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제219장 은인, 불청객 恩人,不請客
“말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늘한 위극신의 눈빛과 무기를 뽑아 든 세 명을 보며 남궁연화가 흔들리는 어조로 서은설에게 말했다.
“아니, 우리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런 남궁연화의 물음에 서은설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에 남궁연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미파의 제자들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위극신과 일행들이었다.
누가 보아도 위극신 쪽에서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핍박하는 상황. 당장 나서서 말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지켜보고만 있다니.
무림인으로서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남궁연화가 계속 의문 어린 표정으로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남궁연화의 눈빛에 다시 고개를 돌린 서은설.
그녀가 남궁연화의 두 눈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아미파에서 천마신교의 이름을 방패처럼 사용했어.”
“나쁜 뜻은 아니었잖아요.”
“충분히 나쁜 뜻이야.
“네?”
고작 이름 한번 언급한 거 가지고 나쁜 뜻이라니?
서은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남궁연화가 다시 의문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되물음에 서은설은 다시 입을 열었다.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천마신교의 이름을 언급하며, 왜 우리한테만 그러냐고 물고 늘어졌어. 가만히 있던, 아니 해검할 의향을 가지고 무당파를 존중하려 했던 천마신교의 일행들은 순식간에 아미파와 같은 무당파의 불청객이 되어버린 거야. 아미파의 언급 한 번으로 말이야.”
“…….”
“게다가 가만히 있는 천마신교의 이름을 마음대로 언급했어. 그 의도에는 아미파 스스로의 이득을 취하려는 저의가 있었고. 이건 명백히 아미파의 잘못이야. 천마신교의 입장, 그곳의 소교주인 극신이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화가 날만한 상황이야. 여기서 우리가 나서는 것도 웃기지. 우리는 천마신교의 사람이 아니잖아.”
“저는 아미파와 같은 무림 맹 소속인데…….”
“그럼 동생이 나서서 말려봐.”
남궁연화의 작은 대답에 서은설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에 남궁연화가 찔끔했다.
웃으며 말하는 서은설의 말속.
그 속에 어려 있는 짜증을 느낀 것이다.
“부대주님. 죄송합니다. 연화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런 서은설의 어조에 옆에 있던 왕일이 황급히 나서며 용서를 구했다.
그에 서은설은 왕일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위극신을 바라보았다.
“연화. 철없는 생각 좀 그만해.”
“내가 철이 없는 거야?”
“이기적이었잖아. 아미파를 편들어주기 위해 천마신교의 입장은 이해하지 않았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제갈세가나 황보세가에서 남궁세가를 마음대로 언급하며 이득을 취하려 했어. 남궁가의 일원으로서 기분 안 나쁘겠어?”
“아…….”
“우리 수호대는 천마신교와 무림맹, 그리고 사황성 소속 무인들이 섞인 곳이야. 조금의 배려도 없는 그 말투와 생각은 고치는 게 좋아.”
“알겠어…….”
낮은 어조로 조심스럽게 경고하는 왕일의 모습에 남궁연화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남궁연화.
왕일의 설명대로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위극신의 입장이 이해가 갔던 것이다.
“그래도 은설 누님은 좋으신 분이니 다음부터 조심하면 될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부끄러움에 침울해하는 남궁연화의 뒤로.
마독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남궁연화를 위로했다.
그에 고마움을 느낀 왕일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마독을 바라보았다.
“네가 어떻게 알아?”
“누님을 열렬히 사모하는 동생으로서 잘 알지.”
“사모?”
“존경이라고 하자.”
장난스럽게 꼬투리를 잡는 왕일의 말에 마독이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혹시라도 소교주인 위극신이 들으면 큰일 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움찔.
‘아…….’
마독은 자신을 노려보는 위극신과 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 * *
저 자식이, 이제는 아주 대놓고 사모한다고 하네.
남궁연화를 위로하는 척하며 서은설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는 마독을 한번 노려 본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서은설을 바라보았다.
