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69)
대놓고 신랄하게 비판받은 적은 없지만, 원래 나는 허구한 날 하드웨어만 좋은 소프트웨어 병신이라고 까이곤 했다.
신체나 마력의 질, 양에 비해 정작 검술이나 보법은 거기 못 따라왔다는 소리다.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그 당시엔 익히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리는 기술을 익히는 것보단 당장 효과가 드러나는 스펙을 올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것도 옛말이다.
일단 무영보.
처음엔 팔 조금 뻗는 것조차 숨 쉬는 걸 신경 써야 했던 그 보법은, 이제 전투 중에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신체의 시스템 자체가 그쪽으로 최적화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검술을 도외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쪽은 원래부터 라이놀과 카일에게 지도를 받고 있던 데다, 대륙 최강의 재능충인 아이언에게 무영검을 사사 받기도 했으니까. 그걸 검술로 볼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과정을 겪어 온 나의 눈으로 볼 때, 저 녀석이 하고 있는 짓은 수년 전의 나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난 저렇게 생각 없이 앞뒤 안 재고 달려든 적은 없었으니까.
옷을 갈아입기 잘했다고 생각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때, 회장 구석에 처박혀 있던 살바토르도 분노한 얼굴로 몸을 털며 일어났다. 그리고 검을 든 내 모습을 보더니 근처의 성기사에게 다가가 무기를 강탈해 버렸다.
얼핏 봐도 처음 들어 본다는 게 티 날 정도로 폼이 엉성하다.
그냥 여태까지처럼 주먹으로 싸우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이번엔 굳이 충고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무시하듯 말해 왔지만, 힘만 강한 멍청이라는 게 절대 약하다는 뜻은 아니니까.
같은 상황이었던 나도 방심하는 적을 상대로 몇 번씩이나 이겨 오지 않았던가. 최소한 녀석이 2급 중상에 해당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침착하게 자세를 잡는데, 살바토르가 검을 위아래로 휘두르며 씩씩댔다.
“개새끼가…… 너는 절대 편히 죽을 수 없게 만들어 주마.”
“그런 건 일단 나를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나서 해야 할 말 아닐까?”
“……겨우 한 방 먹인 거 가지고 기세등등하기는.”
살바토르는 잠시 인상을 찌푸리더니, 갑작스레 발을 박차 내게 검을 뻗어 왔다.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쉬이이익!
나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검 끝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기습하려는 건 좋은데, 그걸 말하면서 하면 대체 무슨 소용이지?
어처구니없어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 순간.
녀석의 몸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아까 프란시스라는 성기사와 싸울 땐 스치듯이 봐서 확신하지 못했던 숫자들이었다.
아무래도 저게 약화 능력을 거는 코드인가 본데……설마하니 기습은 애초부터 페이크였다는 건가?
솔직히 조금 놀랐다. 저 녀석이 이런 수작까지 부릴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바로 직전 방심하지 말자 해 놓고 은근히 무시하는 마음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반성은 뒤로 미뤄도 늦지 않다. 지금은 전투 도중이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코드에는 신경 끄고 근접해 온 공격에만 집중했다. 검 너머로 살바토르가 비릿한 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와 녀석의 검이 맞부딪히기 직전. 기어코 약화 능력이 내게 적중했다.
“일단 팔 한 짝부터 가져가 주마!”
녀석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외침과 동시에 검이 맞부딪혔다. 힘은 서로서로 비등했다. 마찰에서 생긴 충격파가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쿠웅!
신관들도 놀고 있지만은 않았는지 이미 근처에 보호막을 쳐 둔 상태였다. 덕분에 회장 내부가 크게 손상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곧바로 자세를 다시 잡았다. 하지만 살바토르는 당황한 얼굴로 거리를 벌리고 나를 보며 어버버댔다.
“너, 너…… 설마 1급이었던 거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내가 1급이었으면 넌 지금 그 자리에 서 있지도 못 했어.”
“하, 하지만 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쇠약’ 주문이…….”
저 녀석은 그걸 ‘쇠약’이라고 부르고 있던 건가. 확실히 약화나 쇠약이나 거기서 거기긴 한데…….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능청을 떨었다.
“약화? 그게 무슨 뜻이냐?”
“……약화가 아니다. ‘쇠약’이다.”
“그래. 약화. 그게 무슨 뜻이냐고.”
“약화가 아니라 ‘쇠약’…… 아니, 됐다.”
살바토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네놈은 알 거 없다. ‘쇠약’은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니까.”
“어차피 설명 안 해 줄 거면 처음부터 꺼내질 말든가. 약환지 뭔지 별것도 아닌 거 가지고 잰 척은 엄청 하네.”
“…….”
일부러 비꼬듯 말했지만, 녀석은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본인 능력에 생각 이상으로 의지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게 순식간에 막혀 버리니까 갑자기 생긴 자신감도 함께 사라져 버린 거지.
하지만 나는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재앙’이라고 해도 숙주에게 무슨 초월적인 능력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패러사이트’가 숙주의 욕망에 반응해 능력을 부여해 주는 건 사실이다.
