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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73화 (173/200)

제173화

그 이후로의 기억은 평소 보던 것과 같았다. 신들은 그를 인정하면서도 선을 두고 지냈고, 감정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 갔다.

“뭐냐, 투신.”

“너냐? 천계에 떠도는 소문을 퍼트린 게.”

“왜, 사실을 말한 것인데 뭐가 문제지?”

특히 파괴신이라는 작자와의 갈등이 가장 컸다. 그는 유독 라우르를 싫어하며 그를 벌레 보듯 했다.

게다가 그와 별개로 라우르의 기술은 탐냈으니, 참으로 이기적이며 역설적인 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석찬이 얻은 정보는 단 하나. 바로 탑의 존재 의의다.

‘악마와의 싸움을 위해서 탑을 만들었다라.’

하지만 고작 그 이유가 전부라면 라우르가 그렇게까지 탑을 세우는 에 반대했을 것 같지 않았다.

그 증거로, 기억 속 라우르는 고든과 대화할 때 늘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또 탑을 세우지 말라는 말을 하러 온 건가?”

“그렇습니다.”

“그 얘기는 이미 끝난 걸로 아는데.”

“제가 모를 줄 아십니까? 신들이 그러는… 웁!”

그러나 번번이 고든의 수에 막혀 석찬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 그러지 말게. 탑은 자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인간의 희망이, 어쩌면 전 우주의 희망이 될 수도 있어. 내 뜻대로 잘 사용된다면 말이야.”

“…….”

그 말에 라우르는 여전히 불만을 감추지 않으며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고든과 석찬이 다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신가? 젊은 영혼이여.”

‘역시, 내가 보이는 건가?’

“뭐, 그렇지?”

솔직히 이번만 느낀 것이 아니었다. 지금껏 쭉 기억을 읽어오며, 석찬은 몇 번이고 고든과 마주쳤고, 가끔 그가 하는 혼잣말을 들으며 확신했다.

‘녀석은 내가 보인다.’

대화도 가능한지는 몰랐지만, 조금 전 대화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무척 궁금하다는 표정이군. 내가 어떻게 자네를 볼 수 있는지, 또…”

그가 라우르가 사라진 쪽을 미련 있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라우르에 대해서겠지?”

석찬이 고개를 끄덕이자, 고든이 걸으며 말을 계속했다.

“내 이름은 고든, 뭐. 절대신이라고 불린다만… 그렇게 뛰어난 존재는 아니네.”

그 말에, 석찬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짓말.’

지금까지 기억에서 봐온 고든은 정말 엄청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무력을 선보였다.

‘라우르보다 강하면서 그렇게 말하면… 정말 신빙성이 없는데?’

“하하, 고의는 아니었네. 뭐, 지금에야 내가 더 강할 수 있겠지만…”

한 공간에서 걸음을 멈춘 고든이 한가운데에 놓인 우물로 다가갔다.

‘이건…’

“정말로 엄청난 친구지. 그렇지 않나?”

우물 안에는 수련에 열중하는 라우르가 비쳤다. 일격 하나하나에 산이 박살 나고 숲이 쓸려나간다.

전성기 시절의 라우르의 힘, 가히 재앙이라고 볼 수 있는 무력에 석찬이 감탄하는 와중에도 고든을 할 말을 계속했다.

“라우르, 저 친구는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거네. 그리고 이 천계 최강의 신이 되겠지.”

‘그럴 겁니다.’

과거 라우르가 신계 최강의 사내였다는 사실을 아는 석찬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겠지만 말이야.”

이어진 고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게 무슨….’

“뭐, 쭉 보다 보면 알 걸세. 그보다, 자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만…”

고든이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석찬의 영혼을 들여다보았다.

“인간의 영혼이 이곳에 들어오다니. 어떤 방법이지?”

조금 전까지 보여주던 위엄 따위는 하나도 없는 모습에 석찬이 당황했다.

‘지금 뭐 하는…’

“자네, 정체가 뭔가? 분명 느껴지는 냄새와 영혼은 인간이 맞는데. 어찌 이곳에…”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자신을 뜯어보는 그에게 석찬이 말했다.

‘말할 테니까, 잠시 나와 봐.’

“정말인가?”

‘대신, 조건이 있다.’

“뭔가?”

‘내 물음에도 똑바로 답할 것.’

“물론이지. 내 존재를 걸고 맹세하겠네.”

그렇게 말하며, 정말로 존재에 대한 맹세를 진행하는 고든.

