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253화 (253/300)

EP.253 갑자기 너무 강해져서 적응이 안 된다.

‘자, 그럼 밑 준비부터 가볼까.’

있는 힘껏 기를 불어넣자, 시커먼 칼날에서 전에 없이 격렬한 화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킬의 등급이 올랐기 때문일까?

흑염룡의 불꽃 특유의 검붉은 색은 더욱 짙게 변해 있었고, 화력 역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자, 장난 아닌데.’

짙어진 화염의 색으로 인해 구불구불한 칼날의 모양은 거의 확인조차 할 수 없었다.

급기야 검신에서 뿜어져 나온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주위의 공간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우, 우웃! 수하! 너, 너의 불꽃이!”

한 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불꽃의 모습에, 흑염대웅신검의 제작자인 명곰(名工), 아기곰 선생은 곧바로 허공을 박차고 나의 곁으로 날아왔다.

더욱 강해진 자신의 걸작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 쩌적, 쩌적······.

바로 그때,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나의 귀를 자극했다.

“응?”

“우, 우웅!?”

그 불길한 소리에, 명곰 선생과 나는 동시에 화염을 내뿜고 있는 검은 칼날로 시선을 돌렸다.

‘이, 이런!’

나는 반사적으로 검신에 불어넣고 있던 곰기를 끊었다.

그도 그럴 게······.

무려 S급 무기인 흑염대웅신검의 칼날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겨나 있었으니까.

“우, 우웃! 수하! 괴, 굉장하구나! 드디어 너의 곰기가 이 몸의 걸작을 부술 정도로 강해진 것이다!”

하지만 검이 부서질까 가슴이 철렁했던 나와 달리, 고미는 잔뜩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자신의 걸작이 망가지는 것보다, 내가 강해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이 더 큰 모양이었다.

‘큰일 날 뻔했네.’

그나마 다행인 건, 검의 심지로 쓴 이유찬 씨의 뿔이 부서지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서진 건 검신을 이루고 있는 마정석과 마력철 뿐이었다.

‘휴, 다행이다.’

이 라면 같은 검에는 곰 앤 더머 콤비의 불꽃 같은 영혼이 함유되어 있다.

뭐, 굳이 비유하자면 장인의 손맛이 깃든 수제 돈가스 같은 거랄까.

이 검에 들어간 건 손맛 대신 곰 앤 더머 콤비의 뜨거운 열정이지만.

그리고 그 열정 덕분에 생겨난 ‘불굴의 투혼’은······.

‘분명 뿔만 안 부러지면 된다고 했지.’

뿔만 멀쩡하다면, 불꽃에 넣어 몇 번이고 검을 되살릴 수 있는 아주 멋진 옵션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이 정도로 강해졌을지는 몰랐는데······.’

내 곰기와 기곰술의 등급이 SS급으로 향상된 건, 가짜 고미와의 결투 이후였다.

그 다음 한번은 맞아서, 한번은 피곤해서 두 번 정도 기절했고, 이로 인해 ‘피로야, 가라’ 스킬의 효과가 적용됐다.

덕분에 정확히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기의 양도 적잖이 늘어났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S급 검이 내 기를 못 견딜 정도로 강해졌을 줄이야······.

‘난감하네.’

그렇게 예상 밖의 사태로 ‘불도장’ 실험이 시작도 해보기 전에 좌초당하고 말았을 때······.

- 무우!

- 음머어!

또 다른 물소 떼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것들이······.’

실험에 실패한 과학자는 굉장히 신경이 예민하다는 걸 모르는 거냐?

왠지 모르게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낀 나는 한 번 더 만천화웅을 사용해 눈앞의 몬스터들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막 허곰섭물을 활용해 주위의 돌덩이들을 움직이려는 찰나,

- 쉬이익!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나의 앞을 가로막았다.

동시에 깨끗한 검광이 허공을 가르며 집채만 한 물소 세 마리가 장작처럼 반으로 쪼개졌다.

“이강혁 씨?”

내 눈앞에는 어느새 천마신검을 뽑아든 이강혁 씨가 서 있었다.

“봉식이가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하던데요.”

음······. 하여간 눈치는 빨라요.

이게 바로 죽마고우 파워라는 건가.

“으라차!”

이어서 우렁찬 함성과 함께 물소 떼의 후미에서 무언가 시커먼 물체가 문자 그대로 ‘붕’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으아, 저 무식한 놈. 아무리 C급이라고는 해도 저 사이즈의 괴물을 어떻게 저렇게 날려버리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볍게 몬스터들을 베어나가고 있는 이강혁 씨를 바라봤다.

