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황금 갑옷 (1)
벨트는 곧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댔다.
“끄아악-!”
“으헉-!”
마치 대낮에 태양이 지상에 강림한 것만 같은 그 광휘에 건달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고 팔로 얼굴을 가렸다.
“살려둬 봤자 사회에 해악만 끼칠 것들이잖아?”
찬란한 금빛 광휘에 둘러싸인 채 아딘은 번들거리는 눈으로 건달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윽고 그의 잔인한 미소마저 금빛 광휘에 휩싸였고, 곧 광휘는 한 차례 번쩍임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빛이 잠잠해지자 건달들은 천천히 팔을 내리며 눈을 떴다.
“뭐, 뭐야?”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어느새 황금빛 찬란한 전신 갑주를 입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들 앞에 서 있는 아딘을.
‘마, 마검사?’
부하들과는 달리 나름 어디서 들은 게 있던 두목은 아딘의 정체를 추론하며 엄청난 당혹감에 휩싸였다.
‘자크리 이 미친 영감탱이가!’
마검사라면 자기들이 설령 100명이 몰려와도 어찌할 수 없는 존재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두목은 서둘러 부하들에게 그 자리에서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을 것을 명령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판단보다 아딘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푹-!]
아딘의 검이 빠르고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며 자기 주변에 서 있던, 가장 먼저 광휘와 대면했기에 아직 시력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이들의 목젖을 정확하게 찔렀다.
“허어어억……!”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건달들은 피가 터져 나오는 목을 부여잡으며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아딘의 시선이 일시적으로 사고의 마비를 겪고 있는 건달들에게로 향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기사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에 건달들은 단체로 몸을 부르르 떨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야만 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아딘은 도약했다.
“흐하하하하-!”
불칸의 갑옷은 단순히 방어력만 높여주는 신물이 아니었다.
착용자의 정신력에 비례해 속도와 힘마저도 강화시키는 물건이었다.
아딘과 건달들 사이의 6m 정도 되는 거리는 불칸의 갑옷으로 무장한 아딘에게 있어서 단 한 차례의 도약만으로 좁힐 수 있는 수준이었다.
“으허어억-!”
허공으로 떠올라 순식간에 자기들 위로 떨어져 내리는 아딘의 모습에 건달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쿠웅-!]
우왕좌왕하는 사이 미처 피하지 못한 건달의 어깨를 아딘은 밟았다.
건달은 그대로 어깨까지가 땅에 박혀버렸고,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뭉개지는 고통을 느끼며 피를 토하고는 죽어버렸다.
그 뒤로는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마치 어린 양의 무리에 뛰어든 사자처럼, 꿀벌 무리에 뛰어든 말벌처럼 아딘은 건달들을 학살했다.
처음 아딘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 건달들이 가지고 있던 당당함은 더 이상 그들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끄아아악-!”
팔과 목이 허공으로 날아오르고, 옆 사람의 피와 내 피가 구분되지 않는 일방적 도축 현장에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생존에 대한 동물적 본능뿐이었다.
“으으으…… 흐으으…… 으으……”
[서걱-!]
바닥에 주저앉아 바들바들 떠는 건달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낸 후 아딘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 12m의 흙길 한가운데 여기저기 잘려나간 건달들의 시체가 피에 잠긴 채 흙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노드플루슈드 방향에서 내려오던 상인들도, 플루슈드에서 올라가던 상인들도 모두 멀찍이 떨어진 채 떨리는 눈으로 아딘을 지켜보고 있었다.
“……”
그리고 아딘은 자신이 만든 살육의 현장을 바라보며 말을 잃었다.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아딘의 눈에 흙길 옆 갈대밭을 통해 플루슈드 방향으로 도망가는 두목의 모습이 보였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전투 현장에서 몸을 빼내고는, 싸움이 일방적 살육으로 끝나자 냅다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딘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이윽고 한 차례 금빛 섬광이 번뜩이더니 불칸의 갑옷은 사라지고 로브를 입은 채 피 묻은 검을 든 아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딘은 터덜터덜 마차로 돌아갔다.
그는 검을 마치 짐칸에 집어 던진 후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몰았다.
