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3 또다시 바다로(2) 믿을 수 없는 결과
“아이고, 내가 가족들하고 바다낚시를 다 와볼 줄이야.”
배에 오른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가득했고, 어머니 역시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버님, 장비는 마음에 드십니까?”
배 섭외는 물론이고 낚시 장비까지 모두 준비한 이강혁이 자신의 충정(?)을 알아달라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주 마음에 들어요. 나 혼자 준비했으면 절대 이렇게 못했을 텐데, 너무 고마워요. 이 사장은 나이도 젊은데, 낚시를 좀 하나 봐?”
“조용한 걸 좋아하는 편이라, 시간이 나면 종종 즐기러 옵니다.”
이강혁 씨의 취미가 낚시라니, 몰랐다.
하긴, 먹는 것에도 딱히 관심이 없고, 무슨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평소에 뭐 하고 살까 싶기는 했지.
관심사는 오로지 세상을 지키는 것, 고미, 두 가지뿐이었으니까. 어쩌면 두 개가 같은 거일지도 모르고.
원조 호구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어서 그렇지, 아마 우리 중에 가장 마음에 여유가 없는 사람이 이강혁 씨일 거다.
얘기로만 들은 우리와 달리, 두 번이나 멸망을 경험했으니까.
“저도 배낚시는 정말 오랜만이라 기대가 됩니다. 평소에는 그냥 가까운 낚시터에 혼자 앉아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지금 이강혁 씨의 얼굴에는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던 온화함과 여유가 묻어났다.
평소에는 어딘지 모르게 건조하고 그늘진 인상이었는데······.
이 여행이 이강혁 씨에게도 힐링이 되다니, 기분이 좋군.
“아아, 우리 이 사장이 같이 낚시할 친구가 없나 보네? 하긴, 젊은 사람들 중에 낚시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아뇨, 낚시 친구가 아니라 그냥 친구가 거의 없습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가끔 아버님이랑 낚시를 오고 싶군요.”
우, 웃으면서 친구 없다는 소리하지 마. 슬프잖아!
이강혁 씨의 성격은 딱히 모난 구석이 없지만, 친구가 없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갔다.
업계에서는 회귀자로 의심받아 고립무원, 길드 내에서는 길드장이니 자신을 편하게 대하는 사람이 없을 테고, 초월자와의 전쟁에 대비해 동분서주하느라 친구 만날 틈이나 있었겠나.
‘뭐, 그렇게 바쁘면 있던 친구도 다 떨어지지.’
나도 대학원 생활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 이강혁 씨의 입장이 더욱 공감이 갔다.
게다가 워낙 성공했으니, 주변 사람들은 '성공하니 사람이 변했다.'라는 식으로 받아들였겠지.
[ 허수아비, 네 이놈! 이 몸과 수하와 봉식이가 있거늘, 어째서 친구가 없단 말이냐! ]
그때, 선글라스를 쓴 아기곰이 꿀 색 낚싯대를 손에 든 채 버럭 호통을 쳤다.
[ 게다가 이제 삼룡 어멈도 친구가 아니더냐! 설마 아직도 삼룡 어멈과는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냐!? ]
고미의 불호령에 이강혁은 감동한 듯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한 것 같군요.”
“나도 오랜만에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그 친구는 친구가 없다고 말하니까 좀 서운하네요.”
한유진 씨가 놀리듯 한 말에 이강혁의 입가에는 또다시 미소가 걸렸다.
“그러게요. 사죄의 의미로 제가 오늘 꼭 큰 놈으로 낚아서 회를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오늘은 특급 주방장님도 계시니, 맛은 걱정할 것 없겠네요.”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배를 타고 이동하기를 한참, 커다란 섬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 오오오! 참으로 아름다운 섬이구나! 저곳에 참돔이라는 녀석이 사는 것이냐!? ]
목적지에 도착하자, 고미는 신이 나서 낚싯대를 던지는 흉내를 냈다.
“자, 그럼 아버님께서는 편히 낚시를 즐기시죠. 다른 분들에게는 제가 낚시를 가르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웃으며 낚싯대를 던지자, 이강혁 씨는 낚싯바늘에 달린 이상한 장식 같은 것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루어입니다. 찌낚시는 여러모로 복잡하고, 오늘 목표는 참돔이니, 이 타이라바를 사용해서 편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오, 제법 전문적이네.
