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개장 천마신교가 이상하다
“마교다!”
“으아악!”
평화로운 사천성 성도.
갑자기 들이닥친 수많은 마인들의 모습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소리쳤다.
마교 魔敎, 정식 명칭은 천마신교 天魔神敎.
어린아이들의 고기를 즐기며, 순수한 처녀들의 피를 술 마시듯 마시는 악마들.
사악한 본성, 마에 사로잡혀 그저 본능만 탐하는 무자비한 악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천마신교다.
그런 천마신교가 갑작스럽게 평화로운 사천성의 성도에 나타나자 수많은 사람들이 도망을 치려 했지만 이내 체념했다.
자신들은 무공을 익히지 못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어찌 마인들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저 무림맹의 무사들이 서둘러 이곳으로 와 자신들을 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헌데…….
“귀찮은 녀석! 비켜라!”
거친 말투와 달리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아이들을 밀쳐 낸 거대한 덩치의 마인들.
“제길! 노친네가 눈이 삐었어?”
노인을 향해 매서운 눈을 치켜뜨며 소리치는 모습과 달리 노인의 손을 잡고 부축해 주며 옆으로 안내해 주는 마인.
“이봐!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이가 울잖아!”
“아…….”
“어서 달래 줘!”
갑작스러운 마인들의 등장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와 그런 아이의 옆에서 있는 사내에게 호통을 치는 마인.
“꺄악!”
“죽고 싶어? 조심히 다녀.”
치마를 밟아 넘어지려던 여인의 허리를 받쳐 주며 호통을 치는 마인들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냐?”
마인들의 가장 선두에서 말을 몰던 아름다운 미남자.
그 미남자가 자신들의 앞길을 막아선 노인을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말이오?”
한참 아래의 연배로 보이는 미남자의 무례한 질문에도 반공대로 대답한 노인.
그런 노인의 물음에 미남자가 차가운 눈빛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 네가 괴롭혔냐고.”
“…….”
제1장 천마의 아들
우르릉!!
쾅!
“네가 정녕 인간이더냐!”
벼락이 내려치는 깊은 밤.
나는 나의 앞에서 절규하는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여인은 왜 나를 향해 저렇게 소리치는 것일까?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 어마…… 아…… 아파…….”
나를 향해 절규하는 여인의 품에 안긴 한 아기.
나의 동생이라고 알려진 녀석이 똑바르지 못한 발음으로 칭얼거렸다.
그런 녀석의 행동에 여인은 녀석을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제야 기억났다.
저 여인은 나를 낳은 여인이다.
장남이라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와 떨어져 지냈기에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멀리서 늘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여인.
그게 저 여인이었다, 저 여인이 나의 어머니였다.
내심 반가웠다.
하지만 저 여인은 아닌가 보다.
금방이라도 죽여 버릴 듯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지 애비와 똑같은 괴물 자식!”
* * *
“그래, 동생의 한쪽 눈을 팠다고?”
“네.”
어두운 밀실.
나는 조금은 쌀쌀해진 가을인 지금, 올해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었다.
허리까지 길게 기른 장발에 새하얀 피부를 지닌 미남자.
그가 나를 향해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짧은 나의 대답에 아버지라는 사람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네 나이가 몇이냐.”
첫째 아들인 나를 향해 나이를 묻는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의 물음에 입을 열었다.
“다섯입니다.”
그리고 짧게 대답했다.
그런 나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아버지.
그가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군사, 내가 형제를 죽인 것이 언제였지?”
“열다섯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군사라 불린 사내.
그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에 아버지는 진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살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물음에 가만히 고개를 숙인 군사.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고, 그 대답에 아버지는…….
“푸하하하!”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소리 내 웃던 아버지.
나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저 사람은 왜 웃는 것일까?
나의 어머니라면, 아버지의 여인이다.
그런 여인이 자살했다는데 이렇게 웃다니?
나도 알고 싶었다.
그렇게 웃는 이유를 말이다.
뚝.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언제 웃었냐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왜 동생의 눈만 팠느냐? 너의 자리를 위협하는 놈이다, 사지를 찢어 죽여야 했다.”
“그저 저를 보는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해서 한쪽 눈만 팠다는 말이냐?”
나의 대답에 실망을 한 것일까?
아버지라는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향해 물었다.
그에 나는 늘 그렇듯이 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니, 그 눈알을 방에 장식하기 위해 팠습니다.”
멈칫.
나의 대답에 아버지의 뒤에 있던 무표정의 사내.
군사라 불린 사내가 흠칫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내의 시선을 무시했다.
그저 흥미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피가 흐르는 동그란 눈알 한 개를 꺼내어 아버지에게 건네었다.
