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4 또다시 바다로(3) 실패해도 괜찮아
< 히든 퀘스트 : 고미도 질 수 있어. >
······.
정말?
나는 몇 번이나 눈을 비비며 상태창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 이런 퀘스트라고?’
< 위대한 곰은 전지전능하며, 천하무적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
윗부분은, 평소대로 지극히 ‘웅편향적인’ 서술이다.
하지만 아래쪽은······.
지금까지의 퀘스트와 비교하면 거의 역모나 다름없는 발언.
< 달성 조건 >
1. 고미가 낚시 승부에서 패배할 것.
2. 고미가 자신이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할 것.
< 달성 보상 >
1. 능력치 강화 (+10)
2. 스킬 강화 (+3)
심지어 달성 조건은 고미의 패배다.
다만, 아래쪽이 조금 마음에 걸린다.
‘못해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하라니, 대체 무슨 의도로······.
시스템은 고미를 행복하게 해주고, 성장시키기를 원한다.
그러니까, 이것도 고미의 성장과 행복과 관련된 거겠지.
‘이론적으로 맞긴 하지.’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아주 어릴 때, 자신이 전능하다는 착각을 한다.
울기만 해도 먹을 게 나오고, 달래주고, 한 번 웃어주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난다.
그러니 ‘오, 울고 웃기만 해도 모든 게 해결되다니, 난 대단한 존재군.’ 하는, 귀엽다면 귀여운 착각을 하는 거지.
아이는 이런 착각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본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실패한다.
그리고, 이 실패를 통해 세상에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운다.
신기한 점은, 이 실패가 사회성 발달의 계기가 된다는 점이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건, 남도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나도, 다른 사람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동시에 타인에게 관대해지고, 자신에게도 관대해지는 법을 배우는…….
‘아!’
그 순간, 나는 시스템의 의도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고미에게 우리는 뭘까? 친구? 뭐, 일단 맞지.
더 정확히는 ‘비실비실한 친구’다.
나뿐 아니라, S급인 이강혁 씨도, 삼룡이 패밀리도, 모두 자신이 보호해줘야 할 ‘비실이’에 불과하다.
‘내가 친구와 가족들을 지켜야 해. 내가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이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행복할래야 행복할 수가 없지.
아니, 시스템이 이 퀘스트를 준 이유가 내 생각대로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알려주라는 건··· 그런 의미겠지.’
순간 고미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들에 담긴 무게가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이 몸은 위대하다, 이 몸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몸이 해결하겠다······.
반쯤은 사실이지만, 반쯤은 우리가 불안하지 않게 하려고 했던 말은 아닐까?
이 모든 게 나의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거라면, 너무 슬프잖아.
‘그래, 이번 기회에 직접 경험하게 해주는 거야.’
그 방식이 고작 낚시라는 게 우습기도 하고, 다행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패배는 고미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을 잃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 으으으!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
그때, 분노에 찬 고미의 목소리가 귓등을 때렸다.
음, 아닌가. 단순히 패배에 분노하고 있는 걸지도······.
‘시스템 씨, 내 생각이 맞긴 한 거야?’
어쩌면 단순한 어린애 투정을 과잉해석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군.
[ 안 되겠다 수하. 이 몸이 직접 바다로 들어가서 참돔이라는 녀석을 잡아 오겠다. 고래만큼 큰놈으로 말이다! ]
저거 봐라, 잠깐, 뭐라고?
[ 아, 안 돼 고미! ]
[ 아니다, 이제 방법이 없다. 이 낚싯대라는 놈은 전혀 쓸모가 없구나! ]
‘으아, 이걸 어떻게 말리냐.’
퀘스트 보상은 꼭 얻지 않아도 괜찮다.
그러나 고미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건강한 아이로 자라려면, 이건 꼭 필요한 일이다.
과도한 책임감은 정신 건강의 적이니까.
‘몸은 더이상 건강해질 필요가 없지. 건강해질 수도 없고. 트랜스고머로 종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것보다 더 튼튼해지는 건 불가능해.’
문제는 고미가 물에 뛰어드는 걸 어떻게 말리냐 하는 건데.
