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기곰이 너무 강함-13화 (13/300)

EP.13 숲속에서 잠자는 로또

“헉……. 헉…….”

숨이 턱 끝까지 찬다.

눈이 따갑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는데…….

미친 듯이 심장이 뛰고, 고동 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워나갈 때 즈음.

저 멀리 땅바닥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팔자 좋게 젤리를 먹고 있는 아기곰 한 마리가 보였다.

[ 느리구나. ]

“네, 네가 너무 빠른 거야.”

벌써 내리 1시간 이상을 달렸다.

지구력 강화 스킬과 잡부 일로 다져진 체력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을 것이다.

“그래도 체력은 제법이구나.”

고미가 흡족한 표정으로 과일 모양 젤리를 입안에 던져 넣으며 말했다.

“호오, 흥미로운 모양과 맛이로다. 첫맛은 아주 살짝 시큼하지만, 마지막에 입안에 남는 맛은 달콤한 것이……. 게다가 이 묘한 식감……. 오오, 그래, 이 포도송이 모양, 포도송이 모양이 식감을 더해주고 있다. 실로 절묘하구나. 어찌 이런 생각을 했을꼬?”

<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40/50) >

이 자식이, 남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젤리 하나 가지고 요리 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시식평 하지 말라고…….

그래도 맛있어하니 좋네.

역시 대충 달아 보이는 간식을 종류별로 사두길 잘했다. 저 녀석 입맛에 뭐가 맞을지 모르니까.

“너는 이제 잠시 쉬거라. 나는 이 젤리라는 녀석을 조금 더 음미해 보고 싶구나.”

고미가 더블백을 뒤적여 생수통 하나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크아!”

시원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사방이 고요하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풀벌레 우는 소리뿐.

고개를 들자, 그믐달을 대신해 앞길을 밝혀주려는 듯 하늘 가득 늘어선 별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좋다.

다리는 무겁고,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가 맑다.

확실히 일을 하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똑같이 힘들어도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이렇게 뛰어본 게 얼마 만이더라?

“참으로 아름답지 않느냐? 인간들이 만들어 낸 불빛도 참으로 곱고 보기 좋지만, 나는 별빛이 더 끌리더구나.”

고미가 멍하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녀석이 이런 말도 할 줄 아네.

“나도…….”

“인간들이 만들어 낸 불빛은 무슨 맛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저렇게 별들이 쫙 깔린 것을 보면, 꼭 누군가가 하늘 위에 설탕을 뿌려놓은 것 같지 않느냐? 혀를 대면 단맛이 느껴질 것 같아서 좋다.”

…….

간만에 분위기 좀 잡는데…….

“던전에는 달콤한 게 없었어?”

무심코 던진 질문에 고미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듯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달콤한 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게 하나도 없다.”

“그래?”

하긴, 던전에서 나온 생물이나 부산물로 식품을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먹어본 적은 없지만, 던전에서만 나오는 약초로 만들 수 있는 포션이나 약들도 하나같이 구역질 나는 맛이라고 하고.

「썩은 우유로 걸레를 적신 다음 그걸 짜면 나올 것 같은 맛이야.」

라고, 누가 그랬지.

“그래서 가급적 아무것도 먹지 않고 천지의 기(氣)만을 흡수하며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벽곡의 경지에 이르렀느니라.”

이거, 슬픈 대목인가. 맛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좀 안쓰럽지만, 이야기의 결말이 좀…….

“안됐네.”

“후후, 그래서 이제부터는 맛있는 것을 잔뜩잔뜩 먹을 예정이다.”

한참을 달리다가 이렇게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땀이 식으며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아직 날씨가 쌀쌀한 탓에 저도 모르게 오한이 들었다.

“으으, 일어나자. 땀 식으니까 추워.”

“체온이 떨어지면 몸이 굳어 제대로 움직이기가 어려워진다. 게다가 고뿔이라도 걸리면 수행에 지장이 생기니…….”

