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마신성. 안도 밖도 검기 그지없는 거대한 성안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마신님. 지금 인간 넷과 신 하나가….”
“안다. 꺼져.”
“예, 옙!”
부하 악마의 횡설수설함에 신경질적으로 그를 물린 마신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문을 노려봤다.
“벌써 도달했단 말이지… 강석찬.”
항시 천계를 관찰하고 있는 그였기에, 불과 몇 시간 전에 천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신들의 전멸. 천사는 살아남은 이들이 꽤 있었지만, 신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재앙이라고도 볼 수 있는 현장 속, 마신은 섣불리 천계를 침공하지 않았다.
‘라우르, 그리고 강석찬… 그 녀석들이라면 바로 이곳에 온다.’
실제로 그의 생각은 맞아떨어졌고, 지금 마계 또한 제정신이 아니었다. 다수의 귀족급 악마를 잃은 그들은 석찬 일행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애송이었던 녀석들이….”
또 하나의 공작급 악마가 소멸하는 것을 느낀 마신이 결단을 내렸다.
“어이!”
그의 외침에 몇몇 부하들이 즉각 그의 앞에 무릎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자, 명령을 내리겠다.”
“말씀만 하십시오.”
“강석찬과 그 일당들, 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
그 말에 부하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물었다.
“그자들을요? 어… 어떻게….”
“아, 굳이 제압할 필요 없어. 어차피 그런 기대 안 하니까. 그냥 내 앞에 데려다 두기만 해.”
“그….”
부하 악마는 망설이는 듯 보였지만.
“대답?”
“알겠습니다.”
마신의 압박에 고개를 숙이고 곧장 마신성을 벗어났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신님!”
부하 악마가 다시금 그의 앞에 돌아와 고개를 숙였다.
“왜 왔냐? 시킨 일은 다 했고?”
“그렇습니다.”
부하 악마가 손을 뻗자 석찬 일행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왔군.”
“네 녀석이 오라고 했다 들었다, 마신.”
석찬과 눈을 마주한 마신이 역겨운 미소를 지어냈다.
“근데… 저 녀석은 멀쩡하군.”
부하 악마를 지칭하며 이르는 말에, 석찬이 녀석을 흘끔거리며 입을 열었다.
“우리의 목표는 네 녀석 하나뿐이었으니까. 굳이 데려다주겠다는데 죽일 필요는 없지.”
“그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싱겁군.”
마신의 반응 하나하나에 벌벌 떨고 있는 부하 악마가 손을 거두는 그의 모습에 안심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석찬의 뒤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다? 사탄 새꺄.”
라우르. 이제는 유일신이 된 그가 씽긋 웃으며 마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직접적으로 눈 마주하는 것은 오랜만이군. 라우르.”
“나는 너 진짜 보기 싫었는데 말이야, 넌 나 보고 싶었냐?”
“그래, 보고 싶었지.”
마신, 사탄이 혀를 쓱 날름거렸다.
“너처럼 맛있는 영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3,000년을 버텼어. 자, 이제 맛을 보게 해줬으면 좋겠는걸?”
“윽.”
게걸스럽게 침을 흘리는 마신을 보며 이브가 인상을 찌푸렸다.
“참, 그전에….”
푹.
섬뜩한 관통음과 함께 석찬 일행을 데려온 부하 악마가 쓰러졌다.
“왜 죽였지? 부하 아닌가?”
석찬의 물음에 마신은 흘러내리는 침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본래 악마는 투쟁의 생명체. 투쟁 대신 도망을 택한 변절자는 필요 없다.”
“날 데려오라고 시킨 건 너였으면서… 성격도 참 고약하군.”
“괜히 마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지. 켈켈켈.”
마신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마력을 뿜어냈다.
콰아아.
바다와도 같은 검은 마력이 대기 중에 흘러넘쳤다.
‘과연 마신. 실로 방대한 마력이다.’
온통 검게 변한 마신성 속, 이브와 라우르의 몸에서 흰빛이 피어올랐고, 석찬은 잿빛 신마력을 일으켰다.
“젠장, 아재. 우리도 가자고!”
진현과 천무진도 자색 마력을 선보였다.
“호오, 인간들 주제에 그 정도의 힘이라니? 특히 너.”
마신이 천무진을 콕 집으며 물었다.
“악마 해보지 않으련?”
“…….”
천무진은 말없이 검을 치켜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에잉, 괜히 동류의 기운을 느껴서 살려주려고 했건만….”
