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3 그 안에 무서운 거 있다
‘고미’가,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정지’ 신호를 보낸다.
이 세 단어의 조합만 놓고 보아도, 사태의 심각성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초코바 하나 못 먹게 됐다고 블랙 드래곤에게 ‘참교육’을 시전하는 식탐의 화신이, 먹을 것을 포기할만한 이유라······.
그것도 본인의 ‘위대함’을 뽐내기 위한 웅림픽을 중단시키면서?
‘게이트라도 열렸나?’
나는 곧장 B급으로 올라간 감각 강화 스킬을 활용해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확인했다.
“고등어 한 마리 주세요.”
“딸기는 얼마에요?”
“이거 국산이에요?”
하지만, 시장의 분위기는 평화롭기 짝이 없었다.
“곰 선생님, 왜 그러십니까?”
“고미님, 떡튀순이 맘에 안 들어요?”
음, 떡튀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다니, 아직 고미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안 먹어 본 거라면 그게 독약이라도 ‘그 무엇도 위대한 이 몸을 해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삼키는 게 고미다.
메뉴 선정에 문제가 있다고 먹는 걸 포기할 위인, 아니, 위웅이 아니란 말씀.
그때, 고미의 꿀 스카프가 돌연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부모님을 지키는 데 쓰기 위한 아이템이니, 던전이나 게이트가 생성된 게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그런 게 생겼다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텐데······.
[ 수하, 봉식이에게 엄마 아빠를 지키라고 전해라, 그리고 너희 셋은 나를 따라오거라. ]
“네, 곰 선생님.”
“왜 그래요, 고미님?”
명령이 떨어지자, 원조 호구는 군말 없이 고미의 뒤를 따랐고, 신종 호구는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우리의 뒤를 따라왔다.
역시, 신종 호구는 아직 믿음이 부족한 모양이다.
“게이트야?”
[ 아니, 던전이다. ]
“어디에?”
[ 아직 열리지 않았다. ]
뭐?
“자, 잠깐! 고미, 너, 던전이 나타나는 걸 미리 알 수 있어?”
[ 그렇다. 어지간하면 그 떡튀순이라는 것을 맛보고 손을 쓰고 싶지만, 위대한 이 몸이 할 일을 미룰 수는 없지. ]
이어지는 고미의 대답에 우리 셋은 멍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던전과 게이트가 재앙인 가장 큰 이유는, 언제 어디서 생겨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물게 게이트나 던전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헌터들도 존재했지만, 그 정확도나 탐측 범위는 썩 신용할만한 수준이 아니고.
아니, 그래도 명색이 수제자인데 그런 유용한 스킬이 있으면 말을 해줬어야지.
괜히 서운하려고 그러네.
“여태 왜 그런 얘기 안 했어?”
[ 얼마 전부터 가능해진 것이다. ]
고미는 짧은 다리를 바삐 놀려 시장 밖으로 향했다.
본래 이 녀석의 속도라면 이미 시장을 벗어났어야 했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내 허벅지까지도 오지 않는 크기의 아기곰이 파워 워킹을 하는 것 역시 다른 의미로 시선 강탈이기는 하지만······.
허곰답보로 이동하는 것보다야 시선을 덜 끌겠지.
“새로운 스킬이라는 거야?”
이상하다, 시스템 창에는 그런 거 뜬 적 없는데······.
[ 아니, 동이를 만난 날 이 몸의 권능 중 봉인되어 있던 몇 가지가 깨어난 것이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봉인된 능력이 있었다고? 아직도?
마트료시카도 아니고, 왜 까도 까도 뭐가 나오는 건데.
‘잠깐······. 동이를 만난 날?’
잠시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고미가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섰다.
[ 온다, 조심하거라. ]
그리고는······.
- 쿠구구궁.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발밑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지면에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며 흉흉한 붉은 빛이 흘러 나왔다.
‘뭐야 이게, 다우징 머신, 아니, 다웅(熊)징 머신인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던전 발생을 예측하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탐지 능력이다.
던전이 발생한 곳은, 시장 근처의 공영 주차장이었다.
“저, 정말 던전이 생겼어.”
한유진이 귀신에 홀린 표정으로 새하얀 손을 들어 커다란 두 눈을 비벼대며 말했다.
