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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49화 (49/225)

49화 불화의 씨앗 (2)

“생각보다 일찍 왔군.”

일본에서 유럽권으로 사절단을 보낸 기록에 의하면, 못해도 왕복 2, 3년은 걸릴 터였다.

하지만 내 앞의 남만인이 신대륙의 식물을 가져왔다며 찾아오는 데 걸린 기간은 고작 반년가량에 불과했다.

“설마 사기는 아니겠지?”

내 추궁을 받은 자는 고개를 조아리며 입을 열었다.

“틀림없는 신대륙의 물건입니다. 제가 재주를 좀 부려서 항로를 단축시켰지요.”

“흠, 서쪽 항로를 이용했던 모양이군.”

남만 상인은 내 말을 듣고 살짝 놀란 표정을 보였다.

동양권이라고 해서 지구 구형론의 개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을 상식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는 이렇게 말하는 동양인을 처음 만났던 것 같았다.

내가 항해에 관한 지식을 살짝 내보이자, 그는 어느 정도 긴장한 듯했다. 정말 속임수라도 쓴 것일까?

어차피 야바위를 부렸거나 말거나, 진위를 가려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터. 나는 상인을 독촉했다.

“어쨌든 꺼내보도록.”

상인은 내 앞에 뿌리처럼 보이는 두 종류의 식물을 꺼내들었다.

“둘 다 파타타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둘의 성질이 조금 다릅니다.”

역시 감자와 고구마였다.

이자는 꽤나 착실하게 맡긴 일을 수행해 왔다. 당장 칭찬하고 약속한 상을 내려주고 싶었지만, 나는 눈앞에 놓인 것들을 모르는 것처럼 행세해야 했다.

“모양은 둘이 비슷하게도 생겼군. 그래도 서로 다르다면 이름을 따로 정해야 하지 않겠나?”

“저희야 딱히 구분이 필요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쿠보께서 처음으로 접하시는 게 될 테니, 뜻대로 하시지요.”

신대륙에서는 이걸 주식으로 삼았겠지만, 유럽에서는 아직 사료로 쓴다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을 터였다.

이걸 가져온 자 역시 마찬가지. 그는 도자기를 원했을 뿐이었다.

나로서는 굳이 새로운 이름을 붙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에, 알고 있던 바를 그대로 가져와 명칭을 정했다.

“둥근 건 감자라고 하고, 길쭉한 건 고구마라고 하겠네. 이제 어디서 가져왔으며, 성질이 어찌 되는지 설명해 보게.”

남만인은 고개를 조아리며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읊었다.

감자의 원산지는 높이 솟은 산지이며, 물을 적게 먹는데다가 추위에 강하다고 했다.

반면, 고구마는 물이 많은 열대우림 지역에서 발견했다는 것 같았다.

나는 고구마를 집어 들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그다지 쓸모가 없겠군.”

“어째서 그렇습니까?”

신대륙의 작물을 가져온 자는, 자신의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두려워하는 모양새였다.

“덥고 습한 데서 잘 자란다고 하지 않았나?

물도 자주 주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고구마를 내려놓았다.

이건 내가 원하던 작물은 아니었다. 물론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내가 알던 세계에서는 고구마를 일본어로 ‘사츠마이모(薩摩芋살마우)’라고 불렀다. 문자 그대로, 큐슈 남쪽인 사츠마에서 주로 재배했기 때문이다.

만약 감자처럼 전 지역에서 농사가 가능했다면,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말일세. 이 나라에는 이미 벼가 있지. 고구마와 같은 조건을 필요로 한다네.

그런데 굳이 이런 작물을 공들여 재배할 이유가 있겠나?”

마침 견본으로 삶아오게 시킨 감자와 고구마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고구마를 논했으니, 그쪽을 먼저 한 입 베어 물었다.

“단 맛이 강하니 군것질거리로는 나쁘지 않겠군. 하지만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어.”

잠시 아연한 표정을 짓던 상인은 다시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감자를 내밀며 질문했다.

“이건 어떻겠습니까?”

자신이 가져온 두 가지 종류의 식물 중 하나가 쓸모없는 취급을 받자, 나머지 하나에 기대를 거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내민 감자를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말했다.

“자네가 말한 대로라면, 감자는 제법 쓸 만하겠군.

추위에 강하다는 건, 더위에는 약하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땅 속은 온도 변화가 그리 크지 않으니 깊이 심으면 그만이겠지.”

나는 남만인에게 감자의 가치는 긍정해 주었다.

