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1화
G. 그는 안내자임에도 여러 방면으로 석찬을 도운, 든든한 조력자였다. 그가 말한 것은 대부분 맞아떨어졌고, 큰 도움이 되었다.
“…….”
그렇기에 이브는 더더욱 고뇌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키스.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그것이었다.
그녀가 고민하자, G가 석찬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공간이 말이죠. 그렇게 오래 지속되는 곳은 아닌지라, 빨리 결정하셔야 할 겁니다.”
“네?”
지직-
그 말을 증명하듯, 멈춘 듯했던 페널티가 다시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빨리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뭐든 하신다면서요? 그보다, 빨리 그거를…!”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요!”
결국 결심한 이브가 석찬 앞에 섰다. 한눈에 봐도 더더욱 안 좋아진 몸 상태를 보니 고작 키스 따위에 고민하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 하는 거야.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이브는 엘릭서의 병뚜껑을 열어 그대로 내용물을 입에 머금었다.
“웁, 웁?”
석찬의 입을 가리키자, G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왔다.
스으으.
입술이 다가올수록 볼은 더더욱 붉어져 갔고, 잠시의 망설임 후,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졌다.
* * *
그 시각, 오펠리아는 고뇌하고 있었다.
[젠장! 아까 처리했어야지! 투신의 화신을 그렇게 쉽게 처리할 기회를 놔두고!]
조금 전부터 머릿속을 가득 울리는 해신의 목소리. 그것에 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제발 좀… 조용히 하세요!’
[뭐? 지금 나한테 소리를 지른 것이냐? 인간 따위가?]
유독 ‘인간 따위가’란 말에 힘을 준 해신의 모습에 오펠리아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 사람이 해신께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구해준 사람입니다. 그런 자를 죽이라니요?’
[감히 나한테 반항을 해?]
순간, 오펠리아의 머리를 짓이기던 기운이 더더욱 강해졌다.
“크윽…”
그가 휘청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오펠리아?”
옆에 서 있던 비유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빠르게 손을 뻗어 저지한 오펠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도대체 투신이 누구길래…”
“응?”
투신. 그 한마디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 번에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방금 뭐라고…?”
어느샌가 나타난 석찬이 이브의 부축을 받으며 오펠리아 앞에 섰다.
“조금 전에 투신, 이라고 하셨습니까?”
오펠리아는 적잖이 놀라면서도 그를 흘끔 쳐다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나저나…”
말끔해진 몸을 보며 그가 궁금한 양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그 말에,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석찬이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그것은 이브도 마찬가지였다.
“응? 뭔 일 있었나?”
“아, 아닙니다.”
석찬은 강력하게 부정하면서도,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다시금 얼굴을 붉혔다.
‘아까 전은 정말…’
강신과 강제 돌파의 페널티. 그것들이 동시에 몰려오니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실제로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가 한 발자국만 더 걸으면 죽는 상황까지 갔었다.
하지만, 자신은 살아났다. 바로 옆에 있는 여인의 도움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도움이 키스일 줄은 몰랐지!’
이브도 마찬가지지만, 석찬 또한 그것이 생애 첫 키스였다.
‘덕분에 살긴 했다만….’
석찬은 G를 매섭게 노려봤다.
“유후, 좋아지셔서 다행입니다. 제 묘수가 한몫했으니….”
“묘수는 개뿔.”
“응?”
내막을 모르는 오펠리아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가다듬은 석찬이 하려던 질문을 이었다.
“조금 전에 투신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
“맞다. 분명 그 얘기였지.”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뭐… 자네라면.”
그렇게, 오펠리아가 자신의 신에게 들은 말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설명을 다 들은 석찬 일행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허허, 이것 참 큰일 난 것 같은데 말이죠.”
G의 목소리가 힘없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띠링.
그들의 앞으로 퀘스트 하나가 도착했다.
[전체 퀘스트 : 현상금]
[내용 : 전 투신의 화신, 강석찬 앞으로 현상금이 책정되었습니다. 그의 목을 베어 신전에 가져다 놓는 자는 막대한 부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현상금?”
그런데, 그 액수가 심히 이상했다.
[보상 : 현상금 (1조 골드)]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1조?”
석찬은 순간 몸이 회복된 지 얼마 안 돼 자신의 눈이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다.
“1조라고?”
“진짜냐?”
진현을 포함해 장내의 모든 사람이 똑같은 퀘스트를 받았으니까. 게다가 전체 퀘스트라고 하는 것을 보면.
‘설마 탑 전체에 퀘스트가 걸린 건가?’
석찬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G를 보자,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솔직히,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몰랐다고?”
“신이나 천사가 충분한 대가만 지불한다면 퀘스트를 만들거나 조건을 바꾸는 게 가능하죠. 뭐, 석찬 님도 아시는 사실이죠?”
“그래, 설마 신들이?”
“그런 것 같네요. 그보다, 이렇게 대규모 퀘스트면 소모가 클 텐데, 결단을 했나 봅니다.”
“굳이 나 하나 잡겠다고 이렇게 현상금을 많이 건다고?”
그 물음에 G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응?”
“굳이 나 하나? 제가 잘못 들은 거겠죠?”
“왜?”
하아, 한숨을 내쉰 그가 말했다.
“잘 들으십쇼, 석찬 님. 석찬 님의 주신인 투신 라우르는 말입니다. 당신 생각보다 더욱 영향력 있는 신이었습니다.”
