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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빼고 먼치킨-287화 (287/300)

287화_마왕 강림(1)

나의 최후는 헬리오스를 다시 받아들여서 지구에 강림하는 마왕을 쓰러뜨리고 나 또한 죽는 걸로 예상했다.

그런데, 마왕이 강림하기 전에 숨 막혀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스본. 그만 놔.”

“아빠. 그만 해요.”

“야. 유신이 죽어가잖아.”

전설들과 제이미가 아무리 아스본 레스넌을 뜯어말려도, 그는 내 목을 놓지 않았다.

그의 아귀힘은 내 기도를 확실히 막고 있었다.

환골탈태 이후에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동안 숨을 쉬지 않을 수도 있지만, 10분째 이러고 있었다.

거기다가 그의 눈빛을 보니 며칠 동안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만하라고!”

“꾸엑~”

참다 참다 더는 참지 못한 마리 선배가 아스본 레스넌의 옆구리를 가격하고 나서야 손에 힘이 풀렸다.

“성녀.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냐?”

“앞뒤 분간 못 하는 멧돼지처럼 뭐 하는 거야?”

“네가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을 알아?”

“몰라. 그리고 너처럼 행동할 거면 알고 싶지도 않고.”

크리스가 건장한 몸으로 다가가더니, 분노에 치를 떠는 아스본 레스넌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스본. 좋게 생각해라. 너보다 강한 사위를 얻는 거다. 즉, 네 딸을 확실히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이 유신이지.”

“크리스. 막 내뱉는다고 다 말이 아니다.”

“흠. 그래? 하유신이 사위라면 난 좋을 것 같은데?”

“결혼도 못 한 게.”

“크하하하. 난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거다.”

아스본 레스넌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크리스가 시답잖은 농담을 던질 때, 나는 땅의 축복을 이용해 마족을 데려왔다.

“뭐냐? 이 쓰레기는?”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는 아스본 레스넌의 말에 마족이 흠칫하더니, 벌벌 떨었다.

확실히 이 마족은 다른 마족과 너무나 달랐다.

“이놈의 증언에 따르면 근처에 수많은 마신석이 있다고 합니다.”

“마족의 말은 믿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GPS로 확인해보니, 이곳 일본에는 마신석이 없었다.”

“야. 마족 아스본 레스넌님의 말이 사실이야?”

마족은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표정을 지으며 거침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그게. 거기에 있으면 마기가 밖으로 뿜어나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신석 각성이 빨랐고요.”

“마기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네. 정말입니다.”

잠시 마족을 땅에 파묻어두고, 우리끼리 회의를 가졌다.

“어떻게 할까요?”

“저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함정이 있을 거다.”

“함정이라고 해도 확인해 봐야 해.”

“우리는 지금 오사카를 중심으로 퍼진 마족과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피해는 커질 거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한다.”

“인원이 부족해.”

아스본 레스넌의 말이 맞았다.

지금 이곳에 모든 전설이 다 모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인원이 넘어온 것도 아니었다.

전세계로 퍼져 있는 마신석을 회수하는 것도 중요했기에 인력은 언제나 부족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책임을 지고 움직이는 게 맞았다.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크리스가 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저번처럼 픽 쓰러지거나 할 수 있잖아.”

“크리스님. 그럴 일 없습니다.”

“흠…”

전설들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분명 내가 그들보다 강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저런 눈빛을 보내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마리 선배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좋아. 갔다 와.”

“알겠습니다.”

나는 땅에 박혀있는 마족을 무 뽑듯이 뽑아 들었다.

“네가 말한 곳이 어디야?”

“저쪽입니다.”

마족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하기 전,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인 제이미를 바라봤다.

“갔다 올게.”

“나도 같이 가.”

제이미의 뒤에 있던 아스본 레스넌의 얼굴이 야차처럼 구겨졌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여기서 내가 같이 가자고 했다가는 오늘 눈빛으로 살해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까 졸렸던 목을 매만지면 어색하게 웃었다.

“아냐. 금방 갔다 올게. 그리고 정 위험하면 바로 도망칠게.”

“…알았어. 조심해야 해.”

“응. 걱정하지 마. 이 일만 끝나면 평범한 데이트도 좀 해보자.”

“으.응.”

많은 사람 앞에서 한 데이트 신청에 제이미가 쑥스러워했고, 뒤에 있는 아스본 레스넌이 검병을 잡았다.

