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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36화 (36/225)

36화 일본에서 왔소이다 (6)

소 마사모리가 이끌던 소조선 무리는 빠르게 쓰시마 쪽으로 사라졌다.

“피해 상황은 어때?”

“죽은 사람은 없어. 그런데······.”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스즈키는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야?”

“선체가 살짝 뒤틀어진 모양이야. 역시 충돌시키는 건 자제하는 편이 낫겠어.”

석고로만 따져도 덩치는 두 배의 차이가 날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선체에 파손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지. 또 맞부딪치게 되면, 그땐 평범하게 싸울 수밖에.”

날은 금세 어두워졌다.

한 차례 전투를 치르기도 했지만, 부산포에서 쓰시마 히타카츠까지는 바다가 험한 편이라 속도가 나지 않는 이유도 있었다.

선실에 내려가 있었던 소에키가 올라와서 아래쪽의 상태를 전했다.

“격군들이 모두 지친 상태입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휴식을 주거나, 아니면 채찍질을 하라는 말이었다. 노꾼 대부분은 노예들이었기에, 여차하면 함부로 굴릴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강행군을 하자면 불가피한 일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목적지 코앞에서 힘이 빠진다면 그 또한 문제였다.

“잠시 정비를 하도록 합시다. 병사들도, 노예들 모두 식사도 제대로 못 했을 것 같으니까, 배급이 끝나고 일 다경 뒤에 출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강행군이 될 테니, 주먹밥은 두 개씩 지급하세요.”

내 말에 스즈키가 질문을 던졌다.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르는데?”

“정작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는 게 더 문제일 것 같아. 모두가 사이카슈는 아니니까.”

상대를 적당히 띄워주면서 설득하니, 사이카슈 수장의 아들도 납득했다.

내 지시대로 선단은 잠시 닻을 내렸다. 식사와 휴식을 취한 다음, 등불을 환하게 켜고 다시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제 곧 히타카츠입니다.”

선단은 이즈미 만 바깥을 지났다. 여기를 지나서 곶 하나를 넘어가면 곧 히타카츠였다.

이 일대의 해안은 복잡하다. 매복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움직였지만, 다행히 습격당하지는 않았다.

멀리 상관 쪽에 불빛이 약간 보이는 듯했다.

히타카츠 협곡에 들어서니, 다행히도 상관은 멀쩡해 보였다. 항만에 남겨둔 열일곱 척의 관선은 모두 무사한 것 같았다.

“오셨습니까?”

상관의 항구에 배를 대자, 마중을 나온 이들이 있었다. 요시히메, 그리고 그녀를 호위하는 단조까지 모두가 멀쩡한 상태였다.

“혹시 여기도 공격을 받았습니까?”

“응. 사흘 전부터 몇 번 공격해오다가, 지금은 포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야.”

“피해는 어떻습니까?”

내 질문에 요시히메의 옆에 있던 단조가 답했다.

“죽은 사람은 없고, 부상자만 서른 명 정도 됩니다.”

의외의 결과였다.

아무리 신무기를 갖추었다고 해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관에 남아 있던 병력은 종류를 모두 합쳐봐야 구백 명을 넘기지 못했다.

“소 마사모리가 세력을 분산시킨 건가.”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상황을 정리하며 혼잣말을 하자, 요시히메가 반응을 보였다.

“저희도 오는 길에 습격을 당했습니다. 소 마사모리를 기억하시는지요?”

“그, 도주의 일족?”

그녀의 반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주동인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쓰시마 내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난 게 아닌가 싶군요.”

유즈야는 다시 요시히메에게도 나에게 했던 것과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

“그런 거치고는 좀 많긴 하던데.”

“몇이나 되었습니까?”

“한, 천오백쯤?”

아무리 상관에 목책을 둘렀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시로 세운 울타리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피해가 없었단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머릿수는 비슷했으니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열세 척을 남겨놓았으니, 그만큼의 병력만 있었던 것이 아니던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릿수를 세며 살펴보니, 여기를 지키고 있는 병력이 상당히 많았다.

“혹시 쓰시마 도주가 여기로 온 겁니까?”