“우선 이 낚시대를 이용해서 루어를 던지고.”
이강혁 씨는 가볍게 낚싯대를 휘둘러 루어를 던지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릴이 멈추면, 루어가 바닥에 닿은 것입니다. 바닥을 찍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자, 한번 해보시죠.”
우리는 순서대로 낚싯대를 휘둘러 바닥에 닿는 느낌을 확인했다.
“오, 신기하네요.”
“자, 이제 바닥에 닿으면 줄을 가볍게 다섯 번에서 일곱 번 정도 감아주십시오.”
이강혁 씨가 줄을 감는 시범을 보이며 말했다.
“다시 멈추고, 일곱 번 정도 감았다가, 다시 멈추고······. 일정한 리듬으로 이렇게 해주시다가 입질이 오면 낚싯대를 당기면서 리트리브, 그러니까 줄을 감아주면 됩니다. 단, 너무 급하게 감지는 마시고, 너무 세게 당겨진다 싶으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리트리브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끌어주시면 됩니다.”
음, 낚시라는 게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거군.
난 그냥 낚싯대를 던져놓고 휙 들어 올리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후 이강혁은 몇 가지 주의사항과 낚시에 대한 지식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고,
[ 호오······. ]
고미는 알 듯 모를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귀를 쫑긋거렸다.
[ 그런데, 이 이상한 장난감 같은 것으로 정말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이냐? ]
“찌낚시도 좋지만, 미끼라든지 이것저것 고려할 게 많아서 루어 낚시가 보다 간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 그런 의미가 아니라, 초코바나 젤리를 걸어두는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겠느냐? ]
······.
고미의 말에 자리에 있던 숲속 친구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할말을 잃고 말았다.
지적할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숲속 대장님인 고미의 말에 차마 반박을 못 하겠다는 분위기랄까.
말을 마친 고미는 진지한 표정으로 손에 든 초코바와 루어를 번갈아 바라봤다.
[ 어떠하냐? 너희가 원한다면 이 몸의 초코바를 나누어 주마. 회라면 초코바만큼이나 맛이 좋으니, 초코바를 사용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
농담이 아니었군. 저걸 진지하게 말할 수 있다니.
하긴, 고미도 드래곤들도 인간들이 먹는 걸 잘 먹으니까, 물고기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수다르가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고미님, 물고기들은 눈도 나쁘고 머리도 나빠 저 루어를 초코바로 착각할 터이니, 안심하고 저 가짜 미끼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 우웃! 그럼 초코바를 쓰지 않고 초코바를 쓴 것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단 말이냐? ]
음······. 이걸 저렇게 넘기다니, 굉장하군.
고미에게 물고기는 초코바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 시키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상황을 모면했어.
나라면 어떻게든 고미에게 물고기는 초코바를 먹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려 했을 텐데.
“자, 그럼 이제 실습에 들어가 볼까요?”
이강혁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수다르와 알틴을 제외한 모두는 하나둘 낚싯대를 던졌고······.
너무나도 당연히,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루어를 던졌음에도 아무것도 걸리지 않자, 슬슬 고미의 분노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 수하, 고북 대왕에게 받은 피리를 불거라. 이 주변에는 물고기 녀석들이 없는 것이 틀림없다. 이 몸이 고래들을 불러 물고기를 몰아오라고 하겠다. ]
······.
지금 용왕님의 피리를 고작 그런데 사용하라고 하는 거냐······.
피리 이야기가 나오자, 수다르는 놀란 듯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수하님, 고북 대왕을 만나셨습니까?”
뭐야, 용왕님과 아는 사이인 건가?
“아, 네. 바닷가에 게이트가 열렸는데, 고북 대왕님이 고미를 땅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이런, 인간들이 많이 놀랐겠군요.”
게다가 용왕이 나타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까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산신령님도 용왕님을 아시는 거예요?”
나의 질문에 수다르는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산의 신령이고, 고북 대왕은 바다의 신령이니, 직접 만날 일은 없지만,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요.”
음······. 그렇군.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이게 아니다.
“그런데 용왕님이 수다르님하고 똑같은 말을 하던데, 자기 대에서 고미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도 선글라스를 쓴 아기곰은 낚싯대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고,
“으음······.”
