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능력자를 육성하는 능력자-130화 (130/215)

130화

전투가 끝나고, 카일의 배 위로 한 명의 남자가 열 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올라탔다.

고군분투한 기색이 역력해서 엉망진창이 된 이 남자는 바로 데드였다.

원래 제법 잘생긴 얼굴은 여기저기 흐르는 피와 먼지 등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옷은 해적인지 거지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넝마가 되어있었다.

그런 데드가 이를 갈면서 배위에 올라오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카일을 찾는 것이었다.

“카일은 어디 있냐?”

데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에서 데드를 향한 살기가 쏟아졌다.

‘읏…….’

순간 데드는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었지만 다시 이를 악물고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 카일은 어디 있나? 그 새끼가 한 짓에 관해서 단단히 따져야겠다.”

그 말이 끝나자 주변의 부하들이 어슬렁거리면서 데드와 그 부하들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병신이 뭐라고 말했지?”

“글쎄, 잘 못 들었는데 일단 아가리부터 찢어버릴까?”

“나쁘지 않네. 주둥아리가 귀밑까지 찢어지면 좀 제대로 된 말이 나오겠지. 안 그래?”

지금 데드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카일의 부하들 중에서도 제법 정예 축에 들어가는 1기생과 2기생들이었다.

특히 1기생은 이제 호크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능력을 각성해서 그 전투력이 상당했다.

데드가 열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 주인님이 안내하라고 하셨다.”

분위기가 과열되기 전, 호크가 나서서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그러자 슬금슬금 포위망을 구성하고 다가가던 1기생과 2기생들이 불만스레 답했다.

“부대장님. 하지만 이 새끼들 싸가지가 너무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주인님이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죽일 수는 없잖아?”

호크와 그 부하들의 말은 언제라도 데드의 일행 정도는 죽일 수 있다는 표현이기도 했다.

‘이 새끼들이 감히…….’

데드가 울컥하면서 나서려고 할 때 부하들 중에 한 명이 슬쩍 나서며 말했다.

“부대장님. 이 새끼만 한 대 패면 안 됩니까? 건방지게 생겨서 말이죠.”

그 말에 호크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지. 그럼 그 새끼만이다.”

“예. 감사합니다.”

그리고 허락을 받은 그 부하는 눈앞에 있는 해적을 그대로 주먹으로 후려쳤다.

뻐어억!

주먹 한 방에 데드의 부하로 보이는 해적 한 명이 간판으로 나뒹굴었다.

“이 새끼들이!”

“뭐 하는 짓거리들이야!”

해적들은 분개해서 일제히 덤비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어느새 다가온 호크가 데드의 바로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야. 자꾸 까불면 너까지 패버린다. 앙.”

“…….”

호크의 위협에 데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완전히 기세에서 밀려버린 것이다.

호크와 그 동료들은 원래 일꾼으로 농장이나 광산에서 부림을 당하던 노예들이었다.

전투와는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지만 그런 그들도 카일과 수년간 던전에서 구르며 실전에서 단련을 하자 기질이 완전히 달라졌다.

험악한 해적들과 기 싸움을 해서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한 남자가 된 것이다.

호크는 피식 웃으면서 데드의 뺨을 툭툭 치고 말했다.

“주인님 앞에서도 싸가지 없이 굴면 그때는 죽는다. 알았으면 명심하고 따라와라.”

그 말만 남긴 채 호크는 데드만을 데리고 카일이 기다리는 선실 안으로 안내했다.

“주인님. 데리고 왔습니다.”

길이 잘든 강아지처럼 얌전해진 데드는 호크의 안내에 따라서 카일이 기다리는 선실로 들어갔다.

그런 데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양 옆에 아름다운 미녀를 거느리고 푹신한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어 있는 카일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녀들 중 한 명은 활을 등에 매고 있는 금발의 여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의 수녀였다.

둘 다 눈을 땔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녀들이었고, 그런 그녀들을 카일은 당연하다는 듯이 거느리고 있었다.

‘과시할 셈인가?’

데드는 긴장하면서 카일을 마주했다.

“수고했다. 나가 봐라. 호크.”

“예, 주인님.”

카일은 호크를 먼저 내보낸 후 데드에게 말했다

“네가 데드냐?”

“그렇…소.”

쩌어억!

“크으읏…….”

데드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 데드는 코끝이 찡해지는 고통과 함께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그런 데드의 앞에는 아리시아가 주먹을 살며시 쥐고 있었다.

“다시 말해.”

“잠, 잠깐, 나는 우리가 대등한 동맹이라고, 컥……!”

쩌적!

이번에는 안면이 좌우로 돌아갔다.

언제 뭘 맞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날카로운 공격에 머리가 핑 도는 데드였다.

‘이… 이런 괴물이…….’

처음에는 잽, 그 다음에는 양 훅.

시간 가속을 이용한 아리시아에게 복싱은 참 어울리는 맨손 격투기였다. 빠르고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적을 가격하는 격투기이니 말이다.

데드도 유저 최상급의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리시아의 주먹은 보이지도 않았다.

데드는 기가 죽었고 그때 카일이 나서서 말했다.

“아리시아 됐으니 돌아와.”

“예. 주인님.”

카일의 말 한 마디에 아리시아는 얌전히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카일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레이나, 치료 좀 해줘.”

“예. 주인님.”

그리고 레이나가 다가가서 데드의 상처를 치유해 주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자기 페이스를 전혀 잡지 못하고 있는 데드에게 카일이 말했다.

“앞에 앉아라.”

“알겠…습니다.”

결국 데드는 일단 카일에게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더 뻣뻣하게 버텨 봤자 자신만 다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차피 주변에 부하들도 없고, 자존심 챙겨 봤자 몸만 상하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카일은 데드를 앉혀 두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정보와 자금을 지원해 주지. 피바다 라킨의 잔여 세력을 다 흡수하고 아르트라 항구를 장악해라.”

