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_하유신 vs 조쉬 히라니(1)
아버지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다크 연합의 수장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는 아버지가 마법서 한 권에 흔들릴지 몰랐다.
그뿐만 아니라, 계약 자체도 불공정에 가까웠다.
“아버지. 그 마법서가 그 정도로 중요합니까?”
마법서를 읽던 아버지가 고개를 들어서 날 바라봤다.
내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인지했는지, 헤픈 웃음을 지우며 말했다.
“찰스야. 네가 알프레도의 마법서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거다. 그는 이 지구상의 마법의 선두주자란다.”
“아버지가 아니라 그가요?”
“그렇다. 서클의 개념부터 새로운 마법 창작까지 그가 손을 대지 않는 게 없지. 자 보거라. 이건 나보다 너한테 더 도움이 될 것이야.”
마법서를 건네주는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아들만 아니었다면, 절대 주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힘들게 받은 마법서를 앞장부터 천천히 읽어봤다.
“이건 게이트 마법의 가장 기초가 되는 이론 아닙니까?”
“그래. 가장 기초지. 다음 장을 넘겨봐라.”
순간이동은 능력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정석이다.
그래서 마법으로 만들어진 게 게이트였다.
“게이트 마법만 계속 적혀 있네요.”
“그래. 그 게이트 마법을 만든 사람도 재수 없는 알프레도 켄트다.”
솔직히 아버지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어떻게 한 명이 그 모든 개념을 다 정리한다는 말인가?
아버지의 말대로라면, 알프레도 켄트는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다.
그리고, 순간이동 마법서라고 했는데, 게이트 마법만 적혀 있었다.
물론, 게이트 마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기는 했다.
“어?”
어떻게 이런 이론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대충 읽던 마법서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법서를 한 번 정독을 하고나자, 해머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공식이 된다고?”
“가능하다. 대신에 그만큼의 계산식과 마나 배열 연습을 해야겠지만.”
이 마법서의 중요성을 깨닫자, 첫 페이지를 다시 열었다.
이 첫 페이지가 공간에 대한 모든 것들을 가장 잘 알려주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마법서를 빼앗았다.
“아버지!”
“나중이다. 지금은 네가 따로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끝내면, 연구할 시간을 주마.”
평소의 탐욕스러운 아버지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지는 않을 테니, 일단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뭘하면 됩니까?”
“바드득…”
갑자기 이를 갈기 시작하던 아버지는 힘들게 말을 내뱉었다.
“하유신. 그놈과 함께 조쉬 히라니를 처리하고 와라.”
“인도의 왕 조쉬 히라니요? 유신의 말대로면 그는 지금 마족화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잡을 수 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요구에 목소리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잡는 건 네가 할 일이 아니다. 하유신. 그 썩을 놈이 할 일이지.”
하유신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조쉬 히라니를 잡는 건 또 다른 일이었다.
“더이상의 말은 듣지 않겠다. 일단은 하유신과 함께 인도에 갔다 와라. 그리고 하유신이 조쉬 히라니를 죽이면 그의 사체를 가져오면 된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쉬 히라니의 사체는 왜 필요합니까?”
“연구적 가치가 있으니 그렇지. 다행히 알프레도가 조쉬 히라니의 사체는 우리에게 넘긴다고 하더군. 나는 이만 연합으로 돌아갈 테니, 거기서 보도록 하자.”
“네.”
아버지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유신이 안으로 들어왔다.
“찰스 형. 몸은 괜찮아요?”
“나야 괜찮지만, 들었다. 정말 조쉬 히라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냐?”
“못할 건 없죠.”
“당당한 거와 만용은 다르다.”
“알프레도 선배와 마리 선배가 그러던데요? 제가 방심만 하지 않으면, 조쉬 히라니를 처리할 수 있다고요. 물론 마족화하기 전에 조쉬를 구속하기는 했지만, 뭐…놓쳐서 할 말은 없지만요.”
유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실패하더라도, 혼자는 아니니.”
“아 형! 그런 부정적인 말은 하지마요~!!”
***
찰스 형의 게이트 마법을 통해 인도의 마이소르로 돌아왔다.
한때 번성했던 이곳은 자신의 공격으로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래. 이제 어디로 가면 되느냐?”
“잠시만요.”
GPS를 통해서 인도의 오로체 마을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 봤다.
그냥 무심코 넘어갈 수 있었지만, 아방과 알리야가 했던 부탁을 그냥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북서쪽으로 47킬로 정도 가면 되겠네요.”
“정확한 위도가 어떻게 되지? 아니 그냥 GPS를 보여주면 된다.”
“여기요.”
