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9화
제269장 동맹 同盟
“…….”
산동악가의 정문.
너무나도 많은 인파로 인해 정문 앞으로 직접 나온 나는 나의 맞은편.
현재 무림을 대표하는 것과 다름없는 무인들, 무림맹의 장로들과, 사파 사황성의 무력대주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하! 천마의 위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중에서 나와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으며, 대화 방식이 비슷해 농을 자주 주고받았던 백호대주 白虎隊主 이백이 미소와 함께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그런 이백의 인사에.
“축하드립니다!”
이백의 뒤, 사황성의 대표 무력대주들과 대원들이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아…… 예, 뭐. 고맙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에.
“젊은 나이에 천마의 위에 오르다니…… 허허, 이거 참. 교주를 보며 새삼 느낍니다, 저희가 새로운 물길에 밀려 나가는 끝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맑은 인상을 지닌 노인, 무당파의 청수 진인이 앞으로 나서며 나에게 친근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좀 특별한 거고, 아직은 밀려 나가지는 않을 겁니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청수 진인의 인사에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 조금 친하긴 했지만,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 청수 진인의 모습에 나는 어색한 표정으로 진실을 말했고.
“하하! 교주는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농도 뛰어나십니다!”
그런 나의 대답에 한때는 눈에 실핏줄이 터질도록 나를 미워하고 본교를 원망했던 무림맹의 칠장로, 곤륜파의 운월이 허허롭게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그에 나는 눈가를 찌푸렸다.
이 양반도 왜 친한 척인지 모르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교주처럼 농을 잘할 수 있도록 좀 배워야겠습니다.”
운월을 지나 팔장로, 화산파의 적화까지.
마치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부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나는 어색함을 느꼈고,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대놓고 서로를 노려보며 경계하고 있는 사황성과 무림맹의 무인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어쩐 일로 이렇게 많은 무인들을 데리고 온 겁니까? 모두 각자의 집을 지키기도 바쁠 텐데.”
“형님.”
“어, 그래.”
나의 물음에 가만히 뒤로 물러나 있던 차가운 인상의 미청년.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남궁정이 앞으로 나섰다.
그에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남궁세가의 무인들과 안휘성의 백성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젊은 나이에, 천하제일가라는 남궁세가의 가주 위에 오른 기특한 녀석.
이제는 까마득한 선배인 무림맹의 장로들 앞에서도 천마신교의 교주인 나를 향해 당당하게 형님이라 칭하는 녀석.
‘기특한 녀석.’
세가를 돌보느라 바빴을 것이 분명함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지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녀석의 훌륭한 기세에 나는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을까?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던 남궁정이 나와 눈을 마주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주변 시선을 의식했는지, 곧 미소를 지우고는 입을 열었다.
“십만의 황군이 이곳, 산동으로 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 사실이다.”
남궁정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런 나의 긍정에 뒤에 있던 무림맹과 사황성의 무인들이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입에서 나온 확언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아무튼, 그런 나의 대답에 남궁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궁에서는 무림을 멸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무림맹과 사황성의 공통적인 결론입니다. 천마신교에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야 뭐.
“진작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
황궁의 주인, 황제가 직접 나에게 무림을 멸할 거라 이야기했었고, 그런 황제를 기껏 설득했더니 밑에 있는 놈들이 반란을 일으키더니 곧 적이었던 북원을 끌어들여 무림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거 뭐,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 나의 말에 남궁정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는 곧.
“황제의 뜻입니까?”
낮은 어조로 물었다.
그 어조 속에 담긴 긴장감.
아무래도 이 녀석도 왕일처럼 주윤문이 명 제국의 황제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 나는 안심하라는 듯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인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황제의 명이 아닌 그 밑에 있는 것들의 생각이다.”
“그렇군요.”
나의 대답에 남궁정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주윤문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나 보다.
그렇게 안도하기를 잠시, 남궁정이 다시 고개를 들어 나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정식으로 인사하겠습니다. 무림맹의 부맹주에 오른 남궁정입니다. 그리고 청합니다. 천마신교의 교주시여. 무림의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본 맹과 동맹을 맺지 않겠습니까?”
몰랐다.
남궁정의 입에서 나온 부맹주라는 말.
그 직책에 올랐다는 녀석의 말에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곧 고개를 들어 남궁정의 뒤에 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끄덕.
남궁정이 부맹주에 올랐다는 것을 증명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다섯 명의 무림맹 장로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남궁정과 나의 모습에.
“사황성의 부성주 이백! 천마신교의 교주에게 정식으로 동맹을 요청합니다!”
부성주였던 사권의 세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부성주 위에 오른 이백이 남궁정과 장로들을 경계하듯 큰 목소리로 나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에 나는 진한 미소를 지었고, 곧.
각 세력의 대표인 그들에게 정중히 포권을 취하였다.
“무림의 평화 수호와 발전을 위해, 본교는 무림맹과 사황성의 동맹 요청을 수락하겠습니다.”
* * *
“허허, 노부도 이곳에 참가하게 해 주어 고맙습니다.”