싱긋.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지어 주는 서은설.
그런 서은설을 보며 나 또한 미소를 지었다.
‘설마 은설이 화를 낼 줄은 몰랐네.’
전생에서도 그녀는 늘 나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신해서 화를 내주지는 않았다.
그저 존중하고 조용히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나의 입장을 생각하고 화까지 내는 새로운 모습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고, 이내 서은설과 두 눈을 마주하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그런 서은설의 행동이 고마웠으니 말이다.
“은공…….”
서은설을 보며 감사하던 것도 잠시.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난처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설마, 말리려고?”
나를 바라보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태진.
그런 녀석을 보며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그에.
“설마요.”
태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절대 나서지도, 말리지도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대답. 그 대답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거 참.
역시 보통이 아니다.
같은 구대문파인 아미파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도 말리지 않겠다니. 저놈, 어쩌면 도사가 아닐지도 몰랐다.
“태진 도장!”
그런 태진의 대답에 놀란 것도 잠시.
나는 다른 한 편에서 들려오는 높은 목소리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정녕 무당파는 본 파를 무시하는 것입니까! 같은 무림맹 소속인 우리를 이렇게 저버리다니! 무당파에서는 본 파와 더 이상의 동맹 관계가 아니란 말입니까?”
태진을 보며 진심으로 분노한 듯 붉어진 두 눈으로 소리치는 아연 사태.
그런 아연 사태의 두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 태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 분들은 본 파에 예를 차려주는 손님입니다, 게다가 본 파의 잃어버린 도맥을 이어준 은인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미파는 본 파에 예를 지키기는커녕 본 파의 은인에게 무례까지 저지른 불청객이지요.”
“뭐요? 불청객!”
‘말 잘하네.’
정확하게 핵심만 콕콕 짚으며 말하는 태진을 보며 아연 사태는 호통을,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자식, 말을 오목조목 잘하는 것이 도사가 맞았다.
“아미파에서는 어서 신교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행히 소교주님께서는 아량이 넓으신 분이니 용서해 주실 겁니다.”
아연 사태의 높은 언성에도 전혀 기죽지 않은 태진. 그가 낮은 어조로 아연 사태에게 말했다.
무례를 저지른 본교에 사과하라고 말이다.
‘새끼, 웃긴 놈이네.’
아닌 척하면서 본교에게 용서를 구하라고 조언을 건넨 태진.
같은 구대문파인 아미파가 빠져나갈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는 녀석을 보며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태진, 선 넘으려고?”
“죄송합니다, 은공.”
웃음기 어린 나의 말.
그 말 속에 담긴 살기를 읽었을까?
태진이 즉각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했다.
“무당파는 물러나.”
“알겠습니다. 모두 물러난다!”
“네!”
나의 경고에 태진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제자들에게 말했다.
‘제자들에게 제법 인정을 받나 보군.’
자신보다 어린 사숙의 명.
정파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명에도 불구하고 허자 배 제자들은 아무런 군말 없이 태진의 말을 따랐다.
그렇게 하자 배제자들과 태진이 뒤로 물러났고, 나는 태진 대신 나와 대치하게 된 아연 사태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전면전? 아님 대장전?”
정확히 열세 명인 아미파의 제자들.
단 네 명인 우리보다 많은 숫자지만 질적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였기에 아량이 넓은 나는 아미파에게 기회를 주었다.
가장 강한 존재끼리 붙을지, 아니면 모두가 개싸움처럼 붙을지 말이다.
그런 나의 물음에 아연 사태가 눈가를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나를 향해 용서를 구했다.
“무엇이?”
그런 아연 사태의 사과에 나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무엇이 죄송할까?
우리 이름 판 것?
아니면 우리를 무시한 것?
무엇 일까나…….
“본 파의 입장 때문에 감히 귀교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였고, 이용하려 했습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오, 제법 상세하다.