GPS를 건네받은 찰스 형이 몇 가지를 조작하더니 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기분 탓인지 게이트를 여는 게 조금 빠른 것 같았다.
“가자.”
“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연속으로 게이트를 타자, 속이 울렁거렸고 헛구역질이 나왔다.
억지로 넘어오려는 것을 참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마을이 너무나 조용했다.
“생명체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군.”
“그렇네요.”
찰스 형도 이상함을 느끼고, GPS를 다시 열어 좌표를 확인했지만, 기계에서는 여기가 오로체 마을이라고 가리켰다.
“건물들이 멀쩡한 거 보면, 어디에 모여 있는 거 아닐까요?”
“그래. 혹시 모르니 찾아보자.”
우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서 마을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모두 죽었어.”
미라가 된 인간들.
그들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모든 기운을 빼앗긴 채 죽어 있었다.
여러 집을 확인했지만, 미라가 된 시체만 있을 뿐이었다.
마을 광장 한복판으로 나와서는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조쉬 히라니를 놓치지 않았다면, 이들은 죽었을까?
“유신아.”
찰스 형도 마을의 처참한 상황을 확인한 것 같았다.
“찰스 형. 조쉬 히라니는 어디로 도망갔을까요?”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마족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없어서 안심하고 있었다.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건 이 마을이 이렇게 된 게 며칠은 지나서 그랬던 거였다.
가지고 있는 모든 마나석을 소비하더라도 조쉬 히라니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생각을 굳히고, 땅의 축복을 부르려고 할 때였다.
“그래도 대충 예상은 간다.”
“네? 찰스 형. 예상이 된다고요?”
“그래. GPS를 보며, 이 근처에 있는 마을은 전부 수드라가 사는 집성촌이다. 일단, 수드라가 있는 마을들을 다 가보면 되겠지. 대신에 모두 게이트를 통해서 이동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응? 아! 네가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을 사용하려고?”
“네. 땅의 축복. 준비됐어?”
가슴에서 튀어나온 땅의 축복이 찰스 형에게 다가간 후, GPS를 확인했다.
[람이시여. 준비됐습니다.]
“찰스 형. 놀라지 말고, 그냥 몸을 맡겨.”
“응? 그게 무슨?”
“출발하자.”
[네. 람이시여.]
땅이 솟구쳐서 나와 찰스 형을 뒤덮었다.
그리고 흙이 내려왔을 때에는 다른 마을에 도착해 있었다.
“이곳도 꽝이군. 다음”
[알겠습니다.]
다음도, 그 다음도 모두 늦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차례 이동을 반복할 때였다.
서서히 마족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진해졌다.
일곱 번째 마을은 아직 습격을 받지 않는 건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여기는 아직 괜찮나 보네요.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유신아. 이 능력은 뭐냐? 게이트도 아니고, 순간이동도 아니고.”
“별거 아닙니다. 그냥 능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찰스 형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공중에 떠 있는 땅의 축복을 만져 보려고 할 때였다.
“크아아악!”
“피해! 괴물이다!!”
여기에 있는 마을 사람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족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진하게 몰려왔다.
“찰스 형. 마을 사람들을 지켜줘요. 가자! 땅의 축복.”
땅의 축복과 함께 마족의 냄새가 풍겨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화가 잔뜩 난 복어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운, 조쉬 히라니였던 마족이 사람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조쉬의 가시에 몸이 박힌 사람들은 이내 기운을 빼앗겨서 미라가 됐다.
“조쉬!!!”
저딴 괴물을 가만둘 수 없었다.
포스를 폭발하듯이 뿜어내며 조쉬에게 달려들어서, 오러로 조쉬의 가시를 잘라냈다.
“크아아악!”
가시가 잘린 조쉬가 아픈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쉬에게 약간이라도 상처를 입게 된 사람들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점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죽어갔다.
“날 끝까지 방해하다니!”
정신을 차린 조쉬가 새로운 가시를 세우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오러를 집중해서 뭉쳤다.
기간틱 블레이드
그렇게 뭉친 오러로 조쉬와의 싸움이 시작됐다.
가시가 날아왔고, 기간틱 블레이드를 세워서 막으면서, 물러서려는 조쉬를 향해 그대로 휘둘렀다.
주위로 오러가 흩어지고, 조쉬의 부러진 가시가 튀었다.
“죽어라!!”
조쉬의 가시가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이대로 놔두면, 아직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이 죽을 게 뻔했다.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기간틱 블레이드를 잘게 쪼개서 조쉬를 감쌌다.
콰콰콰콰콰쾅
가시와 기간틱 블레이드가 부딪히자, 그 반발력에 온몸이 들썩였다.
“찰스 형!!”
