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화_초월자(4)
고작 얼굴을 한 대 얻어맞았다고, 앤드류는 괴성을 내질렀다.
“하유신. 저번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오~ 그건 피차일반이야. 나도 네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마족에게 몸과 영혼까지 팔았네?”
“교황청 놈들은 언제나 내 앞을 방해하지. 너도, 칼 제라니처럼 죽어라!”
굳이 칼 제라니가 나라고 말하기도 귀찮았다.
그렇다고 예전에 칼 제라니일 때 앤드류가 배틀필드에서 자신에게 한 일을 잊은 건 아니었다.
“실력은 되고?”
앤드류는 내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김을 뿜어냈다.
그러더니, 앞으로 손을 뻗었다.
“꺼져라!”
파괴광선이 연달아 쏘아졌다.
피하려고 하는데, 중단전에 있던 미르가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 마음껏 놀아라.’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미르를 풀었다.
풀려난 미르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입을 벌려서 파괴광선을 잡아먹고는 그대로 앤드류의 손을 덥석 물었다.
콰직
앤드류가 순간적으로 손을 뒤로 뺐지만, 왼손은 미르에게 물렸다.
미르에게 물린 손을 뿌리치듯 빼내자, 앤드류의 손목 아랫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크으으윽…”
뒤늦게 앤드류는 고통이 몰려왔는지, 신음을 내뱉었고, 그 사이 로저 시거가 높게 점프해서 거검으로 앤드류의 몸을 일도양단하듯 내리찍었다.
로저 시거의 거검에는 자신이 알려준 압축된 오러인 오비탈 블레이드가 맺혀 있었다.
저 검이 앤드류에게 닿으면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확실하게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확실하게 해볼까?’
미르를 이용해, 앤드류의 오른쪽을 공격해 정신을 빼앗았다.
그러자, 앤드류는 로저 시거의 거검을 막기 위해 잘린 왼손을 들었다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라!’
오비탈 블레이드가 앤드류를 가르기 전에 인간 형상의 그림자들이 주위에 솟구쳤다.
그림자들은 앤드류 대신에 오비탈 블레이드를 막고는 소멸했다.
“아깝네.”
물러나는 앤드류를 보며, 이대로 끝내기가 너무 아쉬웠다.
칠성검에 오비탈 블레이드를 만든 후, 빠르게 앤드류를 쫓았다.
그렇게 앤드류 앞에 서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가로베기
언제 바꿔치기했는지 오비탈 블레이드는 인간 형상의 그림자만 베어냈다.
“이런…”
전설들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교육하면서 나 또한 그걸 잊지 않았다.
거기다 의외로 전설들과 처음으로 맞춘 호흡이 잘 맞기까지 했다.
그런데, 앤드류를 놓치고 말았다.
“아스본 레스넌님 제가 뒤를 쫓겠습니다. 부탁합니다.”
“여기는 걱정하지 말게.”
“감사합니다.”
아스본 레스넌의 대답을 들으며 달렸다.
그리고 옆에는 로저 시거가 야차처럼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유신. 나도 돕겠다.”
그와 앤드류의 사정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복수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원동력 중 하나였고, 로저 시거가 그런 일로 실수할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둘이서 마족 숭배자들이 몰려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조심하세요.”
“전설이라고 불리는 우리도 이제 한물이 갔어. 젊은 자네에게 그런 소리를 듣다니.”
앞에 나타난 마족을 베어내며 말했다.
“원래 젊은 피가 무서운 겁니다. 그리고 이제 세대교체 할 시간이기도 하고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듣기에는 충분히 오만한 발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로저 시거는 피식 웃으며 오비탈 블레이드를 해체했다.
“그래. 세대교체의 시기가 오기는 왔지. 내가 길을 뚫을 테니, 잠시만 버텨주게.”
로저 시거는 온몸으로 오러를 내뿜어서 실체화 시킨 후, 거검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그러자, 실체화 된 오러가 거검에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잘 보게. 오비탈 블레이드를 알려준 것에 대한 보답이네. 이 기술은 내가 자연을 통해 배운 기술이지.”
나를 지나친 로저 시거가 거검을 휘둘렀다.
거검에서 뿜어져 나온 오러는 청백색의 파도가 되어서 건물의 빈 공간을 가득 채웠다.
