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엘리자베스가 의문의 남자와 만나고 있는 와중, 석찬은 바깥 공기를 쐬고 있었다.
시각은 늦은 밤중, 키메라가 나온다는 야심한 시간대였다.
“공기 좋네. 그보다 키메라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텅텅 빈 거리를 돌아다닐 때였다.
부스럭-
인기척이 들렸다.
“누구시죠?”
대답은 없었다. 대신 인간의 모습에 몬스터의 팔다리를 한 괴상한 키메라가 나타났다.
[똥을 싼다. 똥을 싸. 어차피 마력 감지로 알고 있으면서, 뭐 하냐?]
‘그냥 진현이 한번 따라해 봤어요.’
주먹을 쥔 석찬은 키메라에게 다가갔다.
“구어어….”
키메라는 기괴한 울음소리와 함께 석찬을 할퀴려 했다. 하지만.
팅.
새로운 장비를 뚫지조차 못하고, 녀석의 팔이 그대로 튕겨 나갔다.
픽-
직후 녀석의 팔이 갈라지더니 피를 뿜어냈다.
[키야.]
새로운 장비인 강석찬의 방어구 세트를 전부 착용하면 생기는 세트 효과의 힘이었다.
[3세트 효과 : 방어력 20% 상승]
[4세트 효과 : 상태 이상 저항 확률 50% 상승]
[5세트 효과 : 10%의 확률로 상대의 공격 반사]
세 개의 세트 효과 모두 훌륭했지만, 마지막 세트 효과는 유독 특출나다고 할 수 있었다.
‘공격 반사라니.’
비록 확률은 10%지만, 공격 반사라는 효과가 가지는 가치를 생각해보면 10%는 굉장히 높은 거였다.
‘방금도 단번에 터졌고 말이야.’
그나저나 공격 반사가 꽤나 센 건지, 아니면 키메라의 내구력이 약한 건지 키메라의 팔이 너덜너덜하게 갈려 있었다.
“구어어….”
하지만 녀석은 개의치 않고 갈라진 팔로 석찬을 공격했다.
툭.
하지만 멀쩡하지 않은 팔로 석찬에게 공격을 성공하기는 무리가 있었고, 석찬은 녀석의 머리에 딱밤을 날렸다.
탕!
총알 발사음 같은 소리와 함께 키메라가 바닥을 굴렀다.
‘오우.’
석찬의 손가락에는 키메라의 살점과 피가 묻어 있었고, 저 멀리 떨어져나간 키메라는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죽었…나?”
새로운 장비를 착용하고 나서 처음 하는 싸움인데, 스탯이 대폭 늘어나서 그런지 기본 출력이 남달랐다.
[힘 조절 해야겠다. 잘못했다간 피해를 줄 수도 있으니.]
그의 말에 석찬이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라우르가 언제부터 그런 거 신경 썼다고….’
‘예전 1층 영주성을 박살낼 뻔한 전적도 있던 양반이 말이야.’
[얌마!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네 팬을 최대한 늘려야 할 거 아냐!]
‘예이, 예이!’
[화신이, 말대꾸?]
‘또, 또 진현이가 얘기하는 거 따라한다.’
요즘 들어 진현이가 말하는 지구의 유행어를 자주 따라하는 라우르였다.
[어감이 찰져서 좋더라고, 그놈이 하는 말들.]
‘알아서 하십쇼.’
아직까지 부들거리는 키메라에게 다가간 석찬이 녀석의 몸을 살펴봤다.
인간과 몬스터가 절반씩 섞여 있는 키메라의 몸은 40층에서 봤던 키메라보다 더욱 많은 흉터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실험을 해댔길래….’
최소한 인간적인 도리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키메라 제작자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일단 키메라부터 다 처리하고, 제작자는 그 다음이다.]
‘그렇죠.’
자, 키메라를 고통에서 해방해줄 시간이다.
아직 밤은 길었다.
* * *
51층 동굴 속의 은밀한 연구실.
연구를 계속하던 남자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왜?”
옆에서 장비들을 만지며 놀고 있던 엘리자베스의 물음에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누군가 제 작품들을 건드리고 있어요….”
