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빼고 먼치킨-33화 (33/300)

33화_오우거(1)

유신은 리수진을 쫓아 뒤늦게 집에 들어갔다.

일반적인 가정집을 생각했는데, 집 안에는 여러 명의 노인이 둥글게 앉아 있었다.

한쪽에는 먼저 들어간 리수진이 앉아서 인상을 쓴 채 맞은편에 앉아 있는 중년 남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리수진이 노려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그 남성을 바라보니, 이 마을에서 가장 살집이 좋아 보이는 남성이었다.

내가 리수진과 그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을 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웃으며 말을 건넸다.

“동무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으시라우.”

“아. 네 알겠습니다.”

나는 남성의 옆자리와 리수진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다가 리수진의 옆에 앉았다.

내가 자리에 앉자, 맞은편에 있던 남성이 표정을 씰룩였다.

그 모습이 참 오크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상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말을 건넸다.

“내래 이 마을의 촌장인 리호진이라고하네.”

“안녕하십니까 하유신이라고 합니다.”

내 소개를 끝내고 리호진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하다가 리수진을 바라봤다.

“맞네. 내래 리수진의 할아버지라네.”

“아··· 그렇군요.”

“동무가 마을을 구해준 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네.”

“괘념치 마십시오. 당연한 일입니다.”

“정의로운 동무구만. 내래 동무에게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리호진이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맞은편의 있는 살집 좋은 남성이 리호진의 말을 잘랐다.

“내래 김정운이야.”

김정운이 촌장인 리호진의 말을 잘라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단지 내 옆에 앉아 있는 리수진만 인상을 찡그릴 뿐이었다.

“아 네.”

김정운에게서 불쾌감이 느껴지자, 내 대답은 짧아졌다.

나는 애써 김정운을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리호진을 바라봤다.

“네 촌장님. 제가 아는 거라면 답해 드리겠습니다.”

김정운은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찡그렸고, 리수진의 얼굴엔 살짝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무언가 복잡하고 심오한 인과관계가 엮어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바드득!”

김정운의 이가는 소리가 추가로 들리자, 리호진이 곁눈질로 김정운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뭘 물어보시겠다는 겁니까?”

리호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김정운은 마지못해 리호진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아··· 다름이 아니라 동무는 여기에 어떻게 왔나?”

“음··· 비행기 타고 오다가 떨어졌습니다.”

“······”

내 말에 회의실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잠깐의 정적 후 내 옆에 앉아 있던 리수진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보라요. 대충 보니 우리는 버림받은 게 맞슴네다.”

“리수진 동무 너무 성급한 말입네다.”

“김정운 동무 닥치라시라요.”

리수진과 김정운이 스파크 튀는 눈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에 마을 노인들은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눈싸움은 리수진이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끝났지만, 리수진의 논리정연(?)하면서 표독스러운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괴생물 침입도 많아져 이제 식량 구하기도 힘듭네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합네다.”

리수진의 외침에 김정운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평생 지내 온 마을을 버리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우”

“기다린 지 벌써 십 년이 넘었슴네다. 언제까지 기다립네까?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립네까?”

리수진이 외치듯이 말하자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기···”

“뭡네까?! 지금 마을 회의하는 거 안 보입네까?”

“아니 그게 아니라. 회의를 왜 하는지 궁금해서···”

“들어보면 모릅네까? 마을에 계속 있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정하고 있지 않슴네까?”

“그러면 마을을 조금만 더 지키고 있으면 되겠네?”

내 말에 김정운이 미소를 짓고 리수진은 깊게 한숨을 내뱉었다.

“휴~ 동무 오늘 겪어보지 않았슴네까? 괴생물들이···”

나는 리수진의 말에 반박했다.

“세계정부에서 북한 지역의 몬스터를 없애고 인류화 시키기로 했거든.”

“그게 무슨 말입네까?”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정확한 설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숨기던 것을 꺼냈다.

“나는 실수로 떨어져서 낙오했는데, 내가 속해 있는 13기동 타격대가 작전 지역으로 이동해서 몬스터 섬멸 및 GPS 설치를 하면, 그 지역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오기로 했어.”