일본의 산은 제법 높고 험했다. 그에 따라 기후도 여러 갈래로 나뉜 상태였다.

태평양 연안지대를 포함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강우량이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장마철에는 당연히 감자재배가 불가능하겠지만, 그 전후 기간은 벼농사에 힘써야 할 터. 지금 사카이가 처한 식량난을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은 감자였다.

감자를 가져온 이는 첫 번째 과정을 통과했다.

“좋네. 하지만 이야기만 듣고 도자기를 내어줄 수는 없지 않겠나. 마침 지금 심으면 이쪽에서도 상품을 마련할 시기가 될 걸세. 재배해 보고 결과를 말해 주겠네.”

지금쯤이면 쓰시마에서 부산포로 배가 출발했을 터였다. 다시 상품을 싣고 사카이로 올 때쯤이면, 감자를 수확하기에도 적절한 시기일 것 같았다.

봄감자가 맛있다던가.

*       *       *

첫 재배는 성공적이었다.

부산포에서 쓰시마를 거쳐 온 도자기의 절반은 예정대로 감자를 바친 상인에게 팔렸다.

“아주 훌륭하군. 약속대로 올해와 내년의 도자기 중 절반은 자네가 가져가게.”

남만 상인이 희희낙락하며 돌아간 뒤, 내 비서 중 한 사람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내게 질문을 던졌다.

“대체 감자가 무엇이기에, 귀한 도자기를 그렇게 몰아 줄 정도입니까?”

그는 성당학교의 졸업생으로, 세례명인 베드로를 이름으로 사용했다. 어부 집안 출신이라서 그렇게 정했다던가. 베드로는 유독 호기심이 강한 편이었고, 나 역시도 질문을 막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이거? 아주 좋은 것이지.”

감자의 장점을 감추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베드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그런 작물이 다 있단 말입니까?”

“눈앞에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찐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역시 알이 꽉 찼구만. 자네들도 들어보게나.”

베드로, 그리고 바다 건너에서 상품을 싣고 온 유즈야 야스히로는 권유받은 대로 감자를 하나씩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쓰시마 도주의 가신으로서 그간 교역에 협력해온 유즈야에게 나는 조선의 사정을 물어보았다.

“요즘 조선의 정세는 어떤가?”

“교역에 문제될 만한 건 없습니다.”

쓰시마 사람인 유즈야가 그렇게 단언했다. 이어지는 말에 의하면, 조선 조정은 교역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근황을 이야기하던 그는 갑자기 무릎을 치며,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조선의 왕실에 경사가 있었습니다. 왕비가 회임을 했다더군요. 다음 선편에는 예물을 좀 준비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회임?”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그만큼 뜻밖의 소식이었다.

원래, 묘호로 명종을 받게 될 지금의 국왕은 후사를 남기지 못했다. 더군다나 지금쯤이면 그가 죽고, 하성군이 즉위할 시기였다.

“혹시 그동안 왕이 바뀌었는가?”

“그런 중요한 소식을 어찌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쿠보께서 다녀가신 이후로 조선의 국왕이 바뀐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자리를 함부로 비우기가 곤란했다.

어차피 지금의 국왕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조선과의 교역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터. 지금 시급한 건 국내의 문제였다.

“예물은 시일이 좀 걸리겠군. 준비가 되는대로 보낼 것이니, 다음에 조선행에서 국왕에게 올리도록 하게.”

내가 가지 못하는 대신, 예물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로 했다.

원래 올해는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는 시기였다.

오다 노부나가는 상락을 개시했을 것이고, 다케다 신겐은 그 공백을 틈타 이마가와 가문을 침공할 준비를 하는 상태였을 터였다.

서쪽도 마찬가지. 오토모 소린이 북큐슈로 발을 뻗은 모리 가문을 몰아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중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가닌자의 첩보망에 의하면, 천하가 고요했다.

내가 미요시 가문의 내전을 조기에 끝냈기 때문에, 오다 노부나가는 상락의 명분을 잃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케다 신겐도 움직이지 않았다.

기나이가 안정됨에 따라, 모리 모토나리도 북큐슈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상태가 유지되리라고 낙관할 수는 없었다.

다이묘들은 힘과 야망, 이 두 가지 모두를 갖추었고, 언제 일을 벌일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나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좋다고 하기도, 나쁘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쌀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유랑민의 유입이 줄어든 건 호재였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직 사카이와 아와지 섬의 인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식량난을 해결할 수단을 얻었으니, 이제 천하에 불을 지를 차례였다.

