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58화 (58/300)

EP.58 음모와 광기의 디저트 파티

“제르보나가요?”

말을 하는 한유진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기색이 가득 묻어났다.

“네. 고미 아팠던 날, 돌아가면서 그러더라고요.”

“하, 정말······.”

그리고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그 순간, 그녀와 드래곤들의 관계가 나와 고미의 관계와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방적인 테이밍이 아니라 계약 관계 같은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제르보나가 그렇게 제멋대로 굴고, 한유진이 이렇게 당황하지는 않을 테니까.

“사실, 제르보나가 찾고 있는 곰이 있어요. 아주 특별한 곰이라는데, 혹시 그게 고미는 아닐까 생각한 거예요.”

“그 곰을 왜 찾는데요?”

이어지는 나의 질문에 한유진은 곤란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드래곤과 그녀의 관계가 알려진 것처럼 ‘테이밍’이 아니라 ‘계약’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욱 확신이 생긴다.

아마도 답을 못하는 건 자기 사정이 아니라 드래곤들과 약속한 게 있어서겠지.

어찌 됐든, 고미의 정체는 말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고미가 제일 싫어하는 게 드래곤이니까······. 용들과 싸운 적도 있는 것 같고, 그쪽에서도 좋은 일로 찾지는 않겠지.’

조금 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기는 한데······.

여기서 질문을 한다고 대답할 것 같지는 않다.

괜히 꼬치꼬치 물어서 의심을 사느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게 낫다.

‘나중에 고미한테 짚이는 게 있냐고 묻는 편이 낫겠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생전 처음 보는 화려한 비주얼의 간식들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든 점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고미의 눈이 평소보다 두 배는 커지며 흥분을 이기지 못한 듯 입을 틀어막았다.

석상처럼 그대로 굳어있는 녀석의 모습에 카트를 태워줬을 때처럼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뱉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 후, 후, 후, 후······ ]

훌륭하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기쁨이 너무 극에 달해서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 훌륭하다! 훌륭해! ]

역시.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온 감탄사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초콜릿을 잔뜩 끼얹은 쇼콜라에, 딸기가 잔뜩 올라간 빨간 케이크, 역시나 초콜릿 파우더가 잔뜩 올라간 티라미수, 나머지도 죄다 과일이나 초콜릿이 올라가 있고,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달아 보인다.

고미에게는 천국의 식탁이나 다름이 없겠지만, 내 입에 맞는 건 하나도 없어 보인다.

‘뭐, 고미가 좋아하니까 됐지.’

나는 원래 디저트류라면 달든 안 달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애초에 먹을 거 자체에 크게 관심이 없는 타입이니까.

거기다 얻어 먹으면서 내가 원하는 게 있나 없나 따지고 싶지도 않고.

[ 으, 으으······. ]

반면 고미는 당장이라도 테이블 위로 뛰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러 참고 있었다.

눈은 이미 식탐과 광기로 물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체통을 잃지 않는 모습이 대견하다.

역시 위대한 곰다운 자제력과 위엄이군.

그래도 이렇게 격렬한 반응은 처음이네. 그렇게 좋은가?

지금 녀석은 빨리 먹고 싶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꼬리를 빙빙 돌리며 발을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먼저 먹을 것에 손을 대지는 않고 한유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의 그런 모습에 한유진은 신기하고 기특하다는 듯 환히 웃음을 지었다.

“설마 내가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거니?”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제야 고미가 왜 먹을 것에 달려들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대접을 받는 거니까 먼저 먹을 것에 손을 대지 않는 건가?

정말 예의를 아는 곰이다.

‘잠깐, 나한테는 그런 거 없었잖아.’

뭔가 서운하고 억울하고, 내가 편해서 그런가 싶어 기분이 좋기도 한 것이······. 거참 묘하네.

“예뻐라, 우리 알틴이 널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다. 얼른 먹어, 너 주려고 많이 산 거야.”

한유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미의 포크가 티라미수 크레이프로 향했다.

반짝이는 포크로 티라미수를 꾹 누르자, 지층처럼 층층이 자리 잡은 속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망의 한입.

[ 이, 이것은! 달콤함뿐이 아니다, 폭신하고, 부드럽고······. 이 깊은 맛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이란 말이냐! ]

음, 굉장한 맛인가 보네.

하지만 수다르에 비하면 표현력이 조금 부족하다.

산신령 할아버지를 데리고 왔다면 뭔가 예술적인 시식평이 나왔을 것 같은데. 티라미수나 크레이프에 대해서도 한과만큼 잘 알까?

다음에 먹방을 할 일이 있다면 수다르를 초빙해볼까······.

“먹는 것도 어쩜 이렇게 이쁠까.”

고미를 바라보는 한유진의 눈에서는 그야말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한 건 저렇게 예뻐하면서도 함부로 안거나 손을 대지는 않는다는 점. 그러기는커녕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정한 거리 안으로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다.

임성한 씨와 마찬가지로, 단순히 예쁜 인형을 대하듯이 동물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동물에 대해 잘 안다는 느낌.

“동물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동물이든 펫이든, 낯선 사람이 갑자기 자신의 몸에 손을 대거나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는 개체는 드물다.

심지어 인간과 가장 친한 동물인 개조차 견종에 따라서는 갑자기 손을 뻗으면 경계한다고 하니까.

“네. 동물은 순수하잖아요. 사랑을 주면 그만큼 돌려주니까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는 한유진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어렸다.

음,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대답이군.

묻지 말자, 정든다.

“수하 씨도 드셔보세요. 여기 디저트 정말 맛있어요.”

“아, 네.”

