우라가미 무네카게의 요청을 받아들인다면, 그런 동맹을 배신하는 모양새가 되고 말 터였다.
나는 선교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전부인가? 여기에는 단순히 도움을 청하는 문구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는데.”
“도와주신다면 키리시탄을 적극 받아들임은 물론이고, 쿠보께 귀순하겠다고 합니다.”
“귀순이라······.”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었다. 게다가 이미 고개를 숙일 준비가 끝났다면, 그 대상이 내가 아니라도 상관없을 터였다.
* * *
“간토간레이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게.”
우키타 나오이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밀사를 보낸 뒤, 다시 한번 철포를 어루만졌다.
얼마 전, 그의 주군이라고 쓰고 꼭두각시 취급에 불과한 우라가미 무네카게가 도주했다.
달아난 곳은 바로 아와지 섬. 모리 가문의 동맹인 사카이 쿠보, 고니시 유키나가의 세력권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그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미 기나이는 사실상 쿠보의 손에 들어갔고, 서쪽은 모리 가문이 칼을 갈고 있었다.
우키타 나오이에는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오다 노부나가와 접촉했다.
- 대병을 일으켜 도움을 줄 수는 없으나, 그에 맞먹는 것을 보내겠소.
이 서신과 같이 도착한 것이 바로 이 철포였다.
나오이에는 오다 노부나가가 자신을 버림패 내지는 소모품으로 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밀사가 직접 철포의 위력을 시연해보였고, 그 구조도 간단함을 확인한 뒤에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사거리가 짧은 것은 별 흠이 되지 않는다. 이거라면 적어도 수성만큼은 확실하겠군.”
그는 영지 내의 대장장이들을 불러모아, 노부나가의 선물을 복제하게 했다.
입구가 벌어진 것 외에 별다를 것도 없었기에, 순식간에 많은 수의 신형 철포가 쌓였다.
그리고 몇 달 뒤, 모리 테루모토가 자신의 명의로 선전포고를 보내왔다.
숫자로는 절대적인 열세였지만, 우키타 나오이에는 코웃음으로 받아쳤다.
“그대들이야말로 뒤통수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당장 도움이 오지는 않겠지만, 여기서 최대한 힘을 빼놓는다면 적들의 뒤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키타 나오이에의 유일한 희망거리였다.
//작가의말
후미에에 관한 질문이 올라와서 작가의 말로 설명을 추가합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XXX 개새끼해봐’인데, 일본에서 키리시탄을 가려낼 때 쓰던 도구 또는 그 방법 자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에도 막부로 접어들면서, 일본 내에서는 키리시탄 신앙을 금지했습니다. 그리고 색출해내기 위해서 성화 또는 성상의 모습을 본딴 판을 하나 만들어서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가톨릭 신앙을 지닌 자의 입장에서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정확히는 그 판이 후미에고, 밟고 지나가는 행위를 에부미라고 했다고 하는데, 보통은 후미에가 방법과 도구 모두를 뜻하는 의미로 쓰입니다.
여기에서는 직접적으로 후미에가 작중 인물들에게 거론된 것은 아니나, 주인공이 이세 신궁의 방침을 보고 곧바로 후미에를 연상하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