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4 던전 1타 강사의 특별 교습
[ 수하! 탐색이 끝났다! 임무는 잘 마쳤겠지!? ]
던전에서 나온 고미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빙 둘러 걸어오며 말했다.
아니, 어떻게 던전에서 나온 이족 보행 아기곰이 자기 옆을 지나가는데도 눈치를 못 채지······.
몇 번을 봐도 살곰살곰의 위력은 굉장하군.
* * *
30분 전.
[ 그럼 이 몸이 먼저 던전을 탐사해 보도록 하겠다. ]
“안 돼, 입찰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니까.”
[ 알고 있다, 파괴하지는 않고 둘러보고만 나오마. ]
“이 던전, 폐쇄형이잖아. 들어가면 못 나온다고.”
던전의 등급은 몰라도, 폐쇄형인지 개방형인지는 색깔을 보면 알 수 있다.
폐쇄형은 붉은색, 개방형은 노란색.
뭐, 종종 아무 색도 없거나, 그 외의 색깔을 띠는 던전들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이 두 가지 색에 해당하는 던전은 유형을 파악할 수 있다.
지금 이 던전은 새빨간 색이니까, 폐쇄형이 확실하고.
[ 후훗, 가소롭구나. 위대한 이 몸에게 들어가면 나오지 못하는 던전 따위는 없느니라. ]
말을 마친 고미는 말릴 새도 없이 폴짝 뛰어 던전 안으로 사라졌고,
[ 보아라! 엉곰엉곰! ]
곧 붉은 빛을 내뿜는 던전 입구에서 초콜릿색 솜뭉치가 엉곰엉곰 기어 나왔다.
[ 보았느냐? 이것이 바로 엉곰엉곰이니라! ]
고미가 거만한 표정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째서 늘 올려다보는데 내려다보는 느낌이 드는 거냐.
한편, 고미가 단순히 힘만 센 슈퍼 곰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강혁과 한유진은 멍한 표정으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황당하겠지.
고미를 처음 봤을 때 내 표정이 저랬겠군.
“곰 선생님. 잠시나마 선생님을 의심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강혁이 감격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반면 한유진은 움직이는 물체를 보는 고양이처럼 정신없이 고개를 돌려가며 나와 고미를 번갈아 바라봤다.
[ 후훗, 이 몸은 전지전능하고 위대한, 진정한 곰이니라. 동이를 만난 이후 힘을 되찾아 더욱 위대해졌지. 그런 이 몸에게 불가능한 일 따위가 있을 리 없지 않느냐. ]
두 사람의 반응에 한껏 기가 산 고미의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으음, 이거 시스템 창 한번 확인해 봐야겠는데.
어쩌면 ‘위대한 갓-고미님의 스킬 상점’에 ‘New’ 나 ‘신상’ 같은 글자가 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고미의 말에 따르면 던전의 초반부는 나도 어찌어찌 싸워볼 만한 수준의 몬스터로 이루어져 있고, 중반부부터는 A급의 몬스터, 마지막에는 S급의 보스 몬스터가 배치되어 있다고 했다.
[ 처음에는 이 몸이 홀로 던전을 파괴할까 했지만, 이번 기회에 너희를 단련시켜줄까 한다. 엄마 아빠를 도와 장을 봐주고, 이 몸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었으니, 너희들에게도 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음, 굉장하다.
호떡+떡튀순+잔심부름 = S급 던전 투어라니,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심부름 값이군.
“그런데, 던전을 낙찰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S급 던전이라면 패왕이랑 다크 메이지도 분명히 입찰에 들어갈 건데.”
고미의 말을 듣고 있던 한유진은 한가지 문제를 제기했고, 나는 이강혁과 손을 잡는 것의 이점을 어필할 기회가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아, 그건 제게 생각이 있어요.”
“무슨 생각이요?”
“이강혁 씨가 회귀자라고 의심하고 있는 건 한유진 씨만이 아니잖아요. 그 의심을 역이용해 보는 거죠. 잘만 풀리면 최저가로 S급 던전을 입찰할 수 있을 거예요.”
“글쎄, 문경준 그 뇌까지 근육으로 된 인간이라면 모를까, 노인국은 속이기 어렵지 않을까요?”
한유진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었다.
노인국의 ‘점술’ 능력은 꽤 유명하니까.
하지만 ‘예언’이 아니라 ‘점술’이라는 점을 파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술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죠?”
