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_스카우트가 된 이유(1)
전철역 앞 햄버거 가게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꾸준하게 손님이 있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배달을 제외하고는 손님들의 발길을 뚝 끊겨 버렸다.
알바생들의 입장에서는 달콤한 휴식이라서 기분이 좋았지만, 사장 입장에서는 갑자기 손님이 줄어들자 절로 인상이 써질 수밖에 없었다.
“한창 바쁠 때인데 왜 이렇게 손님이 줄었지?”
딸랑~
“어서 오··· 잘 갔다 왔어?”
사장은 손님인 줄 알고 기쁜 마음에 응대하려다가 배달 알바생인 걸 확인했다.
“네 사장님. 그런데 앞에 웬 거지에요?”
“거지?”
“네. 어떤 거지가 우리 가게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데요?”
배달 알바생의 말에 주문받던 알바생은 혹시나 하고 질문을 던졌다.
“혹시 먼지가 뿌옇게 앉은 검정색 옷에 왼쪽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지 않았어요?”
“아 맞아요.”
“저기 사장님···”
주문을 맡은 알바생이 사장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했다.
사장은 혹시나 하고 알바생들과 함께 가게 통유리창을 통해 바깥 동태를 살펴봤다.
바깥에서는 유신이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햄버거 세트 포스터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장은 그런 유신을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불고기 버거 세트 하나만 포장해라.”
“네?”
“빨리.”
“버거 만드는 건 아빠잖아요.”
“가게에서는 사장님. 됐다. 내가 후딱 만들 마.”
알바생들과 사장이 조심히 자리를 떠서 각자의 일을 하기 위해 떠날 때, 바깥에 있는 유신은 연신 침을 삼키고 있었다.
“꿀꺽~ 본부로 돌아가서 선배들한테 돈이라도 빌릴까? 아니 그러다가는 또 어떤 트집이 잡힐지 모르는데···”
유신은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그렇다고 기동대 본부로 돌아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버거 포스터를 보며 침을 삼키고 있을 때, 햄버거 가게 문이 열리며, 사장이 밖으로 나왔다.
“거기 자네.”
“네? 저요?”
“그래. 자네 부른 거야.”
“네 무슨 일이세요?”
“언제까지 영업 방해할 건가?”
햄버거 가게 유니폼을 입고 있는 중년 아저씨의 말에 유신은 뒤늦게 자신의 상황을 파악했다.
임무 때문에 약 두 달간 자르지도 정리하지 못한 더벅머리에 흙먼지로 더럽혀진 남성이 칼을 차고 가게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면, 누구든지 싫어할 게 뻔했다.
“죄···죄송합니다.”
“알면 됐네. 잠깐 이리 와 보게.”
“···네···”
유신은 자신이 잘못한 게 있기에 군말 없이 중년의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아저씨가 햄버거가 포장된 종이 봉투를 자신에게 건넸다.
“이게 뭔가요?”
“뭐긴 뭐야? 햄버거지.”
“아니 그러니까···”
“젊었을 때는 잘 먹어야 해. 그리고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말게.”
사장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유신은 사장이 건네준 햄버거를 바라보다가 뒤늦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 인사를 전한 유신은 해맑게 웃었고, 곧 햄버거 포장을 벗겨서 먹으며 자리를 떴다.
그때 하얀 턱시도에 중절모와 함께 지팡이를 든 도깨비 아람이 한 빌딩 옥상에서 떠나는 유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이런 저렇게 궁상맞을 수가 있다니. 도깨비들도 저러지는 않는데 말이죠.”
아람은 계속 유신을 관찰했는데, 햄버거 세트를 비운 유신이 간단히 몸을 풀더니, 어딘가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집까지 뛰어가나 보네요. 저 사람은 돈으로 꼬셔서 하람이 있는 곳을 알아봐야겠어요.”
혼잣말을 내뱉던 아람은 멀리서 유신의 뒤쫓기 시작했다.
아람이 있던 빌딩 옥상에 갑자기 강문이 나타났다.
“흠흠. 여기서 도깨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는데?”
강문은 옥상을 한참 둘러보며 도깨비를 찾아봤다.