“푸하하하!”
그리고 그날 나는 천마신교 天魔神敎의 소교주 小敎主가 되었다.
* * *
내가 소교주가 되고 오년 후.
열 살이 된 나는 나를 향해 검을 겨누는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분노하는 것일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도대체 왜 설아의 눈을 판 것이냐?”
“설아가 누구입니까?”
아버지의 물음.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아?
그가 도대체 누구인가.
그에 아버지는 얼굴을 굳혔다.
스윽.
그러고는 손에 쥐어진 검을 나의 목에 더욱더 깊이 겨누었다.
화끈.
그러자 목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마신공을 수련하며 매일 느꼈던 고통이었기에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놈의 동생이자, 나의 막내딸 설아 말이다.”
“……?”
나를 노려보는 아버지의 두 눈.
그 두 눈에서 깊은 분노를 느낀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억이 났다.
삼 년 전, 어린 시절 잠깐 만났던 벗의 동생과 혼인을 한 아버지다.
그 여인과 혼인을 한 후 아버지는 변했다.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답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감히, 자고 있던 나의 팔을 깨물었던 어린 여자아이. 설아라는 아이가 말이다.
이제야 기억이 났다.
나를 향해 미소를 짓던 아이, 나의 팔을 깨물고 나의 품에 안기려 들던 건방진 어린 여자아이.
그 아이의 이름이 설아였다.
헌데 그것이 왜?
“고작 그것 때문입니까?”
“뭐라.”
고작 아이 하나의 두 눈을 판 것을 가지고 이러는 것인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나의 물음에 아버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웅!
강력한 기운과 함께 느껴지는 아버지의 차가운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던 내가 정답을 구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나의 팔을 물었습니다. 그러기에 눈알을 판 것입니다. 죽이려 했지만, 아버지의 수신호위인 일살 一殺 이 말리더군요.”
“너의 동생이다.”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아버지가 왜 이러실까?
나를 이렇게 가르친 사람이 바로 당신이면서 말이다.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 쳤다.
챙그랑.
그러고는 바닥에 검을 떨어뜨리고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 아들 위극무를 괴물로 키웠구나.”
“…….”
아버지의 입에서 나온 말.
이번에는 평소와 달리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내 이름은 위극무가 아니라고 말이다.
* * *
“미안하네…….”
천마신교의 주인인 교주의 방.
천마신교의 교주이자 무정한 냉혈한으로 불리는 당대 천마 위관악의 사과에 사파 최초로 사파연합을 이룬, 사파의 지존이자, 천마의 어린 시절 벗이었던 사황 邪皇 백리관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왜 미안한가.”
“설아는…… 자네에게 있어 조카가 아닌가.”
사황의 여동생 백리진.
그녀를 만나 천마는 바뀌었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게 되었고 인간다운 감정과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겼다.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고 나서야 탈마 脫魔 라고 불리는 지고한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그에 인간의 감정을 하나하나 배워 가던 천마는 자신이 사랑하는 백리진을 닮은 딸이 태어났을 때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이제 행복한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그런 자신의 딸이 끔찍한 일을 당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봉사가 되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이며 설아에게는 오라버니인 소교주의 손에 말이다.
“진이는 어떤가?”
“충격에 빠져, 몸져누워 있네.”
“…….”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천마의 모습에 사황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어린 벗인 천마를 바라보았다.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는 천마의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 사내가 정녕 자신이 알던, 그 잔혹한 사내가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위극무에게 는 내가 기필코 벌을 주겠네.”
천마의 입에서 나온 싸늘한 음성.
그에 사황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위극무……?”
“소교주 말일세.”
의문스러운 사황의 물음에 천마가 싸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 사황은 얼굴을 그대로 굳혔다.
그러고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피가 섞이지 않은 생판 남인 자신도 안다.
소교주의 이름이 위극무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헌데 아비인 천마가 자신의 장남의 이름도 모르다니?
그런 천마의 모습에 사황은 깨달았다.
소교주인 천마의 장남.
그는 부모에게 외면받은 아이라는 것을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황은 자신의 벗이 미워졌다.
자신의 벗인 천마가 조금만 따뜻하게 소교주를 대했더라면, 지금의 설아와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일의 원흉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눈앞에 있는 천마.
그것이 짜증 났던 사황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가려는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황을 보며 천마가 묻자 사황은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진이에게 가 봐야겠네.”
“알겠네…….”
그리고 천마는 그런 사황을 말리지 못했다.
* * *
“오라버니…….”
침상에 누워 있는 아름다운 여인.
자신의 여동생을 보며 사황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괜찮으냐?”