“일의 과정은 몰라도, 결과는 꽤 정확히 알 수 있는 수준이에요. 저 던전은 가치가 없다, 들어가면 위험하다. 그 정도.”
“그럼 고미가 저 던전 안에 들어가 있으면, 대흉이 뜨지 않을까요?”
나의 말에 두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거라면······. 김수하 씨, 정말 머리가 좋네요.”
“과연, 곰 선생님의 제자답습니다.”
하지만 ‘대흉’이라는 말에 고미는 곧바로 노발대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 뭣이! 이 몸이 어째서 대흉이란 말이냐! 이 몸은 행운과 복의 상징이란 말이다! ]
“그런 뜻이 아니야. 네가 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나쁜 놈들에게는 엄청난 불운이라는 소리지.”
[ 호오······. 그건 그렇지. 이 몸은 정의로운 곰이니, 악당들에게는 결코 자비가 없다! ]
고미는 그렇게 말하며 호빵처럼 동그란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음, 설득이 너무 쉽군.
그래도 이런 단순함이 고미의 매력이지.
[ 후훗, 그럼 이 몸이 저 안에 들어가 있다가 살곰살곰 빠져나오면 된다는 것이냐!? ]
그렇게 나는 이강혁에 대한 의심과 노인국의 점술 능력을 역이용할 책략을 짜냈고, 결과적으로 S급 던전을 날로 먹는데 성공했다.
* * *
던전 소유권이 용왕 길드에게 넘어온 후, 한유진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주위에 차단막이 세워졌다.
출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유찬과 제르보나였다.
나와 이강혁, 고미는······.
시장으로 돌아가 시커먼 원단 몇 마를 산 뒤 그것으로 전신을 가린 채 다시 던전으로 향했다.
[ 후후후, 이렇게 변장을 하고 몰래 들어가서 던전을 파괴하는 것이냐? ]
잔뜩 신이 난 고미가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보자기(?) 안을 볼 수는 없지만, 엉덩이에 해당하는 부위가 상당히 매혹적으로 씰룩거리고 있으니, 아마 꼬리를 돌리고 있는 거겠지.
지금 녀석은 제 키보다 몇 배는 큰 천을 뒤집어쓴 채 허곰답보로 허공을 걸으며 이동하고 있었다.
‘음, 멀리서 보면 무슨 유령이 떠다니는 것 같네.’
[ 빨갱이, 검둥이, 입구를 잘 지키고 있거라. ]
차단막으로 가려진 던전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보자기를 뒤집어 쓴 고미가 두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렸다.
“걱정 마십시오, 고미님.”
“목숨을 걸고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두 드래곤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고미의 말에 답했고,
- 삐이이!
알틴은 왜 자신에게는 명령을 내리지 않느냐는 듯 뺨을 부풀리며 고미의 주위를 날아다녔다.
[ 후훗, 알겠다, 작은 금동이. 너도 빨갱이, 검둥이와 함께 입구를 잘 지켜다오. ]
그런데, 듣다 보니 호칭에 심하게 문제가 있다.
“고미, 빨갱이는 안 돼.”
[ 어째서냐? 저 녀석은 빨간 도마뱀이 아니더냐? ]
“그런 게 있어. 차라리 빨간 도마뱀으로 해.”
음, 곰곰이 따져보니 검둥이도 다소 문제가 있다.
누렁이, 검둥이, 백구, 흰둥이 같은 이름은 시골 개의 공식 명칭이나 마찬가지지만, 지구촌 시대에 이런 인종 차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게 둘 수는 없지.
“검둥이도 좀 그런 것 같아. 검은 도마뱀 정도로 하자.”
[ 싫다! 빨갱이와 검둥이가 더 부르기가 좋단 말이다! ]
“안 돼. 그거, 요즘에는 엄청 나쁜 말이야. 그래도 금동이 부하인데 욕으로 별명을 지어주면 안 되지.”
나의 지적에 고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 흥, 좋다. 그럼 딸기와 검은콩으로 하겠다! ]
그래도 먹을 거니까 호감은 있는 거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오늘 던전 행에서 봉식이는 제외였다.
던전에 들어가 있는 동안 부모님의 짐꾼(?)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필요한데, 역시 힘 하면 봉식이니까.
대신 나중에 마정석이나 아이템이라도 겨줘야지.