쏴아아아아아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지만, 파도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게 한차례 오러의 파도가 지나치고 나자, 몰려 있던 숭배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마족들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다.
중급 마족 정도 되는 녀석들만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빨리 가라. 마무리는 내가 하지.”
“감사합니다.”
빠르게 지나가면서 아직 목숨이 끊기지 않는 마족이 보였지만, 무시했다.
지금은 앤드류를 잡는 게 먼저였다.
그는 지금 자신의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조금 전의 전투를 돌이켜보면, 앤드류는 어린아이가 이제 막 어른이 되어서 육체를 다루는 법이 서툴렀다.
‘마치 이제 막 무게 조절 마도구를 벗은 훈련생들과 비슷했어.’
앤드류가 자신의 육체에 적응하게 되면, 지금처럼 쉽게 그를 잡기 어려워진다.
거기다가 오비탈 블레이드를 대신 맞은 인간 형상의 그림자를 일으킨 존재도 있었다.
“이쪽이군.”
이 건물 안은 마족의 고약한 냄새가 두통을 일으킬 정도였지만, 가장 지독한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여러 인간이 무언가에 타고 있는 문양이 그려진 거대한 문이 있었다.
“이곳인가?”
안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만전을 기해야한다.
원소력으로 태극을 그리면서 포스를 실체화한 후, 미르가 언제든지 나올 수 있게 했다.
그런 다음, 칠성검으로 거대 문을 가격했다.
콰아앙
문이 부서지면서 안으로 들어서자 제단이 보였다.
앤드류는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이제 막 제단에 눕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절단검 – 세로 베기
그때, 부축하는 이의 그림자에서 수십의 인간 형상의 그림자가 솟구쳐서는 대신 잘려나갔다.
그림자가 잘려나가고, 그 뒤에 있던 이들이 나를 노려보는 모습이 보였다.
부축하던 이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내게 향한 후 말을 이었다.
“하유신. 감히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냐?”
“당연한 거 아냐? 오늘 어디 끝까지 가보자.”
칠성검을 잡고, 중단세 자세를 잡아갈 때였다.
앤드류가 주위를 둘러봤다.
“날 쫓기 위해 혼자 왔나?”
“혼자면 충분하니까.”
내 당당한 말투에 앤드류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제단에서 일어났다.
“루이스. 의식을 조금만 늦춰야겠다.”
“앤드류님. 의식이 먼저입니다.”
“그렇게 멍청해서야. 조금만 생각해봐라. 저놈이 있는데, 어떻게 의식을 진행하지?”
“의식을 진행하게 되면, 더는 하유신이 앤드류님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저놈을 제물로 바치겠다. 그렇게 되면, 의식도 쉬워지겠지. 안 그래?”
저기 부축하고 있는 놈이 예전에 베드 미다스가 말했던 숭배자들의 장로 루이스인가 보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토대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저들이 의식을 치르기 전에 끝장을 봐야 한다는 걸.
“그래 어디 해보자.”
버프와 함께 모든 기운이 황금빛으로 바뀌었다.
그 상태에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당연하게도 루이스가 앞을 가로막았다.
“네 놈 상대는 미르가 해줄 거야!”
왼손을 들어서 루이스에게 향한 후, 미르를 풀었다.
미르를 믿기에 그대로 앤드류에게 달려들었다.
텅
그런데, 언제나 모든 걸 잡아먹는 미르가 루이스의 공격에 튕겨져서는 다시 돌아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고, 예상 밖이었다.
이대로 앤드류에게 다가가면, 앞뒤로 합공을 받을 수도 있기에 상체를 살짝 비틀어서 칠성검을 루이스에게 휘둘렀다.
절단검 – 가로베기
인간 형상의 그림자들이 다시 솟구치더니, 절단검을 막아갔다.
그 사이 자세를 바로잡은 후, 튕겨지듯 앞으로 나아가며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그림자들의 방해가 있었지만, 루이스의 허벅지를 꿰뚫을 수 있었다.
그때, 고통을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루이스가 외쳤다.
“앤드류님. 어서 의식을 진행해야 합니다.”
재빨리 곁눈질로 앤드류를 확인했는데, 그는 의식보다는 날 잡고 싶은지 내게 치켜들었다.
‘그렇게 날 잡고 싶다면, 확실히 미끼가 되어줄 용의가 있지.’
