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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니시라니-18화 (18/225)

18화 독점 자본의 형성 (9)

“목면 한 탄에 은 두 돈 반을 받아내시다니, 이 늙은이보다 장사를 잘하십니다그려.”

내가 하카타에 다녀오는 동안, 이마이 소큐 역시 이세의 오미나토에 판로를 뚫어왔다.

“소큐 님은 세 돈으로 맞춰오지 않으셨습니까?”

“동쪽과 서쪽의 값은 다르지요.”

중년의 무기상인은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세의 오미나토는 자급자족이 아니면 기나이나 간토에 기대야만 했다. 동쪽은 대체로 벽촌이었고, 결국 물자를 충당할만한 교역 대상은 기나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쥬코쿠(中国중국) 이서 일대는 조선이나 명과의 교역이 가능했다. 급하면 밀수에 손을 댈 수도 있었다.

이마이 소큐는 굳이 양쪽의 교섭 난이도를 비교하자면, 하카타 방면이 좀 더 난이도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 단야소에 딸린 차시츠에는 와타다 오리시로를 제외한 동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불참자가 자리에 없는 이유는 그 동업자인 하야시가 대신 설명했다.

“직조 공장이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저와 그 친구, 둘 중 하나는 남아서 지키고 있어야 할 지경이지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예상했던 바이기는 했다.

“공장의 직공 수는 얼마나 됩니까?”

하야시는 턱을 매만졌다.

이전까지 공방에서 일했던 숫자와 비교하려니 아직 감이 안 잡힌 것 같았다.

“지금은 백 명이 조금 안 되겠습니다.”

사카이의 인구는 여자와 아이, 노약자를 전부 합쳐서 약 이천 명을 웃도는 수준이었다. 장정으로 환산하면 오백 명 전후쯤 되는데, 그런 상태에서 잠깐 사이에 백 명이 늘어났다.

“와타다, 그 친구가 힘을 좀 썼습니다. 직접 농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일꾼으로 끌어모으더군요.”

“혹시 농민을 데려온 겁니까?”

한 사람의 노동력이 그대로 다이묘의 힘에 직결되는 세상이었다. 만약 농지가 비어버릴 정도로 인구 유출이 발생한다면, 주목을 받게 될 터. 노동자 유입도 완급 조절이 필요했다.

“주로 유랑민들이었습니다. 가끔가다 농가의 차남, 삼남이 일하러 오기도 했지만, 그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노임은 얼마나 지급합니까?”

“한 달에 은 1문씩 지급하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달이면 은 12문. 단순 노동인 만큼 일 년에 일 석을 조금 넘기는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다.

“직공들의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지금은 각자가 알아서 해결하게 두는 중입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삼켰다. 마침 알맞게 식어서 잘 넘어가는 것 같았다.

동지들은 공장의 가치는 어렴풋이 알아도, 그 파급효과까지는 아직 염두에 두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혹시 사카이에 원래 살던 주민들과 충돌하는 일은 없었습니까?”

“네, 아직까지는······.”

공장을 찾아오는 노동자들은 의식주를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그리 크지 않을 터.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집도 당연히 없을 것이었다. 사카이의 원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으니,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숙사와 식당을 갖춰 둘 필요가 있겠군요.”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야시는 물론이고, 이마이 소큐나 소에키도 마찬가지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이제 백 명 정도가 늘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지요.”

“몇 명까지 늘어날 거로 생각하십니까?”

“그야······.”

직접 질문을 받은 공장주는 자기 사업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두 분의 공장에서 일할 직공이 족히 수천 명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정도 가지고는 우리의 꿈을 이루기에는 많이 부족하겠습니다만.”

내 말을 듣자 이마이 소큐의 안색이 살짝 파래졌다.

그는 사카이 에고슈의 오도시요리. 마을 전반의 일을 총괄하는 업무를 맡은 대표이기도 했다.

“원래 살던 주민들과 갈등이 생기겠군요.”

“그것만이 아닐 겁니다. 지금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가 없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집도 필요하고, 가재도구도 갖춰야 하잖습니까.”