신 중의 신, 절대적인 무력, 악신이라고 봐도 무방한 더러운 성격과는 반대되는 정의로운 마음가짐과 행동.
“그는 언제나 사건이란 사건은 몰고 다녔죠. 뭐, 지금은 전부 기억하시지 못하겠지만.”
G는 마이클의 시체로 시선을 옮겼다.
“저게 있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군요.”
시체 위로 떠 오른 보석 세 개를 바라보며, 석찬과 G가 동시에 미소를 흘렸다.
* * *
천계.
수천에 달하는 천사가 거주하는 만큼 그 규모도 거대했다. 그런 천계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성안.
“……”
한 남자가 언짢다는 표정으로 옥좌에 앉았다. 그 주변으로는 9개의 옥좌가 놓여 있었고, 곧이어 도착한 자들이 하나둘 옥좌에 앉기 시작했다.
이어 옥좌들이 대부분 채워졌을 때,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꽤나 많이 왔군, 그래?”
열 명의 신 중 아홉 명이나 모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설령 그것이 10년에 한 번 있는 정기 회의라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엉덩이 무거운 신들이 아홉이나 모일 만큼, 이번 일은 중대한 것이었다.
“해신은 어디 있지?”
남자의 물음에 해신의 빈자리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영 보이질 않아서.”
같은 신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상석의 남자에게 깍듯이 존대했다. 고개를 끄덕인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 너희를 모은 이유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그 말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백발의 남자가 답했다.
“압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게.”
밝다 못해 주변에 은은한 빛까지 일게 하는 그는 천신, 리더십과 지략 하나는 모든 신 중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신이었다.
그 말에 상석의 신, 흑발의 남자, 현 신계의 최강자 파괴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다. 이미 많은 천사가 그를 봤다고 했어.”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나요?”
태연하게 차를 타고 있는 금발 여자의 말에, 천신이 언짢다는 투를 보였다.
“대지신, 지금 차나 타고 있을 때입니까? 투신이라고요, 투신!”
금발의 여인, 대지신은 여전히 찻물을 저으며 중얼거렸다.
“투신… 투신이라…”
“만약 그 자식이 완전히 힘을 되찾은 거라면 우리는…”
그때였다.
쿠오오-
파괴신의 몸에서 가공할 만한 힘이 뿜어져 나왔다.
“큭.”
이에, 천신과 대지신은 물론 모든 신들이 압박감에 괴로워했다.
“이 힘은….”
“지금의 내가, 그 녀석에 밀릴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여전히 기운을 내뿜는 파괴신이 천신을 내려다봤다. 그는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한쪽 입술이 굳어 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실언했군요.”
결국 꼬리를 내린 천신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방금 한 말은 거짓도 아니었다.
‘저 정도 힘이라면….’
3,000년 전, 압도적인 무력으로 자신들 위에 군림했던 최강, 최고의 신 투신, 라우르.
그 불리했던 천마대전을 승리로 이끈 그의 무력을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던 천신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욱 잘 알 수 있었다.
‘과거의 그를 뛰어넘었어.’
그렇다. 지금 파괴신이 뿜어내는 힘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라우르, 그 녀석은 이제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오만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압도적인 강함에서 나오는 자신감.
파괴신은 기운을 거둔 뒤 옥좌 가운데 있는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석찬과 마이클의 대결이 재생되고 있었다.
“라우르의 화신들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의 전투를 잠깐 살펴본 그가 실망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약하군.”
“분석해본 결과, 아직 라우르가 본연의 힘을 되찾지는 못한 듯합니다. 화신이 두 명인 것도 아마 그 힘이 분산된 것으로 보이고요.”
“그런가?”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감은 파괴신이 입을 열었다.
“놈이 힘을 다 찾아도 내 상대가 되지는 않을 거다. 그래봐야 전성기의 힘을 낼 수는 없을 테니. 하지만…”
파괴신의 눈이 신마력으로 향했다.
“조금은 지켜볼 필요가 있겠어.”
이에 다른 신들이 놀라 되물었다.
“그 말씀은….”
“화신이 있는 녀석들은 전부 통보해라. 강석찬이라는 녀석을 예의주시하라고.”
“옙.”
회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모두가 사라진 공동에서, 홀로 남은 파괴신이 석찬의 모습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저 힘… 신기하군.”
신력과 마력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완벽한 조화를 이룬.
“지금은 미약하다만… 발전한다면 위협이 될 수도 있겠어.”
신마력이란 것은 그 파괴신조차 경계할 정도의 힘이었다.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인 파괴신이 입을 열었다.
“아아, 들리냐?”
잠시 후,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린다.]
“여전히 건방지군, 네 녀석은.”
[용건이 뭐지?]
귀찮다는 듯한 남자의 말투에 파괴신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석찬이라는 녀석을 아나?”
[…물론이다. 그런데 녀석은 왜?]
“잘됐군. 만약 녀석이 네 놈이 있는 층에 도착하면 죽여라.”
[죽이라고?]
“주신으로서의 명령이다.”
그 말에 남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대답은?”
[…알았다.]
“그래.”
화신과의 무미건조한 대화를 마친 파괴신이 자리를 나섰다. 그리고.
“하.”
파괴신과 대화를 나눈 은발의 남자.
“이 양반은 또 왜 이러는 거야?”
알프레드 올가가 90층 마을을 나섰다. 목적지는 80층, 석찬이 있는 곳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