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자신의 역작을 향해 전의를 불태우는 석찬 일행을 보며, 여섯 번째는 생각했다.
‘꼴값을 떠는군.’
그의 눈에 지금 석찬 일행이 하는 행동은 바위에 계란치기에 불과했다.
강석찬, 천무진, 김진현, 이브 네 사람 다 제대로 된 전투조차 해보지 못하고 자신의 역작에게 패배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런 이들이 모인다고 과연 달라질 게 있을까?
‘없어.’
유일한 변수라고 한다면 엘리자베스가 있겠지만, 여섯 번째는 그녀를 잘 안다.
“공작급 악마께서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할 수는 없겠죠.”
“…….”
그 말이 맞았다. 아무리 엘리자베스가 석찬의 노예가 되었다고 해도, 그의 무력은 50층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수준이다. 드래곤 정도는 되어야 그녀의 무력에 견줄 수 있는데, 그런 그녀가 제대로 힘을 썼다가는, 어떤 페널티를 받을지 모른다.
‘천사들 눈치도 보인다고 했고.’
사실상 엘리자베스는 전장을 이탈했다 봐도 무방, 때문에 여섯 번째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죽어라, 전부 다.”
“구어어!”
거대 키메라가 다시금 기동하기 시작했다.
“모두 알아서 피해.”
쾅!
모두가 거대 키메라의 주먹을 피해낸 이후, 주변에 넓게 흩어졌다.
“시간을 끌려는 것이냐? 가소로운 녀석들.”
후웅-
거대 키메라가 공중을 날았다.
잠시 후, 가속도와 함께 바닥에 착지한 거대 키메라 주위로 거대한 폭풍이 생겨났다.
“버텨!”
“크윽….”
“구어어!”
땅이 무너져 내리는 와중에도 거대 키메라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텅!
녀석의 주먹을 한 번 빗겨낸 진현이 강마력을 가득 두른 주먹을 녀석의 손목에 날렸다.
쾅!
찌잉-
얇게 떨리는 거대 키메라의 팔. 이에 맞춰 어느샌가 달려온 석찬이 모습을 드러낸 키메라의 약점에 다시 한번 주먹을 꽂았다.
퍽!
“구어?”
예상치 못한 공격에, 거대 키메라가 뒷걸음질쳤다.
“호오?”
여섯 번째도 흥미롭다는 듯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천무진, 진현아. 계획이 있다.”
“응? 뭔데?”
석찬은 빠르게 계획을 설명했다.
“이렇게… 이렇게…”
“무슨 꿍꿍이인지는 모르곘지만, 될 대로 두진 않는다.”
쾅!
거대 키메라의 주먹에 다시금 흩어진 세 남자가 서로를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대로.’
‘오케이.’
‘알았다.’
서로 눈을 맞춘 세 사람이 다시금 흩어졌다.
석찬은 거대 키메라의 등 뒤로, 진현은 좌측, 천무진은 우측에서 각각 강마력을 발산했다.
고오오-
거대한 마력의 움직임에 여태껏 세 사람을 얕보고 있던 여섯 번째도 눈을 빛냈다.
“오오? 이건 조금 재밌을 수도 있겠어. 가라, 키메라여.”
“구어어!”
거대 키메라가 다시 한번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진현에게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먹구름?”
콰직! 파지직!
천둥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쾅!
“크으윽!”
순간 거대한 번개가 거대 키메라의 머리 위에 내리꽂아졌고, 여섯 번째는 몸을 떨면서도 빠르게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우웅.
검은 보호막에 둘러싸인 여섯 번째가 한 곳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네 년은….”
“날 잊고 있는 것 같아서. 맛이 어떠냐.”
기가 라이트닝. 이브의 마법이 키메라에게 대미지를 입히는 순간이었다.
“죽여라!”
코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분노한 여섯 번째가 돌격 명령을 내렸다.
“구어!”
무서운 속도로 이브에게 달려드는 거대 키메라. 하지만 이브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응?”
갑자기 여섯 번째의 위로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
‘사람?’
떨어지고 있는 것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냥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설마….’
한 사람을 떠올린 여섯 번째가 황급히 몸을 옆으로 던졌다.
콰앙!