내 말에 리수진과 마을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고, 김정운이 표정을 구기며 따지듯이 외쳤다.

“남한 동무들이 여기를 어떻게 온다는 겁네까?”

“나 낙오했다니까요!”

“그거랑 남한 동무들이 여길 찾는 게 무슨 상관입네까?!”

나는 버럭 하는 김정운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낙오하자마자 혹시 몰라서 바로 GPS 켰습니다.”

“······”

내 말에 김정운이 살집에 파묻힌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려고 하자, 리수진의 시동어가 들렸다.

“매직 미사일”

리수진의 매직 미사일이 김정운을 향했고, 김정운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굳었다.

“허튼짓하면 매직 미사일로 동무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리갔어.”

리수진이 살벌한 말투에 김정운은 안주머니에 넣은 손을 천천히 뺐다.

밖으로 나온 김정운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리수진 동무 자꾸 그러면 하유신 동무가 오해합네다.”

“간나 새끼! 오해는 무슨! 동무의 사리사욕 때문에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갔어? 내 경고했어. 한 번만 더 최면을 사용하면 대가리에 바람구멍을 내주갔어.”

리수진의 욕설에 김정운이 표정을 구기다가 내 눈치를 보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

“내래 리수진 동무가 오해하는데, 더 있음 서로 안 좋은 꼴 볼 것 같아. 이만 나가봐야겠으.”

김정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치며 회의실을 벗어났고, 리수진은 김정운이 사라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매직 미사일을 캔슬했다.

김정운이 회의실에 나가고 매직 미사일이 사라졌어도 한동안 회의실은 북극의 한기가 흐르는 것처럼 얼어붙었다.

그때 리수진이 내게 고갤 돌리며 물었다.

“하유신 동무 그게 사실입네까?”

“뭘?······요.”

이건 매직 미사일에 겁먹은 게 아니다. 단지 지금 분위기가 반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런 거다.

“남한 동무들이 여기로 오는 거 말입네다.”

“거짓은 아닌데···”

“그거면 됐슴네다.”

리수진은 내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마을의 촌장이자 자신의 할아버지인 리호진을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믿어보겠슴네다.”

“수진아 잘 생각했다.”

리호진의 말에 리수진은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저기 근데···”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유신 동무 무슨 일 입네까?”

나는 리호진을 바라보다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쓰러졌다.

쿠당탕탕!

리수진과 김정운의 대립에 나 또한 긴장하기도 했고, 이미 몸과 정신은 한계였다.

전투와 회의의 긴장감이 풀리자 그대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유신이 큰소리를 내며 땅에 쓰러졌고, 옆에 앉아 있던 리수진이 서둘러 쓰러진 유신에게 다가가 흔들었다.

“유신 동무! 유신 동무! 정신 차리시라요.”

“쿨~”

“유신 동··· 뭡네까? 설마···자는 겁네까?”

리수진은 유신이 지쳐서 잠이 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황당해하고 있을 때, 그런 리수진의 모습을 본 촌장이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수진이 너도 오늘 하루 힘들었겠지만, 마을의 은인인 하유신 동무를 방으로 좀 모시고, 너도 그만 쉬거라.”

“···알겠슴네다.”

그렇게 유신은 리수진의 부축을 받아 방으로 들어갔고, 마을에 몇 없는 가장 푹신한 이불에 누워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유신을 놔두고 온 리수진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자꾸 유신이 떠올랐다.

참 이상한 사내이다.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목숨을 걸고 괴생물과 싸웠다.

보통은 소극적이거나 몸을 사리는데, 하유신 동무는 그런 게 없었다.

고블린의 습격은 앞장서고, 코볼트의 땅굴 공격은 파쇄했다.

오크와 싸울 때는 죽는 게 아닌가 생각까지 했다.

“아아아악!”

리수진은 자꾸 생각나는 하유신 때문에 머리를 헝클이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한숨을 쉰 후에 다시 잠을 청하려고 이불에 누웠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유신이라는 사내가 뇌리에 박혀 들었을 때가 살아난 시체들과 싸울 때였다.

살아난 시체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유신의 검술은 뛰어났다. 그리고 자신을 대할 때의 순박한 모습···

이대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불을 걷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욱~”

나는 상념을 잊고, 텅 빈 마나를 채우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선 명상에 들어갔다.

