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7화
제247장 새로운 세상 新世界
“앉아.”
나는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예상치 못한 손님.
나의 약혼녀인 서은설을 맞이하며 맞은편 빈자리를 권하였다.
그런 나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인 서은설이 자리에 앉았고, 나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빈 의자에 앉았다.
그렇게 그녀와 마주 앉게 된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찾아온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그런 나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탁자를 내려다보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그에 어색함을 느낀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극신.”
이른 아침부터 나를 찾아온 그녀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며 내가 물었고, 그런 나의 물음에 그녀는 나를 부름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그녀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탁자에서 시선을 떼고 올려진,
나의 두 눈과 마주한 그녀의 푸른 두 눈.
언제 보아도 이 푸른 두 눈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또, 바라보는 것만으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던 번뇌 煩惱가 한 번에 씻겨 내려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묘한 매력의 두 눈을 응시하며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나는 공주가 미워.”
“그래.”
서은설의 아름다운 입에서 나온 고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서은설이 아스나를 미워하는 마음.
그 마음은 당연했다.
아스나, 그녀는 서은설이 가져야 할 모든 것을 독차지한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주가 안타까워. 그녀는 아무 죄가 없는데 나를 향해 죄스러워하니까.”
연회의 마지막.
서은설을 보던 아스나의 미안한 눈빛을 떠올린 나는 서은설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아스나 사파비.
그녀는 심성이 너무나도 고운 여인이었기에 서은설은 그녀를 마음껏 미워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서은설은 현명한 여인이었기에 그녀가 잘못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슴이 하는 마음은 다른 법.
서은설의 말에 나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은설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분명 내가 걱정되어서 나에게 말하지 않았던 거지? 스승님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고.”
“응, 맞아.”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어.”
“반성하고 있어, 너를 너무 내가 지켜야 할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사과할게, 미안해.”
서은설의 말에 나는 진심 어린 어조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천마의 답지 않았던 조언.
그 조언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내가 어떤 것을 잘못했는지 언급하며 사과를 용서를 구하였고, 그런 나의 사과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내 굳어 있던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앞으로는 나에게 다 말하고, 나와 함께 고민을 할 거지?”
“응, 그렇게 할게.”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를 아프게 하는 것은 한 번으로 족하니 말이다.
서은설의 물음에 나는 확신 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에 서은설이 진한 미소를 지었고, 곧.
나를 바라보며 양팔을 벌렸다.
그런 서은설의 행동에 나는 순간 의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서은설이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뭐 해? 어서 안아 주지 않고.”
“아…….”
장난기 어린 서은설의 말.
그 말에 나는 멍청한 표정을 지우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꽈악!
“꺅!”
아주 강하게 그녀를 안아 주었다.
* * *
“공주님.”
천마신교에서 마련해 준 아스나의 처소.
깊은 생각에 빠져 가만히 앉아 있는 아스나의 모습에 키예프가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런 키예프의 부름에 깊은 생각에서 벗어난 아스나가 고개를 들었다.
“저 괜찮아요.”
그러고는 늘, 그렇듯 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키예프를 안심시켰다.
그런 아스나의 모습에 키예프는 가슴이 더욱더 아려 오는 것을 느꼈다.
생각지 못한 존재의 등장에 누구보다 복잡하고, 슬픈 당사자이면서도 자신을 생각해 주는 아스나의 고운 마음씨.
그 마음씨가 너무나도 좋았고, 또 안타까웠다.
“할아버지.”
“말씀하세요.”
아스나의 부름에 키예프가 대답했다.
그에 아스나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제가 악마의 자식인 쌍둥이라면 어떨 거 같아요?”
“공주님은 그저, 아스나 공주님이십니다.”
“만약 서 소저가 제 쌍둥…….”
“아닐 것입니다.”
아스나의 말에 키예프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파사국의 황제, 레토와 황후 율리아나, 그리고 공주인 아스나까지.
진심으로 그들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는 기사, 키예프는 절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아니어야 했다.
그래야 황제의 위치와 아스나 공주의 정통성이 흔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확고한 키예프의 대답에 아스나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제, 앤서 할아버지와 마의각에 갔을 때, 한 어린 청년을 만났어요. 마의 어르신의 손자라던 그분은 저에게 서 소저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괴물 취급을 받아 왔다고 알려 주었어요.”
“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 왔을까요?”
“공주님.”
“너무…… 불쌍하고…… 서 소저에게 미안해요.”
“공주님!”
슬픔 어린 어조로 자신을 자책하는 아스나.