이후 거대 키메라가 쓰러지고, 연기 사이에서 한 노인이 걸어나왔다.
“흠… 속 시원하구먼.”
거대한 근육질의 노인, 로이먼 크롤로프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여섯 번째에게 다가갔다.
“네 녀석이 마을에 끼친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느냐.”
가볍게 묻는 것 같았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살의가 내포되어 있었다.
거대 키메라도 쓰러지고, 홀로 남은 상황.
“킥.”
하지만 여섯 번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크롤로프를 향해 당당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 올킬러? 아주 좋은 표현을 배웠어.”
“피해요, 크롤로프!”
“응?”
순간, 거대한 주먹이 크롤로프의 턱밑에서 나타났다.
“으읍!”
막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직!
턱을 강타당한 크롤로프가 쓰러진다. 키만 4m 정도로 인간에 비해 여덟 배 이상 크고, 그만큼 무지막지하게 강한 그였지만, 그보다 두 배는 더 큰 거대 키메라가 날린 카운터에 제대로 얻어맞은 결과는 참혹했다.
“쿨럭!”
피를 토한 크롤로프가 정신을 못 차리는 동안, 완전히 기세가 되살아난 거대 키메라가 크롤로프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시작했다.
“칫, 진현아! 가자!”
“오케이.”
크롤로프를 죽게 둘 수는 없었기에, 세 남자는 빠르게 거대 키메라에게 달려들었고, 이브는 또 다른 거대 마법을 영창하기 시작했다.
캉!
이미 붉은 눈으로 변한 천무진이 강기를 한가득 두른 검으로 거대 키메라의 등을 내리쳤다.
“젠장.”
조금의 출혈이 생기긴 했지만, 특유의 미친 회복 속도로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는 키메라를 보며, 그가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구어…”
어느새 천무진에게 끌린 어그로. 그가 녀석의 공격을 피하는 동안, 진현은 크롤로프를 이브 곁으로 데려가고, 석찬은 계속해서 거대 키메라의 약점을 공략했다.
퍽!
‘이걸로 17개 째.’
앞으로 남은 약점의 수는 8개. 그것을 전부 타격한다면, 진화한 일점폭파술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구어어.”
어느새 석찬에게 몰린 어그로.
“미안하군….”
거대 키메라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힘이 잔뜩 빠진 천무진의 눈에 붉은 기가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었다.
“괜찮아. 조금 쉬고 있어!”
거대 키메라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며, 석찬은 몇 안 남은 녀석의 약점을 노려봤다.
퍽!
‘7개!’
또 하나의 약점을 치며 열의를 불태우는 석찬. 그를 보며 천무진이 눈을 감았다.
‘조금만 버텨다오.’
그의 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휘오오-
손에는 찬란한 빛의 검이 생겨난다.
강기의 검.
석찬과의 대련에서 보였던 기술이 발현되었다.
“나도 질 순 없지.”
어느새 전장에 참여한 진현이 거대한 마력의 주먹을 휘둘렀다.
쿵!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거대 키메라가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진현은 강화 마력 피스트를 사용해 계속해서 녀석을 몰아붙였다.
쾅쾅쾅!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석찬이 미간을 좁혔다.
‘이래가지고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
키메라를 죽이는 두 가지 경우의 수. 하나는 회복이 불가능할 때까지 신체를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을 부수는 것이다.
거대 키메라의 말도 안 되는 신체 내구도와 회복력을 볼 때 첫 번째 방법은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가능한 것은 핵을 공격하는 것인데.
핵 감지로 알아낸 녀석의 핵의 위치가 조금 난감했다.
‘몸의 정중앙.’
핵의 개수는 하나. 단순히 따지자면 걸작 키메라보다 핵의 크기도 크고, 개수도 적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회복하는 녀석의 몸을 뚫고 몸 중앙의 핵을 부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또 다른 문제였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일점폭파술이 개쩌는 기술이긴 한데 말이야, 저 녀석 몸뚱아리가 어지간히 단단해야지.]
‘그러니까요…’
강화 마력 피스트로 계속해서 정타를 먹이는데도 피부에 멍 정도밖에 안드는 경이로운 내구력을 과연 뚫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던 와중.