몸을 떨며 일어서려는 찰나, 고미가 다가와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무언가 신비롭고 따스한 기운이 흘러들며 온몸에서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온기가 느껴졌다.

“굉장하네.”

“훗. 이 정도로 감탄하기는 이르다. 어서 가자.”

* * *

이후 꼬박 한 시간 정도를 뛰어가니 본격적으로 산길이 시작됐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천천히 가자. 네 녀석에게 산길을 뛰어 올라가는 것은 아직 무리이니 말이다.”

줄곧 한걸음에 몇 미터씩 나아가던 고미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그리고는 연신 작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흐으음, 느껴진다. 느껴져.”

“영약의 기운이?”

“아니, 영약은 아직이다.”

“그럼 뭘 찾는데?”

“산삼. 네 부모가 병상에 누운 지 꼬박 2년이라 했으니, 몸의 기운을 보해줄 것을 찾아야 한다. 내 침술로 서서히 회복될 것이기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을 마친 고미는 돌연 몸을 벌떡 일으켜 길도 없는 외진 숲속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벌써 찾은 거야?”

아무리 고미의 감각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산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안 돼서 산삼을 찾다니, 지리산 심마니들 씨를 말릴 탐지능력이다.

녀석의 뒤를 쫓아 허리까지 자라난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자, 고미가 조심스럽게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자, 보이느냐? 이것이 산삼이다. 모양을 잘 봐두고, 냄새를 맡아 보거라.”

“응? 왜?”

“일단 맡아보거라. 캐지는 말고. 아직 어린 삼이라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된다. 산신령이 싫어할 테니 말이야.”

나는 가만히 정신을 집중해 산삼의 생김새를 살펴보았다. 잎이 다섯 개에, 가장자리는 톱날처럼 생겼고, 줄기는 그리 길지 않다.

“흠, 산삼이 이렇게 생겼구나.”

냄새는 삼계탕에 넣어 먹는 인삼과 비슷하지만, 좀 더 약했고, 약간 이끼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산삼도 인삼의 일종이니까 냄새는 비슷한 게 당연하려나.

“자, 이제 냄새를 기억했느냐?”

“어……. 대충?”

답을 들은 고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네가 한번 찾아보거라.”

“뭐?”

아니 이게 무슨, 내가 개도 아니고, 냄새만 가지고 산삼을 어떻게 찾아?

“아무리 편리한 이능을 가지고 있다 한들 결국 근간이 되는 것은 네 몸이다. 그리고 미지의 적과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힘도, 속도도 아니다. 바로…….”

고미가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나갔다.

“예리한 오감이지. 눈뿐만 아니라 귀, 코, 촉감까지. 진정한 전사라면 오감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코는… 싸움에 쓸 일이 없지 않아?”

“보이지 않는 곳에 적이 살곰살곰 숨어든다면 너는 그것을 어떻게 알아챌 것이냐?”

“그렇다고 냄새만 가지고 산삼을 찾으라는 건 좀…….”

“걱정 마라. 내가 대략적인 위치를 찾아 줄테니 너는 그곳에부터 산삼을 찾으면 된다. 이것도 훈련의 일종이니라.”

“아, 알겠어.”

조금 말도 안 되는 명령이지만,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리 부모님을 위한 일이고, 나를 강하게 만들기 위한 수행이니 믿고 따르는 수밖에. 뉴비가 고인물 말에 함부로 토 다는 거 아니다.

“가자.”

이후 나는 감각 강화 스킬을 최대치로 활성화 시킨 후 온 신경을 코에 집중해 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놀랍게도,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평소에는 몰랐는데, 풀의 냄새가 모두 다르고, 나무의 냄새가 모두 달랐다.

우리가 흔히 ‘산 냄새’, ‘숲 냄새’라고 말하는 것들이 실은 흙과 돌, 여러 가지 풀과 나무의 냄새가 한 데 어우러진 결과물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신기해…….”