그렇게 누구는 잠이 들고, 누구는 명상에 빠진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듯이 밤이 지나면 태양이 뜨고 아침이 밝아온다.

경계 근무를 선 자경 단원들은 아침 해가 뜬 것을 보고 기지개를 켜서, 밤사이의 추위와 피로를 날렸다.

쿵! 쿵! 쿵!

그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자경 단원들이 얼떨떨한 상태로 있는 사이, 숲 쪽에서 나무들이 쓰러지며, 거대한 도끼를 든 오우거가 나타났다.

“크아아악!”

오우거가 피어를 내뱉자 멀리 떨어져 있던 자경 단원들의 다리가 풀리며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그 소리에 곤히 자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 입네까?”

밤새 명상을 하고 있던 리수진은 오우거의 피어에 재빨리 목책까지 달려왔다.

리수진이 주위를 둘러보자 자경 단원들이 아직 오우거의 피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었다.

“날래 비상종 울리시라우~”

“다···다리가 안 움직임네다.”

“누나 내래 할라우~”

뒤늦게 도착한 리진수가 비상종을 치기 위해 달렸다.

뎅뎅뎅뎅뎅

리진수가 비상종을 울리자 저 멀리 있던 오우거가 도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오우거의 도끼질에 수 미터의 땅이 쩍 갈라졌다.

자신이 만든 흔적을 보고 오우거는 기분이 좋은지 어금니를 들어내며 미소 짓고는 마을로 걸음을 옮겼다.

“도···동무를 불러와야 합네다.”

“누구를 말하는 겁네까?”

“하유신 동무 말입네다.”

오우거의 파괴력에 기겁한 리수진은 다급하게 유신을 찾았고, 뒤늦게 목책으로 왔던 사람 중 한 명이 유신을 데리러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후우~”

리수진은 최대한 깊게 숨을 내뱉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언제 유신이 올지 모르고, 유신 혼자 저 거대한 오우거를 막는다는 보장도 없다.

짧은 시간 안에 생각을 정리한 리수진은 비상종을 울리고 돌아오는 리진수를 바라봤다.

“하유신 동무가 오면 5분만 버텨주라고 전해주라우.”

리수진은 리진수에게 말을 전달하고 최대한 침착하게 캐스팅을 시작했다.

한편 마을에 오우거가 나타나 난리가 난 상황에서도 유신은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유신의 방에도 오우거의 피어가 들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피곤한 유신에게는 그저 개 짖는 소리로 들렸을 뿐이었다.

그렇게 유신이 행복한 단잠에 빠져 있을 때 방문이 거칠게 열렸다.

“동무 일어나야 합네다!”

“5분만 더 잘게요.”

“오우거가 나타났슴네다!!”

“네?”

오우거라는 말에 이불 속에 파고들던 유신은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입네다. 오우거가 지금 마을로 오고 있슴네다.”

“어디에요?”

“평지가 있는 목책 쪽에 나타났슴네다.”

유신은 남성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그대로 뛰어나갔다.

목책을 향해 유신이 달려갈 때, 자경 단원들이 오우거에게 죽창을 던져 발걸음을 저지하려고 했다.

오우거에게 몇 개의 죽창이 명중했지만, 오우거의 질기고 두터운 가죽을 뚫지 못하고 그저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때 목책에 도착한 유신은 땅에 떨어져 있는 죽창을 들어 포스를 때려 박은 다음 오우거에게 던졌다.

유신의 포스가 가득 담긴 죽창이 바람을 가르며 오우거에게 날아갔다.

지금까지 죽창 공격을 무시하던 오우거는 유신의 죽창에 위협을 느꼈는지, 처음으로 도끼를 들어 죽창을 막았다.

콰아앙!

유신의 공격을 막은 오우거가 처음으로 뒤로 밀려났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오우거가 밀려나자 기대에 찬 눈빛으로 유신을 바라봤다.

유신은 자신의 공격에 오우거가 아무런 피해가 없는 걸 보고 얼굴을 굳히며 다급하게 외쳤다.

“죽창! 빨리 죽창을 주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