“내가 예민하게 굴었나?”
끝내 도깨비를 찾지 못한 강문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
해가 지기 전,
유신은 기동대 본부에서 자신이 지내고 있는 부모님의 낡은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횡단보도를 건넬 때 외에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전력 질주로 집까지 달려왔지만, 유신의 호흡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엄마한테 오늘은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해야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왔기에 박희선 여사의 맛있는 집밥을 기대하며 나는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박여사님 아들 배고파~ 밥 줘”
벌컥!
내 목소리를 듣고 박희선 여사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나 먼저 좀 씻을게.”
나는 방으로 들어가서 속옷을 챙겨 나와 욕실로 향할 때 어머니의 등짝 스매시가 작렬했다.
짜아아악~!!
나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등짝 스매시를 날리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피하지도 그렇다고 방어하지도 않았다.
내가 피하면 엄마의 손은 애꿎은 벽을 쳐서 다칠 것이고, 방어한다면, 벽을 치는 것보다 더 크게 다칠 게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그대로 맞아주는 거였다. 그것도 몸을 지키려는 포스를 최대한 억제해서 말이다.
“크아아아악!!!!”
그리고 후회했다.
너무나 아팠기 때문이었다.
나는 화장실 앞을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맞다. 엄마 공격 능력 갖고 있었지.’
“닥치고 무릎 꿇어.”
“크아아악~”
“한 대 더 맞을래?”
“아닙니다.”
나는 박희선 여사님이 손을 들자, 재빨리 무릎을 꿇고 자리에 앉아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들.”
“네 어머니.”
“아들이 뭘 잘못한지 알아?”
“···연락 못 해서 죄송해요.”
내 대답이 끝나자,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다가와 안아줬다.
“알면 다시는 그러지 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몸은?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없어요.”
“그래. 자세한 이야기는 이따가 하고 씻는 동안 엄마가 밥 차려줄게. 뭐 먹고 싶어?”
“음···닭볶음탕이요.”
내가 좀 오래 씻기는 했지만, 씻는 동안 집안은 더욱 부산해졌다.
어머니는 급하게 장을 봐온다고 나갔다가 한아름 장을 봤고, 아버지는 웬일로 일찍 퇴근했으며, 동생은 이제 일어났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만에 오순도순 저녁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둘러앉았고, 나는 아빠의 명으로 차를 우렸다.
“후릅~ 그래. 아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대체 왜 연락이 안 된 거야?”
“그냥 간단하게···”
“설마 너도 저기 북한 찬탈 임무에 동원된 거냐?”
아버지의 말에 나는 순간 갈등했다.
분명 북한 지역으로 넘어가서 인류를 위해 몬스터와 싸웠다고 사실을 말하면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면, 또 그건 그것대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에이~ 설마요! 제가 무슨 능력이 된다고요.”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버지가 너무 쉽게 수긍하자 반박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럼 뭘 했길래 지금까지 연락도 안 됐어?”
내 능력 때문에 쉽게 넘어가나 생각을 했지만, 또 그건 아니었다.
나는 소량의 진실을 섞어 내 행적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훈련이요.”
“훈련? 아니 아무리 훈련이라고 하지만 두 달 동안 연락도 못 해?”
“아니 그러니까, 휴대폰이랑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거기다가 훈련 장소도 오지였고요.”
“아니 대체 무슨 훈련을 하길래 오지까지 가?”
“생존 훈련이에요.”
“그거 막 힘들고 위험하지 않아?”
“힘들기는 한데, 위험하지는 않아요.”
나는 거짓말을 하는 내내 속으로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그래? 그럼 오지 어디야?”
자연스럽게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역시나 어머니는 집요했다.
“저도 잘 몰라요.”
“아니. 훈련 장소도 모르고 갔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그냥 가는 거죠.”
“기동대 그만둬!”
“네?”
“아무리 돈 많이 벌어도 엄마가 걱정돼서 죽겠다.”
어머니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대충 꾸며놓고라도 가는 건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기분을 풀어 드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기로 결심했다.
“진짜 안 위험해요.”
“그래도 안 돼.”