“자, 그럼 이야기해 보게나. 자네가 어떤 존재인지!”

‘허….’

너무나도 쉽게 승낙하는 그를 보며, 석찬이 한숨을 쉬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이곳은 라우르의 기억 속, 그리고 과거였다. 말해봤자 현실에 그리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인간이다. 정확히 말하면… 라우르 님의 화신이지.’

“화신? 정말인가?”

그 말에 고든은 더욱 놀랍다며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라우르의 화신이 되었는지, 또 어떻게 천계에 있는 건지 등,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석찬이 먼 미래의 존재라는 것과 그 목적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탑이 세워졌고, 라우르의 영혼 조각이라. 결국 그리 되는구먼.”

‘자, 이제 당신 차례야. 어떻게 날 볼 수 있는 거지? 분명…’

“다른 신들은 자네를 보지 못했을 텐데. 맞지, 맞아.”

고든은 여전히 우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고든, 절대신. 지금 신계의 최강자.’

“아니, 내 정체는 그게 아니야.”

고든이 씩 웃으며 말했다.

“■■신.”

‘뭐?’

“못 들은 것인가? 아직 자격이 없나 보구먼.”

뭔지 모르겠지만, 80층에 오른 자신이 듣지 못하는 걸로 봐서는 엄청난 존재인 것만은 확실했다.

“어쨌든 내가 조금 특별해서 말이야. 이런 거에 간섭을 할 수가 있네. 어때, 신기하지 않나?”

‘뭐, 조금.’

“에잉, 재미없는 놈. 라우르를 쏙 빼닮았네, 아주.”

이어서 고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거 이거, 그럼 어차피 탑을 세운 이유에 대해 얘기해도 모를 게 뻔하잖아? 괜히 막았네.”

그 말에 석찬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역시 탑을 세운 데는 다른 이유도 있던 건가?’

“그래. 뭐, 말해도 못 들을 거야.”

고든의 말대로였다. 그가 무언가를 말했지만, 석찬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나. 아까 들은 대로 탑이 마냥 나쁜 것만은, 또 인간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은 아니니.”

‘그럼 탑은 뭐지?’

“벌써 알면 섭하지. 나중에 때가 되면…”

둥.

그때, 우물이 진동했다. 주변은 전부 멀쩡했지만, 우물을 가득 채운 물만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음, 벌써 그럴 시간인가.”

그 모습을 본 고든이 옷을 갈아입은 뒤 어디론가 향했다.

‘어딜 가는 거지?’

“보면 알 거야.”

이윽고 석찬은 놀라운, 또 경악스러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 * *

석찬과 G가 검은 공간으로 사라진 후.

“누님, 괜찮습니까?”

이브 일행은 싸움의 여파를 수습하고 있었다. 부상자들은 이브에게 치료를 받으며, 흐트러진 마력을 갈무리했다.

“……”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손에 남은 힘을 운용했다.

질투의 권능으로 빼앗은 마이클이 가진 라우르의 힘. 남은 것은 일부에 불과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지형 정도야 손쉽게 바꿀 수 있을 만큼 그들의 힘은 대단했다.

‘이걸 가지고도 지다니.’

허무했다. 또, 선대 질투의 권능 계승자의 일화가 떠올랐다.

‘천마대전이 일어나기 전 투신에게 졌다고 했던가?’

왜 졌는지 알 것만도 같았다.

‘이 정도 힘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번 싸움을 통해, 그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괴물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더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 누구도 넘볼 수 없게.’

지금의 석찬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 것은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렐.

70층에서 새로운 동료로 영입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실망했다.

노란색 마력.

그것을 한 달도 안 되는 시점에 달성한 것은 뛰어나다는 말로 설명이 부족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지만.

‘부족해.’

남색, 보라색 마력, 심지어 신력까지 사용하는 적들을 대적하기 위해서는 천계의 축복을 받은 몸으로는 부족했다.

‘마력의 등급을 올려야 해.’

진현과 천무진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이번 싸움을 지켜보면서 심경의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목표가 잡혔다.

달라진 눈빛들을 보며, 이브 또한 전의를 다잡았다.

‘오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려면….’

이브의 보라색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마지막 전투에서 석찬이 사용하던 힘이 떠올랐다.

‘백금색 마력.’

무지개색을 넘어 존재하는 최고 등급의 마력,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런데 그때.

“은발의 천사.”

치료를 끝마치고 떠나려던 이브를 오펠리아가 막아 세웠다.