[ 이 몸이 들어가서 끝장을 내고 오마. ]
고미는 더이상 두고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던전의 입구로 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 고미!”
아, 안돼. 아무리 떡튀순이 먹고 싶어도 보는 눈이 너무 많다고!
나의 다급한 외침에 고미는 성가시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 왜 그러는 것이냐? 설마 이 몸이 이 던전을 파괴하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것이냐? ]
그럴 리가요. 너무 빨리 파괴할까 봐 무서운 겁니다.
“그런 게 아니야.”
“던전이 생성되면 일단 입찰을 해야 합니다. 소유권자가 정해지기 전에 파괴해도 되는 것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하기 직전의 던전에 한해서입니다.”
이강혁의 설명에 고미는 더욱 불쾌하다는 듯 솜털을 바짝 세우며 눈을 치켜떴다.
[ 어째서 그런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한 것이지?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니더냐? ]
음, 빨리 떡튀순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군.
내가 고미를 너무 먹보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 정의의 히어로라면 마땅히 고미처럼 말하고 행동해야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던전은 재앙의 근원인 동시에 막대한 재화가 잠들어있는 광산이다. 그러니 그 안에 들어있는 부(富)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꼬아서 보자면 어른의 사정이란 것이고, 목숨을 걸고 일하는 헌터의 입장에서는 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며,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보면 자원의 획득과 리스크 관리를 위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복잡한 사정을 고미에게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뭐가 옳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 뭐가 됐든, 이 던전은 반드시 없앨 것이다. 나의 부하들과 처음으로 장을 보러 나왔는데, 그런 추억이 깃든 장소가 파괴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호떡 장수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는 그런 호떡을 흔히 맛볼 수 없을 것 같구나. ]
‘부하들’과 ‘추억이 깃든 장소’라는 말에 이강혁은 팬을 챙기는 스타의 말을 들은 열혈팬처럼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곰 선생님. 제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반드시 이 던전을 사겠습니다.”
“저도요. 손해 좀 보더라도 얼마나 보겠어요.”
이강혁에게 지기 싫었는지, 한유진 역시 선뜻 던전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사람들이 진짜······.’
물론, 내가 두 사람의 입장이라도 저렇게 대답했을 거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맞붙어서 가격 올려봐야 제 살 깎아 먹기밖에 안 되잖아.
승부욕을 불태우는 건 좋지만, 웅림픽을 위해 몇억을 불태우는 건 안 된다고. 그 돈으로 차라리 우리 고미 쪼꼬바를 사줘라.
“저기, 그러면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러지 말고 차라리······.”
결국 나는 두 사람이 쓸데없이 돈 낭비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머리를 짜내야 했다.
그런데, 고미한테 친구가 늘어날 때마다 수습할 일도 늘어나는 것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 * *
30분 후, 헌터 협회에서 나온 던전 등급 측정 요원들과 어지간한 길드의 실무자, 혹은 길드장들이 던전 근처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유진은 던전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나는 구경꾼들 틈에 섞여 상황을 관망했다.
이제부터 시작될 연극의 주연은 이강혁과 한유진.
내 배역은, 음, 행인1(흑막)로 하자.
“예상 등급, A급 최상위에서 S급, 폐쇄형입니다.”
측정 요원의 말에 주위에 둘러서 있던 시장 상인들의 입에서는 장탄식이 새어 나왔다.
“아이고,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망했네, 망했어.”
“왜 하필 여기에 던전이 열리는 거야!”
개방형 던전은 공략에 실패해도 리스크가 없다.
일단 안에 들어갔다가 아니다 싶으면 출구로 돌아오면 그만이니까.
술에 취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자니?’라고 깨톡을 보내는 것보다도 리스크가 없지.
하지만 폐쇄형 던전은 이야기가 다르다.
일단 안에 들어가면, 보스를 잡든지 던전 퀘스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밖으로 나오지 못하니까.
즉, 폐쇄형 상급 던전은, 그 자체로 ‘하이리스크’를 의미했다.
리스크가 높으면 그만큼 보상도 커야 하지만, 그 보상이 뭔지는 들어가 봐야 안다는 것이 문제고.
