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_스카우트가 된 이유(2)
도깨비의 결투 신청.
설화에서 보면 도깨비는 씨름을 좋아하고, 승부를 씨름으로 낸다고 했다.
하지만 앞에 있는 도깨비는 씨름을 하자고 한 말이 아닐거다.
”내가 왜? 당신과 싸워야 하죠?“
“저도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전 여기에 싸우러 온 게 아닙니다.”
도깨비가 쉽게 수긍하자,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싸움은 믿음을 위한 싸움입니다.”
그냥 넘어갈 도깨비가 아니었다. 이러나저러나 이미 싸워야 할 것 같기에 나는 몸의 포스를 돌리며 한 번 더 배짱을 튕겼다.
“그럼 다음에 하죠. 어머니가 현재 이 백화점에서 쇼핑 중이라서요. 쇼핑을 망칠 순 없죠.”
“쇼핑이라··· 맞아요. 여자의 쇼핑을 망치면 안 되죠. 대신 이건 어떠세요?”
일단 말이라도 싸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
“뭔가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걸 주는 겁니다.”
“원하는 거요?”
“네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서로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선배들은 나중에라도 도깨비를 만나게 되면, 꼭 주의해야 하는 게 있다고 했다.
절대 도깨비와 내기와 약속을 하지 말라고, 싸움은 어떻게 넘긴 것 같은데···
“인간인 제가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빌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누군가를 죽여달라고 하거나, 도덕적으로 문제만 없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원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닙니다.”
적이라 알고 있던 도깨비가 도덕을 따지니 그것 또한 생소한 느낌이었다.
나는 도깨비가 왜 내게 나타났고,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제 소원이 뭔지는 아세요?”
“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소원은 말이죠···”
“그만!!”
도깨비가 자신의 소원을 말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니 평상복 차림의 철호 선배가 도깨비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철호 선배!!”
“유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철호 선배는 거칠게 테이블을 치우고 도깨비와 내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런이런 새로운 객이 절 방해하는군요.”
“닥쳐라! 배덕자 도깨비!!”
“제가 도깨비는 맞지만, 배덕자는 아닙니다.”
“냄새나는 마기나 지우고 그런 소리를 해라.”
“마기가 역한 냄새가 나기는 하죠. 하지만 본인 앞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이 도깨비 아람 가슴이 아프네요.”
“꺼져라!”
도깨비가 아무리 능글맞게 굴어도 철호 선배는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보기만 했다.
“···좋습니다. 떠나겠습니다. 꼭 오늘만 날이 아니니, 그리고 당신 한 번만 더 그런 눈으로 절 쏘아보면 그 두 눈을 뽑아버리겠습니다.”
“흥!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철호 선배의 말에 도깨비는 화가 났는지 기세를 끌어 올렸다. 하지만, 철호 선배는 도깨비가 기세를 올려도 그저 매섭게 쏘아보기만 할 뿐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도깨비가 기세를 가라앉히더니 입가에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도 도깨비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군요. 흥미가 떨어졌습니다. 이만 가보도록 하죠.”
도깨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푸드코트를 벗어나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하유신이라고 했나요?”
“ㄴ······”
나는 순간 대답하려고 했다가 멈칫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다음에 다시 보도록 해요. 아 그리고 돈을 소원으로 빌면 백억까지 한 번에 드릴 수 있습니다. 뭐 무리를 한다면 더 드릴 수 있고요.”
“???”
도깨비는 떠나면서 백억을 말했다.
왜 갑자기 백억을 말했을까? 설마 내가 소원으로 돈을 달라고 할 줄 알았나?
그렇게 도깨비가 떠나고, 철호 선배가 매서운 표정을 풀면 나를 돌아봤다.
“유신. 괜찮나?”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철호 선배님 어떻게 제가 위험하다는 걸 아시고? 설마 선배님들께서 ···”
“아 여기 백화점에 임무 떠나기 전에 시계 A/S를 맡겨서 찾으러 왔다. 그러다가 도깨비의 냄새를 맡고 여기에 와본 거다.”
