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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153화 (153/175)

153 봉신화 요청 (1)

광명력 995년 3월 2일 늦은 밤.

겨울 궁전 알현실에서 아딘은 안톤과 로제 그리고 트링겐에서 온 밀사와 함께 대면하고 있었다.

“폐하께 상세한 것을 말씀드리시오.”

안톤의 말에 밀사는 먼저 아딘에게 예를 갖춘 후 머리를 조아린 채 유창한 벨로디나어로 이야기했다.

“트링겐과 뵌가르트의 영주이신 루돌프 폰 콘스탄티노프께서 폐하의 봉신으로 들어가 그 날개 아래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고 있사옵니다.”

게마인샤프트 동부의 부유한 해안 상업 도시 2개를 지배하는, 콘스탄틴 왕가에게는 먼 친척뻘 되는 콘스탄티노프 가문.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 없어, 사실상 루돌프 3세가 죽고 나면 단절될 예정인 가문의 봉신화 요청은 사실 아딘이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

‘시기가 너무 빨라.’

다만 아딘은 그 시기를 대략 내년에서 내후년쯤으로 보고 있었다.

두루마리를 통해 확인한 카반드 왕조 내부 사정으로 짐작했을 때, 그 정도 기간 동안은 라인하르트가 내부 정리에 몰두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짐은 이곳 콘스탄티노바에 있지만, 항상 세계 만방의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 그대들이 처한 사정에 대해서도 들어 알고 있으나, 짐은 보다 상세한 이야기를 그대에게서 듣고자 하노라.”

아딘의 말에 밀사는 말을 이었다.

“유목민들이 1주일 전, 최후 통첩을 보냈사옵니다. 1개월 내로 콘스탄티노프 가문과 그 가신은 모두 트링겐과 뵌가르트를 떠나고, 시민들은 성문을 열어 자기들을 반기라는 통보였사옵니다.”

그 말에 아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인하르트에게는 대략 3가지 방법이 있었어. 그중 최상책은 내부 정비를 하며 게마인샤프트에 통일 왕조가 뿌리내리게끔 하는 것이었고, 최하책이 공세적으로 트링겐과 뵌가르트를 치는 것인데…….’

트링겐과 뵌가르트는 단순히 게마인샤프트 동부의 맹주 역할을 하는 도시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에는 교역로가 끊긴 상황이라지만, 장차 다시 벨로디나와 제니스 사이에 해상 교역이 재개된다면 꼭 필요한 중개 항구 도시 역할을 할 그런 도시였다.

아무리 제니스의 콘테 가문이 해운업을 독점하고 있다 하더라도, 트링겐과 뵌가르트에서만큼은 콘스탄티노프 가문의 우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두 항구 도시가 갖는 위상은 대단했다.

‘그런 도시를 무력으로 점거하려 든다면, 아무도 좋게는 안 보겠지.’

벨로디나와 제니스뿐 아니라 슈드 자치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벨로디나와 교역하는 샤펠 제국마저도 그러한 카반드 왕조의 행보를 좋게는 안 볼 터였다.

‘결국 이렇게 부딪치게 되는 거냐, 라인하르트?’

아딘은 가만히 라인하르트의 마지막 뒷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위대한 선조와는 달리, 그저그런 허접한 용병으로 사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이라도 느낀 것 같은, 잔뜩 위축되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딘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상에 뒤처지지 않는 후손이 되기 위해 유목민을 규합하고 세력을 키우는 것까진 좋았는데…… 판단이 너무 안 좋아.’

아딘은 가만히 밀사를 바라봤다.

왕좌 팔걸이 위에서 아딘의 손가락이 박자감 있게 움직이며 일정한 리듬의 소음을 발생시켰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안톤과 로제 그리고 밀사는 모두 입을 굳게 다문 채 숨죽이며 아딘의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잠시 후, 아딘은 손가락을 멈추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 트링겐과 뵌가르트의 밀사여, 예법에 따르면 그대에게 1주일의 휴식을 베풀어야 함이 마땅하나 시국이 시국인 만큼, 그대는 속히 그대의 주군에게로 돌아가 짐의 말을 전하거라.”

밀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안톤과 로제도 긴장된 표정으로 아딘의 입을 바라봤다.

“1주일 안으로, 짐이 직접 트링겐으로 행차하겠노라. 그대의 주군, 루돌프 폰 콘스탄티노프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주군이 될 사람에 대한 예를 갖추어 기다려야 할 것이니라.”

아딘의 말에 밀사의 표정이 환해졌다.

“가, 감사하옵나이다, 폐하! 감사하옵나이다!”

그렇게 밀사는 콘스탄티노바에서 하루를 묵은 후 빠르게 남하하여 3월 3일 늦은 오후에 배를 타고 트링겐으로 떠났다.

* * *

“이게 말이 됩니까?”

3월 3일 저녁.

내각청사 각료회의실.

안톤의 요청으로 소집된 로제와 빅토르 다비도프, 불카르 아시오게는 원탁에 둘러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회의하고 있었다.

“트링겐과 뵌가르트가 유목민 왕조에 넘어간다면, 분명 우리로서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쓸데없이 유목민 왕조를 자극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빅토르 다비도프의 말에 로제가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도시가 적에게 넘어가는 걸 마냥 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그녀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가 갑갑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누가 적입니까? 유목민 왕조? 그들이 왜 우리 적입니까? 아직 우리와 그들 사이에는 그 어떠한 공식적 관계도 맺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유목민 왕조가 보이는 확장적 행보는 분명 우리에게 적대적인 요소가 될 게 뻔해요.”

“그건 우리가 얼마나 제대로 방비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저들도 머리가 있는 이상, 북쪽과 서쪽에 있는 국가를 모두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생각이 있다면 트링겐과 뵌가르트를 저런 식으로 먹으려 들지도 않았겠죠.”

