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독점 자본의 형성 (10)
이마이 소큐가 가리킨 부분은 용두와 화약 접시에 해당했다.
“차이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림만 가지고는 자세히 알기가 어렵습니다.”
“불붙은 심지 대신, 부싯돌을 활용해보고 싶습니다.”
철포를 쏘기 위해서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먼저 총구에 탄과 화약을 밀어넣는다.
그리고 총신 바깥에 달린 화약 접시에도 점화용 화약을 담는다.
마지막으로 용두에 심지를 끼워놓고 불을 붙인다.
이 모든 준비가 끝난 다음에 방아쇠를 당겨야 제대로 된 사격을 할 수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용두에 매달린 심지가 화약 접시에 꽂힌다. 그러면 총신 외부에서 내부로 연쇄 폭발이 이어지면서 사격이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철포수는 항상 불씨를 갖고 다녀야 했다. 만약 심지를 태울 수 없다면, 철포는 한갓 쇠몽둥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상이 매치락 방식이었고, 내가 제시한 것은 그다음 단계에 해당했다.
플린트락이라는 이름 그대로 부싯돌, 수석으로 장약을 점화시키는 방식이다.
장전하는 과정은 매치락에 비해 거의 변화가 없지만, 심지 대신 부싯돌로 장약을 기폭 시킨다. 그렇기에 불씨를 따로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흐음······.”
무기상인은 자신의 수염을 매만졌다.
그는 한참을 말없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상당히 의심스러운 방식입니다.”
“그렇습니까?”
“수석이 있으면 쉽게 불을 붙일 수 있지만, 전장에서는 그조차도 생사를 가르는 간격이 되겠지요. 게다가 아무 돌이나 가져다가 맞부딪친다고 해서 부싯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마이 소큐는 차시츠 밖으로 나가서 자기 집 부뚜막에 있던 부싯돌을 가져왔다.
“보시다시피 한 쪽은 철 조각이고, 나머지 하나는 차돌입니다. 철이야 제법 흔히 쓰이니 여기에도 보탤 수 있겠습니다마는, 차돌은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운 편이지요.”
내가 내민 설계도는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당장 대량으로 만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금 오백 문을 가지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당장은 시제품 연구만 부탁드립니다.”
“시제품이라······.”
“부싯돌이 어떤 각도로 맞부딪쳐야 사격이 잘 되는지, 어떻게 고정을 할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굳이 불씨를 품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유익하겠습니까?”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내가 언급한 장점에는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렇기야 하겠습니다만······.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키나가 님의 부탁이시니, 제대로 된 걸 한번 만들어보도록 하지요.”
* * *
사부로(삼랑三郎)는 야마토(大和대화, 현재의 나라 현 일대)국 남쪽에서 농민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 사카이에 가면 농토가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다네.
계속 땅을 파먹고 산다 해도 자기 앞으로 나올 농토 따윈 없었다. 이제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시고, 조만간 독립해서 집을 나와야 할 처지였다. 그러던 차에 마을을 지나던 행상이 해준 말은 무척이나 솔깃한 것이었다.
사부로는 군대에 들어가는 것보다야 낫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사카이 촌을 찾아갔다. 과연 공장이라는 곳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며 일감을 주고 있었다.
“매달 초하루에 은 1문씩 주지.”
공장을 경영하는 상인은 그에게 후한 보수를 약속했다. 농가에서는 일 년 내내 땅에 매여 있고서야 겨우 먹고살 수 있었다. 가끔 풍년이 들어야 배가 채워지는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공장의 일은 단순하면서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향에 있을 때보다 벌이가 훨씬 안정적인 편이었다.
집도 절도 없는 신세였던 그는 마을을 둘러싼 해잣가에 움막을 지었다. 가재도구가 없어서 겨우 죽이나 끓여 먹어야 했다. 하지만 고향집에서는 그저 밥만 먹어야 했다면 여기에서는 젓갈 같은 반찬도 한두 가지를 더 곁들일 수 있었다.
이런 호사를 누리는 동안에도 돈은 착실하게 모였다.
“이대로라면 집도 마련하고, 장가도 갈 수 있겠지. 후후.”
공장의 노임이 넉넉하지만 홀몸일 때의 이야기다. 가족이 생기면 먹여 살리기는 어려울 터, 그는 밑천을 모아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꿈꿨다. 한 뙈기 밭을 마련해 넉넉하게 농사를 짓는 것이 사부로의 희망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반장이 자기 아래의 직공들을 불러모았다.