“아니. 소 마사모리가 항복을 요구한 적은 있지만, 도주는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어.”

만약 쓰시마 도주가 반역자에게 붙잡혔다면, 본인이든 본인의 목이든 내보였을 터.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소 시게히사는 자신의 거성에서 농성 중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따로 증원을 보낼 만한 세력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상관을 지키는 병력도 족히 천오백 명은 되는 것 같았다.

“그럼 이 많은 병사들은······.”

“격군들을 무장시켰어.”

다시 그들을 보니, 갑옷도 갖춰 입지 않은 자들이 상당수였다. 창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근처에서 대나무를 잘라다 깎은 죽창이었다.

“전부 노예잖습니까?”

“그들이 자청하기도 했고, 한번 시켜봤는데 상당히 잘 따르는 편이었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닙니다. 그들 중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자를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노예에게 무기를 허용했다는 그 자체가 걱정되었다. 하지만 많은 귀가 있는 자리에서 드러내놓고 확인할 수는 없는 일. 대신 노예 중에서 조장이나 십장에 해당하는 자에게 조용히 물어보기로 했다.

“쇤네는 쿄타로라고 합니다.”

불려온 노예는 덩치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강단있게 생긴 자였다. 눈에 총기가 있는 것이, 머리도 쓸 줄 아는 듯했다.

“이야기를 들으니, 노꾼들도 적군과 맞서 싸웠다더군.”

내 말을 듣고, 쿄타로라고 소개했던 노예는 한층 더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말이야. 무슨 생각으로 같이 싸울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지더군. 가만히 있어도 이기는 쪽이 노예를 해칠 리는 없으니까.”

“주인님께서는 정해진 기간이 끝나면, 풀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 잡혀가면 죽을 때까지 대대로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요.”

일리 있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한 생각이군. 좋다. 사카이로 돌아가거든 충분한 포상을 내리도록 하지.”

아직 항해가 끝은 아니었다. 게다가 어떤 상을 주어야 할 지 고민을 해야 했기에, 당장은 약속만 하고 돌려보냈다.

*       *       *

다음 날, 상관 밖에서 대치 중이던 적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돌아왔으니, 여기를 공격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 같았다.

“추격할까?”

“아니.”

스즈키는 추격을 건의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계책이 있었다.

“곧장 이즈하라로 가자. 어차피 저들도 그리로 갈 게 뻔하고, 움직이는 속도만 놓고 보면 육로보다는 뱃길이 훨씬 빠르겠지.”

저들은 아마 북섬에서 히타카츠가 있는 쪽의 반대편에 배를 대어놓았을 터. 도보로 움직이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먼저 쓰시마 도주의 거성으로 향한다면, 각개격파도 가능해 보였다.

“과연, 그렇겠네. 이제 녀석들에게 남은 수는 하나니까.”

소 마사모리는 이제 쓰시마 도주를 잡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쓰기 힘들어졌다. 이쪽의 전력은 만만찮으니, 차라리 전력을 기울여서 가네이시 성을 공략하는 것이 나을 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모든 짐은 배에 실어두었어.”

요시히메는 공격을 받은 뒤, 만에 하나를 대비해서 배를 띄울 준비를 모두 끝냈다고 했다. 덕분에 상관에 병력을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관선 스무 척을 모두 이끌고 출항했다. 이즈하라로 향하는 동안, 저항 한번 없었다. 역시 소 마사모리는 도주의 거성에 모든 걸 쏟기로 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우리는 이즈하라의 포구에 도착했다. 단조가 멀리 성 앞을 가리켰다.

“놈들이 전부 저기에 모여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대로였다. 족히 이천은 넘어 보이는 무리가 성문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아직 성이 함락된 건 아닌 듯했다.

곳곳이 깨지고 그슬린 걸 보니, 이쪽의 전황이 가장 치열했던 모양이었다.

- 와아아아

성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그들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만큼, 우리의 접근을 먼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창병들은 앞으로 나서라. 뒤를 철포수와 궁병이 받친다.”

내려서 포진을 마친 뒤, 가네이시 성 앞으로 진격했다. 우리를 본 적은 산으로 달아났다.