“직공을 고용한 사람으로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야시는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자책하실 일은 아닙니다. 원래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쉬이 알기 어려운 것들이지요.”

나라 전체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 부작용도 서서히 정상으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 사카이는 내가 인위적으로 발전을 끌어올리는 상태였으니, 미리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당장 백 명가량의 의식주를 해결하기에도 힘들 것 같습니다.”

소에키는 어려움을 지적했다.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역시 해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대신에 전문적으로 집을 지을 목수와 음식을 조리할 숙수가 필요하겠군요. 우선은 양을 충족시키는 걸 목표로 잡는 게 좋겠습니다. 당장 천 명을 먹이고 재울 수단을 갖춰야겠지요.”

“처, 천 명!”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승려도 자신의 마음이 동요하는 것을 어쩌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꾸준히 늘어날 겁니다. 아마 그만큼을 감당할 준비가 끝나면 다시 규모를 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침묵이 차시츠를 지배했다.

찻물이 다시 다 끓었을 때쯤, 하야시가 입을 열었다.

“재원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야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부담해야지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닐 것 같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공장주는 안절부절못했다. 사실상 자신들이 치러야 할 값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직공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부담하게 하시지요. 아마 그들도 지금 어거지로 사카이에 붙어있을 겁니다. 동가식서가숙을 끝낼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내겠지요.”

“과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생각만큼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모든 걸 우리가 감당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목수와 숙수를 마련하는 건, 아직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닐 겁니다. 제가 준비를 해 보도록 하지요.”

“제가 고니시 님께 필요한 돈을 좀 보태고 싶습니다만······.”

소에키가 투자를 하고 싶다고 나섰다.

“하야시 님과 와타다 님, 두 분도 합자로 공장을 세우신 상태고, 하카타의 포목상들도 여럿이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한다 들었습니다. 지금 고니시 님께서 하시려는 사업도 전망이 있어 보이니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나서주신다면 저로서야 대환영이지요.”

심각한 이야기가 대강 끝나자, 하야시가 주머니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전부 고니시 님의 몫입니다. 먼 길 다녀오시는 동안 상당한 매출을 올렸지요.”

“양이 상당하겠군요.”

열어 보지는 않았지만, 크기로 얼마가 들었을지 어림짐작이 가능했다.

“대강 오백 문 내외가 될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하야시는 싱글벙글하며 열어보라고 권했다.

“이런 건 직접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쩍 들추어 보니 노란빛이 쏟아져 나왔다. 은화로 가득 차 있을 줄 알았는데, 전부 금이었다.  위쪽을 금으로 덮고 아래를 은으로 채운 것이 아니라 꽉 찬 금화 주머니를 받았다.

“세상에!”

쌀 한 석에 은 10돈, 그러니까 은화 10문 내외. 금값은 보통 일곱 배의 은에 해당하니 오백에 칠을 곱하면······.

“은화가 삼천오백 문!”

“사실 그 안에 금화는 오백을 조금 더 넘습니다만, 이리저리 번거로움을 감수하면 그쯤 되겠지요. 궤짝을 지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은 대신 금으로 바꾼 겁니다.”

한 돈이 3.75그램, 1문이 곧 한 돈이니 무게로만 놓고 보면 2킬로그램 정도가 된다. 은으로 바꾼다면 14킬로그램 정도. 들고 다니기 번거롭다는 이야기는 허세가 아니었다.

“벌써 사카이 주변 쿠니에서는 목면값이 내려가는 중입니다. 사카이에서는 아이들이 하나이치몬메(화일돈花一匁)라고 부르던 노래를 모멘이치몬메(목면일돈木綿一匁)로 바꿔 부를 지경이지요.”

“상당히 급격한 변화로군요.”

하나이치몬메. 나중에 가서는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동요로 한국에도 알려지는 노래다. 흥겨운 곡조에 가사가 시궁창인 것이 특징이었다. 원래라면 유곽에 팔리는 여인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새 목면의 가격 변화로 둔갑해 있었다. 그만큼이나 세간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이제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목면이 한 돈이라는 노랫말은 묘하게 들렸다.