생각해보면 아버지 앞에서 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한 건데, 나 같아도 아스본 레스넌과 다를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스본 레스넌의 눈빛을 피하며, 마족을 데리고 움직였다.

“여기서 저기로 가셔야 합니다.”

한참 움직이고 있을 때 마족이 방향을 다시 알려줬다.

가리킨 방향을 보다가 결박된 마족을 바라봤다.

다른 마족들은 살육과 광기에 미쳐있는데, 이놈은 달랐다.

“넌 대체 왜 이렇게 말을 잘 듣냐?”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살아? 내가 언제 널 살려준다고 했나? 아닌데.”

내 말에 겁먹을 줄 알았던 마족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마족은 태어날 때 얼굴뿐만 아니라, 몸도 각자 특징에 맞게 만들어집니다. 어떤 이는 손이 칼이고, 어떤 이는 날카로운 손톱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쉽게 말해줄래?”

“마족의 모습은 그 마족의 성격을 가장 잘 반영합니다.”

“그런데, 넌 별 특징이 없잖아.”

“제 특징은 생존 본능입니다. 그리고 제 본능이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마신석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면 살아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요. 그래서 협조적인 것뿐입니다.”

실질적으로 보이는 마족이 모습이 아니라, 추상적인 생존 본능이라는 말이 아리송했지만, 일단은 두고 볼 일이었다.

“좋아. 어떻게 네가 살아날지 아니면, 내가 죽을지 가보자고.”

속으로는 별 해괴한 마족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움직였다.

그렇게 안내받아서 도착한 건물은 여기에 있는 건물 중 그나마 가장 깔끔해 보였다.

“여기라는 거지?”

“네.”

여기까지 안내한 마족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당장 죽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렇게 했다가 이곳이 아니면, 그것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도망갈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래. 데리고 가지 뭐.”

“네? 그게…무슨?”

마족의 목덜미를 틀어잡은 후, 앞으로 세우고는 안으로 향했다.

혹시나 함정이나 갑작스러운 공격은 웬만한 방패보다 튼튼한 마족이 대신 맞아 줄 것이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지하구나.”

지하 쪽에서 짙은 혈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수십 명에 달하는 인간의 사체가 보였고, 사체 뒤로는 부서진 문과 함께 수백이 넘는 봉인함이 보였다.

칠성검을 꺼내 든 후, 왼쪽으로 치우듯이 마족을 집어 던졌다.

“으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간 마족의 배에 드릴 같은 게 박혀 들었고, 그곳에서 다른 마족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우연인가?”

“그렇게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것도 그렇군.”

새로 나타난 마족은 웃으며, 이곳까지 안내한 마족을 한쪽으로 집어던졌다.

“기운으로 보면 상급 마족인가?”

“오호~ 인간치고는 감이 좋군.”

칠성검을 들어서 상급 마족에게 겨눴다.

“우리가 사이좋게 대화할 사이는 아니지?”

“인간 주제에…”

상급 마족이 입을 여는 순간 검을 휘둘렀다.

대화를 통해 상대의 방심을 유도하고 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상급 마족도 동료를 꿰뚫었던 드릴 모양 손으로 날 공격했다.

카앙

드릴과 칠성검의 부딪힘이 울려 퍼졌고, 상대의 반대 손이 내 얼굴을 향해 치켜들었다.

칠성검을 옆으로 눕혀서 검병으로 반대쪽 손을 막은 후, 힘으로 상급 마족을 밀어냈다.

절단검 – 찌르기

연달아 찔러넣은 칠성검에 상급 마족의 상체에 구멍이 생겨났고, 왈칵 피가 쏟아졌다.

상급 마족이 뒤로 물러섰지만, 그만큼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촤촤착

쉼 없이 휘두른 검에 상급 마족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때, 상급 마족이 발악하듯 파괴광선을 내뿜기 위해 양손에 보라색 마기를 뭉쳤다.

절단검 – 가로베기

드릴로 이루어진 양손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상급 마족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이.이럴 수가…”

“이만 끝내자.”

칠성검에 절단검의 기운을 담고는 그대로 상급 마족을 지나쳤다.

상급 마족의 목에 긴 혈선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떨어져 나갔다.

그렇지만, 상급 마족의 목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어느새 나온 미르가 상급 마족의 목을 삼키고, 고꾸라지려는 몸도 흡수했다.