“뭐, 지금 수하씨 정도라면 무슨 문제가 있다 한들 C급 던전에서 다치시지는 않겠지만······. 저도 검령을 길들여야 하니 겸사겸사 한번 나서 봤습니다.”

이강혁 씨가 차분하게 눈앞의 몬스터들을 베어나가며 말했다.

나는 잠시 멈춰선 채 이강혁 씨의 검술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제와서 C급 몬스터들을 하나하나 직접 때려잡는 것보다, 그의 검술을 관찰하며 배울 점을 찾는 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역시, 스킬 등급이 같아졌다고 실력까지 비슷해 지는 건 아니구나.’

더없이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직접 두들겨 맞을 때도 느꼈지만, 이 사람의 검술에는 낭비가 없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 깔끔하고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절로 감탄이 드는 움직임이랄까.

스킬 등급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직도 배울 점이 많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우하하! 야, 이거 좋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서너 마리의 물소가 동시에 하늘로 솟구치며 살육전차, 민봉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이 기회에 고북 대왕에게 받은 권갑의 성능을 시험해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으음······.”

할 일이 없어진 내가 잠시 팔짱을 끼고 구경하고 있는 사이, 저 멀리서 새하얀 화살 몇 줄기가 날아와 물소들을 꿰뚫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소 떼가 깔끔히 정리됐다.

* * *

물소 떼를 모두 처리하기까지는 불과 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C급 던전에 S급 이상 헌터 셋이 들어온 것 자체가 밸런스 붕괴니까,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

“우, 우와. 봉식 헌터님, 진짜 괴, 굉장하네요. 기, 길드장님도. 조, 조정위원님도.”

열심히 화살을 날리며 달려온 이주혁 씨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무슨 헌터가 고작 이삼백 미터 열심히 달려왔다고 숨을 이렇게 몰아쉬냐.

‘이분은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할 것 같은데······.’

뭐, 내 제자는 아니지만, 왠지 이분을 보고 있으니 고미가 처음 나를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 것 같다.

그때는 나도 고작 지리산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 했으니까.

아마 고미도 기초 체력부터 단련시켜야겠다고 생각했겠지.

“너도 잘했다. 하지만 공격력 외에도 보완할 점이 너무 많은 것 같군. 저스티스의 헌터가 이 정도로 숨을 몰아쉬면 안되지.”

이강혁 씨가 유려한 동작으로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화살을 안 쏘면 이 정도는 아닌데······.”

다행이네.

그래도 그때의 나처럼 순수하게 뛰는 거 자체를 힘들어하시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김수하. 뭐 때문에 실험을 하다 만 거냐.”

한편, 봉식이는 이미 쓰러진 물소 떼 사이를 바삐 오가며 마정석을 채취하고 있었다.

역시 숲속 친구들 중에서 날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 굳이 말을 안해도 내가 뭔가 실험을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거겠지.

“흑염대웅신검에 금이 갔어.”

나의 답을 들은 이강혁 씨는 이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검기가 아이템의 허용치 이상으로 강해지셨나 보군요.”

“네, 저도 이렇게 강해졌을 줄은 몰랐어요. 기분이 묘하네요.”

“후훗, 걱정 말거라 수하! 이 몸이 또 새로운 걸작을 만들어주면 되지 않겠느냐!?”

이에 희대의 명곰, 아기곰 선생께서는 기꺼이 새 검을 만들어주겠다고 말했으나······.

“아니야, 고미. 그보다는 흑염대웅신검을 강화해서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우웅? 어째서 그런 것이냐?”

“아니야, 이거 봐봐.”

나는 곧장 시스템 창을 열어 고미에게 보여주었다.

“오오, 무기 강화권이라니······. 과연, 이거라면 이 몸의 흑염대웅신검이 더욱 강해질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역시 더 강한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강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음······. 그것도 괜찮지만, 난 역시 이 검이 마음에 들어.”

사실 고미의 ‘조물조물’은 굉장히 훌륭한 능력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옵션’이 어느 정도는 랜덤으로 결정된다는 점이었다.

아이템에 사용된 재료나 제작 과정에 의해 옵션이 정해진다고는 하나, 이건 주사위를 굴리는 것처럼 대략적인 범위가 정해져 있을 뿐이다.

막상 까보면 정확히 어떤 능력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지.

가장 중요한 건, 이제와서 블랙 드래곤, 그것도 이유찬 씨만큼 강한 드래곤의 뿔 같은 걸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고미의 능력이라면 새로운 무기를 만들 수 있는데도 굳이 무기 강화권을 준 이유도 이거겠지.’

내 추측이지만, 시스템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 거다.

그러니 굳이 무기 강화권을 보상으로 내건 거겠지.

“게다가 블랙 드래곤의 뿔 같은 걸 그렇게 쉽게 구할 수는 없잖아. 이유찬 씨만큼 강한 드래곤이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고.”