아연 사태의 입에서 나온 진심 어린 사과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진심이 담긴 사과와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제법 괜찮았다.
하지만.
“아까 말했지? 나 두 번은 용서 안 한다.”
이미 그들에게 기회는 없었다.
어린 제자가 말실수, 그리고 가장 나이 많은 어른이 말실수.
총 두 번의 실수였고, 나는 두 번의 실수를 용서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는 않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소교주님의 노여움이 풀어집니까?”
나의 대답에 아연 사태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이내 고개를 살짝 돌렸다.
“이봐.”
움찔!
나의 부름에 가만히 눈치를 살피고 있던 어린 제자, 스스로를 현화라고 소개했던 여인이 움찔했다.
“나와.”
“소교주님!”
그녀를 향해 나오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이자 아연 사태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는 다급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저 아이는, 그저 어린 제자입니다. 저와 이야기하시지요.”
아씨, 누가 잡아먹나.
다급한 어조로 나를 향해 말하는 아연 사태를 보며 나는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진짜, 내가 무슨 사람을 잡아먹는 악마도 아니고,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이야?
짜증 나게 말이다.
“야, 나오라고.”
사람을 이상하게 취급하는 아연 사태의 행동에 나는 짜증 어린 어조를 숨기지 않고 다시 말했고, 현화라 불린 어린 제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얼굴로 나섰다.
그러고는 아연 사태의 옆에 섰다.
“태진, 이 소녀에게 검을 줘.”
“은공……?”
“어서.”
나의 말에 의문 어린 표정을 짓는 태진.
그런 녀석을 향해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에 태진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싸늘한 눈으로 태진을 바라보았다.
“검, 줘.”
살기가 살짝 당긴 강압적인 나의 말. 그 말에 태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망설였다.
저 자식, 꼴에 도사라고 어린아이를 핍박하는 나의 모습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 * *
자신의 은공이자 천마신교의 인물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형님으로 모시고 싶은 존재, 위극신.
그가 어린 여제자를 핍박하려 하는 듯한 행동을 하자 믿기지 않는 감정과 또 실망스러운 감정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 말고 주십시오.-
그렇게 혼란스러워하던 것도 잠시.
태진은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전음에 고개를 들었다.
끄덕.
그러자 보였다.
위극신의 옆, 깔끔한 인상을 지닌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것이 말이다.
-소교주님은 절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믿으세요.-
-누구십니까?-
상대를 전혀 알지 못했던 태진.
그는 굳은 얼굴로 사내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그에.
-사마천입니다. 제 이름을 걸 테니 소교주님의 의견에 동조해주십시오.-
사마천이 확신 어린 어조로 대답했다.
사마천.
그의 이름은 태진 또한 알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군사, 마뇌의 친동생이며 소교주인 위극신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가지고 있는 무게는 제법 무거웠기에 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허참.”
“사숙!”
태진이 고개를 돌려 허참을 불렀고, 이름이 불린 허참은 화들짝 놀라며 놀란 어조로 태진을 말렸다.
하지만.
“나를 믿고, 아미파의 제자에게 검을 돌려주도록 하거라.”
태진은 단호했다.
단호한 태진의 말에 허참은 울상을 지었다.
“사숙…….”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다. 그러니 나를 한 번만 믿어 주어라.”
“…….”
사숙인 그에게 감히 항명할 수 없었던 허참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태진의 말에 두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스윽.
다른 제자가 들고 있던 검 중 한 개를 집어 들었고, 이내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연 사태의 옆.
부르르…….
불쌍한 모습으로 전신을 떨고 있는 여인에게 던져주었다.
챙그랑!
“아…….”
떨리는 전신으로 인해 허참이 던진 검을 받지 못한 현화.
그녀는 자신의 발끝에 떨어진 애검을 내려다보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고.
“들어.”
그런 현화의 귀로 싸늘한 위극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화에게 있어서 사신과도 같은 무서운 목소리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