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6 영약이라는 이름의 독극물
고미와의 첫 만남은 확실히 강렬했다. 죽을 뻔했다 살아났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는 사실 이렇다 할 위기가 없었다.
뭐, 고미가 워낙 세다 보니, 지리산 던전에서도 목숨을 건 혈투라든가, 그런 건 없었지.
심지어 검성을 상대로도 낙승.
그러나 지금······. 처음으로 진정한 위기를 만난듯한 기분이 든다.
‘이, 이거 진짜 먹어도 되는 건가.’
형광도료를 칠한 것처럼 이상한 연두색을 뿜어내는 것도 무서운데, 냄새는 고삼차와 까나리 액젓을 정성스레 섞어준 뒤 그 위에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우유를 부은듯하다.
도저히 내 위장이 버텨낼 것 같지가 않다.
성분과 무관하게 먹는 순간 쇼크사할 것 같다고.
“고, 고미, 설마 이걸 먹어야 하는 거야?”
나의 질문에 고미는 도끼눈을 뜨며 벌컥 성을 냈다.
“이것은 이능을 가진 자라면 누구나 탐할 영약 중의 영약이다! 이 몸의 위대한 기운과 천지의 기, 괴수들의 마력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진정한 로열젤리란 말이다!”
하긴, 산신령 할아버지까지 진정한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약효는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
그래, 김수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라는 말도 있잖아. 가자.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시고······. 불효자는 먼저 갑니다.’
하며 야광 왕만두를 집는 순간······.
“안 된다. 집에서 이것을 먹는다면 약효를 완벽하게 흡수할 수 없다. 던전에서 먹어야 역류하는 기를 발산하며 제대로 약효를 볼 수 있다.”
그럼 구멍은 왜 뚫은 거야······. 이 자리에서 먹어야 하는 것 같잖아.
설마 미리 적응하라는 의미로?
이유야 뭐가 됐든, 그 말을 듣고 나니 이 정체불명의 액체를 먹는 것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이래서 주사는 한방에 맞아야 하는건데.
'저 맛을 중화시켜줄 걸 좀 찾아보자. 원액 그대로 먹으면 진짜 골로 갈 것 같단 말이야.'
던전이라는 건 제집 드나들 듯 막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지리산은 필드형인 데다가 아무도 소유권을 사지 않아 방치된 상태라 들어갈 수 있었던 거고.
하지만 제대로 된 던전이라는 건 대체로 길드나 협회, 정부에서 소유권을 가지고 있으니 얘기가 다르다.
'그런데 내 등급에 딱 맞는 던전을, 그것도 아기곰을 데리고 녹색 빛을 내뿜는 이상한 액체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 썩은 물을 먹고 파워 업!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겠냐고.'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한 명분이다.
“고미, 역시 던전으로 가는 건 어려울······.”
그렇게 적당한 핑계거리를 찾아냈을 때, 고미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봉식이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 이강혁한테 부탁하면 되겠네. 어차피 길드 가입하려면 그 사람 만나야 하잖아. D급 던전이 엄청 귀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 눈 피해서 적당히 영약 먹고 수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배신자가! 고미가 아무리 무서워도 날 놀릴 기회는 놓칠 수 없단 거냐? 자기가 먹을 거 아니라고 막 던지는 거 보소!?
‘너, 내가 언젠가 복수한다.’
결국 나는 애써 찾은 핑곗거리를 써먹지도 못하고 이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먹는다. 먹어. 어차피 좀 미루려고 했던 거지, 먹긴 먹으려고 했었다고.
‘그래, 이렇게 된 김에 이강혁 씨 일도 같이 끝내 버리자. 준비물은 다 챙겼다고 했으니까.’
뚜르르- 뚜르르-
“이강혁 씨, 저 김수하입니다.”
“네 수하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저스티스 소유 던전 중에 산악지형을 가진 D급 던전 있을까요? D급이기만 해도 상관없고요.”
갑작스레 던전을 찾는 나의 요구에 이강혁은 이유조차 묻지 않고 즉답을 했다.
“있습니다. 바로 들어가실 생각입니까?”