휘오오-
석찬의 눈에 천무진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무언가가 보였다.
스르릉-
강기의 검을 벼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석찬의 생각이 바뀌었다.
‘맞아, 천무진의 그 기술이라면…’
파괴로밖에 부술 수 없었던 그 검이 있다면.
[흠. 가능할 수도 있겠는데?]
라우르도 생각이 일치했다.
‘가능하다.’
한계까지 마력을 쥐어짜낸 석찬의 주먹과 맞부딪찬다.
쾅! 쾅!
단순히 주먹이 맞부딪칠 뿐인데, 스파크가 튄다.
예전에 천무진이 강기의 검에 대해 설명해준 적이 있다. 강기의 검은 위대한 기술이지만, 위력과 부작용 때문에 한 번밖에 휘두르지 못한다고.
‘합이 중요해. 천무진이 공격을 시전하기 전에, 사전 작업을 전부 해둔다.’
비장한 표정으로 거대 키메라에게 달려드는 석찬.
치료를 받은 크롤로프도 다시금 전투에 참가해 석찬이 거대 키메라에게 파고들 틈을 만들어 주었다.
퍽! 퍽!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는 약점들.
콰아앙!
하늘에서는 이브가 만들어낸 불기둥이 거대 키메라를 훑고 지나간다. 새카맣게 탄 피부가 재생되기도 전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상처를 내는 세 남자. 그리고, 한계까지 기를 축적하는 한 남자.
‘위험하다.’
여섯 번째도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간 질 수도 있어. 우선 지금 노려야 하는 건…’
그의 눈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천무진이 보였다.
‘저 녀석이다!’
여섯 번째는 마력 운용자에 대해 잘 안다. 녀석들이 집중하고 마력을 모으는 동안 조금의 충격이라도 가해지면 심각한 중상을 입는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천무진에게 달려들었다.
“뒤져라!”
‘흠?’
천무진도 뒤늦게 여섯 번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강기의 검을 생성하는 데 온 정신을 쏟고 있었기에, 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죽는…’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커억!”
갑자기 여섯 번째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의 등을 덮고 있는 검은 마력을 보며, 여섯 번째가 침음했다.
“이… 이건?”
“그건 아니지, 동생. 가만히 있어.”
어느새 다가온 엘리자베스가 그의 위에 걸터앉아 천무진을 안심시켰다.
“하던 거 계속해. 얘는 내가 막아줄 테니.”
“고… 고맙다.”
천무진이 다시 강기를 모으는 동안, 여섯 번째가 엘리자베스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무슨 짓이긴. 너 막고 있잖아?”
“그러니까 도대체 왜…”
“너가 얠 죽이면 우리 주인님도 위험해지니까?”
그 말에 여섯 번째가 이를 갈며 말했다.
“주인? 저 인간 말입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마… 크아악!”
그때 여섯 번째를 압박하던 마력이 더욱 거세졌다.
“조용히 해. 그분도 이해해주실 거야.”
“크윽.”
싸늘하게 여섯 번째를 바라본 엘리자베스가 거대 키메라의 미간을 정확히 내리꽂는 석찬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곧 끝나겠네.”
어느새 강기의 검을 든 천무진도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고맙다. 덕분에 목숨을 건졌어.”
“쓸데없는 말 하지말고 빨리 저거 처리하기나 해. 슬슬 배고파지려고 하니까.”
“알았다.”
짧게 답한 천무진이 거대 키메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석찬과 눈이 마주친 그의 검이 거대 키메라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스컹!
반으로 갈라진 키메라의 몸이 좌우로 쓰러진다. 이브의 마법이 키메라의 몸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러는 와중, 공중에 높게 뜬 보라색 보석이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바로 그것이 녀석의 핵임을 파악한 석찬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구어어!”
목숨에 위협을 느낀 거대 키메라가 빠르게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강기의 검에 베인 몸이 핵을 중심으로 다시금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 그걸 써라!]
순간, 석찬의 눈에 키메라의 살점에 뒤덮인 핵이 그 어떤 약점보다 밝게 빛났다.
‘일점폭파.’
석찬의 주먹이 거대 키메라의 몸에 닿았다. 그리고,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