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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잠재력 무한-134화 (134/200)

제134화

70층.

70층의 마을은 다른 여타 마을과 비슷했다. 풀과 나무가 무성히 자라 마을 전체가 자연과 좋은 조화를 이룬 것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치유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야, 나무 크네.”

70층 마을에 도착한 한 청년이 70층 마을 중앙에 자란 거대한 세계수를 보며 감탄했다.

새하얀 로브를 걸친 청년은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매만지며 마을을 거닐었다.

“처음 오셨나 봐요?”

그때, 한 여인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찬란한 금발이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미모와 몸매 모두가 훌륭한 여인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귀가 가장 눈에 띄었다.

쫑긋.

가로로 길게 늘어진 귀. 마치 게임에서나 보던 엘프 같았다.

너무 시선이 집중되자 그녀도 자신의 귀를 가리키며 물었다.

“아, 제 귀요? 제가 엘프라서요.”

귀를 툭툭 건드리며 말한 미인은 자신을 엘프라고 소개했다.

“엘프를 처음 봐서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처음 오신 거라면 그러실 수도 있죠, 뭐.”

“그래도 죄송하네요.”

“그럴 필요 없다니까.”

엘프 여인의 뛰어난 소통 능력 때문일까? 두 사람은 금세 친해졌고, 서로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강이라고요? 특이한 이름이네요.”

“그런 말 많이 듣죠, 그쪽은 성함이…”

“아 저는 렐이라고요 해요. 렐 엘드로프.”

“예쁜 이름이네요.”

“고마워요.”

청년 강은 렐로부터 마을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다른 곳과는 달리, 70층 마을은 저 같은 이종족도 많이 거주하고 있답니다.”

“이종족?”

“수인이나, 저와 같은 엘프 그리고 천족이나 마족 같은 자들이죠.”

어쩐지 마을에 일반적인 인간 말고도 고양이의 귀를 단 사람이라든가 물고기 비늘을 달고 있는 인간 등등 많은 이종족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70층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통상적으로 3~4배 정도 커요. 이곳에 처음 온 인간들은 길을 잃는 경우도 허다하니, 절 잘 따라와 주세요.”

“고마워요.”

렐을 따라 골목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던 강은 어느새 한 집 앞에 도달했다.

‘우와.’

집은 아름다웠다. 벽이 형형색색의 꽃이 핀 풀로 가득 둘러싸여 있었고, 여기저기 뻗은 줄기에는 여러 가지 과실이나 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 집이에요.”

“아름다운 곳이네요.”

“그쵸? 들어오세요.”

그 말에 강이 멈칫했다.

“이렇게 함부로 남을 들여도 되는 겁니까? 제가 나쁜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 말에 렐이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한다는 것부터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요, 뭘. 그리고 제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진 않아요.”

그 순간, 렐의 눈이 밝게 빛났다. 신비함을 자아내는 녹안에서 우아함을 드러내는 금안에 강이 뒷걸음질 쳤다.

“그 눈은?”

“그저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눈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는 어떻게 보입니까?”

강의 물음에 렐이 피식했다.

“알면서 뭘 물어봐요, 사양 말고 들어오세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강도 웃으며 그녀의 집에 들어섰다.

집 안은 화려했던 외관과는 다르게 수수했다. 정말 필요한 가구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허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마저도 창가에 놓인 식물이 아니었다면 더욱 황폐하게 느껴졌으리라.

“많이 검소한 편이신가 보네요.”

“물욕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요. 앉아 계세요. 차를 내올게요.”

그 말에 강은 웃으며 탁자 앞에 앉았다. 집을 둘러보며, 강은 점점 이상한 점들을 깨달았다.

아무리 검소한 편이라고 해도 필요 이상으로 뭐가 없었다. 게다가 방 이곳저곳에 얼마 전까지 가구가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불이 깔린 곳에도 원래는 침대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침대 기둥 자국과 유독 빛을 받지 않은 벽면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덜덜.

결정적으로, 차를 타는 렐의 손이 벌벌 떨렸다. 그녀가 창밖을 힐끔거렸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 듯이.

강이 미세하게 마력을 일으켰다. 그의 발끝에서 퍼져나간 마력이 집 밖을 스캔했다.

‘이건…’

렐의 집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수 명의 남자들. 게다가 각자의 수준도 상당했다. 얼핏 봐도 1급 사냥꾼 수준. 게다가 유독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베테랑 사냥꾼급도 하나 포함된 듯했다.

‘습격 대기인가?’

때마침, 렐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담긴 찻잔을 가져왔다.

“마시…세요.”

말을 더듬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본 강은 차를 단번에 들이켰다.

순간 강렬한 맛이 혀를 짜릿하게 훑고 지나갔다, 독이었다.

“윽….”

강이 바닥에 쓰러졌다.

쿵.

치이익.

바닥에 닿은 찻물로부터 부식이 시작되었다.

렐은 말없이 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쾅.

그때 문이 열리며 그녀의 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어이, 잘 처리했어?”

“예….”

렐이 주눅 든 채 가장 앞선 사내에게 물었다.

“정말 이제 찾아오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사내가 피식피식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지. 이 녀석 값이면 네 빚 정도는 가볍게 변제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지…진짜죠?”

웃으며 그에게 재차 묻는 렐. 하지만 이어지는 사내의 말에 그녀의 표정도 굳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와 별개로 말이야, 내 부하들이 널 그냥은 안 보내주고 싶어 하던데?”

쿵.

그 순간 한 사내가 문을 단단히 걸어잠궜다.

“뭐, 뭐 하는 거예요?”

“뭐,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작별 인사라고나 해둘까?”