우리가 성문에 도착하자, 성주가 직접 맞이하러 나왔다. 그는 내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면목이 없네. 내가 너무 무르게 처리했어.”

나는 그를 달래며 상황을 물어보았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요. 배신한 자들은 얼마나 됩니까?”

“모두 삼천일세.”

나와 유즈야가 추측한 범위의 최대치였다. 불만을 품은 자들이 모두 반기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소 마사모리는 제 목숨과 재산을 노렸습니다. 그뿐입니까? 아무리 일족이라 해도 반역자이기도 하잖습니까.”

나는 그의 신병을 이쪽으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쓰시마의 불안정한 정국은 나로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처분은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겠네.”

소 시게히사는 순순히 내 요구에 따랐다.

다시 도주 휘하의 병력이 이쪽에 합류했다. 이제 격군들은 배에 남기고 전면에는 쓰시마 도주의 병력을 내세웠다.

그들이 길잡이 겸 방패 역할이었다. 앞에서 달려드는 적을 차단하면, 뒤에 서 있던 철포수가 사격하도록 했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소 마사모리가 이끌던 무리가 보였다.

“전원······.”

“잠시 기다려주게.”

쓰시마 도주가 앞으로 나섰다. 그가 항복을 제안하겠다고 했다.

“이제 저들이 열세이니, 항복을 권하면 그대로 따를 걸세. 뒤처리만 마무리되면 더 이상 반기를 들지 않겠지.”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소 마사모리와 그 아들들만 제거하면, 이 섬에 소 씨 일족은 오직 도주만이 남을 터였다.

소 시게히사가 적의 앞으로 가서 항복을 이야기하자, 전력상으로나 명분상으로나 모두 열세에 놓인 그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았다.

주동자였던 단 한 사람만이 여전히 칼을 빼 들고 저항하려 했다.

“항복해라.”

“크윽! 이렇게 허망하게 될 줄이야······.”

소 마사모리는 혼자 발악을 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쓰시마 도주가 직접 나서려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를 말렸다.

“기다리시지요. 반역자의 최후가 깔끔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눈짓하자 스즈키가 철포수들을 이끌고 반역자를 에워쌌다.

가장 좋은 것은 저자가 순순히 칼을 내려놓는 것이다. 산 채로 아예 섬 밖에 끌고 가버린다면 역시 구심점은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그가 끝까지 저항한다면, 최대한 처참한 몰골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나을 듯했다.

“이 철포를 본 적이 있겠지? 끝까지 저항한다면 시체도 남지 못할 거다. 선택할 기회를 줄 때 잘 고르도록 해라.”

나는 신무기를 들이밀었다. 그도 내 선단을 습격했다가 바로 내뺄 정도였으니, 위력을 모르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끝까지 나를 모욕하려 하느냐!”

“셋을 세겠다. 하나······.”

그의 반발을 무시하고, 곧바로 숫자를 불렀다.

철포의 압박은 효과가 있었던 듯했다. 상대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항복하면 어찌하려느냐?”

“여생은 온전히 마치게 해 주지. 대신, 다시 이 섬에 돌아오진 못한다.”

내 말을 들은 마사모리는 열심히 두 선택지를 저울질하는 기색이었다.

“둘.”

“하, 항복하겠다.”

역시 시신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건 원치 않는 듯했다. 나로서도 잔인한 짓을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와 그의 세 아들들은 모두 내가 데려가기로 했다. 혹시 그중에 요시토시가 있는가 확인을 했지만, 그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는 없네. 무슨 일인지 말해줄 수 있겠나?”

“아, 별일 아닙니다.”

어쨌거나 원 역사에서는 내 사위가 될 녀석이라 했으니, 한 번 얼굴이나 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그럴 일은 아예 사라진 셈이 되고 말았다.

구심점이 될 만한 나머지 일족들도 내가 인질로 데려가기로 했다. 쓰시마 도주는 그들이 큰 세상을 보고 나면 생각이 좀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는 모양새였다.

이후 며칠간은 부산으로 나머지 물자를 옮기는 일만 반복되었다. 그런데 요시히메는 마지막 배에도 오르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참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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