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종교 전쟁 (1)
“신관들이 횡포를 부린다고?”
“그렇습니다. 이자나기 신궁의 타무라 일족이 시민들을 괴롭히는데, 쿠보가 아니고서는 막을 사람이 없습니다.”
이들 두 사람은 공통분모라고 해 봐야, 가톨릭 신앙 하나밖에 없었다. 그러니 이런 경우 외에는 손을 잡을 일도 없을 터.
고변을 듣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시정봉행과 교장은 바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였군. 대충 짐작은 가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저, 정말 들어주시는 겁니까?”
뭔가 반응이 이상했다.
시정 봉행이나, 교장이나 고작 이런 일로 긴장할 사람들은 아니었다. 물론 이자나기 신궁은 이제 내 직속 관할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내게 찾아오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런데 지금 이들은 그 이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하고 온 모양새였다.
“잠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자네들이 그토록 긴장한단 말인가?”
“쿠보께서 폐하를 사카이로 모셔오지 않으셨습니까.”
이 말 한마디로 전말이 보이는 듯했다.
다시 말해서, 이자나기 신궁의 지위가 격상됨에 따라, 타무라 일족이 덴노의 권위를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린 것 같았다.
“꽤나 고민이 많았겠군. 자네들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니, 안심하게.”
“저, 정말입니까?”
베드로가 확인하듯 질문을 던졌고, 거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안전을 보장하자, 지금 앞에 있는 두 사람은 그간 있었던 일을 몽땅 풀어놓았다.
신궁에 속한 신관과 그 일족이 제사 비용을 빙자해 돈을 뜯어 가는데, 그 과정에서 키리시탄과 마찰이 있었다고 했다.
“사람들을 잡아가서 멋대로 가두었습니다. 타무라 일족이 폐하를 언급하는지라······.”
경비대조차도 함부로 나설 수 없었더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무리 덴노를 내세웠다 해도, 내 관점에서는 역시 하나의 일탈에 불과했다.
“명백히 월권이군.”
그들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는 국가적 성지로 올려놓기는 했지만, 토지를 지급하지는 않았다.
신궁에서 제사 비용을 가져간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의 영주로서 기능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 아와지 섬의 주인은 그들이 아니었다.
“올바르게 처리하지. 자네들은 구체적인 피해 사례와 내역을 조사해 오도록.”
고변자들이 물러난 뒤, 나는 시마 사콘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가서 이자나기 신궁을 봉쇄하고, 신관을 붙잡아오게.”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업무와도 연관이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척이나 바빴고, 다음으로 맡길 만한 자는 시마 사콘이 될 터였다.
이 일은 철저히 영내 치안 문제로 끝나야 했다.
시마 사콘에게 경비대 몇을 딸려 보낸 뒤, 나는 사카이로 가는 배에 올랐다.
* * *
“오오, 어서 오게.”
예고도 없이 알현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덴노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나왔다.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쿠보의 뜻대로 해도 좋거늘, 어인 일로 번거롭게 발걸음을 했단 말인가.”
오오기마치 덴노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듣겠노라고 이야기했다.
전례가 필요하기 때문에 왔다고 할 수는 없었기에, 조용히 머리를 조아리고 용건을 꺼냈다.
어쨌든 신궁은 종교시설로 분류해야 했고, 그러자면 덴노에게 통보 정도는 해야 했다.
어떻게 정리를 하는 게 좋을까.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에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고민을 해 보았다.
강압을 행사해서 밀어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덴노가 기분 좋게 내 손을 들어주는 방향이 낫지 않겠는가.
“이자나기 신궁의 일이옵니다.”
나는 신관의 욕심에 초점을 맞추어 그간 있었던 일을 언급했다.
오오기마치 덴노는 잠시 수염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신궁에 주어지지 않은 토지에서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네. 그런데 본래 신을 섬기는 중요한 곳에는 토지를 하사하여 비용을 충당하게 하는 법인데, 주변의 마을을 붙여 줄 수는 없겠나?”
“이미 충분히 물자를 지급하였사옵니다. 게다가 이번 한번으로 끝날 것도 아니요, 신의 이름으로 정기적인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그리 하기에는 쿠보가 번거롭지 않겠는가?”
세금을 걷어서 일괄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이 시대에는 대체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권위를 세우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토지를 지급하거나, 혹은 아예 백성을 몇 호 붙여 주는 식으로 처리해왔다.
그런 의미에서, 덴노는 상식적인 발언을 한 셈이었다. 물론 내 관점에서는 엄한 놈 배불려 주자는 이야기가 되었지만.
“천하를 돌아보시옵소서. 그런 생각으로 각지에 다이묘를 세웠으나, 결국은 이리 혼란스럽게 되지 않았사옵니까?”
“과연, 그 말이 옳군.”
덴노조차도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터였다.
봉건제는 사회 전체로 보자면, 전력을 최대로 뽑아내기에 더없이 효율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해당 단위의 관리자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이 일은 신궁의 운영과는 무관한 바, 신이 법과 이치에 맞게 처결코자 하나이다.”
“그러도록 하게.”
이제 훌륭한 전례를 만들 토대가 세워졌다.
* * *
아와지 섬의 중심, 스모토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나 있었다.
“명하신 대로 이자나기 신궁을 봉쇄하고, 타무라 츠네하루를 잡아왔습니다.”
신관의 이름이 츠네하루인 듯했다.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쿠보라고 해서, 이 일이 용납될 것이라 생각하시오? 신벌이 두렵지 않은가!”
나는 코웃음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런 일로 신벌이 내린다면, 애초에 아와지 섬을 접수했을 때 조짐이 있어야 했을 터였다.