“일단 저 이번 훈련 끝나서 일주일 동안 휴가받았는데, 엄마 내일 아들이랑 쇼핑?”
“아들 엄마는 돈보다 아들이 더 중요해요.”
“에이~ 다 알죠. 그래서 오랜만에 엄마랑 데이트 좀 하려고요. 제가 내일 어머니를 위해 철저히 준비해 놓겠습니다.”
***
어머니와 데이트하기로 한 날 오전부터 나도 여러 가지로 준비할 게 많았다.
잃어버린 신분증과 체크 카드를 재발급받고, 휴대폰도 새롭게 개통했다.
오전 일찍부터 일어나 빠르게 처리한다고 했지만, 점심시간이 다 돼서야, 준비가 끝났다.
“어머니. 가시죠.”
“그럼 오랜만에 우리 아들이랑 쇼핑 좀 해볼까? 근데 운전을 왜 이 엄마가 해야 하니?”
“죄송합니다. 이 아들이 시간이 없어서 아직 면허가 없습니다.”
“에휴~”
어머니의 한숨과 함께 차를 타고 근처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렇게 다섯 시간 동안 어머니의 비위를 맞추며 백화점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차라리 다섯 시간 동안 검을 휘두르면 휘둘렀지, 이건 아니라고 생각할 때, 어머니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아니다. 역시 처음부터 다시 봐야겠다.”
“어머니 소자를 살려주십시오.”
“힘드니? 이 엄마는 네가 연락이 안 될 때···”
나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를 바라봤다.
내 표정을 보고 어머니는 그래도 자식이라고 마음이 약해진 것 같았다.
“알았다. 알았어. 그래서 어디에 있을 건데?”
“어머니가 오실 동안 물건들을 지키면서 푸드코드에 있겠습니다.”
“많이 먹지 마라. 이따가 저녁 먹어야 하니까.”
“네 간단히 요깃거리만 하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어머니에게 내 체크 카드를 바치고, 햄버거를 시킬 수 있었다.
어제 먹은 불고기, 치킨, 치즈, 더블패티 등등 다양한 햄버거를 세트로 시켜서 포장을 벗겨 한 입 베어 물었다.
‘하유신 이 한 입을 위해 그렇게 고생했구나.’
스스로에게 만족해하고 있을 때,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검은 그림자가 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림자를 만든 존재를 확인하고는 먹던 햄버거를 뱉어낼 뻔했다.
하얀 턱시도에서 검은 턱시도로 옷이 바뀐 도깨비 아람이 지팡이를 든 채 서 있었다.
“잠시 합석해도 될까요?”
도깨비가 내게 합석을 요청했다.
나는 무슨 배짱인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이런이런 절 거부하시는 건가요?”
“네.”
“너무 냉정하시군요. 구면인데.”
도깨비의 말에 나는 흠칫했다.
앞에 있는 도깨비는 대장과 싸웠던 도깨비다.
내가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날 대장과 도깨비는 경천동지할만한 싸움을 했다.
“우리가 마주 앉아서 밥 먹을 사이는 아니잖아요?”
“그건 먹어봐야 알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계속 뻣뻣하게 굴지 마세요. 괴롭히고 싶어지니까.”
“그것도 그렇네요. 앉으세요. 햄버거 하나 정도는 양보할게요.”
나는 호기롭게 말했지만, 사실은 지금 속으로 무진장 떨고 있었다.
앞에 있는 도깨비가 폭주한다면, 순식간에 백화점은 무너질 것이고, 어마어마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것저것 다 치워도 지금 백화점에는 어머니가 쇼핑 중이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 몸속에 있는 포스를 일깨웠다.
“이런이런 그러지 마세요. 전 싸우려고 온 게 아닙니다. 뭐 오해할 수 있지만, 무력 충돌은 피하고 싶네요.”
“피차 마찬가지기는 한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도깨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선배들도 그렇게 말하더군. 도깨비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하게 생각한다고.”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여기서 저와 한번 붙어보는 건 어떠신가요?”
내 비아냥에 기분이 상했는지 방금까지 상냥하게 말했던 도깨비가 매서운 눈빛으로 내게 결투 신청을 했다.
‘X발 X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