“나으리께서 우리 직공들을 위해서 방을 마련해 주시겠다고 하셨네. 대신 급여 중에서 오분의 일을 감하는 조건일세…”
노동자들은 웅성거렸다. 하지만 반장의 말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자자, 아직 말이 끝나지 않았어. 저기 천막이 보이나?”
공장 옆에는 어느새 널찍한 천막이 펼쳐져 있었다.
“직공들을 위해서 하루 세 끼 식사가 제공될 예정이네. 단, 식대로서 급여의 삼분의 이가 줄어들 걸세.”
하나같이 월급을 깎겠다는 이야기들뿐이었다.
“하나 물어봅시다.”
직공 중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말해보시게.”
“반드시 돈을 내야만 하는 겁니까? 그깟 집과 밥,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임금을 깎을 순 없다구요.”
““옳소!””
모여든 이들 가운데 몇몇이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나으리들께서는 희망자에 한해서 그리하겠노라 하셨네. 원치 않는다면 굳이 돈을 내지 않아도 좋다는 이야기지.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급여를 좀 줄이더라도 집과 식사를 받는 편이 나아 보이던데······.”
반장은 이 안건에 동의하는 사람과 거부하는 사람을 나누었다.
“이 공장에서 좋은 일자리도 받았는데, 굳이 해롭게야 하겠는가?”
전체 인원의 반 정도는 흔쾌히 동의했다.
“돈을 줘놓고 뺏겠다니, 말도 안 돼!”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이들은 아예 반장의 말을 불신하며 갹출을 거부했다.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 사람들은 반장의 말에 따랐지만, 의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사부로는 마지막 부류에 속했다.
“돈이 아깝기는 한데······. 한번 지켜나 볼까?”
식사는 그럭저럭 괜찮게 나왔다. 아니, 오히려 움막에서 혼자 끼니를 때울 때보다 훨씬 나은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이게 뭐야? 고슬고슬한 밥이잖아! 게다가 반찬도 있네.”
처음으로 받은 상차림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반찬으로 된장국과 절인 생선구이가 나왔다. 대강 따지고 보면 혼자 끼니를 해결할 때와 값은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식단은 훨씬 좋은 편이었다.
동전을 조금 쥐어주면 반주 한 잔도 가능했다.
처음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 보름 정도가 지나자, 공장 옆에 지어지고 있는 숙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하나가 각각 이층 높이에, 층마다 스무 개의 작은 호실로 분리된 구조였다. 그렇게 열다섯 채가 완공되었고, 그 옆에는 새로운 기숙사가 또 지어지고 있었다.
입주하던 날, 반장은 사람들을 불러다가 배정된 호실을 알려주었다.
“사부로? 자네는 3동 1층의 5호실일세. 월세는 다음 급여에서부터 차감될 예정이니 알아두게나.”
들어가 보니 방은 깔끔했다. 면적만 놓고 보면 움막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닥에 제대로 된 다다미도 깔려 있었고, 목면으로 된 이불까지 갖춰져 있었다.
처음에 고집을 부리던 사람들도 소문을 듣자 숙사를 기웃거리곤 했다.
“내 돈을 가져가시오! 집과 밥을 달란 말이오!”
한 달이 지나자 처음에 거부하던 이들 대부분도 순순히 기숙사와 식당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마가 시작되자 모든 이들이 움막을 버리고 공장에 딸린 건물로 들어왔다.
* * *
세토 해의 뱃길은 안정적이었지만, 이용할 수 없는 딱 한 철이 존재했다.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두 달은 꼼짝도 못 하겠군요.”
와타다 오리시로가 창 밖을 내다보며 아쉬운 듯이 말했다.
이제 공장에도 체계가 잡혀갔다. 이제는 경영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아도 돌아가는 체제가 확립되었다. 덕분에 하야시 쿠사로와 와타다 오리시로 두 사람 모두 차카이(茶會차회)에 참석이 가능했다.
재료는 충분했기에 공장은 끊임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뱃길이 막혀버려서 당분간은 재고를 쌓아둬야 할 처지였다.
“그래도 장마가 끝날 때쯤이면 목면 값도 올라 있겠지요.”
내 말에 참석자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하카타에서 사카이로 돌아오는 동안 사카이로 들어온 장정은 백여 명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하고도 보름쯤 지난 지금은 삼천 명이 마을의 새로운 주민으로 들어왔다.
직조 공장의 노동자가 이천 명쯤 되었고, 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직종에 천 명 정도를 돌렸다.