누구나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대강 보고 대강 느끼며 살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정신을 집중해 느껴보니 이미 알고 있다고 느꼈던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새롭게 느껴졌다.

“후훗. 놀랍지 않느냐? 고작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하나가 모두 이렇게 다르다는 것이 말이다.”

그 순간,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 고미의 가르침으로 인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스킬 등급이 향상됩니다. >

- 개보다 낫다(F -> E)

엥?

‘잠깐, 고미한테 배우면서 뭔가를 깨달으면, 퀘스트 완료 보상이 아니라도 스킬 등급이 상승할 수 있다는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순간, 나의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스킬이 강화된 덕인지 주위의 모든 것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장 반가운 것은…….

“저기다!”

저 멀리서 산삼의 냄새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지지 않았던, 산삼 냄새!

향긋한 냄새를 따라 정신없이 달려가자, 나뭇잎을 뚫고 내려온 달빛을 받은 다섯 개의 이파리가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고미! 찾았어!”

“호오……. 이렇게 빨리 찾아낼 줄이야. 훌륭하다.”

고미는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캐도 되는 거야?”

“그 정도 기(氣)를 담고 있다면 족히 30년은 넘었을 테니, 캐도 무방할 것이다.”

“에이, 이럴 줄 알았으면 호미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나는 집에 있지도 않은 호미타령을 하며 맨손으로 산삼을 캐낸 뒤 재빠르게 그것을 더블백에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정도로 충분할까?”

“음, 글쎄다, 더 캐서 나쁠 것은 없지. 산삼은 몸에 좋으니 말이다.”

“그럼 더 찾아보자!”

“후후, 녀석.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구나. 힘들다고 헉헉거리고, 코만 가지고 산삼을 어떻게 찾냐고 물을 때는 언제고.”

“아니야! 나 더 찾을 수 있어! 열 뿌리, 열 뿌리만 찾아보자! 더 큰 걸로!”

왜 이렇게 흥분해서 의욕을 불태우냐고?

진짜 산삼은 한뿌리에 천만 원이 넘는다.

정주영 회장이 산삼 한뿌리를 지금 돈으로 몇억을 주고 샀다는 기사를 본 적도 있다.

지금도 심마니들이 사지도 않을 사람 보여주면 부정 탄다며 꼭꼭 숨겨놓는 진짜 귀한 산삼들은 그 가격이 수천에서 억을 호가한다.

한마디로 일확천금. 풀숲에 숨어 나를 기다리는 로또.

참고로 대학원 시절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무급이었다.

대학원 그만두고는 버는 족족 병원비로 때려 박았으니, 벌어도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모처럼 찾아온 일확천금의 기회를 놓칠쏘냐!

가라 김수하! 개가 되는 거야!

산삼을 찾는 한 마리 사냥개!

“가자 고미!”

이후 나는 밤새도록 열 뿌리에 가까운 산삼을 더 캐냈고, 날이 밝아올 무렵에는 완전히 흙투성이가 되어 거지꼴이 되어 있었다.

“헥……. 헥…….”

체력도 정신력도 모두 바닥이 났는지, 이제는 정신을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고, 스킬을 사용해도 더는 감각이 예민해지지 않았다.

‘산삼 캐기는 여기서 끝인가……. 더 캐고 싶은데…….’

마음 같아서는 사흘 밤낮으로 산삼을 캐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후후, 스스로 이렇게 녹초가 될 때까지 움직일 수 있다니, 의욕이 대단하구나. 실로 대견하다.”

고미는 그런 나를 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자.”

말을 마친 고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손가락을 들어 흙바닥에 찌그러진 원을 그리더니 그 위에 앞발을 척하니 올려 도장을 찍듯 발자국을 남겼다.

“고미류 소환술.”

잠깐, 소, 소환술이라고?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이윽고 바닥에 뿌옇게 흙먼지가 일어나며 주위의 땅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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