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불화의 씨앗 (3)
서쪽의 전쟁은 끝났다.
모리 모토나리가 방어전을 지휘하던 중에 죽었다. 그가 사망하면서 차기 당주가 된 그의 손자, 모리 테루모토는 상실한 영토를 포기하는 것으로 전쟁을 끝냈다고 했다.
비젠의 효웅은 확대된 영토에 만족했고, 오토모 소린 역시 북큐슈의 패권을 회복하는 선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최초의 도박사가 얻은 성과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된 것 같았다.
“새로 들어온 첩보입니다.”
이치로는 내 앞에 부복하며 그간 수집한 정보가 담긴 보고서를 내놓았다.
“다케다는 기어이 스루가를 침공했군. 그리고, 아사쿠라가 미노를?”
“사이토 요시타츠가 도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에치젠의 아사쿠라 가문이 미노국을 차지한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집무실 한쪽에 놓인 지도의 표시사항을 바꾸어 놓았다.
이걸로 지금 일본 전역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이 모두 여섯 개였다.
“미노 방면에서의 전쟁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도 역시 도쿠가와가 다케다와 손을 잡은 건가?”
“그런 모양입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상락은 좌절되었지만, 관동 지방의 다이묘들은 내가 알던 것과 비슷하게 움직였다.
다케다 신겐의 움직임을 듣고 있자니, 문득 그 라이벌의 행보가 궁금해졌다.
“우에스기 가문에 관한 정보는?”
“한 달 전, 군대를 이끌고 북상을 계획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다소 예전 정보이기는 했지만, 우에스기 겐신도 조용히 있지는 않을 모양새였다. 감자가 있으니 더이상 남쪽 지방에 연연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오와리에서 이쪽과 교역을 뚝 끊으면서, 북쪽의 정보를 좀처럼 얻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닌자를 그쪽에 더 투입하자니, 가까운 지역의 첩보가 소홀해질 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멀리 있어서 신속한 대응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게다가 우에스기가 향하는 방향은 벽지 취급을 받는 동북부 끝자락이었다.
“딱히 손을 댈 부분은 없겠군.”
신겐과 이에야스의 협공을 받는 이마가와를 살려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지금의 당주인 우지자네는 무능하기로 소문난 자라서, 헛수고에 그칠 것 같았다.
관동 지방의 균형을 맞추려면 차라리 나중에 호조 가문에게 투자를 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더 보고할 내용이 있나?”
“없습니다.”
어차피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내용은 이치로가 올린 보고서를 읽으면 될 일이었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나는 저택의 집무실을 나섰다. 이제는 사카이의 내정을 돌볼 차례였다.
시청 내부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로 유랑민의 수용과 직장 배치에 관한 사무가 업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일하고 있는 관료들은 대체로 성당학교 출신이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인재가 베드로였고, 나는 그를 촌정 봉행으로 세워서 내정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게 했다.
이전까지 내치를 도와주던 무기상인, 이마이 소큐는 직조 공장의 경영자로 자리를 옮겼다.
반란이 끝난 뒤, 직조 공장은 그 경영자들을 모두 잃었다. 내가 기물들에 관한 권리를 내세워 전부 인수했지만, 그 모든 일을 맡기에는 너무나 바빴다.
무기의 개발과 생산은 사이카슈 출신인 스즈키 시게히데가 담당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마이 소큐는 할 일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옛 무기상인을 공장의 관리자로 앉혔다.
이제 사카이 내부의 체계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시청의 쿠보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베드로가 찾아와서 중요한 사항을 보고했다.
“이번 달에 유입된 인구는 모두 오백 명이고, 그들 모두 아와지의 주민으로 배정했습니다.”
“그럼 이제 전체 인구는 도합 오만 정도가 되겠군.”
내가 기억을 더듬자, 베드로가 그렇다고 답했다.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였다.
내가 조선을 다녀온 직후에는 약 일천 명의 마을 인구가 칠천으로 늘어 있었다. 그러다가 미요시 가문의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기나이의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이만으로 불어났다.
그러다가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 시기에는 외부의 난민 유입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인구는 세 배로 뻥튀기된 상태였다.
“마을 내 위생 시설의 확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최대 이만 명까지 수용 가능합니다.”
사카이에서 수원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바로 옆을 흘러가는 야마토가와가 전부였다. 당연히 인구의 수용도 그 한계가 명확할 수밖에 없었다.
모래와 진흙을 이용해 원시적인 형태의 여과조를 갖추고, 수차로 물을 퍼올려 상수도 설비를 갖추게 했지만, 그 용량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땅은 사카이만이 아니었다. 아와지 섬을 영지로 얻으면서, 나는 대부분의 주민들을 그곳으로 보냈다.
기나이의 정세에 개입하기 쉬우려면 본토와 연결된 거점이 필요했고, 사카이에는 최소한의 인구만이 남아서 활동하는 중이었다.
“아와지의 수로 공사는?”
“약 절반 정도 진행되었답니다. 내년 말이면 완공될 거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아와지 섬에서 온천이 제법 많이 나왔다. 그곳의 물을 끌어다가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수로를 파는 중이었다. 공사가 끝나면 최대 십만까지 수용할 수 있을 터였다.
대강 보고가 끝나가는데, 수군을 맡고 있는 쿄타로가 들어왔다.
“아직 네 차례는 아닐 텐데, 무슨 일이지?”
“네, 주인님. 급한 소식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순서를 깨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베드로를 돌아보면서 남은 업무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이제 다 끝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겠군. 나가 보게.”
베드로가 나가고 나서, 쿄타로가 용건을 이야기했다.
