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코드가 보여 (110)
끼이익.
단테가 방을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본 빈센트가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뭔가?”
“발록에 대해서입니다.”
데이크가 자세를 바로 하며 답했다.
“왕국에서는 혹시 이 사태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까?”
“흐음…….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아무리 봐도 여기 투입된 전력이 너무 강하지 않습니까. 오백 명에 달하는 기사들부터, 1급이신 빈센트 경까지. 보통 웨이브라면 꿈도 못 꿀 일입니다.”
그 말에 빈센트가 잠시 침묵했다. 어디까지 말해 줘야 할지 가늠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한동안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발록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네. 알았다면 공중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왔겠지.”
“……그러면 뭐 때문에 이리 많은 전력을 투입한 겁니까?”
“자네는 커닐 동굴에 대해서 아나?”
“커닐 동굴이요?”
데이크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저 이름이 왜 나오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지키게 만든다 해서 유배지라 소문난 곳 아닙니까.”
“그렇지. 문제는 그곳이 유배지가 아니었다는 거네.”
“……유배지가 아니었다고요?”
“그래.”
빈센트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이번에 안 건데, 그곳은 사실 해방 왕 시절 활동하던 재앙 중 하나를 봉인해 놓은 장소였다는군. 왕국에서도 문헌으로만 접한 내용이라 확신이 없던 모양이야. 그러니 괜히 사람들 불안하지 않게 정보를 숨겼던 거지.”
“……그런 건 전혀 몰랐습니다.”
데이크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커닐 동굴은 기사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한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그냥 위쪽에 밉보인 자들을 유배 보내는 곳이란 의견이 대다수였는데…… 설마 저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어쨌든, 일단 사실을 알게 되자 추측하는 건 쉬웠다. 이 타이밍에 저런 얘기를 꺼낸 것도 그렇고, 마침 이곳이 커닐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인 것도 그렇고. 뻔하지 않은가.
“이번에 그 재앙의 봉인이 풀린 겁니까?”
“맞네.”
빈센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때문에 튜튼 기사단 1소대 대장이 사망했지. 생존자의 말에 따르면 상대할 엄두도 못 냈다 하더군.”
“……최소 2급은 된다는 소리군요.”
“왕국에서는 1급으로 예상하고 있네.”
그 말에 데이크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도 그럴 게, 1급이 무슨 동네 개새끼는 아니지 않은가.
인간이나 이종족도 아닌 단순한 괴물이 그런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은 쉽사리 믿기가 힘들었다.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기껏해야 2급 상위 수준이겠지요.”
“글쎄.”
빈센트가 창가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그때 당시 인간들의 평균 실력이 낮았다고는 하나, 미처 해치우지 못하고 수백 년간 봉인해 둔 괴물이야. 조심을 기해서 나쁠 것 없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게다가 갑자기 나타난 저 발록이란 존재. 어떻게 보아도 그 재앙과 연관이 없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네. 그러기엔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지.”
그 얘기에는 데이크도 반박하지 못했다. 아까 그가 했던 생각과 같은 추론에서 나온 결과기 때문이다.
시기와 장소.
수백 년 전 멸종했다고 여겨지던 괴물들이 하필 이런 장소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재앙이 다루는 놈들일까요?”
“그것까진 모르겠군. 하지만 문헌대로라면 발록은 2급까지도 성장하는 마물이야. 일개 괴물이 그럴진대, 재앙이라 불리는 놈이면 1급은 된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데이크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치 수백 년간 묵혀 온 것 같은 얘기들에 머리가 복잡해져 온 것이다.
이후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그가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보다, 만약 그 재앙과 발록이 한 편이라면…… 이번에 단테 경의 공이 정말 크겠군요. 저희를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데리고 온 것도 모자라서, 적의 수와 둥지까지 알아냈으니 말입니다.”
그 노골적인 칭찬에 빈센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보상은 충분히 했다 생각하는데.”
“……티 났습니까?”
“많이.”
데이크는 살짝 민망해져서 멋쩍게 웃었다.
받은 도움이 크기에 슬쩍 도와 보려 한 것인데, 그에게는 답지 않은 짓이었던 모양이다.
“한데, 결국 단테 경에게 건네주신 건 무엇입니까?”
데이크가 아까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물었다.
발록을 죽일 수 있게 해 주는 것만으론 보상이 부족하다 생각했는지 빈센트가 건넨 물건.
새빨간 구슬 형태로 된 것이었는데, 그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보물이었다.
이름이…… 거인의 심장이라던가.
둘은 그 명칭만으로도 그게 무엇인지 통한 모양이지만, 뭔지 모르는 데이크 입장에서는 단테에게 주어진 보상이 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빈센트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는 모를 만도 하지. 영약 중에서는 드물게도 마력이 아니라 신체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물건이거든.”
“……신체를 말입니까?”
그건 영약이라기보다는 독약 같은데. 데이크는 그리 생각했지만, 빈센트는 뒤돌아서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물론 보통 사람이 먹으면 마력패스가 줄어들 뿐이지. 하나, 아이언의 제자라면 분명 써먹을 곳이 있을 걸세.”
* * *
이걸 대체 어디다 써먹지.
품속에서 거인의 심장을 꺼내면서 생각했다.
빈센트가 무슨 심정으로 이걸 줬는지는 알겠다.
아이언은 이 세계 인간 중에 유일하게 마력패스를 통하지 않고 마나의 힘을 사용한다.