순간, 공기가 변화했다. 그저 위압감만을 뿜어내던 검은 마력에서 강력한 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결정, 전부 죽인다. 너희들의 영혼은 전부 내 것이다.”
그리고 검은 마력이 공기 중에서 폭발했다. 당연하게도 방 전체가 폭발에 휩싸였다.
휘이잉.
자욱한 먼지 속, 백발의 남자가 진현의 앞에 나타났다. 그 너머로 쓰러진 석찬의 모습이 보였다.
“석….”
푹!
“컥.”
진현의 어깨를 찌른 마신이 그의 목에 이빨을 가져다 댔다.
“이걸로 두 놈.”
그렇게 꼼짝없이 당하려는 순간.
쾅!
무언가에 얻어맞은 그가 벽에 처박혔다.
“헉!”
죽다 살아난 진현이 자신을 살려준 또 다른 백발의 남자를 보았다.
“가. 감사합니다.”
“조심해라. 저 새끼… 강하니까.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야!”
“옙. 진현 오빠, 이리 오세요.”
“고마워, 이브.”
뚫린 어깨를 치료받으며, 진현이 넋을 놓은 표정으로 마신과 라우르의 전투를 쳐다보았다.
파괴신과 라우르의 전투는 라우르가 조금이라도 앞서는 감이 있었다고 쳤을 때, 마신과의 대결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이 자식….”
마신은 강했다. 파괴신 때와는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기용하고 있는 와중에도 라우르가 밀리고 있었다.
퍽!
“크윽.”
결국 라우르가 먼저 무릎을 꿇었고, 마신이 그의 목숨을 취하려는 순간.
쾅!
마신의 머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브는 어느새 지팡이를 겨눈 채 싸울 준비를 완벽히 마쳤다.
진현 또한 다 나은 어깨를 빙빙 돌리며 그녀 앞에 섰고, 어느새 나타난 천무진 또한 검을 들었다.
“인간 녀석들, 흥미롭군. 와라!”
파지지직!
마신의 몸뚱이에 벼락이 떨어졌다. 백색 마력으로 만들어낸, 신조차도 죽일 수 있는 번개였으나, 마신은 간단하게 튕겨내며 이브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진현이 팔을 엑스 자로 교차하며 그를 막아 세웠다.
“비켜라!”
텅!
“컥!”
진현이 그대로 내동댕이쳐지고, 천무진 또한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길을 비켜줬다.
“크윽!”
이브가 급하게 마신의 발을 묶을 마법을 시전했지만, 급조된 마법이라 그런지 한 손으로도 가볍게 찢기는 수준이었다.
“백색의 마법사. 보여줄 것은 이게 끝인가?”
마신이 다시금 혀를 날름거렸다.
“2,000년 만이다. 백색의 마법사를 섭취하는 것은 말이다. 정말 별미 중의 별미였지.”
이리저리 말이 많지만, 결론은 이브를 잡아먹겠다는 말이었다.
“어딜!”
진현과 천무진이 다시금 그를 막아서려 했지만.
콰직!
“덜 익은 포도 같은 녀석들. 네놈들은 얌전히 차례를 기다려라.”
마신의 손가락에 검이 부러진 천무진이 바닥을 굴렀고, 진현은 축 늘어진 채 미동도 하지 못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쾅!
이브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유난히 거대한 등과 검은 머리. 석찬이었다.
“비겁하게 처음부터 기습이냐.”
“오빠…”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석찬이 씩 웃었다.
“넌 뒤졌다, 진짜.”
“끌끌,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면 재미가 없지.”
마신이 주먹을 고쳐 쥐었다. 그리고 석찬에게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퍼엉!
무언가가 폭발하며 그의 앞에 100의 정예 천사들이 나타났다.
“이건, 아버지의….”
“파괴신이 좋은 걸 가지고 있더라고. 잠깐 걔들이랑 놀고 있어.”
“그게 무슨….”
그 순간, 한 명 한 명이 신에 준하는 힘을 지닌 정예 천사들이 마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잔재주를….”
아무리 신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마신이라도 쪽수 앞에서는 장사 없다는 말을 방증하듯 쉽사리 천사들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 사이에 석찬이 이브, 진현, 천무진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
“뭣….”
그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지었지만, 마지막엔 고개를 끄덕였다. 직후, 석찬은 라우르에게 다가가 그를 앉혔다.
“라우르, 괜찮아요?”
“살아 있었, 냐? 큭.”
허리에 난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도망쳐라. 저 새끼… 너보다도….”
“아니요, 괜찮아요.”
“뭐?”