“어때? 우리 예쁜이는 이 던전이 땡기나?”
거구의 사내가 건들거리며 한유진에게 물었다.
“알 게 뭐야. 그리고, 친한 척하지 마.”
문경준. 아직도 초월자의 가짜 빙의체를 없애던 날 보았던 그 흉포한 모습이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아동 교육에 해가 되는 악당 같으니.
그의 곁에는 툭 치면 죽을 것 같은 말라비틀어진 할아버지 하나가 서 있었다.
‘저 사람이 노인국인가······.’
4대 길드의 마지막 한 축인 ‘다크 메이지’의 수장.
일명 ‘히키코모리’ , ‘은톨이’ 길드의 우두머리답게,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길드 건물이나 자택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소 A급인 폐쇄형 던전이 나타났으니, 직접 상황을 보러 온 모양이다.
4대 길드의 길드장 중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단 한 명, 나의 지시대로 시장 한구석에 숨어 타이밍을 재고 있는 주연 2(하수인) ‘이강혁’이었다.
“그런데, 우리 칼잡이 씨는 왜 보이질 않나, 응?”
문경준이 맹수 같은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던전, 개털인 모양인데, 그렇지 않고서야 그 여우 같은 자식이 여태 안 나타날 리가 없잖아.”
“시끄러워. 괜히 떠보지 마.”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문경준에 반해, 한유진은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으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기 좋고.
아니, 연기가 아니라 진짜 문경준을 싫어하는 건가.
그리고 입찰이 시작될 무렵, 이강혁이 무대에 올랐다.
“여, 칼잡이. 이 던전, 입찰할 건가, 응?”
“저는 포기하겠습니다.”
짤막한 한마디에 문경준의 눈이 야수처럼 빛났다.
“그럼 나와 손을 잡아보는 건 어때? 수익률은 육 대 사, 네 쪽이 6. 단, 보증금은 네가 낸다.”
“아뇨. 됐습니다.”
이강혁이 또다시 단칼에 거절하자, 문경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한편, 노인국은 아무런 말도 없이 유심히 이강혁을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동전 하나를 가볍게 튕겼다가 그것을 되받고는,
“나도 포기하지.”
입찰 포기를 선언하고 그대로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4대 길드의 길드장인데, 존재감이 너무 희미하다.
어찌 보면 은둔형 외톨이 길드의 길드장답다고도 할 수 있겠군.
어쨌든, 노인국은 점술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전을 튕겨 보는 게 아마도 점술의 일환이었겠지.
그리고 던전을 가지고 점을 쳐 본 결과는, 100% 흉이었을거다.
지금 그 안에 ‘무서운 게’ 들어가 있거든.
그리고 이강혁은 회귀자로 의심받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입찰을 포기했다는 건, 던전이 등급만 높은 개털이거나,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겠지.
‘적어도, 문경준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래도 알려진 거랑 달리 꽤 주도면밀하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수익률 운운하며 이강혁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던전이라고 판단해서 입찰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떠보지는 않았을 테니까.
회귀자가 포기하고, 점술 능력을 가진 노인국이 흥미를 보이지 않는 던전.
4대 길드장 중 이득에 가장 민감한 문경준이 그런 던전에 입찰을 할 리가 없지.
“흥, 그럼 나도 가봐야겠군.”
아니나 다를까, 문경준도 입찰 포기를 선언했고,
“흥, 뭐야 시시하게. 그럼 제가 입찰하죠. 보증금 20억. 부산물 납부는 10%.”
결국 한유진이 거의 공짜로 던전을 주워 담았다.
“혹시 입찰할 사람 또 있나요?”
한유진이 싸늘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묻자, 중소길드의 길드장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음, ‘공포의 마녀’라는 별명이 납득이 가는 표정과 제스쳐다.
본인은 억울하다고 했지만, 저 표정이나 행동을 보니까 왜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지 이해가 가는군.
그렇게 이강혁(주연2, 하수인)과 한유진(주연1, 무서운 사람)을 이용해 던전을 낙찰받았을 무렵, 던전 입구에서 초콜릿색의 ‘무서운’ 솜뭉치 하나가 엉금엉금, 아니, 엉곰엉곰 기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