이에 수다르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고미님을 직접 만나 뵌 것은 1대 산신령인 수다르 1세님 이십니다. 아니, 고미님 덕분에 산신령이 된 것이지요. 고북 대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왜 산신령과 용왕이 고미 덕분에 그 자리에 앉았다는 거죠?”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수다르는 또다시 고미의 눈치를 살피고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마 고미가 이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판단한 거겠지. 고미의 청력으로 우리 이야기를 듣지 못할 리가 없으니까.
“본래 산은 호랑이의 것, 바다는 용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포악함에 많은 인간이 해를 입었고······. 이에 고미 님께서 그들을 벌하시고 수다르 1세와 고북 1세에게 산과 바다를 넘겨주셨습니다.”
“어······.”
‘고미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산신령과 용왕을 갈아치울 자격까지 가지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이 머리를 스치는 찰나,
[ 수하! 걸렸다! 무언가가 이 몸의 가짜 초코바를 물었느니라! ]
“나머지 이야기는 고미님에게 직접 들으시지요. 제가 말을 하도록 두었다는 것은, 수하님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밝힐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향해 웃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그만 고미님에게 가보십시오. 자신이 잡은 것을 수하님과 나누고 싶어하실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용기를 내셔도 좋을 듯합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한 수다르의 말에 나는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 것을 느꼈다.
“네, 감사합니다. 고미! 뭐 잡았어!?”
[ 무언가 굉장한 녀석이 잡힌 모양이다! 제법 묵직하구나! ]
후다닥 고미의 곁으로 달려가자, 녀석은 신이 나서 릴을 감아댔고, 마침내 ‘첫 번째 월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 우웅!? 이 녀석은··· 무엇이냐? ]
하지만, 잡힌 것은 우리의 기대와는 조금, 아니, 많이 동떨어진 것이었으니······.
“미더덕을 어떻게 잡았어?”
“굉장하군요······.”
고미의 첫 수확물을 본 이강혁은 이런 것은 처음 봤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낚시로 미더덕을 건져 올릴 수 있는 걸까. 하여간 정말 신기한 녀석이다.
“와! 저, 이거 봤어요! 그, 시골 어부! 그 프로그램에 나왔는데, 진짜로 낚시로 미더덕이 걸리기도 하는구나.”
한유진은 신기하다며 난리를 피워댔지만, 고미의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 이럴 수가, 이 몸이 이런 먹지도 못할 것을 낚았단 말이냐? ]
아니 뭐, 굳이 따지면 먹을 수는 있지.
“괜찮아. 고미, 그것도 먹을 수 있어.”
[ 정말이냐? 아무리 봐도 먹을 수 있는 녀석이 아닌 것 같은데······. ]
그렇게 고미가 자신의 첫 번째 사냥감(?)을 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저도 낚았습니다!”
“저도 뭔가 잡혔군요.”
제르보나도, 이유찬 씨도, 하나둘 물고기를 잡아올렸다. 참돔은 아니지만, 제법 실한 놀래미 두 마리.
‘음, 미더덕보다는 낫군.’
똑같은 어종에 크기까지 비슷한 것은 낚은 두 사람이 서로 네 것이 크네 내 것이 크네 하며 입씨름을 벌이는 사이,
“왔다! 왔어! 참돔이다!”
아버지가 정말로 참돔을 낚아버리고 마셨다.
심지어 크기도 제법 커서, 아버지의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 양반이 정말로 참돔을 낚을 줄은 몰랐네.”
그 장면을 본 어머니는 못 당하겠다는 듯 웃으면서 고미에게 눈길을 돌렸다.
“우리 예쁜 고미는 뭐 잡았어?”
어머니가 다가오며 그렇게 묻자,
[ 거, 검은콩도, 아빠도, 딸기도··· 모두 제대로 된 것을 잡았는데······. 저, 정말로, 위대한 이 몸이 꼴찌란 말이냐? ]
고미는 마치 0점이 찍힌 성적표를 들킨 아이처럼 수치심과 좌절감으로 온몸을 바르르 떨었고,
[ 이, 이럴 수는 없다. 이럴 수는 없어! ]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이, 전지전능한 이 몸이······. 어떻게······. ]
‘음, 이거 좌절 게이지가 꽤 높은데,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면 어떻게 하지.’
그렇게 분노한 고미가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때,
<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시스템이 또다시 퀘스트를 보내왔다.
‘응? 잠깐, 이게 맞아?’
그런데, 어째 평소와는 퀘스트의 내용에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