“오라버니…… 그 아이는 불쌍한 아이입니다.”
“……?”
어떤 아이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사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백리진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소교주…… 그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한 불쌍한 아이입니다.”
“…….”
“부디…… 그 아이를 보살펴 주십시오. 한 사람의 인간이 되게 해 주십시오.”
자신을 향해 부탁하는 여동생을 보며 사황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 사건의 잘못은 소교주이지만, 원흉은 무심한 어른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사황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일다경을 가만히 여동생을 바라보던 사황.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아이가 원망스럽지는 않더냐?”
원흉은 어쨌든, 자신의 조카이자, 백리진의 딸을 애꾸로 만든 놈이다.
어찌 그 아이를 돌보아 달라고 하는 것인가?
사황의 물음에 백리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원망스러워요.”
“헌데 왜……?”
백리진의 대답에 사황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백리진은 손을 들어 오라버니인 사황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너무나도 불쌍해요. 인간의 정과 관심, 사랑, 그 모든 것을 모르는 아이예요. 만약 그 아이가 그런 감정을 알았다면, 설아의 좋은 오라버니가 되었을 거랍니다.”
* * *
“안녕!”
“…….”
뭘까?
나는 나의 앞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드는 한 소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녀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저 얇고 하얀 손을 비틀어야 할까, 아니면 잘라야 할까?
“너 이름이 뭐야.”
흠칫.
그때, 소녀의 맑은 목소리가 내 귀에 울려 퍼졌다.
내 이름.
내 이름이 무엇이더라.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은 물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내 이름을 잊고 살았다.
그에 잠깐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내 기억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나의 이름을 꺼내었다.
“위극신.”
아버지도 모르는 나의 이름.
그래, 나의 이름은 바로 위극신이었다.
그런 나의 대답에 소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그리 좋을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발견할 수 있었다.
소녀의 두 눈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푸른색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 헤헤. 우리 부모님이 색목인이거든.”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일까?
소녀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녀의 대답을 신경 쓰지 않았다.
“갖고 싶다.”
“응?!”
저 파란색의 두 눈.
내 손으로 파서 내 방에 장식하고 싶다.
그에 나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어서, 뽑아서 방으로 들고 가야지.
덥석.
하지만 누군가에 의해 나의 행동은 저지가 되었다.
“반갑다, 극신아.”
나의 손목을 잡고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한 중년 사내.
나는 그 사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 좋은, 호감형의 사내였다.
그것이 나와 스승의 첫 만남이었다.
* * *
소교주 직위를 박탈당하고 스승과 함께 천마신교를 떠난 날.
“자, 먹거라.”
“후후 불어 먹어!”
그날, 나는 처음으로 따뜻한 밥과 국물을 먹었다.
그렇게 객잔에서 따뜻한 밥을 먹고 우리는 저잣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나는 나의 눈앞에 펼쳐진 낮선 광경에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잣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저들은 왜 웃고 있을까?
아니…… 어떻게 해야 저렇게 아름답게 웃을 수가 있는 것일까?
“자 이거 입어!”
그때, 푸른 눈을 지닌 소녀가 나에게 검은색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을 건네었다.
그런 소녀의 행동에 나는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건 사제에게 주는 내 첫 선물이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선물을 건네는 소녀.
나는 그 소녀가 건넨 비단 옷을 받아 들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다.
저잣거리를 멍하니 헤매다가 해가 졌고, 나는 스승님과 소녀와 함께 객잔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들어선 우리.
나는 침대위에 눕는 스승님의 모습에 구석진 곳으로 걸어가 바닥에 몸을 뉘었다.
오 장로들에게 받던 훈련 중에는 산속에서 한 달간 생존하는 훈련도 있었다.
그때는, 밤마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화살과 비수 때문에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비록 차가운 마룻바닥이더라도 암습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 나는 오랜만에 푹 자겠다는 생각을 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리 오거라.”
그때, 나의 귀로 인자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스승님.
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옆으로 오라는 것일까?
혹, 남색을 좋아하는 변태인 것인가?
나는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들었다.
“춥지 않느냐?”
경계 어린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스승님.
나는 그제야 몸에서 한기를 느꼈다.
“이리 오거라.”
그때 또다시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어색하지만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스승의 곁에 갔다.
꼭.
그리고 스승님은 그런 나를 부드럽게 안아 주었다.
따뜻했다.
만약,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를 안아 주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너무나도 낯설었지만 스승님의 품에서 벗어나려고는 하지 않았다.
너무. 따뜻하고 좋았다.
“헤헤! 스승님 나도!”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이 보기 좋았을까?
옆에 있던 소녀가 달려와 안겼다.
“그래, 우리 다 같이 자자꾸나.”