아무래도 그렇다 보니 제자인 나도 똑같을 거라 여기고 이걸 준 거겠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아이언의 진짜 제자가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다른 검사들과 같이 정상적으로 마력패스를 이용하지 않나.
물론 ‘초인’ 덕에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크긴 하다. 신체가 강해져도 마력패스가 줄어드는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그건 자신이 직접 단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일 뿐이다. 영약으로 강해지는 경우엔 예외라는 소리다.
“…….”
역시 나만 아는 가공법으로 제련해서 먹는 수밖에 없나. 그 방식을 이용하면 부작용은 없어지고, 효과는 더 좋아지니까…… 별로 손해랄 것도 없겠지. 오히려 이득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지라, 스바를 꺼내 안에 넣어 뒀다. 계속 조용히 있던 녀석이 바깥 공기를 맡자 바로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의 힘을 가졌군요.
아마 빈센트를 말하는 걸 거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뭐, 1급 기사니까.”
―……일개 개인이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저 정도면 데이크 경이 그리 태연했던 이유도 납득이 갑니다.
나는 그냥 별말 없이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토벌대가 결성될 때까지 머물만한 여관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적당한 가게를 한 군데 발견했다. 값은 꽤 나가 보이지만, 시설은 깔끔해 보이는 곳. 바로 방을 계약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다가가 드러누웠다.
그러자 스바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둥지나 발록을 애완동물로 다룬다는 괴물에 대해 들었을 때는 희망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만…… 저 빈센트라는 인간이 있다면 별로 문제는 없겠군요.
웬일로 흥분한 듯한 열렬한 목소리다. 아무래도 빈센트와 만난 충격이 꽤나 컸나 본데.
나는 그 기분을 깨 버리고 싶지 않아서, 기지개를 켜며 들리지 않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글쎄다.”
문제가 없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 * *
토벌대는 결성도 빨랐고, 진행도 빨랐다.
내가 보고를 한 지 단 하루 만에 조직의 구성을 마치더니, 바로 출전 준비까지 끝마쳐 버린 거다.
2급이 두 명, 3급이 서른 명, 4급이 백 명, 5급이 이백 명. 사실상 웨이브를 막으러 온 기사 전력의 거의 대다수라 할 수 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른 결단이었고,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결정이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는 짐작이 갔다.
그만큼 둥지에 관한 일을 중요히 받아들여서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비어 버린 전력을 빈센트 혼자 충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선택일 거다.
홀로 수백 명의 기사를 대체할 수 있다니. 다른 사람이었다면 비웃었겠지만, 그 당사자가 1급 기사인 빈센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는 정말 그럴 능력이 되는 인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난간에 앉아 있는데, 데이크가 살짝 지친 기색으로 다가왔다.
“배에 마력 충전 끝났습니다. 이제 곧 싸워야 하니 많이는 못 했지만요.”
“고맙군.”
“저희가 요청해서 타고 다니는 건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죠.”
녀석이 어깨를 으쓱이더니 내 옆의 난간에 기대 아래를 바라봤다.
“그보다…… 진짜 저런 놈들이 수백씩이나 모여서 둥지를 틀고 있을 줄은 몰랐군요. 아니, 못 믿은 건 아닙니다만.”
“어떻게 느끼든 별로 상관없다. 그보다, ‘하이브’에 갈 때도 이 인원으로 가는 건가?”
‘하이브’는 둥지 중 가장 큰 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내가 지은 건 아니고, 누가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걸 다른 사람들도 따라 하다 보니 굳혀졌다 들었다.
“예. 아무리 하이브가 크다고는 하나, 토벌대에 2급 기사만 두 분이니까요. 빈센트 경까지 나설 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가.”
조금 불안하긴 하다. 2급 발록이 몇 마리나 되는지 확실히 못 봤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세 마리는 안 넘겠지 싶기는 한데…….
일단 다른 둥지들부터 파괴하고 도착해서 확인해 봐야겠다. 혹시라도 세 마리 이상이면 대충 핑계 대고 철수시키면 되겠지 뭐.
그러고 있자니, 스바가 둥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2급 중 한 명이 다가오는 발록을 보지도 않고 베어 버리며 앞으로 나섰다.
“5급은 전원 둥지 주변을 포위해 단 한 마리도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해라. 나머지는 전부 나를 따라 안으로 진입한다.”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들이 명령대로 진형을 갖췄다. 놀라우리만치 신속한 움직임이다.
2급은 5급들이 주변을 둘러싼 걸 확인한 후, 바로 일행들을 이끌고 둥지로 진입했다.
내부는 울퉁불퉁한 벽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형태였다. 아마 말벌집을 천 배쯤 키우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그아아악!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사방에 뚫린 구멍에서 발록들이 기습해 왔다. 기사들이 재빨리 검을 들어 대항했다.
만약 놈들과 실력이 비슷한 5급들이 진입했다면 피해가 꽤 났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여기 있는 기사들은 최소가 4급이란 거다. 놈들은 나타난 기세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전멸해 버렸다.
그중에 3급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는지, 기사들이 녀석을 제압한 채 내 앞에 데리고 왔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직접 베시지요.”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녀석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날로 먹은 업적! / 「다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기!」]
[당신은 인생을 거저먹기 위해 정말 혈안이 되어 있군요!]
[당신에게 포인트 100점이 부여됩니다.]
“…….”
만약 메시지 창을 작성하는 인격체가 있다면, 반드시 죽여 버리리라 다짐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