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_알프레도 켄트(2)
루카스를 돌아가게 하고, 알프레도 선배와 함께 교황청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할 때였다.
“그런데, 유신이 자네는 뭘 좋아하나?”
“전 아무거나 다 잘 먹습니다.”
“그래?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 거 아닌가?”
“전 정말 상관없습니다. 저보다는 선배님이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오셨는데, 드시고 싶은 음식을 고르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정말 마음에 드는군.”
알프레도 선배는 생긴 거와 다르게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더니, 손뼉을 마주쳤다.
“자네… 한국 사람이라고 했나?”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하유신입니다. 무례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자네는 너무 벽이 있는 것 같아서요. 이름으로 부르기 싫으시다면, 막내라고 불러도 괜찮습니다.”
“그것도 그렇군. 내가 너무 정 없이 굴었군.”
한국에만 있는 단어 정.
그걸 알고 있다니, 역시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은 한국의 정서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좋아. 식당은 결정했어. 여기 교황청 음식도 훌륭하지만, 역시 거기가 좋겠어. 내 손을 잡게.”
“네?”
“텔레포트를 하려고 하는 거니까 그렇게 부담가지지 말고, 손을 잡게.”
“아. 알겠습니다.”
손을 잡자마자, 알프레도 선배가 손가락을 부딪쳤다.
잠깐의 어지러움을 뒤로하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예전에 13기동 타격대 선배들과 처음 회식을 했던 고급 한정식 집이었다.
“어? 여기 한국인가요?”
“맞네. 한국이지. 우리들이 지구에 오면 꼭 오는 식당이지.”
“네. 저도 선배들과 한 번 왔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예약제라서 못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혹시 알아? 갑자기 예약을 취소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들어가 보세.”
무턱대고 식당으로 들어가는 알프레도 선배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벌써 식당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기보다, 식당에서 거절하면, 근처에 괜찮은 맛집이 있나 검색하려고 할 때였다.
“유신. 뭐하나? 들어오게.”
“네?”
“다행히 오늘 예약한 사람 중 한 팀이 취소를 했다고 하는군.”
“알겠습니다.”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게 알프레도 선배를 따라서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독방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니, 직원들이 음식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때, 꽤 높아 보이는 사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의 지배인을 맡고 있는 김문철이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저번에 식당에 왔을 때는 지배인의 인사가 없었다.
오늘은 왜 지배인이 직접 여기까지 왔을까?
“음식이 입에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아. 저번에도 왔었는데, 맛있었습니다.”
“하유신 영웅님의 재방문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가게는 예약제로 운영됩니다. 그렇지만, 하유신 영웅님을 존경하는 의미로 영웅님께서는 영업 중에 편한 시간에 오시면 언제든지 식사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는 안하셔도 됩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괜찮을 수 있을 테지만, 내게는 저런 말이 부담이었다.
“저 또한 그냥 다른 한 명의 손님과 다를 바 없습니다.”
김문철은 내 말에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영웅님에게 부담을 드릴 수는 없지요. 대신에 한 시간 전에 전화만 주시면 예약을 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이것까지는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할 때, 알프레도 선배가 눈으로 저 정도는 그냥 받으라고 눈치를 줬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편의를 봐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네. 그러면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김문철이 문을 닫고 나가려고 할 때였다.
알프레도 선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오늘 식사에 어울리는 막걸리가 있을까요?”
왜? 하도 많은 술 중에서 갑자기 막걸리를 찾는 걸까?
내가 멈칫한 사이 김문철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네. 괜찮은 막걸리가 있습니다. 도수는 18도로 현재 저희 가게에 예약된 수량을 제외하고는 3병의 여분이 있습니다.”
“그걸로 갔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김문철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런데, 외국 사람인 알프레도 선배가 막걸리는 찾는 것도 특이한 상황이었는데, 도수가 18도나 되는 막걸리가 있다는 소리에 황당했다.
“우리 막내 술 좀 하나?”
“못 마시지는 않지만, 즐기지는 않습니다.”
“그럼 오늘 나를 위해 한잔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노크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문이 열리고, 김문철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막걸리를 가지고 안으로 들어왔다.
“입맛에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만요.”
