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국왕 아딘 콘스탄틴 (2)
내각은 총리대신 안톤이 이끌었다.
아딘은 국왕으로서 자리를 지키기만 할 뿐, 직접적으로 내각에 무언가를 명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내각을 통솔하는 안톤을 비롯해 주요 대신들과 독대함으로써 아딘은 국정을 자신의 뜻에 따라 이끌어갔다.
“곧 게마인샤프트 트링겐에 본부를 둔 코발트블루 상단이 투자 요청서를 우리에게 보낼 것이오. 그곳의 총수로 등록된 샘 존슨이라는 사내는 그저 허수아비일 뿐, 실질적인 총수는 잭슨 상단이오.”
“그들과 파라곤 소속 상인들의 압류 재산을 잘 돌려주겠사옵니다, 폐하.”
과거 재무총괄위원이었던 재무대신은 아딘의 뜻에 따라 투자 요청서를 보낸 코발트블루 상단에게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덕분에 코발트블루 상단은 광명력 994년 7월 25일 크리미아에 첫 사무소를 마련한 이후 3개월 만에 벨로디나 전역에 자기들의 사업체를 설립했다.
물론 법적으로 그들이 만든 사업체는 코발트블루 상단과 벨로디나 상인 및 부유층 그리고 정부의 자금이 각각 절반씩 들어간 합자회사의 형태였다.
“그 소식 들었나? 연말에 배당금이라는 게 나온다는데?”
“배당금?”
“아니 왜 저번에 왜 그 외국 상인이 회사 만든다고 투자자인지 뭔지 모을 때 우리 마누라가 거기에 돈을 좀 넣었는데, 거기에 따른 배당금이라는 게 이번에 나온다는데?”
“배당금이 뭔데?”
“이익이 난 걸 나눠주는 거래.”
“뭐? 아니, 그 좋은 걸 왜 자네만 하나?”
“내가 했나? 내 마누라가 했지.”
“아이고. 우리집 여편네는 도대체 뭘 한 거야!”
아딘의 뜻에 따라 합자회사는 지분의 절반을 가진 벨로디나인에게 철저하게 배당금을 뿌렸다.
수익이 좋은 사업체의 경우 입성 3개월 만에 배당금을 줄 정도였다.
“이 정도면 적어도 우리의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료회의에서 안톤은 자신이 받은 배당금 내역을 공개한 후 그때까지도 외국인의 벨로디나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대신들을 설득했다.
빅토르 다비도프를 비롯해 외국인 투자에 부정적이던 이들 중 상당수가 배당금을 받았던 만큼, 불만은 일단은 누그러뜨릴 수 있었다.
“국영기업의 설립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외국 자본이 벨로디나 내에서 독점적인 위치에 오르지는 못할 겁니다. 국영기업을 통해 핵심 산업은 지키면서, 그 외에 분야에선 민간의 성장을 위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 돼야 할 것입니다.”
안톤이 각료회의에서 한 말은 실상 아딘이 한 말과 다름이 없었다.
그것을 대신들은 모두 다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감히 거기에 토를 달 거나 하진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단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으니까.
그렇게 벨로디나 경제는, 농업 위주에서 점차 상업 위주로 산업의 이동을 겪기 시작했다.
“기술대신, 짐이 이야기한 것은 완성하였는가?”
아딘이 챙기는 건 경제뿐만이 아니었다.
“폐하께서 구상해 두신 대로 일단 만들었사옵니다. 다만, 양산을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대포와 화약은 그저 짐이 꿈에서 본 개념에 불과한 것이었노라. 허나 그대의 위대함은 짐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으니, 그것의 양산과 실전 배치를 위해 필요한 자원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짐에게 고하길 바라노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팔키르와 로제의 합작으로 통신 수정 구슬이 양산됐다.
그것을 보았던 아딘은 팔키르에게 대포와 화약까지 만들어 볼 것을 주문했다.
물론 아딘이 대포나 화약에 대한 구체적인 것을 알지는 못했고, 두루마리에도 그런 건 나오지 않았던 만큼, 아딘은 그저 추상적으로 자신이 과거 김현수였던 시절 보았던 영상자료에 근거한 설명을 팔키르에게 건네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팔키르는 실제 대포와 유사한 장치를 개발했다.
화약의 경우, 아딘조차 그 재료를 제대로 몰랐던 만큼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로제가 이끄는 정보부 소속 괴짜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광명력 994년 11월 15일.
[꽈앙-!]
아딘은 완성된 대포와 화약의 시험 발사를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아딘이 보는 앞에서 대포는 포탄을 300m 밖까지 날려 보냈고, 포탄은 근방 3m 이내에 있던 것들을 초토화시키며 폭발했다.
‘내가 생각하던 성능은 아니지만, 여기서 조금만 더 개량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포병 시연을 본 아딘은 곧 안톤과 재무대신을 시켜 화포 연구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하게끔 조치했다.
그리고 그는 따로 불카르 아시오게를 불러 병사들 가운데 무기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이들을 따로 차출해 포병으로 분류할 것을 명했다.
“포병?”
불카르 아시오게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 그에게 아딘은 투석기를 다루는 공성에서 포를 다루는 공성으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그것에 필요한 인력 확충의 중요성을 불카르 아시오게에게 설파했다.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불카르 아시오게는 곧 아딘의 말을 이해했고, 이내 군 내에서 따로 포병 병과를 만들어 인력을 차출해 훈련하기 시작했다.
“게마인샤프트는 사실상 카반드 왕조가 장악한 상태입니다. 현재 남은 건 트링겐과 뵌가르트의 콘스탄티노프 가문 뿐입니다.”