그때는 잠잠했던 자가 이토록 위세를 부리려 한다는 건, 역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인 듯했다. 물론 그 믿는 구석께서는 이쪽을 더 믿는 모양이지만.
“타무라 츠네하루, 어찌하여 백성들을 핍박했나?”
“핍박이라니, 원래 그 마을은 신궁에 속한 것이었소. 이제 이자나기 신궁이 성지가 되었으니, 의당 돌려받는 것이 아니었소이까?”
꽤나 기세등등했다.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리라는 기대에 완전히 사로잡힌 모양새였다.
“게다가 무지몽매한 자들이 남만의 잡신을 들여와 혹세무민하고 있으니, 겸사겸사 버릇을 고쳐 주었을 뿐이외다!”
그러고 보니, 고변하러 왔던 베드로와 루이스 교장은 내내 긴장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토사구팽의 모범사례가 되는 건 아닐지 불안했던 것 같았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과연 신관은 내가 예상한 말들을 그대로 읊어댔다.
“쿠보께서도 폐하의 신하시라면 마땅히 사람들의 신앙을 신궁으로 모아야 할 것인데, 어찌 이리 어리석게 군단 말이오?”
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일전에 덴노의 제의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가까운 성지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던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주 가깝다 못해, 내 영지 한복판이라고 할 수 있는 신궁 한 곳을 크게 지원했다.
아와지 섬의 이자나기 신궁. 국조신인 아마테라스의 부모 신격에 해당하는 부부신 이자나기와 이자나미가 안치된 곳이었다.
그곳의 신관은 대대로 타무라(田村 전촌) 일족이 맡아 왔고, 그들은 동시에 미요시 가문의 가신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추세대로라면, 그들은 서서히 쇠락해 갈 처지였다.
그런데 이자나기 신궁이 덴노가의 성지로 받들어지면서, 점차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 같았다.
“폐하께서도 신관을 처벌하는 일에 동의하셨다.”
“그럼 그렇지, 폐하께서도······. 방금 뭐라 하셨소?”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답을 받자, 신관은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덴노가 신궁을 맡아온 자신을 버리랴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토 나부랭이에게 권력을 밀어줄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운영에 필요한 지원은 모두 내가 친히 돌보고 있는데, 그대가 욕심을 부릴 까닭이 어디에 있나?”
타무라 일족 역시 신관인 동시에, 무사 영주였다. 하지만 내가 마츠나가 히사히데에게 아와지 섬을 받아오면서, 이들 역시 영지를 잃은 채, 신관으로만 지내왔다.
그리고 그동안 아와지는 토착 신앙의 세가 크게 죽었고, 가톨릭이 융성한 상태. 이 기회에 그걸 역전시켜 보려는 발악이었을 터였다.
“하지만 거느리는 백성이 없으면, 신궁의 위신을 어찌 세운단 말이오이까?”
“그건 신궁이 존경을 받으면 가능하겠지. 토지가 없어도 그 정도의 영험함은 보여야 성지가 아니겠나?”
제의에 필요한 비용까지 모두 부담해 주고 있었다. 여기에 더 뭔가를 바라고 있다면, 그건 뒷주머니를 의심해 마땅했다.
나는 공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신관 타무라 츠네하루는 사사로이 욕심을 부려, 폐하의 성지를 어지럽히고 신궁의 위엄을 손상시켰다. 그 책임을 물어 처형한다.”
츠네하루는 끌려가면서도 이럴 순 없다며 악을 썼다.
“이제 어찌할 셈이오이까?”
뒤늦게 소식을 듣고 들어온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질문이었다. 타무라 일족 자체를 숙청할지, 아니면 여기서 끝낼지를 물어보는 것인 듯했다.
“처벌은 저자 하나로 끝냅니다. 후계자가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자라면, 얌전히 신관직 세습으로 만족하겠지요. 만약 아니라면, 그것도 괜찮을 겁니다.”
빌미를 만들어 준다면, 아예 신관을 세습직이 아니라 공무원처럼 만들면 그만이다. 그런 의사를 내비치자 히사히데는 혀를 내둘렀다.
* * *
“쿠, 쿠보······. 어찌하여 그리 말씀하십니까?”
루이스 신부는 내 앞에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필요한 조치였다.
“물론 저희는 말씀이 닿지 않은 곳에 선교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유연한 모습을 보여야 했습니다마는······.”
“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라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다른 종교와 공존할 방법을 모색하라. 물론 이건 예수회에 속한 신부일지라도 선뜻 승낙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선교를 하지 말라거나, 배교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는 유럽이 아니라는 거지요.”
다이묘 중에서도 몇몇은 가톨릭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매우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사람이란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주목하여 연대를 꾀하는 동물이라, 뚜렷한 종교색은 필연적으로 공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교를 하러 나온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목숨을 걸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 나라에서 가톨릭 신앙의 금지로 이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요.”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나는 품에서 은전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덴노의 얼굴은 아니고, 연호가 새겨져 있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성자께서 하신 말씀이지요? 그 정도의 유연성만 보여 주시면 됩니다.”
루이스 신부를 불러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고작 신궁 하나가 성지로 지정되는 일에 신관이 이토록 위세를 부릴 정도라면, 키리시탄이라고 해서 폭주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기 때문이다.
“제가 우려하는 건, 키리시탄이 아닌 모두가 키리시탄을 적대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신궁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키리시탄이 이 일로 오만해지기보다는 교리 상에 있는 겸손이라도 지키길 바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루이스 신부도 고개를 숙였다.
“대신 다른 지역의 선교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