알프레도 선배는 김문철을 멈춰 세운 후, 막걸리를 열어서는 작은 잔에 따른 후, 빠르게 들이켰다.
“크~ 이거 맛이 아주 좋군요.”
“네. 과일향이 나면서 깔끔한 맛이 일품입니다.”
“여분이 2병 더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따로 빼둘까요?”
“오늘 제가 유신이랑 다 마실 테니, 따로 빼두세요.”
“알겠습니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김문철이 나가고, 알프레도 선배는 내게 막걸리를 권했다.
“자 한잔 받아.”
“감사합니다. 제가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좋지.”
외국 사람이 맞는 걸까? 생긴 것도 백인이고, 이름도 외국 이름인데…
역시 결론은 하나였다.
13기동 타격대 선배들은 한국의 문화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와~ 이거 진짜 깔끔하네요.”
막걸리하면, 탁한 느낌이 강한데, 이건 달랐다.
“내가 오늘 살 테니까, 많이 먹게.”
“감사합니다. 선배님. 맛있게 먹겠습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술이 몇 차례 돌았다.
막걸리 한 병을 모두 비우고, 새로운 막걸리를 시켰을 때였다.
“그래. 아까 마법 스크롤을 분석하고 싶다고?”
“네. 그렇습니다.”
“내가 한 번 봐도 될까?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지구와 일루시안을 통틀어서 나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보기 힘들거든.”
알프레도 선배는 부끄럽지 않는지 자신을 띄웠다.
그렇지만, 저 말에 부정할 수는 없었다.
무혁 대장과 강문 선배 그리고 다리우스 선배까지 인정한 마법사가 알프레도 선배였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공간에서 공간이동 게이트 추적 스크롤과 게이트 강제 오픈 스크롤을 꺼내 건네줬다.
알프레도 선배는 마법 스크롤을 받자마자 펼쳐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쉽지 않나 보다.
저 마법 스크롤을 만든 사람은 공간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는 다크 연합의 수장 에반 히스터였다.
“선배 무리….”
“조잡하군.”
“네?”
“조잡하다고, 스크롤에 새겨진 마법진도 엉망이고, 두 개를 하나의 세트로 사용해야지만, 발동하게 되어 있어. 이런 경우에는 둘 중 하나지. 스크롤에 새겨져 있는 마법들을 융합하지 못할 실력이거나, 두 배로 돈을 벌려고 이렇게 만들었거나.”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알프레도 선배는 마법 스크롤을 대충 말아서 내게 돌려줬다.
“그럼 알프레도 선배는 이걸 그냥 만들 수 있으세요?”
“마나석이랑 재료만 있으면, 아티팩트로도 만들 수 있어.”
식사 중이라는 것도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드디어, 에반 히스터에게 빅엿을 먹일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알프레도 선배! 제가 부탁드립니다.”
“응? 뭘?”
“제가 모든 재료를…”
“그만!!!”
높은 고음과 함께 거칠게 문이 열리더니, 마리 선배가 매서운 눈빛을 한 채 안으로 들어왔다.
“마리 선배.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세요?”
“널 보호하기 위해 왔지.”
“네?”
마리 선배는 매서운 눈빛으로 알프레도 선배를 노려봤다.
“유신아. 네가 뭘 모르나 본데, 알프레도는 욕심이 많아. 그것도 마법 연구 욕심이 아주 많지. 너한테 뭘 해주겠다고 하고, 재료만 있다면. 이라고 하지 않았어?”
“네…그렇기는 한데요.”
“그거 수법이야.”
수법? 설마 내게 재료를 뜯어가려고?
“마리. 유신이 오해하게 말을 왜 그렇게 해? 내가 막내한테까지 재료를 뜯어갈 나쁜 마법사로 보여? 나는 속이 여리고, 착한 마법사야.”
저렇게 말하니, 오히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알프레도 선배. 선배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응. 그래 말해.”
“제게 한 말은 사실인가요?”
“뭐? 나한테 보여줬던 게이트 추적 및 강제 오픈 말하는 거야? 그 정도는 껌이지.”
“좋습니다. 만들어주세요.”
“됐어. 마리 때문에 김샜어.”
방금까지 만들어준다는 뤼앙스를 풍겼던 알프레도 선배가 입을 싹 닫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었다.