“우리 쪽 정보원 말로는 곧 라인하르트 카반드가 트링겐에 대한 총공격을 가할 것 같다고 해요.”
빅토르 다비도프는 아딘에 대해 그리고 정보부를 손에 쥔 로제에 대해 분명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적 반감과는 별개로 그는 로제와 협동하여 해외 동향을 살피는 일에 힘썼고, 또 아딘에게 그것을 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로제와 빅토르 다비도프의 호흡은 의외로 괜찮았고, 그것은 아딘을 만족하게 했다.
“라인하르트 카반드는 확실히 유목민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점령지에서 일으킨 가혹한 학살과, 항복한 귀족에 대한 잔혹한 처사로 인해 전반적인 민심은 그리 좋지가 않아요.”
로제가 들고 온 정보를 들으며 아딘은 고민했다.
그리고 그 고민을, 로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카반드 왕국 왕중왕 라인하르트 샤푸라자데 카반드라 칭하는 이는 과거 두 사람과 함께 렝고스를 여행했던 동료였으니까.
“카반드 왕조가 우리에게 적대적일 가능성은?”
그랬기에 아딘의 물음에 로제는 쉽사리 자신이 수집한 정보에 기반한 판단을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빅토르 다비도프는 자신의 경험과 역사에서 배운 교훈을 토대로 아딘에게 솔직한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새로이 팽창하는 국가는 항상 주변국을 침략하며 자신들의 강함을 과시하고 또 내부를 단속했습니다. 현실적으로 저들이 제니스 공화국을 치지 않는다면 우리를 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빅토르 다비도프의 보고에 결국 로제도 자신의 판단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트링겐을 점령한다면, 분명 그다음은 우리가 될 거예요.”
두 사람의 보고를 듣고서, 아딘은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카반드 왕조를 예의 주시하거라. 그들의 칼날이 혹여나 우리를 향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벨로디나의 위대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렇게 광명력 994년은 분주하게 지나갔다.
분주했던 덕분에 광명력 995년 3월 1일, 정화 제의 1주기 기념 제사가 아딘과 내각 각료 그리고 국가평의회 산하 위원회 위원장들이 참여한 가운데 정식으로 총대주교가 된 알렉세이에 의해 집전될 때쯤, 벨로디나는 괴뢰 통치와 혁명의 아픔을 거의 다 씻어낸 채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 * *
광명력 995년 3월 2일 정오.
내각청사, 총리대신 집무실.
로제는 안톤과 마주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요즘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리더라구요, 총리대신님.”
로제의 말에 안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로제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헌병대장 다리아 아시오게하고 그렇게 밤에 자주 만나신다고?”
로제의 말에 순간 안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다 이내 그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뭐, 비난하려고 한 말은 아니예요. 총리대신님께서 그간 오라…… 아니, 국왕 폐하를 모신다고 가정도 꾸리지 않으셨다고 하지만, 어쨌건 총리대신님도 남자니까요.”
“크흠.”
“다리아 아시오게 헌병대장도 신붓감으로는 굉장히 훌륭하다 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군무대신 불카르 아시오게고, 또 쿠만족 정착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한데다 무엇보다도 총리대신님과 같은 소드 마스터니까요.”
안톤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로제는 이야기했다.
“행복하시겠어요? 결혼식은 언제예요?”
그 물음에 안톤은 헛기침을 하고서 물을 한 모금 넘긴 후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아직…… 결혼까지 이야기할 만큼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정보대신.”
“어머머, 이건 또 몰랐네요. 총리대신님같이 보수적인 분이 또 사랑은 슈드 자치령 사람들처럼 하시다니.”
“커흠.”
“뭐, 나쁘진 않겠죠. 적당히 공적으론 보수적이시면서 또 사적으로는 개방적이신 것도 보기에는 좋아요.”
로제의 말에 안톤은 괜히 볼을 긁적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로제가 살짝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그런데…… 모시는 주군이 여전히 홀몸인데 먼저 짝을 찾으셔서 혼례를 올린다면, 그건 기사도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요?”
그녀의 말에 안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커흠…… 정보대신과 쿠만에서 했던 약속은 내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폐하께서도 그렇고 우리 내각도 그렇고 모두가 바쁜 시기라 미처 말씀은 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적당한 때가 오면 폐하께 내 직접 건의하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사랑도 하시는 분이 주군의 혼사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는 건 그다지 와닿는 핑계가 아닌데 말이에요.”
그러면서 로제는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제가 19세가 되네요. 성인식은 3년 전에 치렀지만, 3년 동안 혼자였단 말이죠.”
“커흠……”
그렇게 안톤이 살짝 당혹스러워할 때, 그를 구해준 것은 급하게 집무실로 뛰어들어온 행정관이었다.
“무슨 일인가?”
안톤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행정관에게 짐짓 근엄한 말투로 물었다.
행정관은 먼저 안톤에게 인사한 후 그 다음에 로제에게 예의를 갖춘 뒤 안톤에게 말했다.
“트, 트, 트링겐에서 밀사가 왔습니다.”
순간 안톤과 로제의 표정이 모두 굳었다.
“트링겐에서?”
안톤의 물음에 행정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꼬, 꼭 총리대신님과 만나 뵈어야한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다고 지금 버티고 있습니다.”
안톤은 굳은 얼굴로 로제를 바라봤다.
로제도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제가 비켜주는 것을 보며 안톤은 행정관에게 말했다.
“정보대신을 별실로 안내하고, 다과를 내어드려라. 그리고 밀사는 정중히 내게로 모시고.”
“네, 알겠습니다.”
로제와 행정관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며 안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생각했다.
‘트링겐에서 밀사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건가?’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