“네,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지금 계신 곳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 * *
이후 우리는 고미와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왕만두의 구멍은 다시 막아둔 상태였다.
비위 약한 사람들은 이 냄새를 맡자마자 바로 토할 것 같아서.
공중도덕 차원에서 도저히 용납받지 못할 행위지. 암, 그렇고말고.
역 앞에서 잠시 기다리자,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와서 멈춰 섰다.
“수하님. 어서 타시죠.”
이강혁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180을 넘는 큰 키에 날씬하면서도 근육으로 다져진 완벽한 체격, 날카롭고 반듯한 얼굴까지,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외모를 가졌으니까.
유명하기도 원체 유명하고. 인지도로 따지면 어중간한 연예인 이상이지.
하지만 그 이상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그가 메고 있는 정체불명의 ‘부메랑'이었다.
사실 워낙 생김새가 괴랄해 부메랑이라 하기도 어렵지만, 대충 그렇게 부르자.
자신이 만들어 준(?) 무기를 차고 있는 이강혁의 모습에 고미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만들어 준 무기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아직 제대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곰 선생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제 것으로 삼고자 늘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대단하다······. 이게 회귀자의 정신력인가.
지금 이강혁의 차림새는 내 ‘근사한 계획’ 중 하나다.
대화의 물꼬를 트기 전에 고미를 최대한 기분 좋게 만들어주기 위한 포석이랄까.
하지만 정말 시킨 그대로 하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실력은 없지만, 태도가 제법 마음에 드는구나.”
고미가 배를 쭉 내민 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먹혔어.’
저건 고미가 만족스러울 때만 나오는 제스쳐다. 일단 작전 1은 성공.
“그럼 이제 이동하시죠.”
그렇게 이강혁의 차를 타고 이동하기를 이십여 분, 커다란 공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는 커다란 헬기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가급적 큰 이동 수단을 준비해 보라고 했더니······. 설마 헬기를 가지고 올 줄이야.
역시 저스티스 길드장쯤 되면 스케일이 다르고만. 내가 생각한건 기껏해야 대형버스나 리무진인데...
“설마 이거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네, 헬기로 이동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준비해 봤습니다. 혹시 불편하십니까?”
“오오오오! 허수아비! 네 녀석, 정말 제법이구나!”
고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커다란 물체가 뭔지도 모르면서 신이 나서 박수를 쳐댔다.
꼬리가 선풍기 날개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걸로 보아 상당히 흥분 상태다.
어린애란 모름지기 ‘탈 것’에 열광하는 법. 헬기나 비행기라면 거의 백 점 만점에 백 점을 받을 수 있는 탈 것이지.
이강혁을 선두로 나와 봉식이, 고미까지 모두 헬기에 탑승하자, 엄청난 소음과 함께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흠, 제법 시끄러운 버스구나. 본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거늘, 내 이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 두고 보겠다.”
그 소음에 고미는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헬기의 동체가 서서히 이륙을 시작하자,
“오오, 오오오!”
흥분한 고미가 주먹을 움켜쥐며 손에 쥐고 있던 초코바가 으깨지고 말았다.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스스로 날 수 있고, 날다라미도 있는데, 헬기를 타고 나는 건 기분이 다른 건가?
그런데 이 녀석, 아직 초코바 부러진 거 모르는 것 같은데······.
나중에 엄청 충격받는 거 아니야?
“헤에······.”
고미는 헬기가 착륙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아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으응!?”
그렇게 1분쯤 지났을까, 그제야 초코바가 비명횡사(?)한 것을 알아차린 고미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초, 초코바, 내 초코바가······.”
고작 초코바 하나를 먹지 못하게 된 것만으로 저렇게 슬퍼하다니, 참 적응이 안 되는 소박함이다.
“괜찮아. 모양이 망가져서 그렇지 아직 먹을 수 있잖아. 이따 집에 갈 때 초코바 열 개 사줄게.”
“하지만 내 불찰이 아니었다면 멀쩡한 것 열 한 개를 먹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식감이 다르단 말이다 식감이······.”
아아, 이 끝없는 식탐. 게다가 이제 식감까지 따진다.