*       *       *

다시 한 해가 지났다. 그동안 일본 전역에 찾아왔던 평화는 금이 가고 있었다.

풍운은 서쪽에서부터 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알았던 모양이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 내가 내린 결정에 반발했던 그는, 지금 자신의 예측이 틀렸다며 사과하는 중이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보다도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 봅시다.”

한때 야마토의 옛 다이묘이기도 했던 마츠나가는 역시 이야기를 듣자마자, 감자의 가치를 곧바로 간파해 냈다. 그는 당장 아와지 섬에 봉금령을 내리고 우리가 독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적극적으로 일본에 감자를 풀었다.

내가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간단했다. 독점적인 이익을 얻으려면 대규모로 재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그 과정에서 보안을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일찍 확산시켜서 쌀값을 안정시키는 편이 나을 거라고 설득했다.

하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건 두 번째였다. 전쟁. 사카이 외부의 대전쟁이 필요했다.

“쿠보의 말을 들었을 때는 설마 싶었소. 그런데 정말로 자기 세력을 걸고 도박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우리가 논하고 있는 대상은 비젠의 효웅이라 알려진 우키타 나오이에(宇喜多直家우희다직가)였다. 그는 자신의 주가인 우라가미 가문을 움직여 모리 가문의 영지를 침공했다.

우키타야말로 내가 기대한 움직임을 보여 준 최초의 군웅이었다.

첩보에 의하면, 우키타는 감자를 입수하자마자 농한기를 이용해 감자재배에 힘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오토모 소린과 손을 잡고 모리 가문을 양면에서 협공할 계획을 짰다.

그 사실을 직접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일부러 농번기에 군을 일으켜 동서로 협공한 걸 보면 너무나도 뻔했다.

덕분에 서쪽은 다시 전란에 휩싸였고, 이쪽으로 유입되는 유랑민의 숫자도 늘어났다.

“쿠보는 모리 가문을 도와 균형을 맞출 생각이시오?”

“좀 더 지켜보지요. 세력의 차이가 너무 크니, 속단하기에는 이르지 않겠습니까?”

세력만 놓고 본다면 여전히 양측 간의 차이는 상당했다.

모리는 단독으로 아홉 이상의 나라를 거느리고 있었고, 오토모 소린은 셋, 우키타 나오이에는 비젠(備前国비전국, 오늘날의 오카야마현 동남부) 하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는 모리 모토나리에게 세력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게 강한 자라고 했던가.

그 말을 따라가자면, 모리 가문이야말로 전국시대의 승리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기반을 닦았던 모리 모토나리가 허망하게 무너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쪽은 한동안 백중세일 겁니다. 만약 우키타가 밀릴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개입을 해 볼까요.”

“그렇게 생각하시오?”

내가 기대하고 있는 대상은 따로 있었다.

이 전쟁을 목격하고 있을 다른 다이묘들. 대부분의 무사는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과 가문의 영광을 갈구했다.

그들에게 손쉽게 병량을 채울 수단을 쥐어준다면 어떤 짓을 벌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지도에 놓인 깃발 몇 개의 배치를 바꾸어 놓았다.

“모리 모토나리는 오우치와 아마고를 꺾은 모략가. 그런 그가 쉽게 당하리라고 볼 수 없지요. 우키타 나오이에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니, 이 정도 선에서 멈출 것 같습니다.”

이미 모리는 북큐슈의 지쿠젠(筑前国축전국, 오늘날의 후쿠오카 현 서부)을 버린 지 오래였다. 오토모는 수군으로 차단하고, 빗추(備中国비중국, 오늘날의 오카야마 현 서부)와 미마사카(美作国미작국, 오카야마 현 북부)를 가져간 우라가미 가문의 공세를 버티는 중이었다.

우키타 나오이에는 일종의 견본 같은 존재였다. 따서 갚으면 된다는 발상의 성공 사례. 첩보에 의하면,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전운이 감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후발주자는 언제나 최초의 시도만큼 성과를 얻기 힘든 법. 따서 갚는다는 발상도 순순히 잃어 줄 대상이 있을 때나 가능했다.

내가 기대하는 건 모두가 군비 경쟁의 늪에 빠지는 것이었고, 모두들 착실하게 그 수렁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다이묘들이 병력을 늘릴수록 그들의 영지는 피폐해지겠지요.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서 이익을 얻을 일만 남았습니다.”

시간은 어차피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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