“두 도시는 게마인샤프트 서부를 장악하는 데 필요한 요충지입니다. 저들의 선택은 당연한 거 아닙니까? 우리로 치면 크리미아를 장악하느냐, 못 하느냐 수준입니다.”

“우리가 크리미아를 장악했다고 해서 곤란해질 나라는 없지만, 유목민 왕조가 트링겐과 뵌가르트를 장악하면 곤란해질 국가가 상당히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죠.”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이 격화될 기미를 보이자 안톤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그쯤에서 둘 다 자중하시오.”

안톤의 개입에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일단 잦아들었다.

그런 둘을 바라보며 안톤은 말했다.

“폐하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이오. 우리가 할 일은 구체적으로 폐하의 뜻을 실행에 옮기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오.”

안톤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순간 울컥함을 느끼며 인상을 찌푸렸다.

“총리. 말씀 똑바로 하십시오. 내각이 어째서 국왕의 독단을 실행에 옮기는 기구란 말입니까? 우리는 엄연히 국가평의회의 뜻을 따르는 기구입니다. 국왕의 독단이 아니라.”

순간, 안톤은 물론 로제와 불카르 아시오게마저 표정이 굳었다.

특히 로제의 얼굴이 심각할 정도로 시뻘겋게 달아올라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가 됐다.

불카르 아시오게가 정색하며 이야기했다.

“외무대신. 말씀을 삼가시오. 국가평의회가 국왕 폐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이상, 국왕 폐하의 뜻은 곧 국가평의회의 뜻이 아니겠소?”

그러나 빅토르 다비도프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그런 궤변이 도대체 세상 어디에서 통용된답니까! 국가평의회는 국가평의회고 국왕은 국왕이지!”

“뭐? 궤변?”

전선이 확대될 기미를 보이자 안톤이 다시 개입했다.

“그만!”

이번에는 상당한 힘을 담아 고함을 질렀던 만큼, 불카르 아시오게와 빅토르 다비도프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외무대신. 그대의 본분을 망각하지 마시오. 그대는 어디까지나 외국과의 협상에 있어 국왕 폐하의 뜻을 전하는 위치일 뿐이오. 그리고 지금, 국왕 폐하는 잔악무도한 유목민 왕조로부터 왕실의 친척인 콘스탄티노프 가문을 지켜주고자 직접 트링겐으로 가시겠다는 뜻을 굳히셨소.”

그러면서 안톤은 한층 목소리를 깔고는 빅토르 다비도프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직 폐하의 뜻이 전쟁에 있지 않는 이상, 트링겐과 뵌가르트가 왕국의 품 안으로 들어오면서 동시에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대가 할 일이다, 이 말이오. 아시겠소?”

안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빅토르 다비도프는 간파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수긍하자 회의는 일사천리였다.

“우선 국왕 폐하께서 전쟁을 선포하러 가시는 것이 아닌 만큼, 호위 병력은 최소한으로 구성하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안톤의 말에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하지만 트링겐이 우리 영토로 편입이 된다면, 그쪽은 어떻게 생각하면 가장 적대적인 존재와 국경을 맞닿게 되는, 왕국의 최전선이 될 것이외다. 병력의 증원 배치는 불가피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안톤은 동의했다.

“그 문제는 군무대신께서 국왕 폐하와 상의한 후 규모를 정하도록 하시오.”

“그리하지요.”

불카르 아시오게와 이야기를 끝낸 안톤은 곧장 로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정보대신은 국왕 폐하의 행차에 동행하십시오. 트링겐에 심어둔 정보원을 한 번 단속도 하시고, 또 가능하다면 유목민 왕조가 점령한 도시에서 추가 정보원을 포섭하는 작업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안 그래도 그 문제를 두고 오늘 오전에 국왕 폐하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일단 정보부 소속 마법사 하나와 동행할 예정이에요.”

로제와의 이야기마저 끝낸 안톤은 마지막으로 빅토르 다비도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안톤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옛 정적이자, 혁명 동지이며, 지금은 함께 내각에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동료 대신인 빅토르 다비도프를 바라보며 안톤은 아까보단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외무대신도 폐하를 따라 트링겐으로 동행하셨으면 좋겠소.”

“해외 영토 취득에 구태여 내가 갈 필요가 있소이까? 외무성 실무진만 가면 되지 않겠소이까?”

그 말에 안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번 폐하의 행차가 단순히 영토 합병을 위한 것으로 보이오? 폐하께서 친히 가시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팽창하는 유목민 왕조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가 아니겠소?”

안톤의 말에 빅토르 다비도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빅토르 다비도프를 향해 안톤은 꽤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던졌다.

“폐하와 거리를 가까이 한 채 유목민 왕조와의 협상을 지휘하시오. 폐하께서는 큰 틀에서 그대를 지도하시겠지만, 구체적인 모든 부분을 정하는 것은 외무대신인 그대가 될 것이오.”

단순히 현장에서 아딘을 보좌하라는 말이 아니란 것은, 비단 빅토르 다비도프뿐 아니라 로제나 불카르 아시오게도 간파할 수 있는 것이었다.

빅토르 다비도프는 묘한 눈빛으로 안톤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곘소. 총리대신 뜻대로 하겠소.”

빅토르 다비도프의 말에 안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한 차례 쓱 훑어보며 말했다.

“곧 궁정대신이 수행단의 명부를 확정할 것입니다. 폐하를 따라가야 할 분들은, 동행할 사람의 명단을 확정해서 궁정대신에게 건네주십시오.”

안톤의 말에 로제와 빅토르 다비도프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 하곘소.”

“그렇게 할게요.”

그렇게 각료회의는 끝났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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