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_화공(2)
유신은 볼뜨의 전략을 보고 깨달았다.
‘해보고 싶다. 나도 해보고 싶어.’
어린아이의 치기 같은 점도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 생각한 전략이 성공하면 방어에도 용이하고, 자신의 몸을 회복하는데 시간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작전의 완성도를 위해 네르구이를 설득해 대동했다.
퍼퍼펑
아람이 도깨비불로 시선을 끌자, 뒤늦게 잠을 자던 오크들이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확인한 유신은 천막 근처에 땅을 팠다.
파박 파파팍
부족한 포스까지 사용해 작은 구덩이를 팠다.
그리고 구덩이에 말통을 집어넣고는 다시 파묻었다.
말통에는 기름과 마정석 가루 그리고 마비초가 섞여 있었다.
삐 삑!
시계를 조작해 좌표를 네르구이에게 보내고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다음 목표 지점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오크들에게 안 들킬 순 없었다.
서걱
그래서 재빨리 그들의 숨통을 끊어내고는 다시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하기를 수십 번.
아공간에 있던 서른 개의 기름통을 전부 파묻었다.
‘몬스터 사체를 챙겨 놓길 잘했네.’
유신은 작전에 들어가기 전, 아공간에 있는 몬스터 사체에서 마정석을 분류했다.
마정석은 에너지의 집합체이지만, 쉽게 폭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강제로 폭발시키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유신이 중급 마정석에 포스를 집어넣었다.
이이잉
중급 마정석이 붉게 달아오르자, 최하급 마정식이 3분의 1 정도 채워져 있는 백팩에 집어넣고는 그대로 백팩 채로 던졌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폭발과 함께 불꽃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수많은 오크가 있던 막사가 폭발에 휘말렸다.
현장은 곧 아비규환이 되었다.
“취이이이이익~!!”
다친 오크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화르르르르륵
폭발로 인해 옮겨붙은 불들이 천막을 태웠다.
운 좋게 폭발을 피한 오크들은 망연자실할 뿐이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동안 유신은 오크들을 피해 식량창고로 들어갔다.
“췩. 밖이 왜 이렇게 소란스럽냐?”
“취익~ 신경 쓰지 마라. 우린 지킨다. 여기. 취이익.”
“취익 알았다.”
식량창고에는 다섯 마리의 오크가 꿈쩍하지 보초를 서고 있었다.
유신은 상단세로 검을 세운 후 보초를 서는 오크들에게 달려들었다.
유성 찌르기
푸른 잔상을 일으킨 유신은 오크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들을 지나쳤다.
퍼퍼퍽
한 번에 오크 다섯 마리의 머리통이 꿰뚫렸다.
쓰러진 오크의 옷을 벗긴 유신은 오크 사체가 싸여있는 곳으로 오크들을 던져 넣었다.
“여긴 오크들만 있네.”
유신이 처음으로 들어온 식량 창고에는 다양한 오크 사체가 있었다.
불 탄, 감전된, 검에 베인, 화살에 꿰뚫린… 각양각색으로 죽은 오크들을 보다가 아공간에서 작은 액체가 담긴 유리병과 물총을 꺼냈다.
그리고 물총에 액체와 물을 넣고는 조심히 섞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총 싸움을 해볼까?”
유신은 몸에 포스 막을 두른 후, 오크 사체에 물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광경이었고, 너무나 장난스러웠다.
하지만, 유신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내 물총에 있는 액체를 모두 사용한 유신은 급히 다른 식량창고로 향했다.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이이잉
손목시계가 진동을 내기 시작했다.
아직 식량창고는 많이 남았지만, 유신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재빨리 몸을 피했다.
그렇게 오크 군단을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아람이 아직 공중에 뜬 채 도깨비불을 쏟아붓고 있었다.
“예상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네? 그래도 이제 시간이 다 된 것 같은데. 아람!”
유신이 오른손을 내밀고 외치자, 손바닥 위로 아람이 나타났다.
하지만, 타이밍이 참 안 좋게도 아람의 도깨비불이 유신을 향해 쏘아졌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고, 막기에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도깨비불이 유신의 심장을 가격했다.