단 음식은 취향이 아니지만, 거절하기도 뭐하니 맛만 봐야겠다.

일단 고미가 극찬한 티라미수부터 먹어볼까?

포크로 아주 조금 티라미수를 잘라 입안에 넣자,

“어, 이거 진짜 맛있네요.”

맛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태생적으로 단맛이나 군것질거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왜 사람들이 디저트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갈 정도였다.

적당히 촉촉하면서도 솜이불처럼 보드랍고 포근한 식감에, 설탕이나 시중에서 파는 초콜릿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단맛. 그리고 깔끔한 끝 맛까지.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는 처음이다.

‘똑같은 초콜릿으로 만든 건데도 이렇게 차이가 나나?’

“그쵸? 맛있죠? 제가 디저트 정말 좋아하는데, 여기 사장님만큼 맛있게 만드는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디저트에 관해 이야기하는 한유진의 미소는 꼭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티끌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러게요. 전 단 음식은 안 좋아하는데, 여기건 정말 맛있네요.”

“저 딸기 샤를로테도 드셔보세요. 저건 안 달아요.”

한유진이 딸기가 잔뜩 올려진 빨간 케이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요? 보기에는 꽤 달아 보이는데······.”

“아니에요, 아까 단 거 잘 안 드신다고 하셔서 일부러 시킨 거에요. 저거 되게 상큼해요.”

나는 먼저 케이크 위에 얹어진 딸기를 집어 먹은 뒤 포크로 빵을 찍어 먹었다.

빵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담백했다.

빵의 중간중간 끼워져있는 상큼한 딸기와 크림이 단맛을 잡아주어서인지 상당히 산뜻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실로 절묘한 밸런스.

“그러게요. 겉보기에는 달아 보이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좋네요.”

달지 않다는 말에 딸기 케이크로 향하던 고미의 손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는 이내 방향을 틀어 카넛이 올라간 쇼콜라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이럴 때 보면 입맛이 다르다는 게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유치하게 먹는 거 가지고 맘 상할 일은 없으니까.

[ 오, 오오······. ]

또다시 온몸을 바르르 떨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고미의 모습에 한유진과 나의 입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아까는 무슨 일이었죠? 결계 능력자까지 데려온 걸 보면 아예 작정하고 잡으러 온 것 같던데.”

질문을 하는 동안에도 한유진의 시선은 고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지간히도 고미가 좋은가보다.

“아, 패왕 길드랑 마찰이 좀 있어서요.”

“패왕이요?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그 미친놈들이랑 엮였어요?”

패왕 길드의 이름이 나오자, 줄곧 고미에게 향해있던 그녀의 시선이 나에게 옮겨왔다.

“정확히는 패왕이 아니라, 어제 한유진 씨 집에 다녀갔던 사람이랑 엮였죠.”

“김춘식? 그 양아치랑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지, 한유진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어제 한유진 씨 집 앞에서 시비가 붙었거든요. 일단 이유찬 씨가 쫓아주기는 했는데, 그쪽에는 손을 못 대니까 저한테 화풀이라도 하려고 그런 건 아닐까요?”

물론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말하는 편이 좋다.

여기서 괜히 무슨 거래를 했냐, 하는 식으로 묻는다면 괜히 경계심을 가질 확률이 높으니까.

“그럴 리가요. 김춘식은 분명 역겨운 놈이지만, 아무런 이득도 안 되는 일에 사람 풀어서 그 난리를 피울 만큼 멍청하지는 않아요.”

네, 나도 압니다.

당신 입에서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거지.

“아니면 한유진 씨를 짝사랑한다던가?”

웃자고 던진 말에 한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재미없어요.”

“에이, 저를 잡아서 이득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있다고 해도 그날 문 앞에서 처음 본 사이인데 뭘 알고······. 아!”

나는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이 대목에서 일부러 말을 멈추었다.

“왜 그러세요?”

“고미보고 귀엽다고, 어디서 났냐고, 주워다 팔면 돈 좀 되겠다고 했는데, 설마 패왕 길드에서 고미를 노리고 그런 일을 벌인 건 아니겠죠?”

내가 생각해도 약간 모자라 보이는 발언이다.

하지만 김춘식이 괜한 시비를 걸었다는 뉘앙스는 전달했으니 알아서 결론에 도달하겠지.

그 정도 머리도 안 굴러가는 사람이 용왕 같은 큰 길드를 운영할 수 없을 테니까.

“아뇨, 제가 보기에는 괜히 시비를 건 것 같은데······.”

말꼬리를 흐리던 한유진이 돌연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대충 짐작 가는 게 있네요. 죄송해요.”

그렇지. 이 정도로 눈치를 줬는데 이해 못하면 안 되지.

“그 사람이 이상한 건데 한유진 씨가 왜 미안해요.”

“아니에요. 제가 고미를 빨리 보고 싶어서 일찍 오라고 말씀드린 건데, 그것 때문에 뭔가 오해가 생긴 것 같네요. 그쪽한테 시비를 걸었던 것도 그것 때문인 것 같고요.”

“음······.”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생각에 잠긴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가 책임지고 해결할게요.”

한유진이 스스로 원하던 답을 내놓았다.

그렇겠지. 내가 자기 생각보다 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서 패왕 길드에 대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을 테니까.

“어······. 감사하긴 한데, 그러다가 패왕 길드와 싸움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물론 이것도 거짓말이다. 김춘식은 자신의 독단으로 움직였을 거다. 아마도 9할 이상의 확률로.

하지만 내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지.

“괜찮아요. 제가 김춘식의 제안을 거절하는 순간부터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마침내, 내가 질문을 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무슨 제안을 받으신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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