“50층에 보낸 애들?”
“예. 방금 또 하나 사라졌어요. 무슨….”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책상 옆에 놓여 있는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스크린이 밝게 빛났다.
“저 사람은….”
화면 속에는 주먹을 뻗고 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빛나고 있었다.
“호?”
화면은 흐릿했지만, 엘리자베스는 그 남자가 석찬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누구야, 대체? 왜 저런 짓을….”
남자가 초조해하며 화면 속의 남자를 분석하고 있는 와중, 엘리자베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아, 가봐야 할 거 같아서.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의심받을 수도 있거든.”
“그 주인님 말입니까?”
“그래.”
남자는 별 신경 쓰지 않으며 가라고 손짓했다.
“가세요. 다음부터는 오실 때 기별이라도 해주시고.”
“또 올 수 있을지나 모르겠네….”
“예?”
“아니야, 잘있어!”
후다닥 떠나는 엘리자베스를 보며, 남자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도 잠시, 다시금 화면에 눈을 돌려 흑발의 남자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개뼈다귀 같은 놈이….”
그가 엘리자베스의 주인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 * *
키메라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0마리의 키메라를 죽이니, 이제는 녀석들이 두세 마리씩 몰려서 석찬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네 마리라….’
어느새 키메라 네 마리가 한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모두 40층에서 봤던 정예급 키메라보다 강한 녀석들이었다.
게다가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싸워야 했기에, 마력도 최소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석찬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시질 않았다.
‘이 정도도 충분하니까!’
쾅!
석찬의 주먹 한 방에 키메라 하나가 바닥에 쓰러졌다.
‘윽.’
옆에서 달려드는 키메라보다 움푹 파인 바닥 타일이 더 눈에 들어왔다.
콰직! 콱!
바닥이 부서지지 않게 내리꽂지 않고 그 자리에서 두개골을 박살내 녀석들을 잠재운 석찬이 마을 광장에 키메라의 시체를 옮겨 놓았다.
“후….”
광장에는 이미 수십 구의 키메라 시신들이 놓여 있었다.
이것도 라우르의 작전 중 하나였다.
[마을의 치안을 박살 낸 녀석을 박멸했다고 공표함으로써 입지를 탄탄하게 다지는거지!]
‘그런데 이렇게 밤에만 잡고 다니면 사람들이 못 보잖아요? 낮도 아니고.’
숨겨진 영웅 컨셉으로 가면 입지를 다지기는커녕 사람들의 궁금증만 증폭시킬 뿐이었고, 나중에는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표시해 놔야지, 너가 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남사스럽게 이름 따위를 적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름 석 자 딱 딱 딱! 적어야지. 우리 모두를 위해서!]
‘모두는 개뿔, 라우르만을 위한 거겠죠.’
[들켰나?]
‘예.’
잠시 고민하던 라우르가 결국 묘수를 꺼내들었다.
[이번 일, 잘 해결해서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마법 몇 개 가르쳐주마.]
그 말에 석찬의 귀가 솔깃했다.
‘진짜요?’
[물론이지. 내가 거짓말하는 거 봤냐?]
‘몇 번 본 것 같기도….’
[에헤이, 무튼! 잘되면 마법 알려준다. 강력할 걸로다가.]
‘일점폭파술이나 파괴보다 더요?’
[일점폭파술과 비슷한 급은 될거다.]
‘오.’
그 말에 석찬이 전의를 불태웠다.
‘당장 녀석들 박멸하고 자러 가죠.’
[오케이, 가자!]
그렇게 불타오른 석찬과 라우르는 그날 밤, 며칠 동안 50층 마을 사람들의 골머리를 앓게 한 키메라를 전부 박멸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꺅!”
“저게 뭐야?”
광장 앞에 쌓인 키메라의 시신을 보며 사람들이 기절초풍했다.
“누가 저런 끔찍한 짓을?”
[이제 밤에 마음껏 돌아다니셔도 됩니다. -올킬러 강석찬 올림-]
시체들 위에 놓여 있는 팻말을 읽은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밤에 마음껏 돌아다녀도 되는 건 좋은데… 굳이 이렇게 광장 앞에 놔야 했나?”
