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_알프레도 켄트(3)
선배들과의 식사를 끝냈을 때였다.
땅의 축복이 가슴에서 천천히 나왔다.
[람이시여. 인간들이 거인들의 땅 입구 쪽에 왔습니다.]
“인간? 관광이라도 온 건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중 최근에 람께서 만난 에반 히스터라는 자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거인들의 나라를 찾을 거라는 건 예상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있는 사람이 에반 히스터라고 예상도 했었지만, 너무 빨랐다.
나중에야 거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킬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은 훈련 중이었고,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았다.
“일단 저번에 말한 대로 입구부터 막아놔.”
[알겠습니다.]
땅의 축복이 입구를 막기 위해 떠나자, 알프레도 선배가 놀랐는지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방금 그거 뭐야?”
“땅의 축복으로 대지를 관장하는 원소라고 보시면 됩니다.”
“땅의 축복이라… 그거 나 며칠만 빌려주라.”
“안됩니다.”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말고.”
“땅이 축복은 지성체입니다. 지성체를 제 마음대로 빌려주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틀린 말이 아니었고, 알프레도 선배도 더는 빌려달라고 말하지 못했다.
단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막걸리를 연달아 마시는 걸로 표현했다.
“그럼 저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땅의 축복과 나의 대화를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그렇지만, 마리 선배는 분위기로 문제가 생긴 걸 파악했다.
“네. 에반 히스터가 거인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고 합니다.”
“거인? 지구에 거인이 있다고?”
방금까지 삐쳐있던 알프레도 선배가 거인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어디까지 설명을 하고 자리를 벗어날지 고민하는 사이 마리 선배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떡였다.
“알프레도가 아무리 연구에 미쳤어도, 에반 히스터처럼 안하무인은 아니야.”
“마리! 말은 왜 그렇게 하냐? 유신. 너는 왜 수긍하고! 에반처럼 음침한 놈이랑 다르다는 걸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미간을 찌푸린 알프레도 선배를 보며, 포스로 이 방의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거인의 나라, 람의 의식, 마나석과 식량 등 차근차근 지금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마리 선배도 처음 듣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된 겁니다.”
“오케이. 역시 강문이 사람 볼 줄은 알아. 좋아. 오늘 내가 제대로 도와준다. 대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도 다리우스처럼 최상급 마나석 좀… 아니 그게 날 위해서 쓰려는 건 아니고…”
마법 재료에 욕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이런 모습은 또 의외였다.
“네. 도와주시면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럼 갈까? 자 여기 내 손을 잡아.”
내가 알프레도 선배의 손을 잡을 때였다.
“마리. 여기 계산 좀 부탁해.”
순간이동과 함께 거인들의 나라 입구로 오게 되었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일단 말로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거인들과 함께 공격하려고요.”
“상대는 전설인데?”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었다.
“정 안되면, 거인들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를 확실히 막아 버리면 되겠죠.”
“너한테 가장 문제는 에반인가?”
“네. 아직 제가 부족하기는 하니까요.”
“좋아. 그는 내가 처리하지. 대신에 재미난 일을 좀 하자.”
불안감이 감돌았다.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이 저렇게 말할 때면 언제나 내가 피곤했다.
“확실한 도발만 부탁할게. 그럼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알겠습니다.”
알프레도 선배가 몸을 숨겼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외쳤다.
“에반 히스터님! 저 하유신입니다! 전설이라는 분이 썩을 때로 썩었군요.”
외치고 난 후에 조금 더 강하게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후회했다.
그렇지만, 도발은 확실하게 먹힌 것 같았다.
에반 히스터가 천막을 찢고 날아올랐다.
“많이 놀라셨나 보네요?”
“오늘 네놈은 여기서 죽게 될 것이다.”
“그게 마음대로 될까요?”
다중 익스플로전
수십 개의 폭발이 내 주위에 터져나갔다.
모든 방어 수단을 사용해 폭발에서 버티려고 할 때였다.
터져나갔던 익스플로전이 멈추더니, 쪼그라들었다.
“이놈!! 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에반 히스터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말로만 들었던 마법 캔슬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아무 말도 없자, 에반 히스터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는지 또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이것도 막을 수 있나 보자!”
파이어 레인
크게 외쳤지만, 마법은 발동되지 않았다.
나야 누가 이렇게 한 건지 알기에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에반은 자신의 마법이 실패하자,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이 새빨개졌다.
“우와~ 그러다가 얼굴 터져요. 아닌가? 고혈압으로 쓰러지려나?”
“죽여 버리겠다!!!”