“네? 시계요? 그리고 냄새요?”
“냄새는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고, 이 시계로 말할 것 같으면···”
철호 선배가 갑자기 팔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내게 보여줬다. 그리고 한동안 시계의 역사와 브랜드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서야 철호 선배의 TMI는 끝났다.
“그런데 유신은 왜 여기 있어?”
“쇼핑 왔습니다.”
“혼자?”
“아뇨. 어머니랑 왔습니다.”
“그렇군. 그럼 조심히 들어가라. 혹시 또 도깨비가 나타나서 치근덕거리면 말도 섞지 말고 바로 우리한테 연락해라.”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여러 의미로 공포의 쇼핑이 끝나고, 유신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도깨비가 다시 나타난다면 나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까?’
‘지금의 내 실력으로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대체 얼마큼 강해져야 몬스터들에게서 무사히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고민은 날이 새도록 계속됐다.
그리고 유신은 하나의 결론을 얻게 됐다.
“강해지자! 누구보다 더!!”
그 말을 남기고 유신은 아침에 잠이 들어 꼬박 24시간을 잤다.
유신이 잠이 든 사이 무혁에게서 선물 받은 유신의 은색 팔찌가 한 번씩 빛을 뿜어냈다.
***
유신이 휴가를 받은 동안 13기동 타격대의 다른 사람들도 진정한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처럼 놀고, 먹고, 자고를 반복하고 있어서 딱히, 생활 패턴의 변화가 없어 보였지만, 아주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바로 유신의 훈련을 맡을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강문은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밀린 예능과 드라마를 봤다.
“아흐~ 다 봤다. 유신아 리모컨 어디 있어? 유신아!”
소파에 누워 기지개를 피던 버릇처럼 유신을 불렀지만, 당연히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 맞다. 아직 휴가 중이지.”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강문은 유신이 자리에 없으니 사소한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때 자신의 애검을 살살 닦고 있던 유호가 투정을 부리듯 말했다.
“문~ 우리 막내 그냥 휴가 복귀시키면 안 돼?”
“유신이 휴가 며칠 지난 거지?”
“이제 이틀 끝나고 오늘이 삼일차야. 나도 그렇고 다리우스도 그렇고 뭔가 불편하네.”
“이참에 우리도 적응해야 한다.”
“철호 그게 무슨 말이야?”
“요즘 우리가 너무 게을러졌다. 이제 우리도 복귀까지 1년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하긴 벌써 절반이 지났네. 그럼 오랜만에 우리 막내도 없는데 몸이나 좀 풀어 볼까? 어때 철호 오랜만에 한 판?”
“좋다. 바라던 바다.”
철호와 유호가 서로 대련을 위해 검과 방패를 챙기고 있을 때, 컨테이너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선배님들 잘 지내셨습니까?”
힘찬 인사와 함께 유신이 두 손 가득 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아직 식사 전이시죠? 제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 왔습니다.”
유신은 그 말과 함께 봉투를 사무실 가운데에 있는 긴 테이블 위에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유신의 행보에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은 어리둥절해하며 테이블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막내 브로~ 어? 이건!! 햄버거?”
“네 다리우스 선배 햄버거입니다. 요 앞 전철역 입구에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장님이 하시는 햄버거 가게가 있는데 선배님들 생각나서 사 왔습니다.”
“막내 브로~ 나 햄버거 별로 안 좋아해. 쌀에 김치를 먹어야···”
“다리우스 선배.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김치 버거도 있습니다.”
“김치 버거?”
“네. 시식해 보니까 정말 맛있던데요.”
“와우~”
‘김치 버거’라는 말에 행복해하는 다리우스 선배를 보니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유신!”
“네 철호 선배. 빨리 와서 드세요.”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건 아닌가?”