선악과를 본 이브처럼 갈등이 치솟게 앤드류에게 더욱 등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공격하지 않는 건 바보 또는 의심이 많은 자일 것이다.
거기다가 확실한 빈틈 연기를 위해, 칠성검으로 계속 루이스를 공격했다.
그러면서 꼼꼼하게 기감을 퍼뜨리고 있었다.
‘지금’
기감을 통해 확인하니 앤드류의 팔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는 그대로 등 뒤로 미르를 풀었다.
콰직
“크아아아악!”
루이스의 그림자를 뿌리치며, 앤드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팽이처럼 회전하며 칠성검을 휘둘렀다.
앤드류는 처음에 먹힌 왼손과 방금 오른손이 미르에게 먹혀 있었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단으로 향했다.
이대로 놓칠 수 없기에 앤드류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유성 찌르기 변형 – 유성폭발
유성폭발이라면 앤드류가 충분히 쳐낼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양손이 사라져서 그런지 겁을 먹은 앤드류가 몸을 숙여서 유성폭발을 피했다.
그렇게 유성폭발은 앤드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제단으로 날아갔다.
“안돼!”
뒤에서 루이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유성폭발은 무심하게 제단을 박살 냈다.
제단이 마지막 희망이었는지 앤드류는 멍한 표정을 지었고, 루이스는 뒤에서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쳐 죽일 놈!”
“뭐래? 그건 너희지.”
내 비아냥에 루이스는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꽂아 넣었다.
그는 그 상태에서 아공간 팔찌도 해석하지 못하는 암울한 언어를 내뱉었다.
지금이라면 앤드류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등 뒤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 매서웠다.
둘 다 놓치기는 아깝기에 우선 앤드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오비탈 블레이드 – 탄
그런 다음, 뒤를 돌아보자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뭐 이런 경우가…”
루이스 주위로 솟아난 인간 형상의 그림자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대로 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형상이 아니라, 모두 자신이 아는 형상과 닮아있었다.
전설들의 형상을 한 그림자들이 내게 공격을 퍼부었다.
호신강기
방어를 일으켰지만, 겨우 두 번의 공격을 막으니, 호신강기는 깨져나갔다.
남은 공격을 막기 위해 검을 재빨리 휘둘렀다.
텅텅텅…
공격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설 때였다.
에반 히스터 그림자가 구속 마법을 발동했다.
곧바로 진각을 밟아서 마법을 무효화시켰지만, 그 잠깐 사이에 로저 시거의 거검과 아스본 레스넌의 검이 치켜들었다.
콰아아앙
위로 점프해서 그들의 검을 피하자, 애꿎은 바닥에 그들의 공격이 내리꽂혔다.
공중에서 몸을 돌려서는 밑에 있는 그림자들에게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였다.
검은 불꽃이 나를 덮쳤다.
화르르륵
포스막으로 피해는 딱히 없었지만, 공격 기회는 잃었고, 전설들의 공격이 쇄도했다.
밀리고 있을 수는 없기에 왼손으로 미르를 뿜어냈다.
미르는 먹기 좋은 음식이라 생각하며 크게 입을 벌렸다.
그렇지만, 채 입을 다 벌리기 전에 벨라의 방어에 튕겨졌다.
다가오는 그림자들을 보며, 바닥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유성 찌르기 변형 – 유성 폭발
콰르르릉
바닥이 무너지면서 루이스와 그림자들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아무리 그림자라고 하지만, 모두 전설들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 다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바닥에 내려서자, 빛살 같은 게 내게 다가왔다.
칠성검을 옆으로 눕혀서 서둘러 방어했지만, 뒤로 튕겨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크헉~”
벽에 박힌 상태에서 울컥하고 피를 뱉어냈다.
그 상태에서 그림자들이 마기로 뭉친 공격을 내게 퍼부었다.
콰콰콰콰쾅
뿌옇게 먼지가 피어올랐지만, 이런 강자들이 겨우 먼지 따위에 시야를 잃은 일은 없었다.
슬쩍 내 몸을 둘러보니, 넝마와 다름이 없었다.
그때, 루이스가 그림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조용히 의식만 치르면 되는 걸. 하유신 네놈이 모든 걸 망쳐놨다.”
루이스는 살기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루이스에게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케이. 분석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