인상을 팍 찌푸리는 그에게, 석찬은 자신감이 담긴 미소로 다시금 말했다.
“다 끝났어요, 라우르.”
“그게 무슨….”
석찬이 다시 마신에게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정예 천사를 대부분 도륙 낸 그가 숨을 고르며 석찬을 마주 봤다.
“잔재주는 이게 전부인가? 그렇다면 내 양식….”
“아니? 누가 전부래?”
그 순간, 석찬의 손에서 순백의 빛이 일었다.
“그 힘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마신이 몸을 떨었다.
“네 녀석이 어떻게 아버지의… 설마, 네 녀석이 계승자냐?”
“이제야 알았어?”
석찬이 씩 웃으며 손을 펼쳐 들었다. 그의 손안에서 기다란 창이 생겨났다. 무채색의,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는 창.
“창조. 내 힘을 전부 담은 창이야.”
비단 석찬의 힘뿐만이 아니었다. 이브, 진현, 천무진의 힘. 창 안에는 무한한 힘이 담겨있었다.
“이거면 너라도 죽지 않을까?”
그 말이 진짜인 듯, 마신은 적잖지 않게 동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가다듬은 그가 조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것을 쓰면 네 녀석들도 무사하지 못할 텐데? 지금껏 이룬 힘을 전부 잃고 싶은 것이냐?”
“상관없는데.”
세 사람을 둘러보자, 그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그렇게 큰 힘을 쉽게 포기하려 하는 것이냐?”
“이유? 내가 내 힘을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이유라는 것이 있나?”
“큭.”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마신이 석찬을 기습하려고 했다. 하지만.
쾅!
전력을 다해 마지막 공격을 막아준 라우르가 엄지를 척 들며 쓰러졌다.
“땡큐… 라우르!”
“인간!”
직후, 거대한 섬광이 방 안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악의 원흉이 무(無)가 되어 사라졌다. 길고 길었던 대장정의 마지막이었다.
* * *
“앞으로 어떻게 할 거예요?”
이브의 물음에 석찬은 마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의 몸을 움직이며 말했다.
“글쎄, 그건 앞으로 생각해봐야겠지?”
“계획도 없었어요?”
어이없어하는 그녀의 물음에, 석찬이 씩 웃으며 말했다.
“누가 그러더라. 뭘 그런 걸 미리 생각하냐고.”
석찬의 머릿속에 백발이 지긋한 노인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선 푹 쉬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으니까.”
해맑은 웃음에, 이브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요. 시간은… 많으니까요.”
“좋았어. 그럼 가볼… 잠깐만. 어떻게 이동하지?”
마력은 물론 탑을 오르며 얻은 힘을 전부 잃었으니, 이동 수단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때, 라우르가 쓱 나타나 지혈하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해결해줄 테니.”
“아, 라우르!”
마신의 일격에 피투성이가 된 상태이긴 했지만, 투신답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씩 웃은 라우르가 움직였다.
빠르게 마법진을 그린 그가 네 사람을 탑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은 신력을 운용했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푸른 하늘과 뭉게뭉게 핀 구름. 드넓은 초원과 그 안에 세워진 1층 시작의 마을이 나타났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을 보며 천무진이 그윽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진짜 끝인가…”
“끝은 무슨. 이제 시작이지, 아재! 이참에 애들 싹 모아서 파티나 한 번 합시다!”
진현의 말에 석찬이 맞장구쳤다.
“맞아. 할 일도 다 했고, 이제는 조금 쉬어 보자고.”
탑을 오르는 동안 짧은 휴식은 취한 적 있어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제는 긴 휴식을 즐길 때였다.
“그럼, 알렉산더 님이나 뵈러 가자고, 이브.”
“네.”
두 남녀가 손을 맞잡은 채 초월을 가로질렀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모습에 진현이 울분에 가득 차 외쳤다.
“젠장, 커플은 다 뒤져라!!”
“주접부리지 말고 이만 가지.”
천무진이 절규하는 그를 내버려 둔 채 마을로 향했다.
“잘 어울리네. 정말로.”
행복한 제자의 모습을 보는 라우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완결>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미국유학생입니다.
우선, 이 작품이 완결이 날 때까지 함께 달려와주신 담당 피디님, 편집자님,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보다는 아쉬운 점이 많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을 진행하는 동안 생각했던 장면의 3분의 1도 못 쓴 느낌이었고, 역량적으로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의 실패들을 교훈 삼아, 다음 작품부터는 더 나은 모습으로 독자님들께 더욱 좋은 작품을 보여드리는 미국유학생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미국유학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