재원은 충분했다. 나는 은으로 일만 관의 특허료를 받았고, 그 이상으로 세금이 들어가고 있었다. 만약 경제에 눈썰미가 있는 자라면 지금 일본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기이하게 여기고 것이 분명했다.
“정말이지 고니시 님의 발상은 따라가질 못하겠습니다. 자선을 베푸시는 줄 알았는데 또 돈을 긁어모으시다니요.”
하야시는 노동자들을 먹이고 재우자는 내 말을 탐탁잖게 여기고 있었다.
- 지금까지도 알아서 잘들 해왔는데, 굳이 돈을 들여가면서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재원을 직공들의 임금에서 일부 제하는 방식으로 마련하자고 했을 때조차 그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역시 대량생산의 힘은 위대했다.
한 사람이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반찬삼는 것은 대단히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여섯 토막으로 나누어서 각자의 상에 올리는 건 그리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음식을 여섯 끼에 걸쳐서 나눠 먹는다면 쉽게 상했겠지만, 식당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재료의 순환도 맞아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품질도 올라가는 효과까지 나타났다.
“직공들이 받는 노임이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사카이도 호황입니다.”
이마이 소큐도 표정이 밝았다.
사업적인 면에서 그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카이 에고슈의 대표인 오도시요리(大年寄대연기)로서 돈이 시중에 풀리는 건 대단히 반가운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생기게 마련. 그는 마을 내부의 불온한 움직임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위치였다.
“도박장이나 유곽이 생겨나는 모양입니다. 마을의 분위기가 밝아지는 건 좋은 일입니다만, 엄한 것들이 배를 채우니 달갑지가 않군요.”
“벌써 그런 것들이 생겨났답니까?”
“어쨌거나 돈이 될 일이니까요. 주로 야마시로파에서 손을 대는 것 같더군요.”
지금 사카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외양만 놓고 보면 셋츠파와 중립 세력의 합작품이나 다름없었다. 무당파에 해당하는 이들은 규모도 작았기에 마을의 경제가 호황인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야마시로파는 이 틈새에 끼어들어 굴러다니는 돈을 주우려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딴 놈이 챙긴다더니······.”
와타다가 입을 열었다. 상당히 언짢은 어조였다.
다른 사람들의 심기도 마찬가지. 그들의 작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마침 무장세력을 키울 좋은 명분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억누르면서 힘도 키울 일석 이조의 발상을 내놓았다.
“이 참에 사카이촌 내에 치안 조직을 꾸며보도록 하지요. 그동안 저와 소큐 님의 합자로 세워진 경비대를 내세우면 될 겁니다.”
단순히 숫자로만 보면 이쪽은 세 파벌 중 둘이 뭉쳐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권력다툼과는 무관한 이들도 치안을 단속하겠다는 이유에는 동의할 터. 야마시로파의 반대쯤은 깔아뭉개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압도적으로 밀어붙여버리면 야마시로파는 물론이고 쇼군까지 나설지도 모를 일. 그러면 자연스럽게 미요시 가문도 관심을 가지게 될 터였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었다.
- 고니시 님의 양부께서는 상당히 편찮으시다더군요. 문화인으로 명성 높은 분이 차카이조차 열지 않고 문을 걸어닫으셨다 합니다.
이마이 소큐나 소에키 선사는 바쁜 와중에도 심심찮게 마을 밖으로 불려다니면서 들은 외부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소문에 의하면, 약 석 달 전부터 병증에 시달렸다고 했다. 교토의 이름난 명의까지 다녀갔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것 같았다. 하카타로 다녀오기 전에도 내 방문까지 거절했던 것을 보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미요시 요시오키는 올해를 넘기지 못한다.
그의 죽음으로 미요시 가문도 어지러워질 테니, 내게는 기회였다.
하지만 동지들 앞에서 이런 내막을 말할 수는 없었다. 사람의 수명을 짚어내는 건 통찰과 예상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신내림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확실히 지금의 미요시가는 경황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공장이 이렇게 커질 정도면 한번쯤 저를 호출할 법도 한데, 아직 아무 반응도 없더군요.”
미요시 나가요시처럼 치밀한 자가 지금까지 직조 공장에 가장 가까운 정보원을 내버려 둘 지경이었다. 사태가 얼마나 위중한지 짐작할 만한 태도였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급한 일이다! 어서······.”
집주인이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그러더니 나를 차시츠 밖으로 불러냈다.
“이치노스케를 뵙습니다.”
로지에서 무사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낯이 익은 걸 보니 미요시 가문 소속인 것 같았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무슨 일이십니까?”
“당장 아쿠타가와(芥川개천) 성으로 오시라는 전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