“재빠르네.”

몸을 돌려서 여기까지 자신을 안내한 마족이 쓰러진 곳을 바라봤는데, 보이지 않았다.

벅벅

절대 들려서는 안 되는 곳에서 무언가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슴과 배에 구멍이 뚫린 마족이 상처는 치료할 생각은 가지지 않고, 마신석을 깨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크헤헤~ 이게 바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이다.”

상급 마족까지 죽어서 정신이 나간 건지, 아니면 원래 정신이 나간 건지는 모르겠다.

단지, 깨진 마신석에서 보라색 기체가 피어오르는 게 보이자마자 바닥을 박차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용으로 쓸 수 있는 마신석이 아까웠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잴 시간이 없었다.

“미르. 남김없이 먹어 치워.”

하급 마족이 아무리 저항한다고 해도 미르의 식욕 앞에서는 한낱 음식에 불가했다.

그런데, 아직 몸도 형성하지 못한 지성이 없는 하급 마족 따위는 순식간이었다.

꿀꺽

단 한 번에 이 방 안에 있는 모든 마족과 마신석이 사라졌다.

미르도 배가 부른지 보채지도 않고, 중단전으로 들어갔다.

모든 상황을 끝내고, 몸을 돌려서 돌아가려는데, 천장 한편에 CCTV가 보였고, 이런 상황에서도 CCTV는 잘만 돌아갔다.

“CCTV가 있단 말이지.”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나왔고, 돌아가기 전에 상황실로 몸을 움직였다.

***

앤드류가 파이몬의 강림을 받아들이기로 한 후에 동굴의 문을 다시 닫고 봉인했다.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건 파이몬의 강림이 끝났을 때일 것이다.

파이몬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에 게이트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게이트를 통해 도착한 곳은 브라질 남부의 비밀 기지였다.

“시리 시온님 오셨습니까?”

자신을 마중 나온 존재는 이름도 모르는 마신 숭배자의 일원이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지?”

“죄송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마신 숭배자 탄압 정책으로 인해, 대부분 잡혀갔습니다. 도시는 전멸과 다름없고, 이렇게 오지에 있는 동료들만 살아남았습니다.”

“작정했군.”

되는 일이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한 멕시코는 전멸했고, 세계 경제를 엉망으로 만드는 건 전설들의 방해로 실패했다.

“정치인들은?”

“유럽과 아시아권에서 몇몇 정치인들이 우리와 연계되어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모두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평소에 얼굴만 보여도 짜증 나는 루이스가 보고 싶어졌다.

자신과 그 동료들은 루이스처럼 계략을 짜는 걸 잘하지 못했다.

“모두 실패했다고만 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라.”

“저기 그래서 그러는데, 이걸 좀 보시면.”

숭배자가 건네준 태블릿 PC에는 일본에 대한 기사가 떠 있었다.

[마신석을 활용하다가 침몰한 일본.]

[천황. 지시한 적 없다는 공식 발언.]

[오사카를 향한 세계적인 도움 진행]

[미신고 마신석 보유자, 마족 숭배자와 동일]

일본이 욕심을 부려서 마신석을 활용하려다가 큰코를 다쳤다.

인간의 욕심이라면 충분히 있을 만한 내용이었다.

숭배자가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겨우 이걸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다.

“보시는 바와 같이 마신석이 모여 있었지만, 마신석 탐지기에 잡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탐지기에 걸리지 않았다고?”

“네.”

마신석을 이용한 혼란이 지금까지 실패했던 이유는 인류가 마신석 탐지기를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탐지기에 걸리지 않고 저렇게 많은 양의 마신석을 들키지 않았다는 건 하나의 기회였다.

“계획은 어떻게 되지?”

“아시다시피 마신석이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으면, 자기들끼리 호응해서 평소보다 빠르게 마족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만든 저런 공간에다가 마신석을 넣은 후, 숨겨 두는 작전을 펼치고자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마신석을 제작하려고 해도 재료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대부분의 마신석은 교황청으로 넘어갔다.

가지고 있는 마신석이라고 해봤자, 천 개가 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일단 계획이 성공만 하면, 파이몬의 강림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다. 지금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서 어떻게 해서 마신석의 마기를 막았는지 알아봐라.”

“알겠습니다.”

불리한 판을 뒤집을 또 다른 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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