그런 아스나의 모습에 키예프가 차크라를 살짝 끌어 올려 아스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그러고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스나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주님이 서 소저의 상처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녀의 부모님이 제 부모…… 아니, 파사국의 백성일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은 명 제국의 백성이며, 천마신교의 대부인이 될 여인입니다.”
“…….”
아스나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키예프는 끝까지 단호한 어조를 고수하며 말했다.
그에 아스나는 입을 다물었고, 키예프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공주님, 그만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제 이곳에 온 지 하루 되었어요. 헌데 벌써 돌아가자니요?”
전날 오전에 도착하여 다음 날 오전인 지금.
딱 하루가 지난 지금 돌아가자는 키예프의 말에 아스나가 대답했다.
그에 키예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이곳은 본국에 대한 예의를 저버린 곳입니다. 돌아가서 황제 폐하에게 보고하고, 이들과 연을 끊으시지요.”
“하지만 이곳은.”
“공주님.”
키예프가 아스나의 말을 다시 끊었다.
그러고는 단호한 눈빛으로 아스나를 바라보았다.
“이곳은 본국에 대한 예의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안하무인의 곳입니다. 아무리 본국이 이들 덕에 많은 이득을 본다 하더라도 이들 또한 마찬가지일 터.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례하게 구는데 본국이 굳이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통해서만 동방과 교역을 할 수 있어요.”
“당분간 교역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요.”
아스나의 말에 키예프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 아스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고, 곧.
“키예프 전 공작님.”
평소의 가벼운 미소와 어조와 달리, 쫙 깔린, 공주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로 키예프를 불렀다.
그런 아스나의 부름에.
“예, 공주님.”
키예프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하였다.
“세상은 변하였습니다. 차크라를 익히지 못한 일반 병사들이더라도 제가 사용하는 총을 연습한다면 기사를 죽일 수 있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작은 물건. 그것이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세상입니다.”
키예프의 반론을 묵살시킨 아스나.
그녀가 다시 무서운 눈으로 키예프를 바라보았다.
“선택받은 자만이 익힐 수 있는 차크라. 그로 인해 생겨난 계급.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
“누구라도 노력만 할 수 있다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 저는 그 세상을 만들 것이고 그 세상의 첫 번째는 바로 동방, 명 제국과의 교역입니다.”
“알겠습니다…….”
총이라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인 재료, 화약.
그것에 대한 최고의 기술력을 지닌 명 제국의 자원과 기술이 필요한 아스나의 단호한 말에 키예프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아스나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죄송해요, 할아버지.”
“아닙니다,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은 아스나.
그녀의 사과에 자리에서 일어난 키예프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스나가 꿈꾸고 있는 새로운 세상.
옛 사람인 자신이 그녀의 꿈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에 키예프는 진심으로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아닙니다, 충언 감사드립니다.”
그런 키예프의 사과에 아스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자 고개를 숙이며 정중한 어조로 대답했다.
키예프는 파사국 최고의 기사이자, 어른이었으니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다.
더더욱 키예프는 자신을 위해서 충언을 한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공주님, 시녀 유화입니다.”
그렇게 대화가 일단락이 되었던 그때 기다렸다는 듯이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운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서린 차가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거부감을 느끼겠지만 아스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와, 그녀의 이름.
어제 만났던 시녀, 유화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녀가 반가웠던 것이다.
그에 아스나는 환한 미소를 지은 채 입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벌컥.
아스나의 허락과 동시에 열린 문.
그 문 사이로 유화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들어왔다.
“공주님을 뵙습니다.”
그러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추었다.
그에 아스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키예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인 아스나에게 저렇게 예를 갖추는 것이 당연했으니 말이다.
워낙 제멋대로인 신교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유화의 모습에 키예프는 호감까지 생겼다.
‘시간이 되면 대련 한번 해 봐야겠군.’
지도 대련 쪽으로 말이다.
절대자와 같은 경지에 오른 키예프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유화는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키예프의 행동을 무시하고 아스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부인께서 찾으십니다. 혹 시간 괜찮으신지요?”
“저를요?”
“네, 공주님과 함께 오찬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유화의 말에 아스나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와 자신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던 천소화.
그녀와의 시간이 즐거웠던 아스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요!”
“감사합니다.”
그에 유화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공주님.”
“네?”
천소화에게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돌아섰던 아스나.
그녀가 유화의 부름에 다시 몸을 돌렸고.
“대부인께서 공주님에게 선물을 준비하였습니다.”
유화는 함께 온 시녀의 손을 통해 조금은 큰 함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그에 아스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함을 열었고.
“대부인께서 직접 고르신 비단으로 제작한 옷입니다.”
그 함 속에는 새하얀 바탕에 검은색으로 구름과 범을 장식한 아름다운 옷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