제발 찰스 형이 내 뜻을 파악하고, 빠르게 사람들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기간틱 블레이드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깨져 나갔다.
가시가 내게 치켜들었지만, 땅의 축복이 적절하게 땅을 들어 올려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유…신…”
가시가 사라진 조쉬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때, 조쉬의 온몸에 있는 근육이 꿈틀거리더니, 양손과 양발이 각기 창이 되었다.
“죽엇!!”
조쉬는 사지가 창이 된 채 내게 날아왔다.
검막과 호신강기로 창을 막으려고 했지만, 방어기술들이 손쉽게 바스러졌다.
그렇게 뚫린 방어막 사이로 조쉬의 오른손이 내 왼쪽 어깨를 꿰뚫었다.
“크윽!”
칠성검을 휘둘러 조쉬의 가슴을 쳐서 그를 떨쳐냈지만, 구멍이 뚫린 왼쪽 어깨에서는 피가 콸콸 쏟아졌다.
서둘러 최상급 포션을 꺼내서 마시고, 다른 한 병을 어깨에 부었다.
고통이 옅어지고, 상처가 아물어갔다. 그렇지만, 당한 상처에는 마기가 남았고, 마기는 포스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크하하하핫! 상처가 생겼구나! 넌 이제 죽은 목숨이다.”
“이딴 상처!”
이를 악물고 칠성검을 더욱 강하게 움켜잡았다.
“그래 어디 한 번 버텨봐라.”
조쉬가 창이 된 오른손을 허공에 한 바퀴 돌렸다.
그때, 상처에 있는 마기가 들끓기 시작하면서 고통을 주기 시작했다.
고통을 참다보니, 이가 갈렸다.
“크흐흐흑. 고통스러울 거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죽겠지.”
아직 내 목은 붙어있는데, 다 이긴 것처럼 말하는 조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뭘 모르나 본데? 난 고통에 익숙한 사람이야.”
앞으로 쏘아져서 조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방심하고 있던 조쉬가 검을 맞고 뒤로 물러났지만, 변이를 일으킨 후, 조쉬의 몸이 단단해져서 겨우 흠집만 생겨났을 뿐이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백 번, 만 번이라도 찍어주마!”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러서 조쉬의 가슴을 타격했다.
마냥 당할 조쉬도 아니었다.
창이 다시 한번 날 꿰뚫으려고 했지만, 몸을 비틀어서 피한 후, 그대로 다시 가슴을 타격했다.
“그런다고 내가 당할성 싶으냐?!”
“그건 두고 볼…바드득…일이지!”
전투의 긴장보다는 고통을 참는 게 힘들어서 온몸이 땀에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초근접전에서 물러나도 안됐다.
이번에 조쉬를 놓치게 되면, 민간인들이 또 어떤 피해를 당할지 몰랐다.
콰직.
창과 작은 가시를 피하면서 찌르기, 베기 그리고 주먹과 발로 가슴을 계속 두들겼다.
그렇게 서른 번이 넘게 같은 곳을 공격하자, 드디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저리 꺼져!!”
조쉬가 온몸으로 폭발을 일으켰다.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고, 어떻게든 버텨서 조쉬의 목숨을 취해야 한다.
버티고 버티려고 했지만, 폭발의 파괴력에 어쩔 수 없이 뒤로 약간 물러났다.
그때, 조쉬가 왼손의 창을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렸다.
왼쪽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고통스럽더니, 작은 가시가 솟구쳤다.
“크아아아악!!”
끝내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고, 그 사이 조쉬는 게이트를 열고 도망쳤다.
어깨에 박힌 가시를 뽑아낸 후, 게이트로 달려들었지만, 게이트는 이미 닫히고 말았다.
“젠장!”
상급 마나석 열 개로 구매한 마법 스크롤을 꺼내서 찢었더니, 사라졌던 게이트가 다시 열렸다.
“유신아 안돼! 상처가 심하다.”
뒤에서 찰스 형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게이트 안으로 뛰어들었다.
***
유신을 막았어야 했다.
아무리 유신이 잘 싸웠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상처를 당한 상황에서 조쉬 히라니를 쫓아가는 건 무모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사라진 게이트의 좌표를 확인하기 위해 연산에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해야 해.”
여기에 오기 전, 알프레도 켄트의 순간이동 마법서를 본 게 도움이 됐다.
빠르게 게이트 연산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금방 끝나는 일은 아니었다.
한 시간.
닫힌 게이트의 좌표를 확인하고, 다시 여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게이트를 열자마자, 안으로 뛰어들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나검들을 생성할 때였다.
“유신아…”
온몸이 피로 젖은 유신이 조쉬의 잘린 머리를 들고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