“흐으음······. 그것도 그렇구나. 하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나 말하거라! 위대한 이 몸은 언제든 널 위한 새로운 무기를 만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 설명을 들은 고미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야, 김수하. 빨리 너도 마정석 캐.”

그때, 이주혁 씨와 함께 열심히 마정석을 채취하던 봉식이가 나를 향해 잔소리를 해댔다.

“알았어. 간다, 가.”

* * *

옹기종기, 아니, 웅기종기 모여 마정석을 채취한 우리는 빠르게 던전을 벗어났다.

‘황혼의 평야’에서 채취한 마정석은 모두 72개.

목표치인 150개에서 대략 80개 정도가 부족했다.

사실 우리가 잡은 몬스터는 120마리 이상이었다.

문제는······. 만천화웅에 휘말린 몬스터 중 대다수가 곤죽이 되어버려서 마정석도 같이 부서졌다는 거지.

“으휴, 힘 조절 좀 해라, 힘 조절 좀. 내가 장담하는데, 아까 강혁이 형이랑 내가 안 끼어들었으면 나머지도 그 꼴 났을 거야.”

마정석의 숫자를 확인한 봉식이는 나를 가볍게 흘겨보며 혀를 차댔다.

‘음······. 할 말이 없군.’

봉식이의 말대로, 이 일은 상당 부분 나의 책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만천화웅 같은 엄청난 스킬이 생겨서 조금 들뜬 것도 있었고, 처음 쓰는 스킬이라 힘 조절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아니, 두 번째 몬스터도 만천화웅으로 잡았으면 이것보다 결과가 더 나빴을걸. 저거 실험 실패하면 기분 엄청 안 좋아지거든. 아마 그대로 놔뒀으면 마정석 하나도 못 건졌을지도 몰라.”

이어지는 일침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끔했다.

이 자식은 날 너무 잘 안단 말이지.

“우웅? 수하가 그렇게 화를 낼 때도 있단 말이더냐?”

봉식이의 말을 들은 고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내 인생에서 저 자식 제일 기분 안 좋은 거 봤을 때가 실험 실패했을 때였거든. 아마 가만 놔뒀으면 마정석 50개도 못 건졌을 걸.”

음······. 정확하군.

사실 실험 실패에 흑염대웅신검까지 부서져서 상당히 짜증이 나 있었으니까.

실험 실패는 나에게 아주 안 좋은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고.

실험에 실패한 대학원생은, 강제로 노예 생활을 연장 당하니까.

소득도 없이 지출만 있고, 여가는커녕 잠잘 시간도 없는 시간이 자동연장되는 그 끔찍한······.

‘상상만 해도 헛구역질이 나오네.’

덕분에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실험 실패의 조짐만 보여도 원형 탈모가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럼 수하 씨. 어떻게 할까요? 바로 다음 던전으로 가실 겁니까, 아니면 검을 수리하고 움직이시겠습니까?”

퀘스트에 필요한 마정석 개수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강혁 씨는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음······. 일단 던전부터 마저 돌죠. 저 때문에 잡아놓은 던전들이 있는데 검을 수리하러 가기는 그렇잖아요. 어차피 C급 정도는 검이 없어도 얼마든지 돌 수 있으니까요.”

괜히 두 번, 세 번 번잡한 일을 만들기 싫었던 나는 검없이 다음 던전에 입장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직 그렇게 피곤하지도 않고, 만천화웅의 위력을 조절하는 법도 연습할 필요가 있어 보였으니까.

다음 던전으로 이동하는 사이, 나는 아까 전에 완료된 퀘스트가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다.

< 히든 퀘스트 : 웅혼한 일격을 보여줘! >

- 위대한 곰의 제자라면, 홀로 다수의 적에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웅혼한 기상이 담긴 강력한 일격으로 다수의 몬스터를 동시에 처리하세요.

< 달성 조건 >

- 한 번의 공격으로 50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몰살시킬 것. (완)

< 달성 보상 >

- 능력치 강화(+3)

‘음······. 나쁘지 않네.’

엄청난 보상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이미 능력치가 상당히 높으니까, 꽤 쏠쏠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대충 오늘 얻은 수확을 확인하고 두 번째 던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웅!”

아웅이가 나에게 다가와 얼음으로 만들어진 검을 하나 내밀었다.

- 그래도 무기는 있어야지!

라고 말하는 것 같군.

“그래, 고마워. 아웅아.”

그리고 별 생각없이 새하얀 얼음 검을 받아 쥐는 순간······.

머릿속에 섬광과도 같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 아웅이의 능력이면······.’

어째서 여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주 멋진 아이디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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