그 후로도 에반 히스터는 수많은 마법을 사용했지만, 발동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지칠 때까지 마나를 사용하더니, 갑자기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잠시 잊고 있었어. 이런 짓을 할 놈은 한 명뿐이지. 알프레도 켄트! 빨리 나와라!”
“이제야 눈치챈 거야? 그 자리에 앉더니, 실력도 떨어지고, 눈치도 없어졌어. 아! 실력은 원래 없었지.”
“이익!!”
“그렇게 화내지 말라고. 그리고 약한 우리 막내는 괴롭히지 말고, 나한테 덤벼. 직접 상대해 줄 테니까.”
에반 히스터는 호흡을 고르더니, 알프레도 선배를 노려보며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헬파이어
전설로만 전해지던 마법이 펼쳐졌다.
그런데, 알프레도 선배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 정도는 해야 재미있지. 그럼 나도.”
헬파이어
처음부터 성인 머리만 한 에반 히스터의 헬파이어와 다르게 알프레도 선배의 헬파이어는 주먹만한 불꽃이었다.
그 불꽃은 앞으로 쏘아지면서 점점 크기가 작아지더니, 헬파이어끼리 부딪힐 때에는 손가락 한마디 크기였다.
콰아아아앙!
크기는 달랐지만, 둘의 마법은 굉장한 파괴력을 자랑했다.
마법끼리 부딪혔을 뿐인데, 충격파가 멀리 떨어진 나한테까지 전해졌고, 나 또한, 뒤로 날아가지 않게 포스까지 운용했다.
그래비티
에반 히스터는 언제 캐스팅을 했는지, 오른손으로 헬파이어를 유지하면서 왼손으로 알프레도 선배에게 중력 마법을 발동했다.
그렇지만, 알프레도 선배는 처음부터 서 있던 자리에서 무심한 표정으로 중력 마법을 가뿐히 이겨냈다.
“에반. 너랑 나랑 본질적으로 가장 큰 차이가 뭔 줄 알아?”
“크으으윽…….”
“넌 약하고, 난 강하다는 거지. 재미없다. 이만 끝내자.”
콰칭
알프레도 선배의 주위를 감싸던 중력 마법이 깨져나갔다.
그러자, 손가락 마디만 한 헬파이어가 손톱 크기로 변해서는 에반의 헬파이어를 꿰뚫고 그 기세를 타고, 에반에게 치켜들었다.
콰아앙
에반의 헬파이어는 사라졌고, 알프레도 선배의 헬파이어가 대폭발과 함께 주변을 태우기 시작했다.
지옥의 불 때문에 땅이 녹아내리는 상황에서 알프레도 선배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모든 불이 선배의 손끝으로 모여들더니, 이내 사라졌다.
뜨거운 열기에 땅이 녹아내렸던 흔적만이 방금까지 전설적인 마법이 있었다는 걸 파악할 수 있게 해줬다.
“넌 누구냐?”
응? 갑자기 알프레도 선배가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에 눈에 포스를 집중해서 하늘을 바라보니, 약간의 이질감이 들었다.
그때, 이질적인 느낌이 사라지며, 찰스 형이 나타났다.
찰스 형은 자신의 아버지인 에반 히스터를 마력으로 둥둥 띄우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에반 히스터의 아들인 찰스 히스터입니다.”
“오호~ 아버지와 다르게 재능이 넘치는 녀석이군.”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이제 그만 에반을 넘겨주실까?”
“죄송합니다. 자식 된 도리로 그럴 수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강제로 뺏어와야겠군.”
알프레도 선배가 손을 휘젓자, 찰스 형의 비행 마법이 깨지며, 에반 히스터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때, 찰스 형이 급하게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고, 게이트가 열리며 그 안으로 쏘옥 들어갔고, 게이트는 곧바로 입을 다물 듯 닫혔다.
“그 상황에서 공간 마법이라. 그럼 어디 한 번 잡으로 가볼까?”
게이트가 열렸던 곳으로 향한 알프레도 선배는 검을 휘두르듯 손을 내리긋자, 닫힌 게이트가 열렸다.
“알프레도 선배님! 절대 죽이시면 안 됩니다!”
서둘러 외쳤지만, 알프레도 선배는 한쪽 입꼬리를 올린 후, 그대로 게이트에 들어갔다.
그렇게 몇 명의 인원이 떠났다.
격전이 벌어졌던 이곳에는 에반 히스터가 데리고 온 다크 연합의 마법사들과 자신뿐이었다.
우리는 서로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때, 다크 연합 마법사들이 대형을 갖추더니, 공격 마법을 일으켰다.
비기-절단검
검격과 함께 다가오던 마법들의 연결고리를 끊어냈다.