“그러니까, 윽 냄새….”
물론, 좋은 의도로 한 행동이지만, 곱게 받아들이는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석찬의 행동을 칭찬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의 행동이 너무 과하다고 일어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말은 이러했다.
“저렇게 손속이 잔인한데 어쩌면 사람들한테도 저렇게 폭력적인거 아니냐.”
“유명해지고 싶어 정신이 나갔다.”
“키메라도 하나의 생명이다, 응?”
마지막 말을 하던 진현이 무언가 잘못 봤나 싶어 종이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 봤다.
“이야, 미친 새끼들 아녀, 이거.”
“마지막 거는 조금 억지인 거 같은데요.”
“그럼 앞에 두 개는 억지가 아니라는 거냐….”
석찬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진현이 건넨 민심 종이를 확인해 보았다. 확실히 칭찬이 많았지만, 비판 여론도 꽤 있는 상황.
‘이것도 예상하셨어요?’
[얌마! 안티가 생긴 것도 네 인지도가 늘어났다는 거야! 좋게 받아들여!]
‘겁나 무책임하다.’
[크흠… 미안하다. 예전에는 이렇게 하면 다 환호했는데, 요즘은 아닌가 보네.]
‘괜찮아요.’
어찌됐든, 라우르의 말처럼 유명해져야 안티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니, 인지도가 늘어났다는 것에서 만족해야 할 듯 싶었다.
‘물론, 선 넘은 녀석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지만. 특히 이놈.’
석찬은 종이에 적힌 한 의견을 보며 이를 갈았다.
[부모가 어떻게 가르쳤길래 저렇게 흉폭한 성격을 가지게 된 거냐.]
부모, 어떻게 보면 석찬의 최후 역린과도 같은 단어이다. 어릴 적부터 고아로 자란 석찬에게 부모의 부재는 늘 아픈 손가락과도 같았다.
‘게다가….’
부모 욕, 통칭 패드립을 하는 것은 불문율로 금지되어 있는데, 그런 말을 해?
‘넌 뒤졌다.’
오랜만에 석찬에게서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덜컥.
그때 방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오랜만이에요, 다들!”
이틀 만에 복귀한 엘리자베스였다.
“뭘 하다 이제 온 거야?”
날카로운 석찬의 눈빛에 엘리자베스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머, 화나셨나요? 조금 할 일이 더 남아 있어서… 호호.”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오자마자 미안하긴 한데, 이 글을 쓴 사람을 추적해줄 수 있어?”
“응?”
석찬에게서 종이를 받아든 엘리자베스가 잠깐 글을 읽더니 종이를 태워버리며 말했다.
“어디 이런 개 썅 호로잡….”
그녀의 입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뿜어져 나왔다.
“감히 주인님을 모욕해? 기다리세요. 다크니스 길드 지부에 다녀올게요.”
엘리자베스는 할 말만 하고 방을 나섰다.
쾅!
어찌나 문이 세게 닫혔는지, 방 전체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야, 석찬아.”
“어….”
“엘리자베스 누님, 누구 죽이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나 말이다….”
솔직히 걱정스럽긴 했다.
엘리자베스가 저렇게나 화난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니 말이다.
“일단 기다리자.”
엘리자베스를 기다리는 동안 세 사람은 말없이 둘러앉아 명상을 진행했다.
진현은 파랑 등급이 되어 두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석찬과 이브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그렇게 몇 시간 정도를 기다렸을까? 엘리자베스가 돌아왔다. 어깨에는 한 남자를 둘러멘 채로 말이다.
“누구셔?”
“이 사람이에요. 석찬 님 부모 욕한 사람.”
그 말에 석찬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아, 이 사람이구나. 수고했어.”
“별 말씀을,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
남자를 바라보는 석찬의 눈빛이 어둡게 빛났다.
“하하, 저기….”
“천천히 얘기하세요. 아직 날은 기니까.”
“에?”
석찬은 그 사람을 그냥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잠시 후, 방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