“네?”
“너무 양이 적다. 겨우 스무 개는 내게 식후 간식밖에 되지 않는다.”
철호 선배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나도 근 일 년 넘게 같이 지내왔는데, 우리 13기동 타격대의 선배들을 모르겠느냐?
“철호 선배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이제 13기동 타격대입니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아공간을 열어서 묵직한 10개의 봉투를 추가로 꺼냈다.
한 봉투당 10개의 햄버거 셋트가 있으니 선배들도 만족할 것이다.
“식사는 조금 이따가 하시고 이 정도면 간식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철호 선배 어떠세요?”
“좋다. 이 정도면 간식으로 충분하다.”
“막내 브로~ 대체 김치 버거는 어디 있는 거야?”
“아 잠시만요.”
나는 다시 아공간을 열어 따로 체크 되어 있는 봉투를 꺼냈다.
“김치 버거는 따로 판매하는 버거가 아니라서 겨우 10개만 주문할 수 있었어요.”
“아냐 브로~ 밥은 이따가 먹어야지. 에피타이저로 딱 좋은 양이야.”
그렇게 13기동 타격대의 컨테이너 사무실은 한동안 햄버거 봉투의 뽀시락 거리는 소리와 먹는 소리만 들렸다.
“그런데 유신이 너 휴가 아니었냐?”
130개의 햄버거 세트가 순식간에 사라졌고, 대충 배가 차자 이제야 선배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 휴가 맞습니다.”
“그런데 왜 왔어?”
“당연히 선배님들 얼굴이 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어? 생각해보니까 대장님이 안 보이시네요?”
“아~ 대장? 어디 가셨는데 아직 안 오셨어.”
“그래요? 대장은 아침부터 바쁘시네요.”
“무슨 소리야? 우리 복귀한 날부터 지금까지 안 들어왔는데.”
“네?!”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뭐 좀 물어보려고 했죠.”
“뭔데?”
강문 선배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과연 선배들은 놀릴 것인가? 아니면 진지하게 받아줄 것인가?
그렇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역시 언제가는 선배들도 알 일이기에 쉽게 입을 뗄 수 있었다.
“대장처럼 강해지는 방법이요.”
내 말에 햄버거를 다 먹어 치우고, 감자튀김을 먹던 선배들의 손이 멈췄다.
“브로~ 진정으로 하는 말이야?”
“···네.”
“······”
컨테이너 사무실 안은 정적으로 가득 찼다.
이건 뭐 놀리지도 그렇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다른 반응이라서 나까지 어색했다.
“유신. 도깨비 때문인가?”
“······”
철호 선배의 말에 나는 아니라고 딱 잡아뗄 수 없었다.
내가 강해지고자 한 것은 언제나였다.
13명의 전설을 동경했고, 3천의 영웅을 바라보고 커왔다.
하지만, [노오력가]라는 능력은 강해지고자 하는 내 의지를 한 풀 꺾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 앞길을 막았었다.
누구나 받아주는 아카데미에서도 날 기피했고, 아카데미를 졸업한다고 해서 헌터가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나마 공격 능력이 없더라도 받아주는 기동대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었다.
이젠 내 생각을 정확히 선배들에게 말할 차례다.
“철호 선배. 아니라고 말하기는 힘들겠네요. 하지만 꼭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강문 선배 이제는 물어봐야겠습니다. 아직 제가 정식 대원은 아니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던 절 왜? 13기동 타격대에 스카웃 하셨나요?”
과연, 강문 선배는 내게 어떤 말을 할까?
예전부터 궁금했지만, 물어보면 나만 상처를 받을까 봐 물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물어봐야겠다.
아니 확인받아야겠다.
“널 13기동 타격대에 데리고 온 이유를 말하는 거지?”
“네.”
“질문에 답변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나 물어보자. 우리 13기동 타격대에 들어와서 어땠어?”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