“뭐죠?”

“할 말이 있다. 너 말고도 네 파티원 모두에게.”

“…….”

이브는 말없이 네 사람을 불러 모았다. 그들 앞에 선 오펠리아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흡.”

그러더니 기역 자로 허리를 숙였다.

“미안하다.”

“응?”

모두가 벙찐 상황 속, 쭉 그의 옆을 지키던 비유가 나타나 말했다.

“이 녀석이 신의 화신인 것은 잘 알겠지.”

“네, 분명 그렇다고. 그런데 그게 이거랑 무슨 상관.”

“올킬러, 너희 대장. 비밀이 있지? 천계와 관련된.”

그 말에 이브 일행이 움찔했다.

그래, 석찬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투신 라우르.

‘설마, 아까 싸움에서?’

이브의 표정을 읽은 오펠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 맞다. 우리 신께서 아주 지랄 발광을 떠시더군. 당장 녀석을 죽이라고.”

“내 담당 천사님께서도 난리 법석이었네. 신력은 충분히 제공할 테니 올킬러의 뒤를 치라고.”

그 말을 들은 이브 일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뭐, 우리 나름대로 신념이 있어 공격하지 않긴 했지만, 지금쯤 저 위에 그 비밀이 전부 퍼졌을 것이다.”

“맞네. 잘못하면 동료인 당신들에게도….”

그때였다.

쿠구궁.

갑자기 하늘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쿠구궁.

기껏 안정시켜 놓았던 화산이 다시금 분화하려 했다.

“이게 무슨….”

“젠장할, 우리 담당님이 오셨군.”

비유의 탄식과 함께, 하늘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섯 장의 날개를 지닌 천사였다.

‘천사장.’

그녀는 이브 일행을 내려다보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당신들인가요? 그 인간의 동료들이?”

동시에 천사의 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기운은 분화하려던 화산을 잠재울 정도로 거대했다.

‘큭.’

“잘도 버티는군요.”

천사가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탁.

그녀가 땅에 발을 딛자, 주변으로 은은한 신력이 퍼져 나갔다.

“오셨습니까?”

비유가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었고, 천사는 고개를 끄덕인 뒤 차가운 눈빛으로 이브를 응시했다.

“네 녀석이구나. 그 남자의 딸이면서 그 망할 인간의 연인이.”

“망할 인간?”

“올킬러 말이다.”

순간적으로 천사장의 힘이 급증했다.

‘큭.’

“지금 그 녀석 때문에 천계가 엉망이야.”

‘크윽…’

무형의 신력이 이브의 목을 옥죄여오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지금 전 천계가 난리예요, 올킬러 하나 잡겠다고. 솔직히 말해요, 녀석은 어딨나요? 알려드린다면 편하게 보내드리지요.”

천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살벌한 웃음이었다. 이브는 턱 막혀오는 숨에 헐떡이며 말했다.

“큭, 천계에서… 인간을… 죽인…다고?”

“하! 그 정도야, 이미 윗선의 허가를 받았지. 올킬러와 그 동료들까지는 살생을 허락한다고.”

콱!

천사장이 더욱 세게 이브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끄으윽….”

“뭐, 걱정 마라. 곧 너희들 전부 같은 곳을 향할 테니.”

“이브!”

진현이 달라붙어 그것을 끊어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퍽!

천사장의 공격에 날아간 그가 피를 토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곧 네놈 차례니.”

‘젠장…’

엘리자베스 또한 그녀를 도우려 했지만.

‘권능의 부작용 때문에 힘이…’

그 와중에도 이브는 점점 안색이 초췌해졌다. 그 모습에 오펠리아와 비유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젠장, 도와야 하는데…’

천계 소속인 그들은 천사를 대적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게 이브의 숨이 넘어갈 때쯤.

“그 손 놓으세요.”

어디선가 나타난 여인이 천사장을 향해 낮게 읊조렸다.

“응?”

쾅!

그녀가 팔을 뻗자, 천사장의 몸이 날아가 땅에 꽂혔다.

“큭, 당신은…”

자세를 고쳐 잡고 자신을 친 상대를 본 천사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당신이 왜!”

“…이 녀석들을 건드리지 마.”

여섯 장의 날개, 순백의 머리칼과 맑은 백안.

“에…피르…”

에피르, 천사장이자 석찬의 담당 천사였다.

“내 계약자의 동료다. 네가 넘볼 상대가 아니야, 플로네.”

그녀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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