그 말과 함께 사내의 부하들이 음흉한 표정으로 렐에게 다가왔다. 그제서야 자신이 배신당했음을 깨달은 렐이 품속에 고이 모셔두었던 비수를 꺼내 들었다.

“오, 오지 마세요!”

“아가씨, 고작 그런 장난감으로 우릴 막게?”

“꺅!”

하지만 한 사내의 손에 쉽게 무력화되는 비수.

“히히, 이쁘다. 엘프.”

거대한 덩치를 지닌 남자가 다른 사내들을 밀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히익…!”

눈앞까지 다가온 손에 렐이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곧이어 그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으윽….”

“끄악….”

신음을 내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 그 가운데 처음 렐과 대화를 나눴던 대장만이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서 있었다.

“무…무슨….”

렐의 혼잣말에,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 위에 팔을 턱 걸쳤다.

“히익!”

곧이어 일어서는 남자, 강의 모습에 렐이 귀신을 본 것처럼 소스라치며 뒤로 물러섰다.

“다…당신, 어떻게?”

강이 마신 차에 담겨 있던 독은 베테랑 사냥꾼이 마셔도 1분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알려진 맹독 중의 맹독이다. 한데 강은 그것을 마시고도 멀쩡히 움직였다.

“차가 참 맛있었는데, 이상한 재료가 하나 들어가서 조금 깼네요.”

태연하게 말하는 그에게 렐은 조그맣게 말했다.

“미…미안해요.”

그 말에 강이 피식하며 말했다.

“미안하면 나중에 밥이나 한번 맛있는 거 사주세요.”

씽긋 웃은 강은 몸을 벌벌 떨며 간신히 눈을 뜨고 있는 무리의 대장을 바라보았다.

“너… 어…떻게…”

“생각보다 오래 버티네?”

렐과 똑같은 질문을 던지는 그. 그러나 강의 반응은 180도 달랐다.

“빚. 갚게 할 방법이 이거밖에 없었어?”

“다… 듣고 있던 거냐?”

“대답.”

사내에게 가해지던 압력이 더더욱 거세졌다.

“크학…!”

결국 양 무릎을 꿇는 사내. 그 말고 다른 남자들은 이미 정신을 잃은 채 거품을 물고 있었다.

“이 정도도 못 버틴다고? 너무 약한데.”

“네 녀석…”

차마 ‘네 녀석이 강한 거다.’ 라고는 말하지 못한 사내가 그를 노려봤다.

“어디서… 온… 녀석이냐!”

“지금 그게 중요해? 내 질문에 대답 먼저 해.”

싸늘한 강의 태도에 사내는 말했다.

“그래, 이 방법밖에… 큭, 없었다!”

“사람을 죽여서 파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라.”

“네 녀석도 잘 알 것 아니냐! 건장한 인간은 돈이 된… 컥!”

더 들을 것도 없다고 판단한 강이 본격적으로 마력을 발산했고 사내는 얼마 안 가 정신을 잃었다.

“…….”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런지, 렐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강을 쳐다봤다.

“힉.”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뻘쭘하게 바닥을 보는 그녀에게, 강은 최대한 다정한 투로 말했다.

“이거, 치우는 거 좀 도와줄래?”

끄덕끄덕.

말없이 고개를 끄떡인 렐이 강을 도와 사내들을 한데 묶어 집 근처 골목으로 끌고 갔다.

일이 끝난 후, 땀을 뻘뻘 흘리는 그녀와 반대로 평온한 강이 한 탁자 위에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나한테 할 이야기 있지?”

강의 질문에 렐이 다시금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진짜 진짜 미안해요.”

그녀는 말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셨던 시절, 그들은 많은 빚을 지고 있었고, 거기에 몸까지 병들자 빚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고 했다.

“집의 가구까지 다 처분했는데도 빚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어요. 그런데 그때…”

“저 남자들이 온 건가?”

“…네.”

그들은 새로 마을에 입성한 인간을 유인해 죽이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빚을 갚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했던 그녀의 입장으로서 이는 꽤나 달콤한 제안이었고.

“부끄럽게도… 꽤나 많은 사람을….”

말을 하는 렐의 손이 떨렸다. 아마 이 짓을 하면서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으리라.

“그렇다고 면죄부가 되지 않는 건 알 거야. 그렇지?”

“네… 자수할게요.”

풀이 죽은 채 말하는 렐. 그때 강의 눈에 벽 구석에 걸려있는 액자 하나가 들어왔다.

“이건?”

“저희 부모님이세요….”

강이 사진 속 세 사람을 들여다봤다. 꽤 이전에 찍은 사진인지 렐의 모습이 지금과는 아주 달랐다.

“언제 찍은 거야?”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이니까… 한 7년 전이요…”

그 말에 강이 말을 멈추었다.

“7년… 전이라.”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렐에게 말했다.

“렐, 자수하지는 말아봐.”

“네?”

렐이 무슨 말이냐는 듯이 물었다.

“생각해보니 자수로는 그리 큰 죗값을 치를 순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강은 웃으며 말했다.

“나랑 같이 탑을 오르자.”

“네?”

“못 들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렐이 잔뜩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를…”

“간단해. 나랑 같이 탑을 오르는 거야. 다른 건 없어.”

“그렇지만… 그게 죗값을 치르는 거랑 무슨 상관…”

“상관있지. 탑을 오르면 꽤 많은 위험한 상황을 직면할 거야.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겠지.”

“아….”

그제야 강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 렐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한다, 렐.”

“네….”

강의 큰 손과 렐의 아담한 손이 포개진다. 서로를 마주 본 둘이 작게 웃었다.

그렇게 긴 밤이 흘러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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