그렇게 우리 넷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던전으로 들어갔다.
* * *
던전의 지형은, 아마존에 버금가는 울창한 밀림이었다.
목이 부러져라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나무와, 햇빛을 모두 차단해 버릴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난 나뭇잎, 곳곳에 자리한 이끼와 기괴한 형상의 꽃과 풀들······.
왠지 고미에게 어울리는 환경이다.
울창한 숲을 오가는 아기곰, 그림이 딱 나오지 않나.
- 크르륵, 크륵.
- 츠츠츠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불길한 울음소리.
<< 태초의 우림 >>
< 몬스터 등급 A ~ S >
< 클리어 조건 >
우림 깊숙한 곳에 몸을 숨기고 있는 ‘늪지대의 왕’을 처치하세요.
< 클리어 보상 >
‘???’의 어금니, ‘???’의 발톱, ‘???’의 단단한 가죽, S급 마수의 심장.
< 비고 >
보스를 처치하기 전까지 던전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음, 보스를 처치하기 전에는 벗어날 수 없다라······.
왠지 가소로운 한 줄이군.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귀여운 솜뭉치 하나가 마음대로 들락날락했잖아.
시스템 창의 메시지를 확인한 이강혁과 한유진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고미의 얼굴 위로 향했다.
눈에 ‘어떻게 나오셨어요?’ 하고 쓰여있군.
‘엉곰엉곰 기어 나오면 된다!’ 정도의 설명으로 이 상황이 이해가 갈 리가 없지.
사실 나도 이해는 못 한다. 그냥 되는구나 하는 거지.
왜 이럴 때마다 고미의 얼굴과 교수님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걸까.
“후후, 자, 출발이다.”
고미는 두 사람의 시선을 무시한 채 곧바로 출발 명령을 내렸다.
보통 S급 던전 공략팀은 S급 헌터 하나나 둘, A급 헌터 서넛에 B급 최상위 헌터 몇으로 구성된다. 몬스터 배치에 따라 B급은 아예 빼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S급 하나, A급 하나, 이제 막 B급이 된 나까지, 셋으로 구성된 단출한 파티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자살특공대’ 같은 명칭이 붙을만한 구성.
물론 드래곤 둘이 보태지면 아주 안정적으로 던전 공략이 가능하겠지만, 고미는 드래곤들을 떼놓고 이 인원만으로 던전을 공략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삼룡 어멈, 너는 도마뱀들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 덕분에 네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삼룡이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느니라. 」
던전에 들어오기 전, 고미가 했던 말이다.
제르보나와 제르날은, 그 말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긍정이나 다름없는 반응.
「 그럴 리가 없어요! 」
한유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스킬 ‘드래곤 라이더’에 대해 설명했다.
용에 올라타면 자신의 마력이 증가하고, 드래곤들도 능력치 버프를 받는다고.
확실히 누구나 탐낼만한 스킬 구성이다.
본인도 S급에, S급인 용 두 마리에게 버프가 들어가니까.
그러나 고미는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 아니, 삼룡어멈, 너는 그저 명검의 날카로움에 의지해 그것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것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허수아비만도 못하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 거라. 너는 이 몸에게 떡튀순이라는 것을 대접하기로 했으니, 미리 값을 치른다 치고 너에게 진정한 전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마. 」
그리고 첫 번째 몬스터가 나타나는 순간,
“잘 보세요!”
한유진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려는 듯 곧바로 손에서 번개를 뿜어냈다.
- 쿠르릉!
우렁찬 뇌성과 함께 새파란 전광이 우림 위로 떨어지고, 그녀를 향해 달려들던 거대한 쌍두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시커먼 재가 되고 말았다.
“봐요, 드래곤이 없어도 이 정도 위력이라고요. 제르보나나 유찬이랑 같이 있으면 더 강해지고요.”
단번에 A급 몬스터를 처리한 한유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시커멓게 타버린 쌍두사를 가리키며 외쳤다.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의 발밑이 들썩거리며 두 개의 뱀 머리가 튀어나왔고,
- 콰직!
새파란 뇌창(雷槍)이 단번에 두 개의 뱀 머리를 꿰뚫었다.
“흥, 보거라. 쓸데없이 거창한 공격을 날려대니 네 공격을 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허물을 벗어 눈속임까지 하지 않느냐.”
고개를 돌리자, 고미의 분홍색 젤리에서 새파란 번개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