쑤욱
순간 심장에서 황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도깨비불을 흡수했다.
“응?”
“엥?”
위험한 상황은 순식간에 황당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유신과 아람은 둘 다 할 말을 잃었다.
“뭐냐 인간? 방금 뭐였냐?”
“…응? 몰라? 뭐지?”
몸이 멀쩡한 걸 확인한 유신은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람을 조심히 쥐었다.
“일단은 빨리 도망가자.”
“…알았다.”
그렇게 유신과 아람이 재빨리 오크 군대에게서 멀어지려고 노력할 때였다.
달빛 한 점 보이지 않은 검은 하늘 위로 거대한 발리스타가 오크 군대에 내리꽂혔다.
콰앙
콰콰콰콰쾅
발리스타는 유신이 묻어둔 말통에 정확히 떨어졌다.
그리고는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콰콰콰아아아앙
수십 곳에 발리스타가 꽂혔고, 대폭발이 일어났다.
그렇게 유신이 담당했던 곳은 폭발로 인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신은 달리면서 뒤를 돌아봤다.
자신이 생각했던 거 이상의 거대한 폭발이었다.
그로 인해, 유신이 오크 사체에 뿌려둔 독은 사용도 하지 못하고 증발했다.
“인간! 비겁하다!!”
갑자기 화를 내는 아람의 목소리에 유신은 다리를 쉬지 않으면서 고개를 숙여 아람을 바라봤다.
“응? 뭐가?”
유신의 태평한 목소리에 아람은 더욱 짜증이 치솟았다.
“뭐긴 뭐냐! 내기를 말하는 거지. 난 혼자였고, 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다. 이건 불공평한 내기다.”
“무슨 소리야? 내기에 그런 규칙은 없었잖아.”
당연하다는 듯한 유신의 말에 아람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이 익….”
아람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가 말았다.
내기의 규칙을 들먹이는 수법은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인간을 골려주었는데, 자신이 직접 당하자, 매우 불쾌했다.
“역시 인간은 믿을 수가 없어.”
“도깨비만 할까?”
“…젠장 내가 대도깨비만 되면…으갸갸갸걋!”
살심을 품은 아람은 곧바로 고통이 몰려왔다.
손바닥 위에서 난리를 피우는 아람을 보고 유신은 조용히 중급 마나석을 꺼냈다.
“이기면 상급 마나석이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열심히 해줘서 이거라도 하나 더 주려고 했는데… 뭐 또 나에 대해 나쁜 마음을 먹었으니…안 되겠다.”
“으갸갸갸…아드득. 인간…바드득.”
“에휴~ 고통을 참기 위해 이까지 가는 거야?”
아람은 유신이 너무나 얄미웠다.
수천 년을 살면서 얄미워서 살심까지 일어나는 것은 또 생애 최초였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노력했다.
다른 것보다 유신이 들고 있는 중급 마나석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인간이든, 도깨비든, 지적 능력이 있는 생물체들에게 욕심은 좋은 계기가 되었다.
“후우 후우우우~ 이제 괜찮다. 인간. 내 친히 중급 마나석으로 이번 일을 용서해 주겠다.”
유신은 방금까지 자신의 손 위에서 살기까지 발산하던 아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지자,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을 손쉽게 컨트롤하는 게 대단하다고도 느꼈다.
“괘씸하기는 한데, 나도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거든. 이거 줄게. 대신에 앞으로 하나만 약속해줘.”
“…뭐냐 인간?”
“그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발 그 인간이라는 말 좀 하지마. 내 이름은 하유신이야. 하유신! 내가 너한테 주인님, 마스터, 보스, 리더, 멋쟁이 등으로 부르길 바라지도 않아. 그저 이름으로만 불러주라.”
유신은 랩퍼로 빙의해 호흡 한 번 마시지 않고 쏘듯이 말했다.
모든 말을 다 들은 아람은 신선했다.
인간들이 지적 능력을 가지기 전부터 대도깨비였던 자신에게 이런 존재는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유신에게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좋다. 인…아니 유신. 앞으로 유신이라고 불러주마.”