대체 이 녀석을 어째야 좋을까.
“자, 그건 얼른 먹고, 이거 들고 다녀.”
내가 새 초코바를 건네자, 고미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으깨진 초코바를 한입에 집어삼킨 뒤 새로운 초코바를 받아들었다.
“할 수 없지······. 어서 수련을 시작하자꾸나.”
헬기에서 내려 걸어가는 고미의 뒷모습에서는 일종의 처연함마저 느껴졌다.
이강혁이 어제 딱 저렇게 걸어갔는데······.
“이강혁 씨.”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나는 눈짓으로 세 번째 계획을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알겠습니다.”
그러자 착륙장에서 대기하고 있던 선글라스를 쓴 사내 하나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쇼핑백 하나를 들고 걸어왔다.
“응?”
선글라스를 처음 본 고미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귀를 쫑긋 세웠다.
[ 수하, 저자가 쓰고 다니는 물건이 대체 무엇이냐? 제법 멋을 아는 녀석인 것 같구나. ]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미는 선글라스가 제법 멋있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하나 사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사내는 손에 들린 쇼핑백을 건네주고 꾸벅 인사를 한 뒤 말없이 사라졌다.
“호오, 허수아비. 그것은 무엇이냐?”
고미의 물음에 이강혁은 곧장 쇼핑백을 나에게 건네며 준비한 대사를 던졌다.
“곰 선생님께서 검을 만들어 주셨으니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준비한 작은 성의입니다.”
“흥,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내가 너의 검을 부러뜨렸으니, 내가 고쳐주는 것이 당연하지.”
음, 완전히 끝장을 내버린 게 아니고······?
아무리 봐도 그건 완전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만든 것 같은데.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미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강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녀석, 설마 제자 자리를 노리고 아첨하는 것은 아니겠지?”
이 녀석, 가끔 보면 묘하게 예리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그러나 쇼핑백 속에 든 선물세트의 봉인이 해제되는 순간,
“우웃······. 이, 일단 이것은 순수한 성의로 봐서 받아주마.”
역시,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이강혁에게 사 오라고 이야기한 것은 백화점에서 파는 수제 초콜릿 세트였다.
단, 너무 비싼 것을 사지 말고 일단 적당한 것으로.
원래 이런 건 천천히 단계를 올려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거든.
그나저나 종류가 많네. 아몬드가 박힌 것도 있고, 분홍색 초콜릿에 화이트초콜릿, 과자가 박힌 것까지······.
나는 선물을 봉식이에게 맡긴 후 다 함께 저스티스 길드 소유의 D급 던전으로 들어갔다.
이강혁이 우리의 훈련을 위해 마련해 준 곳은 내가 요구한 조건에 딱 들어맞는 D급의 산악형 던전이었다.
“이곳은 저희 저스티스 길드 소유의 D급 던전입니다. 출몰하는 몬스터는······.”
이강혁이 설명을 시작하자, 고미가 곧바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만, 괴수에 대한 정보를 모두 알고 있으면 제대로 된 훈련이 될 수 없다.”
말을 마친 고미가 산신령의 찻잔에 형광 알갱이가 둥둥 떠다니는 검은 색 액체를 따르기 시작했다.
“우욱······.”
로열젤리에서 나는 역한 냄새에 이강혁은 저도 모르게 코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지 마라. 이제부터 이거 마셔야 하는 사람 앞에서.
으······. 냄새도 냄새지만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다.
석유에 반딧불이가 떠다니는 것······.
아니야,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그냥 눈 딱 감고, 숨 멈추고 원샷 때리는 거야.
“자, 어서 마시거라.”
눈을 질끈 감고 숨을 멈춘 뒤, 찻잔에 든 극약을 들이켜자, 알갱이가 들어 있는 썩은 시럽 같은 것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우웩······.”
먹어서는 안 될 것을 먹은 것 같다는 생각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인간의 미각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선 그 맛에 절로 구역질이 치밀었다.
그리고 그 썩은 시럽 같은 액체가 위에 도착하는 순간,
“크으으······.”
갑자기 시야가 붉어지고, 몸속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전신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