마차는 천천히 건달들의 시체가 쌓인 피 웅덩이를 지나 다시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플루슈드 시청.
시장 조르주는 집무실에 앉아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느긋한 점심 햇살을 만끽하며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시장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면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점심 식후 흡연 시간.
[쾅-!]
하지만 오늘만큼은 조르주도 평소 만끽하던 여유를 누리지 못할 운명이지 싶다.
“전도자!”
거칠게 문을 열고서 총독부 수석 마법사 르네가 들어왔다.
벗겨진 후드로 인해 그녀의 얼굴은 환히 드러나 있었다.
“무슨 일인가?”
조르주는 인상을 찌푸리며 르네를 바라봤다.
그녀는 대번에 창가에 서 있는 그의 앞으로 다가와 숨을 헐떡이며 이야기했다.
“그게…… 헉…… 노드플루슈드…… 허억…… 거기로 가는 길목에서…… 허억…… 황금 갑옷이 나타났다고…….”
그녀의 말에 조르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르네는 잠시 숨을 돌리고자 조르주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그녀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황금 갑옷이 나타났다고요! 빨리 가야 해요!”
그녀의 말에 조르주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담뱃대를 입에 물었다.
그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담배 연기만 내뱉는 모습을 보며 르네는 갑갑하다는 듯 인상을 썼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그녀는 거칠게 조르주의 손에서 담뱃대를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조르주의 표정이 순간 썩어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의 손목을 잡고는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조르주를 이끌고 시청 밖으로 나와 미리 대기 시켜 둔 마차 안으로 올라탔다.
잠시 후, 마차는 출발했고 점차 속도를 높여갔다.
“4시간 전에 플루슈드랑 노드플루슈드 사이 길목에서 황금 갑옷이 나타나 건달들을 몰살시켰어요. 목격자만 해도 스무 명이 넘어요.”
르네의 말에 조르주는 신음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제가 말했죠? 장로님께 보고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다고요. 내가 여기 있는, 이 하늘이 내린 우연한 기회에 나섰다면 저 혼자서도 충분히……”
그녀의 말에 조르주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갈고리눈으로 르네를 바라보며 그녀를 질책했다.
“하위 계급이 상위 계급을 향해 보고하고 명령을 기다리는 것, 그게 우리의 규칙이야. 설령 우리가 독단적으로 무언갈 한다고 하더라도 우선 보고는 해야 하는 게 맞고!”
그의 말에 르네는 되려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그를 흘겨봤다.
조르주의 눈썹이 한 차례 더 꿈틀거렸다.
“그리고 자네가 아무리 총독부 수석 마법사라 하더라도 엄연히 조직 내에서의 서열은 전도자인 내가 신도인 자네보다 위야. 그런데 아까 그 행위는 도대체 무슨 막돼먹은 행동이란 말인가!”
조르주의 언성이 높아지자 르네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진정시키며 마부석을 바라봤다.
“미쳤어요! 목소리 낮춰요!”
그녀의 말에 조르주는 콧방귀를 뀌고는 팔짱을 낀 채 창밖으로 시선을 휙 돌렸다.
그런 조르주의 모습에 르네도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반대쪽 창밖으로 돌렸다.
그렇게 두 사람이 침묵하는 가운데 마차는 1시간을 달려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거리가 노드플루슈드보단 플루슈드에 가까웠던 만큼, 먼저 출동한 플루슈드 수비병들이 현장을 지키며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조르주와 르네가 현장으로 가자 수비병들이 경례하며 길을 터 주었다.
그들 사이를 지나쳐 두 사람은 굳어가는 피 웅덩이와 그 위에 누운 절단된 건달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시체의 팔뚝에서 모두 똑같은 장미 문신이 발견됐습니다. 플루슈드와 노드플루슈드를 통틀어 장미 문신을 새긴 건달 조직은 플루슈드의 북문 장미파 하나뿐입니다.”
수비병의 말에 르네가 그에게 입을 다물라며 손짓한 후 조르주에게 눈짓했다.
조르주는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곤 피 웅덩이에 오른쪽 검지와 중지를 살짝 담고 눈을 감았다.