“…그건, 당연히 제가 원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서 당신에게 무슨 이득이 있다는 겁니까?”

“어리석은 말을 하는군. 너는 내 부하가 됐으니 네 것도 모두 내 것이다.”

“잠깐, 나는 당신의 부하가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데드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너는 내 부하나 다름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부하의 부하라고 할까?”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세피로스.”

카일이 누군가를 부르자 밖에서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여인이 또 한 명 등장했다.

다만 이번에 들어온 여인은 데드도 익히 알고 있는 여인이었다.

자신의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세피아가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세피로스는 들어오자 데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카일에게 다가와서 정중하게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그래. 아르트라를 접수하기 위한 정보와 사전 준비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거의 80% 이상 마쳤습니다. 피바다 라킨의 이름하에 운영되고 있던 비밀 옥션과 암시장의 유통망에 대한 정보는 거의 대부분 수집했고, 그와 관련된 고객의 리스트도 지금 작성 중입니다.”

그 보고에 카일은 피식 웃으며 세피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잘했다.”

“아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세피로스는 카일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만 해도 몽롱한 표정으로 카일을 바라봤다.

“쯧.”

아리시아는 그런 세피로스의 표정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말이다.

카일은 세피로스의 머리에서 손을 거두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전 준비가 다 끝났으면 이제 남은 건 얼굴마담이군. 그런데 내가 보기에 교육이 아직 덜된 것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공작을 우선해서 진행했기에 아직 교육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불찰입니다.”

세피로스는 황급하게 카일에게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공작을 우선해서 교육이 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교육을 진행하면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다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주인님.”

“좋아. 어쨌든 아르트라 항구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 출신의 얼굴마담이 필요하니까. 이 부분은 너에게 맡기겠다.”

“최선을 다해서 복종시켜 놓겠습니다. 주인님.”

카일과 세피로스의 대화를 들으며 데드는 얼굴이 파래졌다.

‘나는 처음부터 꼭두각시 인형이었다는 건가?’

데드는 섬뜩한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피아, 아니 세피로스를 통해서 카일과의 동맹에 관한 제의를 받고, 피바다 라킨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해적들에 대한 보고서까지 받아서 반란을 준비했다.

데드의 인생에 있어서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생각하며 목숨을 걸고 진행한 한판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저 카일이 만들어 놓은 판에서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였던 것뿐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말이다.

“하… 하하하…….”

허무함이 극에 달하니 배신감도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반해서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연인이 자신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이 순간 드는 감정은 실망이 아니라 공포였다.

‘못 이겨. 절대로…….’

대등한 동맹 관계라니 처음부터 어림도 없던 일이었다. 저런 괴물하고 맞서서 자신이 이길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 순간 레이나가 카일에게 작게 속삭였다.

“주인님, 된 것 같아요.”

“그래. 알았다.”

텔레파스인 레이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감정 변화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데드의 감정이 적개심에서 공포로, 공포에서 굴복으로 변하는 것을 신중하게 관찰하다가 카일에게 보고한 것이다.

‘더 이상 연출은 필요 없겠군.’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세피로스에게 말했다.

“나머지 일은 순서대로 진행하겠다. 변수가 있으면 레이븐을 통해서 지시할 테니 너희들은 아르트라 항구를 장악하는 것에 최선을 다해라.”

“예. 주인님. 저기…….”

“무슨 일이지?”

카일의 물음에 세피로스는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저 쓰레기하고 연인 놀이 하는 건 토 나오도록 싫었지만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저… 저에게 주인님이 직접 상을 주실 수 있을까요?”

세피로스의 말에 카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응. 안 돼.”

“하아아아…….”

그 순간 세피로스의 입에서 안타까움의 깊은 한숨이 나왔다.

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냉정하게 말했다.

“저기 얼굴마담의 교육이나 똑바로 해놔. 혹시라도 배신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 단단히 해.”

“하아아……. 예. 주인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피로스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고 카일은 아리시아와 레이나를 데리고 방을 떠났다.

선실 안에는 세피로스와 데드 단 둘 만이 남았다. 그리고…….

“아아아… 아아아아아! 진짜 짜증나.”

단 둘이 되자 세피로스는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히스테릭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세… 세피아. 괜찮…….”

짜아악!

“어디다 감히 손을 대!”

세피로스의 이상한 상태를 보고 무심코 위로하려고 했던 데드는 그대로 뺨을 맞았다.

“어… 어어…….”

그런 데드를 보고 세피로스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너 때문이야. 네가 감히 주인님에게 버릇없이 굴어서 주인님이 상을 주지 않으시는 거야. 너 때문에 내가 저런 추녀들한테 밀린 거야.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거야? 앙?”

“잠, 잠깐만 지금…….”

“닥쳐!”

짜아아악!

다시 한 번 따귀가 날아갔다.

데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했다. 세피로스는 그런 데드를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말했다.

“다시는 주인님에게 무례하게 굴지 못하도록 단단히 재교육을 해주겠어.”

“어… 어어……?”

세피로스는 자신의 치마의 트임 부분을 옆으로 치웠다. 그러자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뱀처럼 휘감고 있는 채찍이 드러났다.

그녀는 그 채찍을 꺼내서 겹쳐 잡고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겼다.

짜아아악!

공기를 울리는 살벌한 소리와 함께 세피로스가 말했다.

“지금부터 멍멍 이외의 대답은 인정하지 않겠어? 알겠니, 멍멍아?”

“세… 세피…….”

“멍이라고 했잖아!”

짜아아악!

“크아아악!”

선실 안에서는 채찍 소리와 비명 소리가 난무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