“모리 가문에서 서신을 한 통 보내왔습니다.”
내 휘하의 수군 지휘관이 직접 들고 온 걸 보면, 아무래도 뱃길로 전해진 모양이었다. 나는 서쪽에서 온 편지를 받아서 곧장 읽어내렸다.
- 나, 모리 테루모토는 조부의 뒤를 이어 서국의 땅을 관리하게 되었소. 이를 쇼군께 고하고자 하는 바, 사카이 쿠보께 길을 청하오.
대강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였다.
적혀 있는 날짜는 약 넉 달 뒤인 정초 무렵이었고, 호위대는 배 네 척에 150명을 대동한다고 했다.
거기에 쇼군이 내게 보내는 명령서도 동봉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모리 테루모토의 상락을 도우라는 지시였다.
“어려울 건 없겠지.”
내 말을 들은 쿄타로가 내용을 궁금해했다.
“뭐라고 적혀 있었습니까?”
“모리 가문의 신임 당주가 사카이를 들르겠다고 한다. 넉 달 뒤에 온다고 하니, 시기를 보아서 배를 통과시키도록. 정중히 맞이하되, 철저히 검문하면 될 것이다.”
다이묘의 상락은 두 가지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정권을 움켜쥐기 위해 수도를 장악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단순한 수도 방문을 의미했다.
모리 테루모토의 상락은 후자였다. 그의 편의를 봐주라는 쇼군의 요구도 있었으니, 내가 굳이 방해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 * *
약속한 날이 되자, 모리 가문의 깃발을 내건 네 척의 배가 사카이의 항구로 들어왔다.
나는 직접 나가서 서쪽의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지요. 모리 공께서 여독을 푸실 수 있게 준비를 갖춰 놓았소이다.”
“쿠보의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이제 열일곱이 된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모리 테루모토도 상당히 젊은 나이에 가독을 승계했다. 조사해 본 결과, 모리 가문의 신임 당주는 나보다 고작 두 살이 많을 뿐이었다.
그는 아직 조부의 지위를 정식으로 승계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인지, 내게 공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모리 테루모토와 나와 인사한 뒤, 그 일행 중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부하들에게 쿠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라 하오.”
“모리 가문에는 두 개의 강이 있다더니, 그 중 한 분이셨구려. 반갑소이다.”
모리 가문은 가족애가 돈독하기로도 유명했다. 세 화살 이야기로도 유명한 모리 삼형제는 우애를 지킨 걸로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첫째는 일찍 죽었지만, 둘째와 셋째는 모리 양천(毛利 兩川)이라고 불리며, 조카를 보좌했다. 이 삼형제 중 막내가 바로 지금 앞에 있는 고바야카와 다카카게였다.
그는 내가 하카타에 다녀올 적의 일을 언급했다. 모리 당주의 태도도 그렇고, 이들은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옛 일을 이야기하며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어지자, 테루모토가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쿠보를 뵙고 싶어서 다소 고집을 부렸습니다.”
거리만 놓고 보면 사카이를 거치는 길은 다소 돌아가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 빠르게 상락하기를 원했다면, 요도가와 하류에서 내려야 했다.
그런 점에서 모리 가문의 당주의 말은 허언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어떤 용건이 있었기에, 일부러 먼 길을 온 것인지 궁금했다.
가만히 앉아서 그가 어떤 말을 할지 기다렸다.
“어째서 조부님을 그리도 몰아대셨습니까?”
테루모토의 입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내용이 튀어나왔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옆에 있던 그의 숙부를 돌아보았지만, 그는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자리에 동석했던 우리 측 무장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와 시마 사콘은 칼자루에 손을 얹었고, 스즈키 시게히데도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언제든 막아설 태세를 갖추는 것 같았다.
하지만 무례한 언사와는 달리, 모리 가문 일행은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나는 눈빛으로 그들을 진정시키고 손님에게 되물었다.
“내가 모리 공에게 무엇을 했다고 그러시오?”
“조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남기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라가미와 오토모의 준동 뒤편에는 쿠보가 있었다고 하셨지요.”
모리 모토나리가 남겼다는 말에 속으로 움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뚝 잡아떼고 그 의혹을 부정했다.
“그들과 아무 것도 하지 않았소만?”
그들에게 어떤 행동을 교사한 적은 없었다. 그저 일본 땅에 감자를 풀어놓기만 했다. 물론 우키타 나오이에 같은 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했지만.
내가 부정하거나 말거나, 모리 테루모토는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조부께서는 그런 사소한 건 잊고 쿠보와 손을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천하를 차지하지 못한다면 한 구석을 차지하고 대대로 물려주는 게 낫다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도통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소만, 협력을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은 있소.”
나는 그의 말을 온전히 긍정하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가는, 일본을 전란에 밀어넣을 의도로 감자를 풀었다는 걸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터였다.
모리 테루모토는 더 이상 그 문제로 나를 추궁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상대의 의도는 뻔했다. 내가 부린 술수를 적당히 눈감아줄테니, 자신들과 손을 잡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달라. 대강 이런 의미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전대 당주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모략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쪽이 협력을 원하는데 일부러 쳐낼 이유도 없었다.
내가 모리 테루모토가 내민 손을 잡으면서, 경직된 분위기가 다시 풀렸다. 다시 술과 차가 몇 순배 돌고, 모두가 편한 마음으로 웃고 떠들었다.
이치로가 뛰어오기 전까지는.
“주군, 잠시······.”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에, 나는 직속닌자를 따라 연회장을 나왔다. 그가 주변을 확인한 뒤, 급보를 전했다.
“우에스기 겐신이 다케다 신겐과 싸우다 서로 죽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