“땡큐~ 자 여기.”
아람은 중급 마정석을 건네받자마자 품에 갈무리했다.
그때 유신의 손끝에서 포스가 움직이는 걸 느끼고는 황급히 손에서 벗어났다.
“유신! 나도 부탁이 있다.”
“부탁? 무슨 부탁?”
“제발 아공간에 넣지 말아라.”
“응? 왜?”
“거기가 얼마나 답답하고, 따분한 곳인지 아냐? 나도 네 부탁을 들어줬는데, 너도 들어주라는 거다.”
펄쩍 뛰기까지 하는 아람을 보고 유신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알았어. 대신에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안 되고, 내기도 금지. 어때?”
“이…이익.”
“싫어?”
처음부터 아람은 아공간에 들어가는 게 싫어 자존심을 구기고 부탁했던 거다.
거기다가 아기 도깨비의 몸으로는 제대로 된 내기도 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내기 금지’라는 조항이 들어가자, 괜시리 심술이 났다.
그래서 바로 대답하지 못하자, 유신의 손이 다가왔다.
탁!
아람은 유신의 손을 쳐내며 노려봤다.
“왜 그렇게 성질이 급하냐? 대신에 내기하기 전에 허락을 맡겠다.”
“우리 서로 계속 하나 해주고 하나 딜하고 이러다가 끝이 없겠는데?”
“이거만 해주면 된다.”
고심하던 유신은 이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자. 네르구이 아저씨와 만나기로 했던 곳에 다 왔어. 이제 모습을 숨겨.”“흥~”
콧방귀를 끼었지만, 아람은 이내 순순히 몸을 투명하게 바꾸었다.
대충 아람과의 일을 일단락 지은 유신은 전력 질주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하아 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고 도착한 곳에는 네르구이가 그레이트 울프와 함께 서 있었다.
***
“자네 괜찮나? 몸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남들이 보기에는 네르구이가 유신을 걱정하는 건 불필요한 일로 보였을 거다.
유신은 홀로 백만 오크를 며칠간 막은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네르구이도 유신을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 유신의 상태는 엉망진창으로 보였다.
호흡은 거칠었고, 얼굴을 새빨갰다.
자세히 바라보니, 온몸에 잔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헤헤~ 괜찮아요.”
“…괜찮기는 아직 몸도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던 건가?”
“헤헤~”
호흡을 정리하며 해맑게 웃는 유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기에 서둘러 유신을 그레이트 울프에 태우고는 성벽을 향해 출발했다.
“꽉 잡게.”
“걱정하지 마세요.”
네르구이는 성벽으로 향하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자신은 언제 유신과 같은 열정이 있었을까?
‘아니 살면서 내가 이 젊은 친구와 같은 열정이 있기는 했었나?’
유신의 행동과 희생은 열정이라는 말로 다 풀 수 없었다.
처음 유신이 가면을 쓰고 있을 때는 최소 자신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년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가면이 부서지고 맨얼굴을 본 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막내딸보다 어린 청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네르구이의 생각이 점점 깊어질 때쯤 성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거의 다 왔네.”
“……”
평소라면 뒤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던 유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때였다.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던 유신의 손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쿠다다탕
유신이 땅에 떨어져 굴렀다.
그레이트 울프의 목덜미 털을 잡아당긴 네르구이가 쓰러진 유신에게 되돌아갔다.
그리고, 서둘러 그레이트 울프에게서 내린 후 유신의 몸을 만졌는데, 너무나 뜨거웠다.
“자네 괜찮나? 정신 차려보게. 칼! 정신 차리게!!”
유신은 네르구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에 눈을 슬쩍 뜨더니, 그대로 피를 토했다.
“우웩~”
한바탕 피를 쏟은 유신은 네르구이에게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그대로 기절했다.
네르구이는 유신의 상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정신 차리게 칼!!!”
성급히 유신을 업은 네르구이는 성벽으로 뛰기 시작했다.
공중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아람은 성벽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렇게 상태가 안 좋았다고? 인간이…유신한테 마나석을 더 받아야 하는데…”
마나석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아람은 서둘러 성벽으로 향하는 유신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