그 순간, 피와 대지가 기억하는 5시간 전의 모습이 생생히 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흑마 2마리가 이끄는 마차의 등장, 건달들의 길 막기와 로브를 뒤집어쓴 자의 변신, 황금 갑옷의 일방적 살육, 다시 로브로 돌아간 황금 갑옷, 유유히 사라지는 마차…….
그 모든 것을 확인한 조르주는 눈을 뜬 후 피 웅덩이에서 손가락을 끄집어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피를 닦아낸 후 수비병들에게 현장을 정리하라 지시하고는 르네와 함께 마차로 돌아갔다.
“뭘 보셨나요?”
르네의 말에 조르주는 가볍게 콧김을 내뿜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눈을 떠 조급증이 얼굴 전체에 퍼져 있는 르네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이야기했다.
“황금 갑옷이 나타난 게 맞아.”
르네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갑옷의 주인이죠?”
르네의 물음에 조르주는 천천히 대답했다.
“갑옷의 주인은 로브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그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어.”
“젠장…… 그럼 다른 증거는요? 목격자들 말로는 갑옷 주인이 마차를 탔다던데?”
조르주는 입술로 자기 혀를 한 차례 핥은 후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가만히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후 이야기했다.
“갈색 말 2마리가 끄는 마차였어.”
“갈색 말이요?”
“그래.”
“목격자들 말로는 흑마라고 하던데?”
조르주가 신경질을 부리며 르네를 바라보고 소리질렀다.
“내가 갈색 말을 봤다면 본 거지! 그렇게 다른 증인들 말이 신뢰가 되면 왜 날 부른 거야!”
갑작스럽게 그가 고함을 치자 르네가 움찔했다.
“괜히 신경질 부리고 있어…….”
‘지랄 맞은 영감탱이가.’
마지막 말은 목구멍 아래에서 삼킨 채 르네는 입술을 삐죽 내밀곤 몸을 옆으로 틀었다.
‘반년만 있으면 난 은퇴야. 유유자적하게 연금 생활자로 살 준비 중인데 이런 귀찮은 일 따위…….’
그렇게 생각하며 조르주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 * *
늦은 아침에 플루슈드에서 출발한 아딘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노드플루슈드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노드플루슈드에서 1박을 하겠다던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그는 1백 골드짜리 금괴를 1골드짜리 금화 100개로 환전한 후 시장에서 서둘러 마른 과일과 육포를 구매한 뒤 노드플루슈드를 벗어났다.
그렇게 한참을 북쪽으로 마차를 몰아간 아딘은 늦은 밤이 돼서야 인적 드문 조그만 연못 근처에 마차를 세웠다.
말이 풀을 뜯고 물을 마시게 한 후 마른 과일과 육포로 대충 저녁을 때운 후 아딘은 마차 짐칸에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도대체 내가 뭘 했던 거지?’
굳은 표정으로 아딘은 하늘에 뜬 별들을 바라보며 오늘 오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나쁜 놈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건 분명 내 생각이 맞았어.’
하지만 그 마땅한 대가라는 것이 죽음이라는 것은 그의 생각이 아니었다.
비록 극악무도한 건달패라 하더라도, 그들을 도륙하며 즐거움을 느낀 것 또한 그의 감정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김현수의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김현수보다는 아딘 콘스탄틴의 생각에 가까웠다.
‘아딘 콘스탄틴과 김현수…… 두 자아가 하나가 돼 가고 있다고?’
문득 아딘은 불안을 느끼며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약 아딘 콘스탄틴과 김현수가 완전히 하나가 되면…… 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폭력을 싫어하던 김현수와는 달리 폭력이 당연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기던 아딘 콘스탄틴.
소설 영웅일대기 1부의 메인 빌런이었던 만큼, 아딘 콘스탄틴의 잔혹성은 김현수가 현실에서 보아왔던 포악한 자들의 자아를 비대하게 만든 수준이었다.
그런 아딘 콘스탄틴과 김현수의 자아가 섞인다는 것은 그가 이 세계에 떨어졌다는 사실 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다.
‘난 도대체 누구지?’
아딘의 얼굴 위로 음울한 슬픔의 음영이 드리워졌다.
내가 쓴 소설 속 망나니 왕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