잠깐만 머리를 굴리면 뭔가 나올 것 같기는 한데, 그러기도 전에 뛰어들 기세다.
그 순간, 낚싯대를 내려놓고 궁둥이를 씰룩거리고 있는 솜뭉치 뒤로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는 수다르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수다르, 수다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 산신령님! 고미를 말릴 방법이 없을까요? ]
내가 전음을 보내자, 수다르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흠흠, 고미님. ]
[ 우웅? 왜 그러느냐 수다르? ]
[ 아버님의 얼굴을 보시지요. ]
수다르의 말에 잔뜩 흥분해 있던 고미는 고개를 돌려 아빠의 얼굴을 보았다.
[ 아주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까? ]
[ 그렇구나! 여태 저렇게 즐거운 얼굴은 본 적이 없다. ]
[ 아버님께서 왜 저리 기뻐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 그거야 참돔을 잡아서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
[ 그럼 고미님은 참돔이 잡고 싶어 참돔을 잡는 것입니까? ]
수다르의 질문에 고미는 턱을 괸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 아니다, 이 몸이 참돔을 잡는 것은, 가족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먹을 것이 부족하면 아빠가 곤란하지 않겠느냐! 보거라,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저 물고기 한 마리로 어떻게 모두를 먹이겠느냐! ]
고미의 답을 듣는 순간, 나는 새삼 수다르의 위대함을 깨달았다.
이걸 이렇게 이어가다니······.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구나.
[ 허허허, 위대한 존재답게 직접 참돔을 잡아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하고 싶으셨던 것이군요? ]
아,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 했던 걸까.
잠시나마 고미의 분노를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 그럼 아버지에게도 그 기쁨을 허락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
이어지는 수다르의 말에 고미는 무언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며 귀를 쫑긋거리다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 하지만, 하지만··· 그랬다가 먹을 것이 부족하면······. ]
대충 감을 잡은 나는 잽싸게 수다르의 어시스트를 받아 말을 이어나갔다.
[ 고미, 생각해 봐.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을 거야. 그런데 네가 제일 큰 걸 잡아버리면, 또 너에게 선물만 받는 거잖아. ]
[ 우웅··· 그건······. ]
[ 고미님, 걱정 마시지요. 이강혁님과 아버님이라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아줄 것입니다. ]
수다르와 나의 협공(?)에 고미의 토실토실한 엉덩이가 다시 바닥에 안착했다.
[ 좋다. 그럼··· 잠시 기다려보겠다. 하지만 모두가 먹을 만큼 충분한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이 몸이 나설 것이다! ]
[ 걱정 하지 마. 원래 낚시는 시간이 걸리는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보자. ]
나는 그렇게 말하며 불안한 눈빛으로 낚싯대를 다시 잡아드는 고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이강혁 씨가 아버지보다 훨씬 큰 참돔을 낚아 올렸고, 이후 서로 경쟁하듯 참돔과 우럭, 놀래미를 잡았다.
그 사이, 고미가 잡은 것이라고는 손바닥만 한 참돔 한 마리와 잡어 두어 마리.
숲속 친구들의 성적도 모두 그보다는 나았으니, 누가 봐도 승패는 명확했다.
낚시를 즐기기에 고미의 성격은 너무 급했고, 입질이 오면 낚싯바늘을 제대로 물기도 전에 낚싯대를 당겨댔으니, 실패는 예견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새끼 참돔과 잡어 두 마리도 실은 수면까지 올라와 도망가는 것을 ‘허곰섭물’로 끌어올린 거지만······.
그 정도 반칙은 넘어가도 되겠지.
“하하하, 이사장, 이거 내일부터 이태공이라고 불러야겠어. 낚시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아버님이야말로 김태공이라고 불러드려야 할 것 같군요.”
가장 많은 고기를 낚은 두 낚시꾼은 그렇게 칭찬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했고,
“자, 그럼 제일 실하고 먹을만한 거로 몇 마리 고르고 나머지는 놔주지.”
아버지는 날카로운 눈으로 가장 맛이 좋을 것 같은 생선 몇 마리를 감별한 뒤 나머지를 모두 바다에 풀어주었다.