산동악가의 회의실.
악천후의 배려로 남궁정과 이백, 그리고 서은설과 청수 진인만이 참가한 이곳에서 청수 진인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제 약혼녀인 은설은 사황성의 소성주입니다. 무림맹의 장로 중 가장 선배인 청수 진인께서도 당연히 함께하셔야지요.”
이곳을 찾은 다섯 명의 무림맹 장로 중 가장 연배가 높은 청수 진인.
그런 진인을 존중하듯 내가 말하자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에 나도 마주 미소를 지어 주었고, 곧 다시 입을 열었다.
“헌데, 어찌 일장로는 함께 오지 않았습니까?”
무림맹을 이루고 있는 여덟 명의 장로 중 가장 연배가 높은 일장로 혜각.
숭산에서 나와 일수를 겨루었던 소림 방장의 사제이자 무림맹의 일장로인 그는 부맹주라는 직책이 없었던 이전까지 무림맹의 실질적인 이인자와도 같았다.
어떻게 보면 무림을 수호하기 위한 첫 번째이자 마지막 방어벽이라고도 볼 수 있는 이곳에 그가 함께 오지 않았다는 것이 의문이었고, 그런 나의 물음에 청수 진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청수 진인을 대신하여 가만히 있던 남궁정이 입을 열었다.
“소림이 아직 습격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
“그리고, 소림이 위치한 숭산, 하남은 일반 민초들이 많이 사는 곳이며 동시에 교통의 요충지입니다. 그렇다보니 맹에서는 소림에게 하남의 성문을 지켜, 혹시나 있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렇군.”
산동인 이곳을 지나면 하남이 나온다. 그리고 하남에서 섬서, 호북, 사천, 안휘로 나누어지는 길이 존재한다.
산동이 뚫리고, 하남까지 뚫린다면 무림은 말 그대로 멸망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최후의 보루로 소림을 남겨 둔 것이었다.
남궁정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나 혼자 이곳을 막을 수는 있다.
심지어 주윤문이 정신을 차린 이 상황에서. 황군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윤문이 직접 나선다면 정리가 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동맹을 맺고 전력을 투자하기로 했으면 응당 소림도 이곳으로 와야 했다.
그것이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지들이 그러겠다는 것을 말이다.
그에 살짝 미소를 지은 것도 잠시.
“그래서, 황군은 어디쯤인지 혹 알고 계십니까?”
결연한 표정을 지은 이백.
그가 나를 향해 물었다.
그에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 익일 오전 중으로 도착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군요!”
“!!”
가벼운 나의 대답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소리친 이백과, 남궁정, 그리고 청수 진인.
그런 세 명을 보며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황군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예?”
웃음기 어린 나의 말.
그 말에 세 명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진한 미소를 지은 나는 고개를 들어 회의실 정문을 바라보았다.
벌컥!
그런 나의 시선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실 문이 열렸다.
갑작스럽게 열린 방문과, 그곳을 통해 들어오는 의문의 사내.
“적룡성 赤龍星……?”
당당한 걸음새와, 시원한 이목구비를 지닌 사내.
주윤문을 알아본 청수 진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는 그런 진인을 무시하고는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명 제국의 태양,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
* * *
“정말로, 천마라는 자가 황제 폐하를 납치하였단 말이오?”
산동성의 최북부.
하북성을 지나 산동성에 접어든 십만 황군의 최선두.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몰던 용호장군, 마속의 물음에 옆에서 함께 말을 몰던 황자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감히 신강에 자치권을 준 황상의 은혜도 모르고 황상을 납치하고, 또 반역을 일으키려 하고 있소.”
“황제 폐하께서는 아주 강하시오. 나는 도저히 황 노사의 말이 믿기지가 않습니다.”
진정으로 분노하듯, 황자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자, 나란히 말을 몰던 또 다른 장군, 금오장군 합천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에 황자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스스로를 신이라 칭하고 다니는 사내요. 백성들의 고통을 쥐어짜 만든 사악한 술법으로 황상을 현혹한 것이오.”
“허어…….”
황자징의 설명.
그 설명에 용호장군과 금오장군은 탄식을 내뱉었다.
솔직하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주군인 황제는 그 누구보다 강했고, 또 현명했다.
헌데 그런 황제가 사교 邪敎의 무리들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수많은 유림들의 존경을 받는 황자징이 한 말이 아니었다면 말도 안 된다며 무시했을 정도로 어이가 없는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내는 황제가 신임하는 황자징이었고, 실제로 황제 폐하는 얼마 전부터 실종이 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황제의 부재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 순간에 황자징이 그렇게 말하니 황궁의 사정을 잘 모르고, 매일을 전장에서 보내고 있는 마속과 합천의 입장에서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반역도가 아닌 이상, 이런 거짓으로 인해 황자징이 이득을 보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에 계속해서 치고 올라오는 의문을 애써 누른 마속과 합천은 계속해서 말을 몰았다.
씨익.
그렇게 마속과 합천의 의문을 어느 정도 해소시킨 황자징은 고개를 숙여, 아무도 모르게 진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