허허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런 소녀도 부드럽게 안아 준 스승님.
그렇게 나는 소녀와 함께 스승님의 넒은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누군가의 품에 안겨 보았다.
* * *
스승님과 행복한 20년을 보낸 나.
나는 이제 웃을 줄도, 울 줄도 아는 인간이 되었다.
그리고 내일이면 푸른색 눈의 소녀, 사랑하는 나의 사저와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극신…….”
헌데…… 내일부터 인생의 반려자가 되어 행복한 세월을 보낼 여인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의 이름을 애절하게 부르고 있었다.
너무나도 믿기지 않는 이 광경에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왜 이런 광경이 나의 두 눈앞에 펼쳐진단 말인가?
“크하하!!”
그때, 굳어져 버린 나의 두 귀로 한 사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검은색의 야행복을 입고, 검은색의 안대를 차 한쪽 눈을 가린 젊은 사내.
나는 그 사내를 보고는 곧 그가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니 모를 리가 없었다.
“천이더냐…….”
바로 어린 시절 나에게 눈알이 파여 독안 獨眼이 되어 버린 동생이기 때문이었다.
소식을 접하기는 했다.
얼마 전 자신의 동생이었던 위천이 제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당대의 천마 天魔 자리에 올랐다는 것을 말이다.
이십 년 만에 보는 동생의 모습.
독기만이 가득한 동생의 모습에 나는 슬픈 어조로 물었다.
그런 나의 모습이 통쾌했을까?
그가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그러고는 광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형님! 드디어! 내가 왔소이다!”
나에게 복수하는 날을 고대했을까?
위천은 너무나도 기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그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모든 것이 내 업보였다.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절 저질렀던 크나큰 잘못.
그것이 세월이 흘러 거대한 악 惡 이 되어 나를 덮쳤다.
그 거대한 악에 휩쓸린 나는 발버둥 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떠시오! 사랑하는 사람을 내게서 잃은 기분이!”
“…….”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이 모두가 나의 업보로 인해 벌어진 일인 것을…….
나를 향해 웃으며 묻는 위천.
녀석을 보며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여인, 서은설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
이제는 차갑게 식어 버린 그녀.
못난 나 때문에 죄 없는 그녀가 죽었다.
그녀를 죽인 위천을 원망하기보다는, 죄 없는 그녀를 죽게 한 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크하하!”
무릎을 꿇은 나의 모습이 시원했는지 계속해서 통쾌한 미소를 짓는 위천.
나는 그런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눈물 한 방울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너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어린 시절.
장남인 내가 악귀 惡鬼가 되어 버린 것에 절규하며 자살한 어머니. 그날. 위천은 유일한 아군이었던 어머니를 잃었고, 자신의 친형이었던 나에게 눈알을 파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따뜻한 밥, 그리고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천마신교에서 혹독하게 자라 왔을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오 장로들의 수련, 그리고 늘 본능과 싸우며 이성을 지켜야 하는 천마신공까지.
나의 동생, 위천의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끔찍했을 지 이해가 갔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녀석을 원망할 수 없었다.
내가 원망할 수 있는 상대는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으니 말이다.
그에 나는 처음으로, 녀석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그러고는 눈물을 흘렸다.
“사과하지 마.”
나의 사과에 당황스러웠을까?
웃음을 멈춘 위천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경고했다.
그런 위천의 경고에 나는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저 아이는 이십 년이라는 소중한 세월을 나만을 원망하며 지내 왔을 것이다.
고작 나 때문에 행복해야 할 이십 년의 인생이 위천에게는 끔찍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죄였다.
그렇기에 나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그에 괴로움을 느낀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무 미안해…….”
으아아아!!
푸욱!
사죄를 하는 나의 복부에 파고든 위천의 검.
나의 복부에 검을 꽂으면서도 괴로워하는 위천의 모습에 나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위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 동생…….”
“크아아!”
처음으로 불러 보는 동생이라는 호칭.
그런 나의 호칭에 위천은 더욱더 분노했다.
푸욱! 푸욱!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나의 복부에서 검을 빼내고, 또 빠른 속도로 나의 몸을 난자했다.
그런 위천의 행동에 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너는 행복했을까? 나의 막내 설아는 잘 컸을까?
나에게 한 번만 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분명 쓸데없는 생각인데 미련이 생긴다.
울부짖는 나의 동생 위천.
녀석에게 따뜻한 감정을 알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 눈알이 파여야 했던 내 여동생 설아.
그녀에게 사랑을 베풀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은설아…….”
나를 행복하게 해 준 그녀.
서은설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점점…… 나의 의식이 멀어져 간다.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이 나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그에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