< 축하합니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
그리고, 시스템 창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퀘스트에 성공해서가 아니라, 고미가 조금은 더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
[ 우웅··· 훌륭하구나. 이 몸의 도움 없이도 이만큼이나 잡을 줄이야! ]
고미의 표정은 전혀 패배한 곰 같지 않았다.
조금은 안도한 듯, 조금은 분한 듯, 그러면서도 한없이 즐거운, 그런 얼굴.
아마도,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자, 그럼 선상에서는 맛만 보고, 돌아가서 본격적으로 파티를 해볼까?”
아버지가 환히 웃으며 챙겨온 회칼을 꺼내들자,
[ 우웅? 이곳에서 모두 먹는 것이 아니었더냐? ]
고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기서는 회 밖에 못 먹으니까. 매운탕도 하고 초밥도 하려면 여기서는 안되지.”
“허허, 그 귀하다는 참돔요리를 코스로 즐길 수 있는 것 입니까?”
수다르의 목소리에는 감출 수 없는 기대감이 묻어났고,
“한수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요리인, 아니, 요리용, 이유찬 씨의 눈에서는 또다시 브레스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뿜어져 나왔다.
[ 호오, 매운탕? 초밥?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도 저 녀석들로 만들 수 있는 것이냐? ]
회를 이용해 더 다양한 메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 것인지, 잠시 풀어 죽어있던 제2의 자아, 꼬리 님께서도 활발히 활동을 재개하셨고,
‘걱정 마, 곧 내가, 아니, 우리가 더 강해져서 너 혼자 모두를 지키지 않아도 되게 해줄게.’
녀석의 행복한 표정에 나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며 '선상 횟집'의 오픈을 바라봤다.
“오오, 굉장하군요. 칼질에서부터 차원이 다른 내공이 느껴집니다.”
[ 후후, 검은콩. 위대한 이 몸의 아빠이니, 요리를 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
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근거가 많이 이상하잖아.
너랑 닮았으면……. 요리사는 절대 못하지.
“설마 고미님 께서도 요리에 조예가 있으십니까?”
그리고, 이유찬 씨는, 그간 누구도 하지 못한, 엄청난 질문을 해버리고 말았다.
[ 후훗, 당연하지 않느냐? 실은 던전 속에서 조금이라도 맛있는 것을 찾아보려 온갖 조리법을 시험해 보았지. 원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이 몸의 요리를 대접해주마. ]
[ 후훗, 당연하지 않느냐? 실은 던전 속에서 조금이라도 맛있는 것을 찾아보려 온갖 조리법을 시험해 보았지. 원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이 몸의 요리를 대접해주마. ]
······.
던전의 식재료에 고미의 조리법이라니, 생각만 해도 식욕이 뚝 떨어지는군.
최악의 재료와 지옥에서 올라온 곰손이 만난다면, 먹은 사람이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의 맛이 탄생하겠지.
아니, 어쩌면 던전의 식재료가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네가 손을 대서 먹을 게 없어진 건 아니냐고 묻고 싶은 수준이다.
한편, ‘조물조물’을 직접 목도한 모든 이들은 고미가 요리를 한다는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눈이 달렸다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고미의 손재주라면, 정상적인 재료로 독극물을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이 자리에서 고미가 만든 음식을 먹어본 건 나 뿐인가? 왕유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문제는······. 어머니가 저주받은 곰손의 존재를 모른다는 사실.
“어머, 우리 고미는 요리도 잘해요? 엄마는 고미가 만들어 준 음식이 먹고 싶은데?
어머니의 한마디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이유찬의 얼굴 위로 칼처럼 내리꽂혔다.
‘죽여버린다, 이 눈치 없는 자식아’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 후후후, 좋다. 엄마가 그렇게 말한다니, 할 수 없군. 아빠가 회를 뜨는 것을 몇 번 보았으니, 이 몸의 곰기로 회를 만들어 주겠다! ]
그렇게 눈치 없는 누구 덕에, 우리는 미증유의 대재앙을 마주하게 되었다.
실날같은 희망은, 회가 오로지 칼질만으로 결정되는 음식이라는 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