“마리 선배도 여기까지 오셨는데, 식사 좀 하세요. 여기 맛있어요.”
마리 선배는 서서 한동안 알프레도 선배를 노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조용한 식사가 진행됐고, 식사가 끝나갈 때쯤, 알프레도 선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유신아 왜 더 부탁하지 않는 거야?”
“안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냥 필요할 때마다 에반 히스터에게 상급 마나석 열 개 주고 한 세트씩 더 사면 됩니다.”
“뭐? 이 조잡한 마법 스크롤을 상급 마나석 열 개나 줬다고! 그것도 에반 히스터한테?!”
역시나였다.
마법사는 대부분 자존심이 높다고 했다.
거기다가 알프레도 선배는 분명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구와 일루시안을 통틀어서 최고의 마법사라고 했지.’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할 정도면, 거짓말쟁이거나, 자존심이 높다는 거였다.
“하유신. 나한테 상급 마나석 열 개만 줘. 그러면 내가 똑같은 걸 아티팩트로 열 개나 만들어 줄게.”
“하지만, 다른 재료도 구해야 하잖아요. 저는 마나석 말고는 가진 게 없어요.”
마나석.
모든 마법사에게 필요한 최상의 마법 재료.
그걸 가지고 있다는 걸 어필했다.
즉,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마나석이고, 인건비도 마나석으로만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유신!”
짧고 강렬하게 마리 선배가 날 불렀다.
물론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마리 선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나는 훨씬 많은 마나석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가 지금도 마나석은 점점 쌓여만 가고 있었다.
“알프레도 선배. 제가 원하는 아티팩트 하나당 상급 마나석 열 개를 13기동 타격대가 아닌, 선배에게 그냥 드리겠습니다. 물론, 모든 재료는 선배가 구하셔야 하고요. 어떠세요? 하시겠어요?”
“콜!!”
알프레도 선배는 침까지 튀어 가면 외쳤다.
***
유신이 아무리 우리와의 거래를 끊어 버린다고 마나석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에반 히스터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출발하지.”
“알겠습니다. 게이트 오픈.”
공간이동 게이트가 열렸고, 순식간에 도착한 곳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이곳에서 유신은 거인을 만났고, 마나석을 구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마나석은 여기에 있을 게 분명했다.
“아들놈이 협조적이었으면, 더 쉬웠을 텐데.”
찰스는 유신과의 관계를 끊은 걸 부정적으로 봤다.
그래서 거인들의 도시를 찾아가는 걸 반대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하유신이 거인들의 도시에서 몇 명의 인원들을 구출한 적이 있었다.
그들에게 거금을 주고 안내를 받으면 됐다.
“빨리 안내해라.”
“네. 알겠습니다.”
다크 연합의 정예들과 한참을 이동해서 도착한 곳은 가파른 절벽의 아랫부분이었다.
“이 근처에 동굴이 있습니다. 그 동굴로 들어가면, 거인들의 나라가 나옵니다.”
“좋다. 자! 다들 빨리 찾아라.”
“알겠습니다.”
정예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절벽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마나석 걱정 없이 원하는 만큼 마법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왔다.
그렇게 노을이 질 때까지 수색은 계속됐다.
“아직도 찾지 못했다고!”
“죄송합니다. 그런데, 반경 10km를 다 뒤져 봤지만, 동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몰라 마법 탐지 및 결계 탐지까지 진행했지만,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했던 그놈을 데려와라.”
“알겠습니다.”
안내인은 순식간에 잡혀 와서는 무릎을 꿇게 됐다.
“이놈. 우리에게 감히 거짓으로 안내한 것이냐?”
“아닙니다. 정말 여기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왜 거짓을 말하겠습니다. 계약금도 받았고, 안내만 제대로 하면 평생 써도 다 못 쓸 돈을 받는데 말입니다.”
한쪽에 서 있는 부하를 바라보니,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안내인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생각한 일이 막히자, 화가 치솟아 오를 때였다.
“에반 히스터님! 저 하유신입니다! 전설이라는 분이 썩을 때로 썩었군요.”
밖에서 하유신의 외침이 들렸다.
이놈이 뭔 짓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확실히 교육해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