하나, 그 방식은 동시에 숙주의 ‘상식’의 영향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간단히 추론할 수 있는 일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사람은 그냥 날 수 있게 만들어 주면 된다. 날개 같은 기관을 굳이 생기게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패러사이트는 날개를 숙주에게 날개를 만들어 줌으로써 난다는 목표를 이루어 준다. 당사자가 날개 없이는 하늘을 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다를 헤엄치고 싶다는 소망에도 마찬가지.
그냥 물속에서 숨을 쉬게 만들어 주면 될 문제를 패러사이트는 숙주에게 아가미를 생성시켜 이루어 준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사자는 바다에서 호흡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판단했다.
살바토르의 ‘약화’는 나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고.
녀석이 아는 힘이라고 해 봤자 마력, 마나, 신성력 정도가 다일 것이다. 현시대에 쓰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혼원력 같은 걸 알 리가 없었으니까.
본인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힘은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요컨대, 난 녀석의 상식 밖의 존재라는 거다. 극상성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
“그보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내가 아래라는 걸 증명하려는 거 아니었나?”
검을 까딱이며 도발하자, 살바토르가 빠드득. 이를 갈았다.
“……좋아. 어째서 ‘쇠약’이 안 통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필요 없어.”
녀석이 다시 한 번 검을 겨누고 내게 돌진해 왔다.
“어차피 너는 3급에 불과한 쓰레기일 뿐이니까!”
콰아아앙!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보호막을 시전하고 있던 신관 몇몇이 각혈을 토하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다른 신관과 교대하는 걸 확인하고, 침착히 녀석의 공격에 맞서 나갔다.
콰앙! 콰아앙!
“죽어! 죽으라고!”
검이 맞부딪히는 횟수가 점점 늘어갈 때마다 살바토르는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나 같은 건 금방 끝낼 수 있을 거라 여겼을 거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든 거겠지.
녀석이 그럴수록 나는 오히려 더 냉정해졌다.
공격을 막아 내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쉽다. 정말 어린 아이에게 장난감 목검을 들려 준 것처럼 공세가 어설프기 그지없었으니까.
진짜 주먹 들고 막싸움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도 안심하고 있을 타이밍은 아니었다.
점점 검에 실린 힘이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패러사이트’가 살바토르의 감정에 반응해 침식을 더욱 진행시키고 있는 거다.
이럴까 봐 빠르게 끝내려고 했던 건데…….
실력은 없는 게 힘은 또 무식하게 세서 애매하게 강하다. 나도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을 정도로.
잠시 고민해 봤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지금 승부를 보는 게 더 좋을지, 그냥 이대로 안전하게 가는 게 더 좋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어차피 어지간한 상처는 금세 회복시킬 수 있을 만큼 신체 성능이 좋은 데다가, 애초에 여긴 내가 다쳐도 곧바로 치료해 줄 수 있는 신관들이 한가득이었으니까.
마음을 정하고 발을 박차려는데, 녀석이 나보다 먼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허공을 바라보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그르르르륵…….”
아무리 좋게 봐줘도 사람이 낼 만한 음성이 아니다.
……젠장, 나름 빨리 결정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 이상으로 녀석의 감정 동요가 컸었나 보다. 설마 이렇게까지 빨리 이성을 버릴 줄이야.
살짝 긴장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저기 서 있는 건 더 이상 살바토르가 아니었다. 그저 재앙, ‘패러사이트’ 그 자체였지.
녀석은 손에 든 검을 미련 없이 툭 던져 버리더니, 나를 향해 히죽 웃었다.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진, 인간이 지을 수 없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걸 확인하자마자 곧장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아아아아앙!
“큭……!”
순식간에 내 몸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회장을 지키고 있던 보호막은 이미 부서진 뒤다.
저 충격으로 신관 몇 죽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내가 남 걱정할 때는 아니지.
나는 정신을 붙잡고 히죽 웃으며 주먹을 할짝거리고 있는 살바토르…… 아니, 패러사이트를 바라봤다.
아무리 침식이 전부 진행되었다고 해도 이상할 만큼 강하다. 저 정도면 2급 최정상. 1급에 턱걸이 하고 있는 수준은 될 거 같다.
……설마 지금 본체의 수명까지 힘의 재료로 쓰고 있는 건가? 그러면 자기도 죽게 될 거란 걸 모르진 않을 텐데?
이건 예상을 한참 벗어난 일이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내가 녀석을 죽일 방법이 없다는 걸 알 테니 그냥 반항 조금 하다 순순히 다시 봉인 당할 줄 알았는데.
대체 뭐가 저 생에 집착 강한 놈을 도박에 이르도록 만든 거지?
“키키키킥킥킥.”
지금 당장 그런 걸 생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녀석은 어느새 본인에게 달려든 2급 성기사 셋을 순식간에 쓰러뜨리고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저 녀석을 저렇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나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그렇다면 내가 상대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아리나를 데리고 도망간다 쳐도 저 녀석이 나보다 더 훨씬 더 빠를 테니까.
진짜 재수 옴 붙었네.
나는 바닥에 침을 한 번 퉤 뱉은 뒤 녀석에게 검을 겨눴다.
목표가 조금 바뀌었다.
귀찮은 망나니 하나를 상대하는 것에서, 바포메트와 같은 재앙을 상대로 살아남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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