그렇게 수십 개의 마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다크 연합의 정예답게 마법사들은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앞열에 있던 마법사들이 기초 마법을 사용했고, 뒷열의 마법사들이 고위 마법 캐스팅에 들어갔다.
‘설마 내가 가만히 당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리를 놀려서 기초 마법을 피하며, 마법사들에게 오러를 휘둘렀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는지 마법사들 앞으로 수십 겹의 실드가 생성됐다.
“이딴 거 깨버리고 말지!”
오러를 변형해서 채찍처럼 휘둘렀고, 한 번의 검격에 두세 개의 실드가 깨져나갔다.
그렇게 실드를 부수고 있을 때였다.
실드 뒤편에서 몸을 옥죄어오는 마력이 느껴졌다.
나는 저들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마법을 파훼하는데, 집중했는데, 다크 연합 마법사들은 나와 다른 생각이었다.
“서로 죽이는 싸움에서 나만 안일했네.”
일단 뒤로 물러났다.
마법사와의 전투에서 거리를 두지 않고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방적인 상식이지만, 그 상식을 비틀기 위해, 그리고 저들을 한 번에 처치하기 위해, 흑창을 꺼내 들었다.
앞 열의 마법사들은 흑창을 보고 다시 실드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흑창에 포스를 모을 때였다.
다크 연합의 마법사들의 마력이 한 곳에 뭉치더니, 와이번 모양으로 실체화를 이루고는 내게 날아왔다.
“늦었어!”
포스 미사일
내 손을 벗어난 흑창이 와이번에게 날아갔다.
그렇게 포스 미사일은 실체화된 와이번을 꿰뚫자,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그 여파로 뒷 열에 있던 마법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앞 열에 있던 마법사들이 다급하게 실드에 마력을 더욱 공급하는 게 보였다.
“늦었다니까.”
포스 미사일이 마법사들의 실드에 박혀들었다.
그렇지만, 포스 미사일은 수십 겹의 실드를 뚫지 못하고, 실드에 틀어박혔다.
“휴우~”
포스로 인해 붉게 빛나는 창날이 바로 앞에 멈추자, 앞 열의 마법사 중 한 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펑~”
장난스레 외친 내 말에 흑창은 균열이 가더니, 이내 터져버렸다.
예전과 다르게 포스 미사일은 무작정 폭발하지 않는다.
이렇게 적들을 꿰뚫고, 목표 지점에 도착하면 폭발한다.
콰아아아아아앙!
위력적인 폭발과 함께 다크 연합 마법사들과 그들이 설치했던 천막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렇게 이 지구상에서 그들을 지워버리고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하늘에서 마력의 파장이 생겨나더니, 순간이동과 함께 알프레도 선배가 만신창이가 된 에반 히스터와 기절한 찰스 형을 데리고 돌아온 후, 주위를 둘러봤다.
“휘유~ 우리 막내 그사이에 뭘 했길래, 아무것도 없어?”
“그냥 다 날려버렸어요.”
내 아무렇지 않는 말에 알프레도 선배가 고개를 끄덕일 때, 에반 히스터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이놈!! 나의 정예 연합원을 어떻게 한 거냐?!”
“절 죽이려고 해서, 제가 죽였죠.”
“그들이 너한테 죽었다고? 거짓말하지 마라!”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죠.”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읍!”
알프레도 선배가 마력으로 에반 히스터의 입을 막아버린 후, 어깨를 으쓱였다.
“가만 안두면 어떻게 하려고? 13기동 타격대를 건드리려고?”
“읍읍읍!!”
에반 히스터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알프레도 선배를 바라보다가 입에 피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알프레도 선배.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어떻게 하긴? 일단 돌아가야지.”
그렇게 우리들은 다크 연합의 연합장과 그의 아들을 데리고 교황청으로 돌아갔다.
***
대마왕전 때도 자르지 않고, 긴 머리카락을 고수했다.
그렇지만, 멕시코에서 이탈리아 로마까지 변장해서 오기 위해 과감히 컷트하고, 남자처럼 변장했다.
그렇게 관광을 온 것처럼 꾸민 후, 드디어 교황청 앞에 당도했다.
“여기서부터는 관광객 출입금지입니다.”
성기사가 교황청의 본청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다.
하지만, 이제는 신분을 감출 필요가 없었다.
“성녀님께 셀마 샌즈가 숭배자들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다고 전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3천의 영웅들에게만 준 프리패스권과 다름없는 배지를 꺼내 성기사에게 보여줬다.
성기사는 배지를 받은 후, 서둘러 본청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도착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가슴이 따끔했다.
가슴을 바라보니, 왼쪽 가슴에 커다란 총알구멍이 뚫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