하카타에서는 목면 한 탄의 소매가가 세 돈이었다. 기나이에서도 세 돈, 그리고 간토에서는 세 돈 반에서 네 돈까지도 거래된다고 했다.

“당장은 얼마 정도나 합니까?”

“카와치국, 이즈미국, 셋츠국에서 우리가 파는 목면이 둘하고도 반 몬메(匁돈)에 팔리고 있습니다.”

하야시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한 달 전후로 생긴 변화치고는 상당한 폭이었다.

“벌써 반 몬메나 떨어졌군요.”

“그래도 서너 배는 넘는 이문이 남습니다.”

“그렇게 많이 버신다면, 이제 경비 인력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꺼낸 말은 상당히 뜻밖이었던 것 같았다.

“물론, 그렇기야 하겠습니다마는······.”

“재화가 많으면 도적도 꼬이게 마련이니 미리 준비해 두시지요.”

“그깟 도둑놈들쯤이야 가솔들로도 막아 낼 수 있습니다. 사카이의 치안은 제법 좋은 편이잖습니까.”

하지만 내가 짚은 부분은 좀도둑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마이 소큐도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를 챈 것처럼 보였다.

“한두 놈쯤 담을 넘는 거야 얼마든지 막을 수 있을 걸세. 하지만 큰 도둑놈들도 있지 않던가?”

“과연, 그렇군요.”

그제야 하야시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를 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직공들을 감독하고 행상을 꾸려서 움직이려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그 부분은 전적으로 고니시 님께 맡기도록 하지요.”

“그렇다면 나중에 힘 좋고 말 잘 듣는 장정을 추려서 보내주셨으면 합니다.”

“요시로(與四여사, 소에키의 아명)가 고니시 님을 돕는데, 저도 빠질 수야 없지요. 경비대를 갖추는 일은 저도 보태겠습니다.”

이번에는 이마이 소큐가 나서서 합자 회사를 꾸리자고 제안했다. 그가 무기상인인만큼, 더없이 적절한 인선이 아닐 수 없었다.

*       *       *

소에키와 하야시는 돌아가고, 나는 따로 할 말이 있다며 소큐의 차시츠에 남았다.

사람이 있어도 무기가 없이는 곤란한 법. 단야소의 주인만큼 적절한 상담 상대는 없었다.

“이 금화 오백 문이면 철포를 얼마나 살 수 있겠습니까?”

내 질문을 받자 무기상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으음······. 대강 두 정쯤 될 것 같군요.”

역시 철포는 비쌌다. 철포 하나가 쌀 130석 전후라고 했다. 은으로 바꾸면 1,300문. 내가 포목상들에게 분배받은 몫을 대강 바꿔 보면 은 3,500문이니, 철포 두 정 반쯤 되는 셈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자 이마이 소큐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어찌 유키나가 님께만 모든 짐을 떠안기겠습니까? 직조 공장 덕에 사카이촌의 세입도 크게 늘어났으니, 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이제 시작 아닙니까.”

그는 내가 철포 가격 때문에 머뭇거렸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무기 상인에게 답했다.

“철포 값을 걱정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좀 더 획기적인 무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철포 이상의 무기가 있겠습니까?”

자기 상품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사람다운 답이었다.

“그야 그렇지요. 제가 염두에 두는 건, 철포의 개량입니다.”

내 말에 이마이 소큐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철포를 든 아녀자가 항우라도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더 나아질 여지가 있단 말씀이십니까?”

“별거 아닙니다. 좀 더 빠르게, 편하게 쏘도록 바꿔 보자는 것이지요.”

“말씀하신 것들은 전부 철포의 단점을 상쇄시킬 요소들입니다. 어찌 별것 아닐 수 있겠습니까?”

무기상인은 다시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일단 진정하시지요. 설명을 쉽게 하기 위해서 그림을 하나 그려 왔습니다. 이걸 보시면서 들어주셨으면 좋겠군요.”

나는 준비해 간 종이를 펼쳐 보였다. 정확히는 일종의 설계도 같은 것이었다. 간단한 철포의 도면을 그려 두었는데, 기존의 철포와 다른 부분이 한 군데 존재했다.

“이 부분이 특이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바뀐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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